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든지 복을 명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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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창 세 기 28: 10-22 어디로 가든지 복을 명하시는 하나님
제가 한국에 없는 동안에 한국 내에서는 굉장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월드컵 축구였습니다. 과연 16강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을 가졌었는데 4강이라는 놀라운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굉장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미주 교민 사회에서도 야단입니다.
거기에서 이 경기를 보려고 하면 어떤 때는 밤 11시30분 또 어떤 때는 새벽 4시 30분 보스턴 같은 경우는 스페인과의 경기는 새벽 2시 30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빠짐없이 이 경기를 보고 신이 났습니다.
미국과의 경기 때에는 제가 일본 동경 나리따 공항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어떤 승객들은 대~한민국하며 응원가를 흉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조카들도 어디서 구했는지 빨간 티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진실이 졸업식이 끝난 후에 학교 교정에서는 한인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 민국을 외치며 뛰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에서 목사님들의 어떤 모임에서는 승리를 기뻐하며 대~한민국 하고 박수를 치자고 하여 모인 목사님들이 크게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곳 교민 사회에서는 한국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다 할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실제로 어제 길거리에 나서보니 과연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고 대단하였습니다.
텔레비전은 축구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는 것 같고 어제는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빨간 티 셔츠를 입고 태극기를 휘감고 나가는 남녀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약소 민족의 서러움을 씻어내는 상당한 쾌거라고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삶이 별로 흥미나 재미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축구 경기의 승리 하나가 모든 사람들을 흥분케하고 살맛이 나고 기분이 좋아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축구 경기 하나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약 한 달간 행복하게 하였는데 이제는 그 이후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 범죄도 줄고 부부 싸움도 줄고 했는데 말입니다.
삶에 흥미가 없고 뚜렷한 기대를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게 중에는 월드 컵 축구의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내 자신의 삶에 아무런 도움과 위로를 주지 못하고 피곤한 삶에 의하여 상당히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는 자들도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뭐 정치가 이렇다 아무리 세상적인 것으로 달래어 주어도 그 마음을 달래어 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한나가 자녀를 생산치 못하니 남편이 아무리 잘 해 주어도 그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자녀에 대한 문제가 해결이 될 때까지 그 마음은 편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서도 있을 줄로 압니다.
비로소 엘리 제사장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잉태의 소식을 듣고 서야 그 마음에 슬픔을 몰라내고 즐거움을 찾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는 상당히 마음이 슬프고 그리고 낙담해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습니다.
저는 보스턴에서 며칠간 있는 동안에 여행중 주일을 만나 뉴포트라는 대서양을 바라다보는 해변가에서 야외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읽어 드린 본문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2가정 일곱 명이 모여서 드리게되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이곳에 화평교회가 이전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있고 지휘자 반주자가 모두 와 있으니 말입니다.
저희 식구들은 강정래 김효진 집사님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2 밀리언 달러나 되는 저택을 그 부모님들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1층 전체를 저희 식구들 숙소로 제공을 했는데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얼마나 넓은지 이부자리 새로 구입하고
세면 용품등 신경을 썻더라구요
그리고 세븐 일레븐 가게를 하버드 대학 가까운데서 경영을 하는데 아주 잘되어 제가 그곳에 한 두 번이 보았는데 끊임없이 손님들이 왕래를 하는데 물질적인 어려움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상당히 편안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김효진 집사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무엇일까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였음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음악적인 자질을 펼치지 못함이었습니다.
명문 대학을 나오고 유명한 대학에 유학까지 했지만 강사자리에서 머물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가 없으니 더욱 씁쓸함을 금 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떠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복이 지지리도 없는 자가 아니라 복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같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 집사님은 이 곳에서 축복을 명하시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일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두 분을 축복하시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이 두분 집사님에게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함께 예배를 드리는 진실 이에게도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너에게 복을 명하셨다 그러니 믿기만 하라 그러면 반드시 너를 통하여 큰 일을 하실 것이라
때로는 너희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 ...
이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는 미국 땅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을 이미 명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돌아오는 순간까지 그 곳에서도 영적인 일을 밤낮으로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 일이 저에게는 축복이요 하나님은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심을 보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시는 가를 보라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하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한국으로 출발하는 날 그 곳의 식구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한사람 한 사람 모두를 축복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인간의 조건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잘 난 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잘 나지도 못했습니다.
오직 잘 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잘 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그 무엇이 무슨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었듯이 우리에게 축복을 베풀어주심도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행한 바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몇 명이나 될까요?
사람이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을 보십시오
인도자가 되어 보고 어른이 한번 되어 보십시오 사람들이 어떠한지 참 너무 한심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의인이 한 사람도 없는 것과 같이 그 어떤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솔직히 말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셔야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많은 나라는 가보지 않았지만 가는 지역마다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을 받고 살고 있구나 이었습니다.
비단 기독교 국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가 국교인 나라도 이슬람 힌두교 무신론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연의 풍요로움을 주셔서 삶에 축복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대지 강 바다 산등 온갖 동식물 이루 헤아릴 수가 없지요
저는 참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과 사랑을 느꼈으며 그리고 그의 풍성하심과 광대하심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우리 사람의 잘 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향하여 욕을 해도 복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정복하여 다스리라는 말씀이 변함이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 볼 때에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든지 상관이 없이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구나 과연 이들이 이 축복을 가지고 어떤 역사를 가져올지 기대를 하니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못나도 부모가 내 자녀 축복하는 것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하는 태도를 가지는가에 따라서 받은 축복이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 사실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았기 때문에 복이 없는 자가 아니라 복을 복되게 여기지 못하고 복을 복일 줄로 모르고 살기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태평양 바다를 건너오면서 알래스카를 지나 베링해협을 거쳐오면서 비행기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깥에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설교를 묵상하면서 몇 장의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비행기는 구름 위에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로 마냥 구름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시커먼 먹구름이 비를 머금고 있기도 하였고 양털 같은 부드러운 구름이 뜨거운 햇살을 막아서 땅위를 가리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구름이 여러 가지 모양을 연출하고 때로는 모여 비를 내리는 먹구름으로 때로는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시원한 그늘을 내기도 하는데 이 구름이 모두가 어디서 왔을까요?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신다고 했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비를 내리는 구름의 근원인 물은 이미 하나님이 내려 주신 비가 땅을 적시고 또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만약에 땅이 이 비를 또 다시 내어놓지 않고 욕심을 부리고 움켜잡고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땅이 물을 내 놓기 전에는 하늘에서는 비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복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복 받은 자로서 행하는 대로 받게 마련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지지리도 복이 없는 자라고 여겼으며 자신을 비관하여 자신의 보응대로 받은 것이라고 여기며 고독과 절망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야곱은 복을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복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복을 받은 자로서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요셉이를 보십시오 복 받은 자로 살아가니 모두가 모든 것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야곱은 깜짝 놀라면서 참으로 내가 몰랐구나 이제 바로 살아야지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를 마지않겠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겠습니다.
성전이라도 지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다윗도 놀라운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삼하 22:21-28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복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대로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았지 않습니까?
다음주는 맥추 감사절기로 지킵니다.
신 16:10-17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제가 한국에 없는 동안에 한국 내에서는 굉장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월드컵 축구였습니다. 과연 16강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을 가졌었는데 4강이라는 놀라운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굉장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미주 교민 사회에서도 야단입니다.
거기에서 이 경기를 보려고 하면 어떤 때는 밤 11시30분 또 어떤 때는 새벽 4시 30분 보스턴 같은 경우는 스페인과의 경기는 새벽 2시 30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빠짐없이 이 경기를 보고 신이 났습니다.
미국과의 경기 때에는 제가 일본 동경 나리따 공항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어떤 승객들은 대~한민국하며 응원가를 흉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조카들도 어디서 구했는지 빨간 티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진실이 졸업식이 끝난 후에 학교 교정에서는 한인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 민국을 외치며 뛰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에서 목사님들의 어떤 모임에서는 승리를 기뻐하며 대~한민국 하고 박수를 치자고 하여 모인 목사님들이 크게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곳 교민 사회에서는 한국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다 할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실제로 어제 길거리에 나서보니 과연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고 대단하였습니다.
텔레비전은 축구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는 것 같고 어제는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빨간 티 셔츠를 입고 태극기를 휘감고 나가는 남녀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약소 민족의 서러움을 씻어내는 상당한 쾌거라고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삶이 별로 흥미나 재미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축구 경기의 승리 하나가 모든 사람들을 흥분케하고 살맛이 나고 기분이 좋아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축구 경기 하나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약 한 달간 행복하게 하였는데 이제는 그 이후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 범죄도 줄고 부부 싸움도 줄고 했는데 말입니다.
삶에 흥미가 없고 뚜렷한 기대를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게 중에는 월드 컵 축구의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내 자신의 삶에 아무런 도움과 위로를 주지 못하고 피곤한 삶에 의하여 상당히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는 자들도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뭐 정치가 이렇다 아무리 세상적인 것으로 달래어 주어도 그 마음을 달래어 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한나가 자녀를 생산치 못하니 남편이 아무리 잘 해 주어도 그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자녀에 대한 문제가 해결이 될 때까지 그 마음은 편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서도 있을 줄로 압니다.
비로소 엘리 제사장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잉태의 소식을 듣고 서야 그 마음에 슬픔을 몰라내고 즐거움을 찾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는 상당히 마음이 슬프고 그리고 낙담해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습니다.
저는 보스턴에서 며칠간 있는 동안에 여행중 주일을 만나 뉴포트라는 대서양을 바라다보는 해변가에서 야외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읽어 드린 본문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2가정 일곱 명이 모여서 드리게되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이곳에 화평교회가 이전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있고 지휘자 반주자가 모두 와 있으니 말입니다.
저희 식구들은 강정래 김효진 집사님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2 밀리언 달러나 되는 저택을 그 부모님들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1층 전체를 저희 식구들 숙소로 제공을 했는데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얼마나 넓은지 이부자리 새로 구입하고
세면 용품등 신경을 썻더라구요
그리고 세븐 일레븐 가게를 하버드 대학 가까운데서 경영을 하는데 아주 잘되어 제가 그곳에 한 두 번이 보았는데 끊임없이 손님들이 왕래를 하는데 물질적인 어려움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상당히 편안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김효진 집사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무엇일까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였음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음악적인 자질을 펼치지 못함이었습니다.
명문 대학을 나오고 유명한 대학에 유학까지 했지만 강사자리에서 머물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가 없으니 더욱 씁쓸함을 금 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떠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복이 지지리도 없는 자가 아니라 복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같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 집사님은 이 곳에서 축복을 명하시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일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두 분을 축복하시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이 두분 집사님에게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함께 예배를 드리는 진실 이에게도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너에게 복을 명하셨다 그러니 믿기만 하라 그러면 반드시 너를 통하여 큰 일을 하실 것이라
때로는 너희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 ...
이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는 미국 땅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을 이미 명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돌아오는 순간까지 그 곳에서도 영적인 일을 밤낮으로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 일이 저에게는 축복이요 하나님은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심을 보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시는 가를 보라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하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한국으로 출발하는 날 그 곳의 식구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한사람 한 사람 모두를 축복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인간의 조건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잘 난 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잘 나지도 못했습니다.
오직 잘 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잘 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그 무엇이 무슨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었듯이 우리에게 축복을 베풀어주심도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행한 바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몇 명이나 될까요?
사람이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을 보십시오
인도자가 되어 보고 어른이 한번 되어 보십시오 사람들이 어떠한지 참 너무 한심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의인이 한 사람도 없는 것과 같이 그 어떤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솔직히 말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셔야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많은 나라는 가보지 않았지만 가는 지역마다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을 받고 살고 있구나 이었습니다.
비단 기독교 국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가 국교인 나라도 이슬람 힌두교 무신론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연의 풍요로움을 주셔서 삶에 축복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대지 강 바다 산등 온갖 동식물 이루 헤아릴 수가 없지요
저는 참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과 사랑을 느꼈으며 그리고 그의 풍성하심과 광대하심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우리 사람의 잘 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향하여 욕을 해도 복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정복하여 다스리라는 말씀이 변함이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 볼 때에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든지 상관이 없이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구나 과연 이들이 이 축복을 가지고 어떤 역사를 가져올지 기대를 하니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못나도 부모가 내 자녀 축복하는 것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하는 태도를 가지는가에 따라서 받은 축복이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 사실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았기 때문에 복이 없는 자가 아니라 복을 복되게 여기지 못하고 복을 복일 줄로 모르고 살기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태평양 바다를 건너오면서 알래스카를 지나 베링해협을 거쳐오면서 비행기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깥에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설교를 묵상하면서 몇 장의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비행기는 구름 위에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로 마냥 구름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시커먼 먹구름이 비를 머금고 있기도 하였고 양털 같은 부드러운 구름이 뜨거운 햇살을 막아서 땅위를 가리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구름이 여러 가지 모양을 연출하고 때로는 모여 비를 내리는 먹구름으로 때로는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시원한 그늘을 내기도 하는데 이 구름이 모두가 어디서 왔을까요?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신다고 했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비를 내리는 구름의 근원인 물은 이미 하나님이 내려 주신 비가 땅을 적시고 또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만약에 땅이 이 비를 또 다시 내어놓지 않고 욕심을 부리고 움켜잡고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땅이 물을 내 놓기 전에는 하늘에서는 비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복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복 받은 자로서 행하는 대로 받게 마련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지지리도 복이 없는 자라고 여겼으며 자신을 비관하여 자신의 보응대로 받은 것이라고 여기며 고독과 절망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야곱은 복을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복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복을 받은 자로서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요셉이를 보십시오 복 받은 자로 살아가니 모두가 모든 것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야곱은 깜짝 놀라면서 참으로 내가 몰랐구나 이제 바로 살아야지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를 마지않겠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겠습니다.
성전이라도 지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다윗도 놀라운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삼하 22:21-28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복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대로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았지 않습니까?
다음주는 맥추 감사절기로 지킵니다.
신 16:10-17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