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복이 내 앞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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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12회 작성일 2013-08-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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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30:15-20 생명과 복이 내 앞에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도 인기리에 상영된 레미제라블 이라는 영화는 원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삼십오 년 동안 마음속에 품어 오던 이야기를 십칠 년에 걸쳐 완성해 낸 걸작이다. 워털루 전쟁, 왕정복고, 폭동이라는 19세기 격변을 다룬 역사 소설이자 당시 사람들의 가난한 삶과 한을 담은 민중 소설이며, 사상가이자 시인으로서의 철학과 서정이 담긴 작품이다. 몇 세기에 걸쳐 오늘날까지 수없이 영화, 뮤지컬 등으로 연출되는 사랑받고 있다. 레미제라블의 원작자인 프랑스의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젊은 날 주색에 빠져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딸 레로포르디는 아버지의 타락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남기고 강물에 뛰어들었고 위고는 딸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었습니다. 내 타락한 삶이 딸을 죽였구나. 그 후 그는 진실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거듭난 뒤 후생국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프랑스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순간, 그 사랑의 품에 안긴 순간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저주는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본문에도 누구든지 그 인생이 가는 길에는 화와 복이 있고 생명과 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피 할 수없는 길입니다.
15절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그 기준은 어떤 인생이든지 하나님의 존재 앞에 순종하여 생명과 복을 누릴 수 있고 불순종하여 사망과 저주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기준을 제시해 주셨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16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시지만 사람은 미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시지만 사람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류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이 에덴을 버리고 스스로 이 땅에 저주와 죽음을 청했던 것입니다.
출애급하여 광야를 가던 희망찬 내일이 있음에도 그들은 우울한 오늘은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자유를 주셨지만 그들은 스스로 이방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의 조상도 멸망을 택하였고 우리 또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헛된 행실로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 앞에 놓아두신 선한 길을 가기 보다는 그렇지 못한 길을 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였고 나의 인생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우리는 율법의 행위에 미치지 못하여 불순종함으로 저주 아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저주 아래서 축복으로 옮기셨습니다
오늘 주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저주의 삶에서 축복의 삶으로, 사망의 삶에서 생명의 삶으로 옮기시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의 저주의 죽음이 아니라면 우리가 저주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저주에서 축복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저주에 머물지 않고 약속된 복이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을 택하고 복을 택하면 됩니다.
19절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장래를 생각해서 그 중에서 준수한 이스라엘 청년 몇 명을 택했습니다. 잘 훈련시켜서 자기 나라의 인재로 쓰려고... 그런데 바벨론 왕은 그 청년들에게 특별히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를 줄 것을 명령했습니다. 다니엘은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 같으면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먹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다니엘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그 선택이 다니엘로 하여금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또 한 사람 롯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에게 양이 심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양을 먹이는 문제를 놓고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마음대로 좋은 곳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롯이 동쪽을 보니 물이 넉넉하여 양을 먹이기 좋게 보여서 거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당시 죄악이 극심했던 소돔과 고모라 부근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좋게 보이는 곳을 선택했지만 그 잘못된 선택 때문에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을 때에 롯은 아내도 잃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후손들은 자자손손 아름답지 못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어찌 보면 인간의 역사는 선택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택한 인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합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을까?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에서 도피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도전을 가지고 육박해 옵니다.
우리는 이 도전을 지혜롭고 용감하게 해결해 나가야만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는 예측불허의 불확실한 세계입니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래는 하나의 충격이요, 도전이요, 위기인 것입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두 가지 뜻을 가집니다.
미래는 예측불허의 큰 위험이지 만 믿음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면 새로운 발전과 성장의 창조적인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는 불안하지만 동시에 희망이 있습니다. 위험과 동시에 기회요, 도전과 동시에 성취입니다.
문제는 이 위기적인 상황을 극복 하는 내 자신의 믿음적인 적응력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는 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역사를 보는 눈, 국가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눈, 미래를 보는 눈이 변해야 합니다.
사람을 보는 눈 돈을 보는 눈 내게 주어진 상황을 보는 눈이 바꿔야 합니다.
위대한 한국인이 되어 위대한 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땅이 넓다고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전쟁을 잘 한다고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인구가 많다고 위대한 나라 가 아닙니다. 위대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가 참으로 위대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을 위대한 국가로 세워 나가려면 위대한 국민성을 세워야 합니다.
국민성은 나라의 뿌리 입니다. 위대한 국민성의 건설이 없이는 위대한 나라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뀝니다. 습관 이 바뀌면 성격이 바뀝니다.
그러므로 모든 변혁의 시작은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격이란 말을 영어로 Character 라고 하는데 이 말은 헬라어 kharackter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Character는 아로새긴다, 조각한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성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의 반복으로 우리의 마음과 인격을 서서히 조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성격은 어떤 것 입니까?
사람이 산다는 것은 환경에 적응 하는 것이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요,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요, 목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하겠다는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위기 생명의 존재의 위기 때에 무슨 실력이 나왔습니까?
그가 쌓아 놓은 믿음의 실력이 나온 것입니다.
다니엘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사람의 근본적인 실력은 그가 당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나타납니다.
누가복음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바르게 행한 일에는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적인 선택에 천지를 들어 증거를 삼겠다고 합니다.
19절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그런데 이 언약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함께 한 모든 이들, 이방의 족속들과 지금, 이곳에 함께하지 않은 자들에게까지 세우는 언약입니다.
이 시대에 살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언약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신명기의 이 언약은 바로 우리와 우리 이후의 믿음의 세대들에게까지도 유효한 것입니다.
19-20절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그런데 이 언약을 맺을 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는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악이나 죄에 대하여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명기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모세가 언약을 맺을 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은 것은 율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두 증인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증인이 하늘과 땅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신명기 32장, 모세의 노래에서도 이 두 증인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들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따르라고 하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반석을 버리고 다른 우상을 숭배할 때 그들이 겪게 될 예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명기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이 두 증인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지켜봤습니다.
창세기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첫 말씀으로 이 두 증인을 부르고 이스라엘 백성이 신명기에서 맺은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2-3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두 증인이 없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사라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 하늘과 땅이 여전히 증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율법을 모르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땅이 우리를 올려다보며 우리의 죄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인생은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나하기 나름입니다. 책임과 동시에 의무도 따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이 힘들고, 어렵고, 고난입니까? 그것이 저주가 아닙니다.
그 고난으로, 이 풍랑 인연하여서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고난이 바로 내게 복입니다.
그것이 성공이든, 형통이든, 즐거움이든 나로 하여금 주에게서 멀어지게 하면, 그것이 바로 화가 됩니다.
죽음이냐, 삶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로 인해 내가 주께 더 가까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내가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성하느냐, 쇠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로 인해 내가 주께 더 가까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법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봐도 어렵거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11-14절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이스라엘의 입에 말씀이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늘 그 입으로 말씀을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었음을 뜻한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마음에 말씀이 있었다. 이스라엘에게는 다른 법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렸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말씀을 많이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말씀에 익숙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입에 있었고 그들의 마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거스르며 반역하는 삶을 살아갔다. 이러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말씀에 익숙한 것과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주신다고 해도 감당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짐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드리고 입술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
출애굽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드릴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편케 하고 동시에 나 자신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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