확실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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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76회 작성일 2013-03-08 09:38

본문

이사야 55:1-3 확실한 은혜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어느 마을에 들어갔는데 청어장수 아저씨가 청어를 한 판 지고 싱싱하고 물 좋은 청어 사려! 청어 사려! 하고 외칩니다. 선교사님이 그 청어 한 마리에 얼맙니까? 라고 물었더니 한 마리에 한 냥이라고 합니다. 청어의 마리수를 세어보니 27마리였습니다. 선교사님은 27냥을 내고 청어를 몽땅 샀습니다. 그리고는 청어장수에게 나는 두 마리만 필요하오. 그래서 내가 두 마리 가지고 갈 테니 25마리는 청어를 먹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못 사먹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시오 라고 말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청어장수가 정직한 분이라 그걸 다시 팔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듣도록 외쳤습니다. 물 좋고 싱싱한 청어 공짜로 줍니다. 가져가시오 그런데 한 사람도 곶이를 안 듣고 내다보지도 않더랍니다.
오늘 본문도 공짜로 물과 포도주와 우유등 먹을 양식을 나눠준다고 합니다.
1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양식을 사라고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요즘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흔하지 않지만 그러나 가끔 보지 않습니까?
찹쌀떡! 메밀묵! 자동차에서 싱싱한 체소 생선이 한보따리에 천원하고 외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이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장수, 포도주장수, 우유장수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죽 부대에 물과 포도주와 우유를 담아서 물 사세요! 포도주 사세요! 우유 사세요!”라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보통 장사꾼들은 물 한통에 천원! 포도주 한 병에 만원! 하는 식으로 외쳤지만, 본문에서의 외침은 다릅니다.
돈 없는 자도 오시오. 사기는 사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시오.
물도 공짜요, 포도주도 공짜요, 우유도 공짜입니다. 모든 양식이 공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진짜 귀중한 것은 돈으로 환산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짜로 줍니다.
공기 햇볕 등 기상적인 곧 천재적인 자연적인 것은 그냥 공짜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구원 받게 된 것도 공짜입니다.
그리고 성령도 값없이 원하는 자에게는 그냥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물과 포도주와 젖은 모두 각각 상징성을 지녔습니다.
먼저 물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인체는 70-80%가 물로 이루어졌습니다. 몸속에 수분이 2%가 부족하면 심한 갈증이 일어나고,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리고 12%를 잃으면 사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징계하실 때에는 하늘 문을 닫으시고, 비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에는 재앙과 죽음이 오게 됩니다. 물이 부족해지면 땅이 황폐하게 되고 생명이 살 수 없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을 사라는 것은 생명을 사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도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는 맛이 있게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포도주는 삶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기쁨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거저 주어지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젖은 영적인 양식, 생명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요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벧전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값없이 영적인 양식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거저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의 기준은 돈입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지는 것은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아니하니 돈이 없이 그냥 원하면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여기서 잘 넘어집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귀한 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겠는가? 내가 뭔가 공헌을 해야 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영생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 기여하거나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고전1:20-21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영생과 구원과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요,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에서 목마른 자를 부르십니다
목마른 자는 삶에 지치고 허덕이는 자들, 인생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목말라하는 자들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물로 나아오지를 않습니다.
요 4장에 보면 인생의 갈증으로 목마른 한 여인이 나옵니다.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닌 불행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혹시 삶에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까? 내면에 목마름이 있습니까?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십시오. 속이 시원하도록 생수를 벌컥 벌컥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수 같은 은혜를 마시고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헛된 수고를 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세상에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삶이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여름 별장, 겨울 별장, 식물원도 만들고 동물원도 만들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밤마다 연예인 불러 놓고 파티를 하고, 별별 짖을 다 해보았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1:2-3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이 정도 살아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말년에 귀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얻게 될 것입니다.
2절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고 하시고 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말씀을 들을 때 육신의 귀가 아닌 마음의 귀, 믿음의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말입니다.
귀를 기울이고라는 말을 귀를 펼치고는 말로 작은 소리를 들으려고 할 때 귀에 손을 펴서 대면 소리가 모아져 들어오면서 더 잘 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집중해서 들으라는 말입니다.
들으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샤마로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청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기울이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로 말씀을 들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듣고 행함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살아 날 수 있었음은 복음을 듣고 그리고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수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생각과 말씀이 일치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는 책에서 사람이 행복한 일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비참한 일을 생각하면 비참해 진다. 무서운 일을 생각하면 무서워지고 실패만을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했습니다. 생각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결정합니다.
롬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을 들으십시오. 마음을 집중하시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생각 속에서 씨앗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원하시면 확실한 은혜를 주십니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이는 바벨론의 포로 된 유다 백성들 중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 그대로 남아있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벨론은 물질문명이 극치를 이룬 사회였습니다. 바벨론의 공중정원은 지금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을 만큼 물질이 풍부했습니다. 돈과 먹을 것이 많았고, 문화도 발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 곳에서 은을 달아 주며 양식을 사는 등 수고해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은 풍부하게 얻을지 몰라도 결국 그들의 영혼은 배고프고, 고달프며, 비참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대가 마치 이와 같습니다.
부요와 쾌락과 권세와 술과 약물과 문화와 예술과 명성과 권력은 있지만 영혼은 공허합니다.
아무리 바벨론의 영광이 크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작은 영혼 하나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쾌락과 권력과 돈과 명예와 인기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들을 추구해봤자 결국에는 허무한 결과를 맞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삶의 목적을 두거나, 목을 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이 질문은 인간의 실존을 파악하는 아주 깊이 있는 질문입니다.
스스로 노력하면서 허덕거리는 인생은 양식도 얻을 수 없고, 기쁨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물과 포도주와 젖만이 생명이요, 기쁨이요, 양식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가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어떻게 확실한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나아오라
종교를 짐으로 생각하여 신앙을 버리고 떠났다 긴 방황 끝에 신앙으로 돌아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설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입니다.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하다가 틴에이저 시절에 신앙을 떠납니다. 그러나 55세가 되었을 때 신앙론 에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나는 지나간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15년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 온 것입니다. 18세 되던 해 친구가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설득하였습니다. 나는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기독교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종교를 속박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부르십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입니다. 왕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초청합니다.
그러나 초청된 자들이 오지 않습니다. 이유는 바쁘다는 것입니다. 밭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들고 일이 바빠 못 오겠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주시려 초청하지만 바빠서 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도 바쁜 것은 아닙니까? 사업 때문에 바쁘고, 혼인잔치에 가느라 바빠서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무리 은혜가 준비되어 있어도 하나님께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쁠수록 예배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해야 합니다. 바쁘기에 더 기도해야 하고, 바쁘기에 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종하라
말씀은 나의 말을 부지런히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문제는 복음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영원과 내세에 관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신30:11-16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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