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안이 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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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58회 작성일 2013-05-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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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1-6 생명과 평안이 있는 인생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은 생각하고 행하지 않습니다.
육체적 본능에 따라 살아가지만, 인간만은 사고하고 사색하는 생각을 통해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고인류학에서는 인간에 대한 학명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곧 슬기로운 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라고 칭했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체와는 구별되는 생각하는 능력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했던 것입니다.
엉뚱한 일을 저지를 때에 하는 말이 이 생각 없는 사람아 무심한 사람아 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갈대가 비록 연약하기는 하지만 거친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듯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친 세파에서도 결코 꺾이는 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17세기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단지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요, 생각함으로써 인감임을 입증하고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사람들이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 생각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러니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시중에 정신치료 전문가 쓴 감사의 힘이라는 책과 하버드 의과 대학 교수가 쓴 희망의 힘이라는 책과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서 역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마치 전기와 같다. 전기는 단순히 어둠을 물리치는 데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용도에서 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감사한 생각이 삶의 막강한 힘의 원천 에너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희망의 힘은 곧 희망적인 생각은 병이 회복될 거라 스스로 믿는 환자들에게 실제로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관점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감사의 힘, 희망의 힘, 긍정의 힘. 이 세 권의 공통점이 있다면 책 제목에 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고, 사람의 생각과 연관된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한 생각. 희망을 갖는 마음, 희망의 생각. 긍정하는 마음 긍정적인 생각.
감사하는 마음이 전기와 같이 단순히 불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이것은 희망도 마찬가지이고, 긍정적인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이같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모든 일의 시작은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통상 인생은 누구나 육의 생각부터 하게 된다
아니 처음부터 육으로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장차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고 육적으로 만 살려고 합니다.
육이란 헬라어는 사르크스로 생명력이 없는 살덩어리입니다.
생명이 없어서 곧 부패하게 될 살덩어리, 정육점에 걸려 있는 생명이 없는 고기 덩어리 곧 세속적인 욕망으로 살찌워진 살덩어리, 그래서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살덩어리가 사르크스, 육신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에 뱀이 유혹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육적인 생각이 결국에는 제 죽을지 모르고 선악과를 따 먹게 되었고,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부터 쫓겨나고 죽음을 부르는 경험하게 된다.
렘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게 된 그 이유가 그들의 육적인 생각의 결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다.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 그 시작이 가룟 유다의 육신적인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이 가륫 유다는 이 일로 양심이 괴로워 목메어 자살을 하고 맙니다.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 한 사람이라고 예수님을 말했습니다.
혹시 나는 이 땅에 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생명이 없는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데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사람은 좋은 차를 갖고 싶은 사람도 있고, 세계 일주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넓은 집의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내가 하고 싶은 데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된다면 결국에 그 사람은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라도 생각을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공적인 삶, 승리의 삶, 축복된 삶을 살려면 먼저 생각하는 것부터 축복을 받아야 한다.
야 좋은 생각이다.
솔로몬은 좋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대하1:10-12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솔로몬의 천 번의 제사 제목이 육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 그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누가 말하기를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인격을 낳고, 인격은 결국 운명을 낳는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죽게 생긴 탕자가 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생각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여기에서 주려 죽는가?
그릇된 생각이 아버지의 곁을 떠나 죽게 생겼지만 바른 생각이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살게 되었습니다.
눅15:17-19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바른 생각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화와 저주에서 복으로 멸망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생명은 영의 생각입니다.
6절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의 생각은 평안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생명의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 하시는 제일 첫 말씀이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육의 생각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삶의 두려움으로 엮어지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죽음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죽음 앞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두려움 중에 가장 큰 것은 죽음의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몸은 좋은 약 좋은 음식을 을 먹고 병원을 찾고 종교의 힘을 빌리며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씁니다.
사형수들의 유일한 소원도 단 하루만이라도 아니 단 한 시간이라도 더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은 지하 감옥에서 출입의 자유가 통제된 영어의 몸일지라도, 정녕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감옥 속일망정 단 일각이라도 더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형수들의 간절한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때문입니다.
인생이 육신의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만다면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죽음으로써 더 이상 내 이름으로는 살 수도 없고, 내 것이라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그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아무 것도 아닌데 내 인생이 완전히 끝나고 마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습니까? 좀 더 살려고 조금만 더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합니다.
가족들이 묘지 이장 문제로 이야기 중에 납골당으로 하느냐? 매장으로 하느냐? 하는 중에 한 형제가 말하기를 자신은 화장하기가 싫다는 거예요
왜 그렀는가? 하니 너무 뜨거울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땅속에 묻히면 답답하지 않는가? 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뜨겁니 어쩌느니 하는 나의 의지와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되면 됩니다.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를 살리는 성령의 법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의 적용을 받아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살게 된다.
육신의 생각으로 살지 않고 생명의 성령의 생각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이 바로 나 때문이고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 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를 용서받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죄에 매이지 않고 주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오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약도 먹으려고 하지 않고 의사에게도 가려 하지 않고 의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은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지도 않는다.
실제로는 죄 가운데 살면서도 자신을 의롭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된다.
나는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에 매인 구제불능의 죄인이라는 것을 솔직하고 고백하라.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죄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구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다.
왜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죽게 하셨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는 것을 그대로 두실 수 없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요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음이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럴 때에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유하게 해주신다.
그런데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더 이상 죽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렵고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인생인데, 무슨 여한과 있고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 인생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평안으로 가득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의 두려움과 염려는 사라지고, 오직 평안이 충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5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일이란 무엇인가?
갈5:19 -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영의 일은 어떤 것인가?
갈5:22-2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처럼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생각이 다르다. 그리고 그 결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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