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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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51회 작성일 2013-08-12 13:35

본문

시편37:3-6 여호와를 기뻐하라
살면서 즐거워했던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결혼했을 때 집 삿을 때 자녀 출산 했을 때 공부 잘해서 상 타고 대학 등 입학 했을 때 자동차 샀을 때 여행 갔을 때 등등을 말합니다.
대부분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 때문에 즐거웠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하셨기 때문에 즐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얼마나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 스스로 대답을 해 보십시다
나는 기뻐하기 보다는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하다 하기 보다는 분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평생을 슬퍼하고 살다가 분노가운데 끝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기뻐하느냐? 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즐거워하는 것과 하나님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은 차이가 나죠?
오늘 본문은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기뻐해야 하는 기쁨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하나님 그 자체가 사람의 기쁨 자체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기뻐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만으로 기뻐하며 살아야 하기 참으로 기쁨 보다는 우울함이 더 많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기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대상16:26-27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의 처소에 있도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시니 내가 아버지를 기뻐합니다.
갈라디아서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된 사실을 깨달은 자는 정말로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오 능력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느헤미야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하박국3:17-19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기뻐합니다.
시편17:6-7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의 소망이시니 내가 영원히 여호와를 기뻐합니다.
베드로전서1: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나의 장래의 모든 것을 약속하여 주신 하나님이시니 내가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이같이 하나님에게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것 모든 것이 있으니 하나님 그 자체만으로 기뻐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네 소원은 만족하게 됩니다
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야지 먹을 것이 많습니다.
3절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선을 성실히 행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뢰하고 선을 행하며 인도하신 곳에 머무는 이들에 대해서 얼마나 성실하신 분이십니까?
애굽을 떠나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성실하셨습니까?
그들은 만나를 먹었고 메추라기를 먹었고 그 의복과 신이 쇄하여 지지를 않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시편34:8-10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굶지 않습니다.
말씀이 끊어지면 그 때부터 죽는 것입니다.
말씀이 떨어졌다는 것은 내가 말씀과 상관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 그 때부터 가난과 궁핍이 도적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주님께서 40일 금식 끝에 배가 주리신 때에 사탄에게 떡으로 인한 시험을 받으실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4:2-4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아마 돌을 보아도 떡 덩어리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 되신 주님이 어떻게 사실 것인가를 말씀하시며 사람 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 사람 되신 주님의 삶이며 또한 사람의 원래 삶임을 교훈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세상의 것으로만 먹고 살려고 하는 자들은 그것을 먹고 산 것이 아니라 죽었습니다.
말씀을 먹은 자는 살았습니다.
신명기8:1-4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추수하게 하십니다.
곧 하나님의 성실하심으로 살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이들에게 직업도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성실하심을 보이십니다.
성경에 묘사된 악을 즐기는 악인의 모습을 보셨습니까?
잠언4:13-17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대단한 사람이지요?
불의를 먹을거리로 삼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누구나 처음부터 흉악한 자나 악한 자로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실로 양식을 삼느냐? 아니면 불의로 양식을 삼느냐? 입니다.
오늘 아침에 성실의 양식을 드셨습니까? 불의의 양식을 드셨습니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 속에 불의를 먹을거리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은 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교육자이자 당대 가장 두드러진 흑인 지도자였던 부커 워싱턴은 내가 분을 품으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분을 품은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누구도 내 영혼을 형편없게 만들지 못하도록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불의를 먹을거리로 삼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실로 먹을거리를 삼을지어다 는 말은 히브리어로 르에 에므나라는 말인데 이 말은 진리와 신실함을 소중히 여기다 는 뜻입니다.
안전 보장을 즐거워하다 혹은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사람은 불의한 행악 자와는 달리 땅 위에서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안전 속에서 기쁨을 누리고 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성실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먹을거리가 되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그의 성실을 먹고 사는 자는 대대로 이어지면 자손만대가 잘 됩니다.
시편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충실하는 자입니다.
아무리 잘 해보고 싶어도 기본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한 다윗은 그가 하나님을 기뻐 할 수 있었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했기 때문입니다
시편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당시만 해도 유대에서 가장 달콤한 음식은 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꿀처럼 달다고 표현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금은 모든 물질세계에서 부의 척도입니다.
말 그대로 금값이 금값입니다. 놀라운 것은 말씀이 꿀보다 더 달고, 금보다 더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말씀이 귀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한다고 할 때, 그 첫 번 째는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쉽게 말하면, 다윗이 간절히 구하는 한 가지는 평생에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고 성전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윗의 간절한 소원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제왕의 자리나, 수많은 금은보화를 얻는 것 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 올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덩실 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바지가 내려오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이 좋아서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이 설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무슨 말씀으로 나에게 양식을 주시나 기대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면 그는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제사도 바로 예배입니다.
원래 예배하다는 말은 키스하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주인의 손을 핥는 개처럼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입 맞추는 것입니다.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입 맞추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영어로는 worship 이라고 하죠? 이 말은 worth, 곧 가치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자신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기뻐하고, 거기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참된 크리스천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이 어디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대부분이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이 탄식하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그 힘들고, 쫓겨 다니고, 그리고 정복 전쟁을 할 때도 항상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고,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통의 비결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것은 죄중에 죄요 쉬는 것 자체도 죄가 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 압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인간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네 소원은 하나님 안에서 있습니다.
미국의 한 기자가 남미의 한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북미와 남미가 그처럼 다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북미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풍족한 나라가 되었는데 남미 사람들은 왜 가난하고 못하는 나라가 되었느냐는 의미입니다. 그때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소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북미에 간 청교도들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남미에 온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사람들은 황금을 찾으러 왔습니다. 이 결과 하나님을 위해 북아메리카로 온 청교도들은 하나님도 찾고 금도 찾았습니다. 반면에 금을 찾아 남미로 온 사람들은 금도 놓쳤고 하나님도 찾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결과로 얻어지는 것을 가지고 기뻐합니다. 이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원망했습니까?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하실까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바로 불평과 원망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성령은 기쁨의 영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하면 내가 여호와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지는 기쁨입니다.
마음이 안정을 하지 못하고 항상 세속적인 논리에 사로잡혀서 여호와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엉뚱한 세상 것들을 붙잡고 혼돈하고 방황할 때가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기쁨을 관리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 전적으로 맡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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