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생명을 주는 양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32회 작성일 2013-05-18 08:58

본문

요한복음 6:26-33 세상에 생명을 주는 양식
지난 10일 프라미스교회에서 열린 뉴욕교협 주관 세계선교대회에서 원더걸스 멤버인 민선예는 인기 가수에서 이제는 선교사로서, 제2의 인생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고 간증했다.
물론 선교사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선예는 원더걸스로 활동하며 가수로 정상의 위치까지 오르고도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삶이 달라졌다며 나에게 주신 이 달란트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임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선예의 간증 중에는 가원도 시골 생활, 그리고 부모 이혼 등의 과정에서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리고 만인이 부러워하는 유명 가수가 되었는데 가수가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수가 되니 바쁜 일상 중에 꿈과 거리가 먼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가 기대했던 그 감정이 아니었다. 성공해서 좋겠다며 소위 부러움을 사는 위치까지 갔었지만 제 마음은 공허했다.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하나님은 믿었지만 진정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무대에 올라가서 기도해도 나를 위해 기도를 했고 실수 안 하게 해달라는 식이었다.
내 마음이 너무도 공허해서 이것을 어떻게든 회복하기 위해 기도를 했다. 맨해튼의 한 교회에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하셨고,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이 뭔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나를 구하러 오셨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느끼게 됐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해서 좋은 것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해도, 예수님 만나서 이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어떤 잘난 사람도 그 길의 끝에는 죽음이 있지만, 예수님의 구주되심을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에 마음이 불타게 됐다. 그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아이티로 선교를 가게 됐다. 단순히 이 사람들에게 빵만 전할 것이 아니라 정말 복음을 전해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어가는 이곳에 복음을 속히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헌신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하게 됐고, 나에게 주신 이 달란트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임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저의 새로운 콜링으로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완벽한 시간에 저에게 남편을 주셨다.
땅 끝까지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렇게 사역을 시작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한창 인기 있는 연예인으로서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를 확실히 알았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모여 들고 있었습니다.
어제 뱃세다 광야에서 아이 도시락 하나로 5000명이 배불리 먹는 대박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나도 흥분 되어 있었습니다.
우르르 몰려 다녔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예수님이 인기가 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자신이 인기 있는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2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사람이 진정 잘 살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양식은 썩을 양식이니 이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라고 하십니다.
27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20세기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와 존재에서 인간에게는 소유지향과 존재지향 두 가지 종류에 지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맞추어 표현을 바꾸어보면, 소유는 육신의 떡, 존재는 생명의 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유를 지향하는 사람은 남보다 내가 많이 움켜지겠다고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유는 남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소유에 집착하는 이들은 결국 남의 정신과 물질을 침해하게 됩니다.
가정 내의 불화, 노동자와 사업가의 갈등, 조직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국가 간의 갈등 등 모든 갈등은 소유를 지향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싸움입니다.
사회 제도의 병폐는 인간의 정신이 소유를 추구하도록 인간문명을 지나치게 물질화시켜 놓은데 있습니다.
반면 존재를 지향하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는 대신에 어떤 인격이 되려고 합니다.
소유는 목적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많이 소유해도 소유는 흘러갈 뿐이고, 남아 있는 것은 존재요,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 가지입니다.
청춘도 지식도 건강도 재산도 생명도 다 지나 갈 것뿐입니다.
그러나 진작 남는 것은 그것들을 통해 남은 것은 하나님과의 믿음입니다.
눅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하나님께 가져 갈 수 있음은 역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영원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살아 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던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의 찾아왔습니다.
뱀을 통하여 인간을 유혹하려는 사단의 여자가 남자보다 연약한 존재인 고로 뱀은 먼저 여자인 하와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미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도구인 뱀의 미혹에 넘어간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남편인 아담에게도 그 열매를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왜 먹었는가?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 결과 어떻습니까?
창3:22-24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그러나 하나님은 벌써부터 이런 삶을 살고 스스로 망 할 까봐 사단의 유혹을 이길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주셨습니다.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육신의 욕심에 끌리는 소리만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생사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에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한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 모(15) 군의 소식이 너무 나도 마음이 아플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상당히 착하고 그리고 가정도 화목한 가정입니다.
그것만으로 어린 학생이 자신의 생명을 보전 할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막다른 선택을 결심한 최 군이 작성한 유서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합니다.
죽어서도 영원히 사랑할 거라면서 먼저 죽어서 미안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 목이 탔던 걸까, 마지막까지 투정을 부려 미안하다며 물을 달라고 말을 할 정도로 여유도 있고 듬직하기 까지 합니다.
그 전날 자신의 누나와 텔레비전을 보며 농담을 하며 깔깔 거리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 학생이 투신 직전 옥상에 쪼그려 앉아 학교폭력을 폭로하고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유서를 쓴 뒤 15살 소년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회가 그를 붙잡아 주지 못했다고 그리고 그 학교가 그 선생이 그리고 그 못된 친구들 때문에 다 맞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육부 장관은 학교 폭력에 힘을 써야 하고 CC TV 사각 지대가 없도록 하고 그 교장 선생 문책하고 그 못된 아이들 형별을 강화하고 또 그렇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회기 여러분의 인생 자녀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만 하는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든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는 선악과만 소개하지 말고 그것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의지 즉 믿음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사회는 자신을 지킬 만한 그 무엇이 없습니다.
그냥 이 세상에 방치 되어 있을 뿐입니다.
기껏해야 세상을 한하고 핑계되고 말입니다.
삶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유만을 위한 육신의 소욕만을 위한 삶만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삶의 의식을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하여 사셔야 합니다.
인간은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짐승은 소유를 위한 삶, 배만 부르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배가 불러도 허전 합니다.
영혼을 만족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을 만족 시키는 양식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리는 양식입니다.
32-3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하늘에서 내려 생명을 주시는 이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시오 그의 말씀입니다.
먹고 죽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살리는 것입니다.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희생으로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48-51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때에 그 양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게 될 그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취할 수가 있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그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좇아 간 삶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 하며 살아온 삶을 말합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참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살아가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혼의 양식을 취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거기에 대한 설명이 뭡니까.
선교사가 되라도 아니요. 목사가 되라도 아니요.
장차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을 섬기기라도 아니에요.
세상을 많이 경험하고 섬기기라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보고 아직 느낀 점이 없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못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도 떡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까?
제가 이 본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여보 떡 한 조각 줄까요 그래요 싫다고 햇죠
그런데 후회하게 될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지금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 줄 아느냐 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영혼과 육을 가진 존재라서 육신의 양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우선되는 것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동물은 배고픔만 느낍니다. 그리고 배만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두 가지 배고픔을 느껴야 합니다.
육신적인 배고픔을 느낍니다.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돈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음식, 좋은 집, 좋은 자동차, 명품으로 꾸미면 행복할까요? 그런 것들을 가지면 만족할까요? 또 다른 만족을 찾아서 헤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합니다.
영혼을 가진 사람은 영혼의 배고픔을 느껴야 합니다. 영혼의 배고픔이 해결되어야 진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영혼의 배부름이 있어야 만족을 알게 됩니다. 오래가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이 죽어있는 사람은 영혼의 배고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혼의 양식을 말해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내가 배고파 죽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목요 봉사 시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위해 수십 명이 줄을 썹니다.
그 어떤 음식점보다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이들이 말씀을 사모하며 모여 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깔깔 대다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안타깝게 아이들을 학교로만 학원으로만 몰지 말고 교회로 복음으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사실 내 주위에 불안불안 한 아이들 많습니다.
내 남편 돈 버는 대로만 출세하는 대로만 내 몰지 말고 교회 나와서 안식을 얻게 하고 쉼을 주어야 합니다.
이 사회 정죄하고 탓하지만 말고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다시 사셨다고 말입니다. 사망 권세 이기고 사셨다고 말입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몰려다닙니다. 그러나 영생하는 양식을 말하면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부합니다. 비웃습니다. 함부로 취급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죽어가는 자를 버려두어야 합니까?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