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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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08회 작성일 2013-05-1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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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5-11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미국의 여자 수영선수였던 조니 에릭슨은 승마와 하이킹, 테니스와 수영을 좋아했던 꿈 많은 십대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1967년 7월의 어느 여름날, 조니는 해변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가 돌에 부딪쳐서 한순간에 사지가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조니는 머리에 두 개의 큰 구멍을 낸 후에 금속 막대기를 그 안에 집어넣어서 머리를 잡아당겨 지탱하도록 장치했습니다. 그 당시에 두 명의 학교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가 조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한 친구는 밖으로 뛰어나가 구토하고 다른 한 친구는 흐느껴 울었다고 합니다. 조니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 어떻게든지 죽을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3년간 세월을 눈물로 보내면서 하나님을 향한 반항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디라는 친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습니다. 조니, 예수님은 너의 마음을 알고 계셔. 너는 혼자가 아니야. 왜냐하면 그분 역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때가 있었거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기억해봐. 예수님은 자세를 바꾸거나 몸을 편하게 할 수 없었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움직일 수가 없으셨거든.
그러자 조니가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몸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순간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조니는 열심히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빨로 펜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대학교에서 연설 강좌를 수강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연설자가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려서 경제적으로 자립을 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은 조니의 손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강연과 집회를 인도하고 TV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장애인들을 위한 세계선교센터를 건립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녀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한편의 위대한 드라마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사지 마비가 된 조니 엘릭슨에게 신디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개한 것 같이 바울은 당시에 상당히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개하는 아주 위대한 말씀을 주었습니다.
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니 거의 자신들을 죽이는 줄로 여기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을 때에 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오히려 살아 날 것입니다.
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 이름이 오히려 뛰어난 이름으로 그리고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그 마음이 많은 죄인들을 살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 인생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음으로 삶이 새로워지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았습니다.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보통 사람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의 상이 있습니다.
모든 능력과 모든 지식을 가지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어디든 없으신 곳이 없고 변함이 없으신 무소 불변하신 하나님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며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절대 주권자의 하나님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며 피조물인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동안의 알고 있는 하나님 상은 권력자의 모습이요,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높은 곳에만 계신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은 한없이 낮아지며 비우며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마땅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서의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될 영광과 전능함, 영원불변함을 포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얼마나 자기 권리를 내세우기에 빠릅니까?
없는 것까지 자기의 것으로 말해 버립니다.
누가 자기 위치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을 때 곧 화를 내고 맙니다.
자기 자신의 조건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마26:53-54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자신을 잡으러 오는 로마 병사의 귀를 칼로 쳐 떨어뜨린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은 자기의 기득권에 메어있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인간은 누구든지 충만한 것을 좋아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자신을 텅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비어있기 때문에 죄인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비웠기 때문에 누구든지 받아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은 가장 약하고 천한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피조물이라는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의로운 분이 죄인이 되셨습니다.
만물의 주재이신 분이 가장 가난하게 되시고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생명 그 자체가 되신 분이 죽으시고 삼일 동안 음부에 가 계셨습니다.
섬김을 받으실 분이 종이 되셨습니다.
존귀와 영화를 받으실 분이 벌레와 집승같이 여김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 앞에서 정말 위대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 앞에서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자기주장은 더 이상 설 곳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난과 불의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고통당하시는 모습으로 보며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심을 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릴 정도로 인간의 죄와 불의는 심각한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심으로 인간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마음입니다.
7-8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에서 비운다는 헬라어 단어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모두 쏟아내 버린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하나님의 본체와 종의 형체는 변하지 않은 한 존재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함으로 어려움에 처하는데 하나님의 신성도 그대로요 하나님이 인성을 가지심도 그대로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또한 인간이십니다.
이게 신비의 교리입니다.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본래 하나님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이러한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과 관련해서 수많은 기독교 이단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성 그리고 인성을 부인하면 다 이단입니다.
18세기 독일 신학자 토마시우스는 예수님이 신성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그의 케노시스(Kenosis) 이론은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잠시 사람의 몸을 빌려서 나타난 유령과 같은 존재로 이해하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예수님의 인성(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러한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항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요2서1:7절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이와 반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에비온파가 있었는데 이 에비온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단지 구약시대에 등장했던 위대한 예언자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사실 지금의 유대교나 마호메트교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주장하는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 증인(Jehovah's Witnesses)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 (The Church of Christ of Latter-Day Saints)라고 부르는 몰몬교(Mormnism)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일부다처가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예수가 하나님과 마리아 사이의 육적인 성적관계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영적 아기요 천사 루시퍼의 형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교리를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궁극적으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처럼 기독교 이단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거나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마음은 나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신의 희생을 통한 죄인의 구원이십니다.
이렇게 낮아지신 예수님을 보면서 마치 예수님은 물과 같은 하나님이시다고 말들을 합니다.
물은 어떻습니까? 한없이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갑니다.
구름에서 비가 되어 산으로 들로 내리고, 시내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흘러내립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들을 촉촉이 적시며 살려냅니다.
물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내려 가지만 결국 바다를 이룹니다. 세상에 바다처럼 크고 넓은 것이 또 어디 있습니까? 모든 것을 받아주고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 바다입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불기둥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신다면 감히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은 물로, 영원한 생수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사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남편을 다섯 명이나 바꾼 여자 지금 남편도 만족이 없어 있는 그 여자에게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런 예수님을 높이시기는 하나님이 높어주셨습니다.
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죽기까지 복종하며 섬겼더니 모든 사람이 와서 저에게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간 저를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진정 낮아지는 것만이 모두를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낮아지셨기 때문에 이 땅에 평화가 오고 인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무겁든 가볍든지 간에 거절하는 적이 없답니다. 오직 주인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낙타의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가 짊어지지도 못할 짐을 지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짐을 지게 하지 않습니다.
나의 섬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상은 섬기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입니다.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시오 내가 닮아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내 안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나도 살고 남도 살리고 더 나아가 남을 살리는 내가 더 존귀케 되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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