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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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30회 작성일 2013-03-0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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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6:36-46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활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한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저도 이제부터 세례를 받고 본격적인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얼마나 읽어야 하고 신앙의 연조는 얼마나 돼야 합니까 테일러목사는 청년에게 되물었다. 촛불은 언제부터 빛을 발합니까 청년이 대답했다. 그야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테일러목사는 신앙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성경지식과 신앙연륜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부르심에 대한 거룩한 응답이다. 신앙은 내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그 분 앞으로 나아가는 엄숙한 행위인 것이다.
부르심에 함께 하는 것은 믿음이요 또한 사랑입니다.
아가서에 보면 술라미 여인과 솔로몬 왕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2:10-13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사랑하는 자야 따로 놀자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자고 합니다. 함께 하는 것이 믿음이요 또한 사랑입니다.
나오미 여인이 흉년을 만나 모압 땅으로 갔다가 남편과 아들 두 명을 잃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 갈 때에 그의 며느리 중 하나인 룻이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서 죽음 외에는 떠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룻1:15-18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같이 믿음과 사랑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함께 함께 하자는 말씀을 하십니다.
함께 기도하자 라고 하시고 또한 함께 가자라고도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죄인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런데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 그의 글에 예수님의 인기도를 표현하기를
요1:10-12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제 이 주님이 오늘 나를 사람으로 초청하여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게십니다.
앞으로 닥 칠 세상일에 대하여 잘 감당하고 그리고 주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주의 뜻을 받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고민을 하시다가 그 고민이 얼마나 크신지 죽을 만큼 큰 고민이 있다고 슬퍼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을 받아 드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 재활병원 실로암 안과 병원의 벽에 붙어 있는 어느 환자의 글입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하였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서 부요를 구하였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자 성공을 구하였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모든 것을 달라고 구하였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는 줄 알았는데 내 소원 모두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우는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가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왜 나를 세상에서 불러 주셨습니까?
내 소원 성취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예수 안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부르심은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 중에 평균 8시간 20분 동안 인터넷과 모바일 등 디지털 미디어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수면과 식사 등 필수시간 7시간 39분을 제외한 16시간 21분을 일상 활동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8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은 전체 일상 활동 시간의 50.4%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반면에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은 전체 일상생활의 18.6%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대한 정보는 박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정보에 대하여는 전무하는 무식 자입니다.
왜 망합니까?
세상의 정보를 몰라서 망하느냐? 아닙니다.
세상의 정보를 많이 알아서 그렇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걸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2:1-8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잠3:13-18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이런 것을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저는 오늘 새벽 기도회에서 또 은혜를 받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고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제 마음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러 주시는 대로 구하니 또 힘을 얻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느냐 하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은 보이지 않고 내 뜻만이 있기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깨어 있게 합니다.
연속극 보다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 아닙니다.
인간의 뜻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약1:12-17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깨어서 기도하지 않던 겟세마네 동산의 제자들은 시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를 위하여 목숨도 버리고 다 주를 버릴지라도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장담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니 시험이 들었습니다.
마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했지만
베드로가 폭력주의자가 되어 혈기를 부리고 비겁자가 되어 비참하게 전락한 결정적 이유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도 주님을 미워해서도 아닙니다.
마26: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처럼 기도를 쉬면 머리를 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세력입니다.
기도 소리가 작아지고 기도 시간이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마귀의 활동무대가 넓어지게 됩니다.
기도를 중단하는 순간, 마귀는 혈기를 부리도록 촐싹거리면 다혈질과 조급함을 부추겨 서둘게 만들고 말씀 듣는 귀를 어둡게 해 싫증나게 만들며 거역하고 도전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게을러지게 할 것입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마귀가 파 놓은 함정에 깊이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레이는 시험에 빠지게 되면 영적 즐거움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그 영혼이 위태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패잔병에게는 군가와 개선가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패잔병에게는 찬송과 희열이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영혼은 세상의 종이 되고 죽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살아서 약동한다면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병들었다면 찬송과 기도가 떠나고 감사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은 너희 자신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며 기도하지 않다가 망신당하고 시험에 빠졌던 베드로는 훗날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5절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이 말씀의 뜻은 이미 가룟유다가 안내한 로마 병사들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님을 잡기 위해 밀어닥쳤기 때문에 이젠 더 이상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만사에 때가 있듯이 기도에도 때가 있습니다.
환난을 당한 후에 부랴부랴 정신 차리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환난을 막아 주시고 면케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인 것입니다.
기도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 당장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따르는 자들 중에는 무리가 잇고 제자가 잇습니다.
무리는 항상 군중 심리에 마음을 두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밀을 그들에게는 일러 주시지 않습니다.
떡이나 얻어 먹으러 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밀을 일러 주십니다.
마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제자들 중에도 스폐살 하는 제자가 잇습니다.
이 겟세마네 초입에 8명의 제자들에게는 앉아 있으라 하시고 3명의 제자들에게는 그의 고민거리와 그리고 슬픈 감정을 내어 놓았습니다.
이 세 명은 교회의 기둥입니다.
갈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예수님은 가끔 3명만 따로 불러서 다니셨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갈 때,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실 때, 감람산에서, 이번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3명만 따로 불러 가셨습니다.
무리와 군중 같은 자들도 아니요 제자 중에 주님의 심중을 알고 언제든지 함께하는 제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주의 뜻을 알고 동참하는 복된 자가 되셔야 하지 않습니까?
여태까지 너무나도 나를 위한 기도에 몰입하고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까?
오늘부터 겟세마네의 기도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속이 다 시원하고 시험든 것이 치유가 될 것입니다.
내 힘든 일에 주님은 이 시간에도 함께 가지고 하십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이제는 무기력하고 엎드러져 있는 삶에서 일어나서, 예수님과 함께 가는 생기 있는 삶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마음 슬프고 당황하여 고민에 빠졌었지만 그를 오늘날까지 구세주로 세워 놓았습니다.
육신의 소욕은 멸망이지만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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