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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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65회 작성일 2013-05-18 09:00본문
요한복음 20:19-23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간에 나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입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본문에서도 두 번이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1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 이라는 말은 평화, 평안, 화평이라는 말이다.
수 천년동안 강대국들의 침략과 약탈에 시달려온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도 서로 만날 때마다 shalom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즉, 평화 평안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움 심지어는 공포에 시달렸다는 것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잘 먹지 못 할 적에 우리네 부모님들의 인사가 무엇입니까?
식사하셨느냐? 밥 먹었느냐? 가 인사의 주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 평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 가지고, 권력가지고, 지식과 명예로 평화와 평안을 사겠다는 것이다.
남북이 불안한 가운데 있습니다.
남쪽은 핵전쟁에 대하여 너무 태연 하는데 북쪽은 크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마침 미국의 핵탑제 능력을 갖춘 스텔러기 B2 비행기가 한국 상공에서 사격 연습을 하니 북한은 더 야단입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너무 태연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처럼 찾고 있는 진정한 평화와 평안을 찾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상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험악해져 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돈이나, 권력, 명예, 지식, 힘으로 그 자체만으로는 평화가 없다는 증거이다.
이 평강은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평안은 하나님을 소유한 자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이렇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눅2:11-14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평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평강이 나에게 이루지는 것입니까?
세상은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죄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인류의 최초 조상인 아담에게도 두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여태까지 평온하기만 했는데 두려움이 온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창3:6-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가 들어오고부터 사람 속에는 참 평강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 위장 평안입니다. 언제 깨어질지 모릅니다.
사48:22.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토록 사람들이 갈망하고, 평화와 평안을 위하여 많은 조약이 체결되고, 평화의 기구인 유엔이 창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세상은 날이 갈수록 불안하고, 전쟁의 위험은 더욱 높아져 가고, 하루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평안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평안치 못함은 내 마음에 있는 죄 때문이다.
죄는 평안을 파괴한다. 죄가 자리 잡고 있는 한, 평안이 있을 수 없다.
죄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마음속에 죄가 자리 잡고 있는 한, 돈 방석, 권력의 의자, 지식의 최고봉에 앉아 있어도, 그 심령이 평안할 수 없다.
언제 그 죄가 들통이 날지 모르고 그 죄가 소리를 지르고 그리고 죄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권에서 인사를 발탁하는데 총리등 감춰진 불의함이 드러나 그만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차관후보는 성대접이라는 파문이 일자 조사하기도 전에 어이쿠 나 안한다 하고 사퇴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죄가 감추어져 있어서 그렇지 죄 짖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롬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죄인은 개 짖는 소리에도 놀라고, 경찰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하기 마련이다.
영국의 속담에 죄인은 생쥐 발자국 소리에도 놀란다. 라는 말이 있다.
죄악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평안을 방해한다.
죄라고 하는 것은 범하기 전에는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행복해 보여도, 일단 죄를 범하고 나면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알게 되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시38:3-4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 같았고,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워 보여 먹고 싶은 생각과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것을 따먹었다.
그런 다음 그가 행복하고, 평안했는가? 마음에 평화가 있었는가? 평안은 모두 사라졌다.
두렵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고, 숨었다.
그렇다고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감추어지고 숨어지는가?
그 죄가 에덴에서 쫓김을 받고 세상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결국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죄는 들통이 나고 그 값은 치르게 마련인데 그 값은 사망입니다.
추운 지방에 사는 Eskimo인들이 늑대를 어떻게 잡는가? 에 대한 특별한 방법을 이렇게 말했다.
Eskimo인들은 늑대를 잡기 위하여, 날카로운 칼날에 짐승의 피를 묻힌 후, 그것을 얼린다. 칼날에 피가 얼어붙으면 그 위에 다시 피를 묻히고 다시 얼린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을 하면 나중에는 칼날이 얼어붙은 피 속에 숨겨지게 된다. 이 칼을 늑대들이 잘 다니는 곳에 칼날이 위로 오게 묻어둔다. 늑대는 피 냄새를 맡고 곧 다가와서 얼어있는 피를 혀로 핥기 시작한다. 계속 핥으면 마침내 날카로운 칼날이 나타나지만 늑대의 혀는 이미 차가운 얼음을 핥는 중에 감각이 없어져 자기의 혀가 갈라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계속 열심히 핥는다. 늑대는 마침내 피를 많이 흘려 쓰러져 죽는다는 것이다.
죄라고 하는 것이 이처럼 지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것이라는 생각도, 감각도 없이, 죄짓는 재미에 빠져, 열심히 죄를 지으나, 결국은 자기를 망하게 하고야 만다.
그러므로 죄악을 품고 있는 한, 참 평화가 없는 것이다.
죄 문제를 자기가 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며, 초능력자가 아니다. 인간은 상한 갈대처럼 한 없이 약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다보면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이런 문제를 자기가 짊어지고 가지 않는다.
하나님께 모든 삶 전체를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평안을 얻게 됩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짐을 주님께 맡기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 짐을 맡 길수 잇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시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어느 무더운 여름 청년 한 사람이 예배당 앞을 지나다가 호기심에 끌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강단 뒤로 까만 휘장이 쳐져 있고, 다음과 같이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청년은 그 글씨를 보고 이곳은 예배당이 아니라 휴게소로군하면서 코웃음을 치고 예배당을 나와 자기의 갈 곳으로 가버렸다.
그로부터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청년의 생활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산다는 것이 너무너무 힘이 들었다. 모든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죽고만 싶었다. 청년은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졌다.
그는 죽을 곳을 찾아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가고 있는 길은 자신이 바로 1년 전에 지나갔던 바로 그 길이었다.
한참 가다보니 십자가 종탑이 보였다. 그는 문득 1년 전에 자신이 그곳에 들렸던 일과 성경구절이 생각나게 되었다.
청년은 교회로 들어가 목사님을 만나고, 그 성경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하였다. 청년은 새 사람이 되었다.
죽으러 가던 그는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후에 크게 성공하였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평안을 빼앗아 가고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셨기 때문에 너희 에게 평안이 있으라고 축복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 참된 평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평화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이 평화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평화이다.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변함없는 평화이다.
평안을 앗아가는 죄를 값을 예수님이 이미 치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확신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문을 꼭꼭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이제는 숨어 있지 말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19-21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평강을 주시는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사람이 이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 것은 자신이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또한 다시 사셨음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때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으나 그의 부활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고,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했지만 아직까지도 확신이 없는 반신반의의 상태에 있었다.
이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못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주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가 그 믿음의 결과로 받는 주님의 선물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의 샘이 솟을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를 살렸다. 나의 모든 죄를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깨끗케 하였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주님이 대신 죽으셨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의심 없이 믿고 살 때,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원망과 불평, 불안한 마음은 사라질 것이며, 구원의 기쁨과, 감격,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죄가 사함 받은 증거로 그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은 내 마음 속에 보증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22절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권유의 말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속에는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내가 성령을 보내니 너희는 받아라, 이게 내가 주고자 하는 평강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보증이 된다.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성령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평안을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빌4:6-9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죄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축복이 바로 평강의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세마포를 벗어 놓으시고 부활의 새 옷을 입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새 생명을 새 옷을 입혀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새 생명을 소유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할 뿐 아니라 이제는 흰 옷 입은 사람들로 삶속에서 영생을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간에 나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입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본문에서도 두 번이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1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 이라는 말은 평화, 평안, 화평이라는 말이다.
수 천년동안 강대국들의 침략과 약탈에 시달려온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도 서로 만날 때마다 shalom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즉, 평화 평안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움 심지어는 공포에 시달렸다는 것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잘 먹지 못 할 적에 우리네 부모님들의 인사가 무엇입니까?
식사하셨느냐? 밥 먹었느냐? 가 인사의 주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 평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 가지고, 권력가지고, 지식과 명예로 평화와 평안을 사겠다는 것이다.
남북이 불안한 가운데 있습니다.
남쪽은 핵전쟁에 대하여 너무 태연 하는데 북쪽은 크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마침 미국의 핵탑제 능력을 갖춘 스텔러기 B2 비행기가 한국 상공에서 사격 연습을 하니 북한은 더 야단입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너무 태연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처럼 찾고 있는 진정한 평화와 평안을 찾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상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험악해져 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돈이나, 권력, 명예, 지식, 힘으로 그 자체만으로는 평화가 없다는 증거이다.
이 평강은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평안은 하나님을 소유한 자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이렇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눅2:11-14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평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평강이 나에게 이루지는 것입니까?
세상은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죄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인류의 최초 조상인 아담에게도 두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여태까지 평온하기만 했는데 두려움이 온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창3:6-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가 들어오고부터 사람 속에는 참 평강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 위장 평안입니다. 언제 깨어질지 모릅니다.
사48:22.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토록 사람들이 갈망하고, 평화와 평안을 위하여 많은 조약이 체결되고, 평화의 기구인 유엔이 창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세상은 날이 갈수록 불안하고, 전쟁의 위험은 더욱 높아져 가고, 하루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평안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평안치 못함은 내 마음에 있는 죄 때문이다.
죄는 평안을 파괴한다. 죄가 자리 잡고 있는 한, 평안이 있을 수 없다.
죄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마음속에 죄가 자리 잡고 있는 한, 돈 방석, 권력의 의자, 지식의 최고봉에 앉아 있어도, 그 심령이 평안할 수 없다.
언제 그 죄가 들통이 날지 모르고 그 죄가 소리를 지르고 그리고 죄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권에서 인사를 발탁하는데 총리등 감춰진 불의함이 드러나 그만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차관후보는 성대접이라는 파문이 일자 조사하기도 전에 어이쿠 나 안한다 하고 사퇴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죄가 감추어져 있어서 그렇지 죄 짖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롬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죄인은 개 짖는 소리에도 놀라고, 경찰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하기 마련이다.
영국의 속담에 죄인은 생쥐 발자국 소리에도 놀란다. 라는 말이 있다.
죄악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평안을 방해한다.
죄라고 하는 것은 범하기 전에는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행복해 보여도, 일단 죄를 범하고 나면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알게 되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시38:3-4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 같았고,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워 보여 먹고 싶은 생각과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것을 따먹었다.
그런 다음 그가 행복하고, 평안했는가? 마음에 평화가 있었는가? 평안은 모두 사라졌다.
두렵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고, 숨었다.
그렇다고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감추어지고 숨어지는가?
그 죄가 에덴에서 쫓김을 받고 세상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결국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죄는 들통이 나고 그 값은 치르게 마련인데 그 값은 사망입니다.
추운 지방에 사는 Eskimo인들이 늑대를 어떻게 잡는가? 에 대한 특별한 방법을 이렇게 말했다.
Eskimo인들은 늑대를 잡기 위하여, 날카로운 칼날에 짐승의 피를 묻힌 후, 그것을 얼린다. 칼날에 피가 얼어붙으면 그 위에 다시 피를 묻히고 다시 얼린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을 하면 나중에는 칼날이 얼어붙은 피 속에 숨겨지게 된다. 이 칼을 늑대들이 잘 다니는 곳에 칼날이 위로 오게 묻어둔다. 늑대는 피 냄새를 맡고 곧 다가와서 얼어있는 피를 혀로 핥기 시작한다. 계속 핥으면 마침내 날카로운 칼날이 나타나지만 늑대의 혀는 이미 차가운 얼음을 핥는 중에 감각이 없어져 자기의 혀가 갈라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계속 열심히 핥는다. 늑대는 마침내 피를 많이 흘려 쓰러져 죽는다는 것이다.
죄라고 하는 것이 이처럼 지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것이라는 생각도, 감각도 없이, 죄짓는 재미에 빠져, 열심히 죄를 지으나, 결국은 자기를 망하게 하고야 만다.
그러므로 죄악을 품고 있는 한, 참 평화가 없는 것이다.
죄 문제를 자기가 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며, 초능력자가 아니다. 인간은 상한 갈대처럼 한 없이 약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다보면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이런 문제를 자기가 짊어지고 가지 않는다.
하나님께 모든 삶 전체를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평안을 얻게 됩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짐을 주님께 맡기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 짐을 맡 길수 잇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시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어느 무더운 여름 청년 한 사람이 예배당 앞을 지나다가 호기심에 끌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강단 뒤로 까만 휘장이 쳐져 있고, 다음과 같이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청년은 그 글씨를 보고 이곳은 예배당이 아니라 휴게소로군하면서 코웃음을 치고 예배당을 나와 자기의 갈 곳으로 가버렸다.
그로부터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청년의 생활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산다는 것이 너무너무 힘이 들었다. 모든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죽고만 싶었다. 청년은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졌다.
그는 죽을 곳을 찾아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가고 있는 길은 자신이 바로 1년 전에 지나갔던 바로 그 길이었다.
한참 가다보니 십자가 종탑이 보였다. 그는 문득 1년 전에 자신이 그곳에 들렸던 일과 성경구절이 생각나게 되었다.
청년은 교회로 들어가 목사님을 만나고, 그 성경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접하였다. 청년은 새 사람이 되었다.
죽으러 가던 그는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후에 크게 성공하였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평안을 빼앗아 가고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셨기 때문에 너희 에게 평안이 있으라고 축복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 참된 평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진 평화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이 평화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평화이다.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변함없는 평화이다.
평안을 앗아가는 죄를 값을 예수님이 이미 치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확신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문을 꼭꼭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이제는 숨어 있지 말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19-21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평강을 주시는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사람이 이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 것은 자신이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또한 다시 사셨음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때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으나 그의 부활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고,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했지만 아직까지도 확신이 없는 반신반의의 상태에 있었다.
이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못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주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가 그 믿음의 결과로 받는 주님의 선물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의 샘이 솟을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를 살렸다. 나의 모든 죄를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깨끗케 하였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주님이 대신 죽으셨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의심 없이 믿고 살 때,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원망과 불평, 불안한 마음은 사라질 것이며, 구원의 기쁨과, 감격,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죄가 사함 받은 증거로 그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은 내 마음 속에 보증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22절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권유의 말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속에는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내가 성령을 보내니 너희는 받아라, 이게 내가 주고자 하는 평강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보증이 된다.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성령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평안을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빌4:6-9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죄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축복이 바로 평강의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세마포를 벗어 놓으시고 부활의 새 옷을 입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새 생명을 새 옷을 입혀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새 생명을 소유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할 뿐 아니라 이제는 흰 옷 입은 사람들로 삶속에서 영생을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