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풍요롭게 하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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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78회 작성일 2013-08-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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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4:1-5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감사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건이나 사람, 환경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세 가지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원망 불평부터 하고 보는 태도입니다.
또 하나는 불평도 감사도 하지 않는, 그냥 그렇커니 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태도가 있는데 감사로 받는 태도입니다.
좋은 것을 감사로 받을 뿐 아니라 싫은 것, 힘든 것, 불편한 것도 감사함으로 받는 태도입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장기려 의학 박사가 병을 얻어 병상에서 누워 지낼 때 아래와 같은 3가지 감사가 생각나서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모든 일을 마치 내가 능력 있어 된 것으로 생각했던 불경죄를 깨닫게 되어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둘째,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많은 친지와 제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셋째,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병상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되서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병상에 눕게 된 것에서도 감사가 있었습니다. 병상에 누운 것이 부정적이고 쓸데없이 낭비하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다른 것을 얻게 된 시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기왕에 일어난 사건이나 기왕에 주어진 환경, 기왕에 만나게 된 사람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나님이 버릴 것이 없게 만들어 주십니다.
4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일어 주고 있습니다.
아니 감사로 살아가야 할 세상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난 뒤 50일 만에 오는 절기이므로 오순절, 혹은 칠칠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맥추절은 유월절, 수장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맥추절은 여름축제로서 보리와 밀을 수확한 것을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어서 처음 보리와 밀을 거두어들였을 때 그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감격해서 첫 열매인 보리를 가루로 빻고 기름과 유향을 그 위에 얹어서 화제, 즉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드렸던 것이지요.
온전한 헌신과 진정한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맥추감사절의 유래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에서 구언받아 새 생명 얻은 자는 범사의 삶을 감사로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는 소위 영지주의라고 하는 이단 사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금욕주의를 경계한 것입니다.
영지주의는 금욕을 의로 내세우며 구원으로 연결시키려 함으로써 믿는 자들에게 혼란을 줬습니다.
금욕주의는 육체적(肉體的), 감정적(感情的), 세속적(世俗的)인 욕망(慾望)을 억눌러서 도덕(道德)의 이상(理想)을 달성(達成)하려는 주의(主義).
극단적(極端的) 금욕은 고행(苦行)을 요구(要求)함.
그러므로 금욕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의로 내세움으로써 인간의 공로가 올라가게 하고 예수님의 공로를 떨어뜨렸습니다.
당시 금욕주의는 결혼을 금하고 먹는 것을 규제 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무시하고 파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결혼문제와 먹고사는 문제는 세속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며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일차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사와 관련한 중요한 진리가 발견됩니다.
즉 우리가 어떤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그것을 하나도 버릴 것이 없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감사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재료로 바뀌며 우리 삶에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는 것은 하나님 손으로 들어갑니다.
어린이용 도시락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 손에 감사함으로 들어갔을 때 어떻게 됐습니까?
한두 명 식사 분량 밖에 안 되는 것이 예수님 손에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도 남게 됐습니다.
무엇이든 누구 손에 들어갔느냐가 중요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불평으로 받으면 그것은 마귀 손으로 들어갑니다.
내게 있는 환경이나 사람을 원망과 불평으로 받으면 그것을 마귀 손에 맡기는 격이 됩니다.
만약 그냥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도 그냥 놔두실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원래 먹을 수 있는 인원만큼 먹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이나 기적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감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불평이 나올 것이요 그리고 체념이 됩니다.
감사하기 힘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라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습관을 붙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불평하던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시하며 그냥 받던 것도 감사함으로 받고, 안 좋은 것까지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감사함으로 받을 것 몇 가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나의 외모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거울에 비치는 나, 세상사람 판단 기준의 나와 하나님이 보시는 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싫어하는 나의 외모가 하나님 앞에서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특히 성형 수술률 세계1위를 달리는 21세기 한국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외모와의 화목은 꼭 필요합니다.
나의 외모를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정 못 받겠다고 한다면 고쳐서 받으십시오
둘째, 나의 성장 배경입니다.
나의 출생 배경이나 가족사, 성장 환경이 기도한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기도로 바뀌지 않는 것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감사함으로 받지 않으면 다 버릴 것이 되지만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나님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내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내 자녀까지도 감사로 받으셔야 합니다.
셋째, 내게 주신 주위의 사람들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가족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감사로 받은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이 되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특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교회의 지체들과 지도자들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 주고 손해를 입힌 과거의 사람들, 현재 내 주변의 사람들을 감사함으로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다 옳은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감사함으로 받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내 삶에 유익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사무엘하16:4-13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넷째, 내게 주신 시련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삶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련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 분량과 경계를 철저히 주관하십니다.
요셉이나 욥의 시련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므로 기왕 시련을 받을 바엔 적극적으로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시련을 하나도 버릴 것이 없도록 내 삶에 유익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감사함으로서 빨리 끝날 일을 불평함으로서 연장되거나 끝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14:22-24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찮은 것도 감사함으로 받으라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게 되므로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린 자를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의 작은 것, 하찮은 것 하나라도 다 남겨야 합니다.
버릴 것이 없게 해야 하는데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이것을 가능케 합니다.
자신의 장점이나 성공(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만 가지고 남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약점과 실패(한 달란트)도 다 장사해서 이윤을 남겨야 합니다.
먼지는 우리 생활을 귀찮게 만듭니다. 하지만 먼지가 없으면 하늘에 구름이 없어지고 지구는 찜통더위로 변한다고 합니다. 먼지같이 하찮고 귀찮은 것도 알고 보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내 삶에 먼지 같은 것, 없어졌으면 좋겠는 것들도 알고 보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들입니다.
고후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감사의 기초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다는 것이 바로 복음적 삶의 출발입니다.
감사는 복음을 가장 잘 받아 드리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믿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에 중요한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믿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참으로 우리를 은혜 가운데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환경도 선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환경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선한 환경 가운데 우리는 지금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도 선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그 사람들 주변에서 살도록 우리에게 인도해 주셨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선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보이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이 보이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바라보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런 귀한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감사로 받아보십시오
예수님이 오시기전, 모든 것은 버릴 것 밖에 없었습니다. 선한 것이 없었습니다.
전부 금지할 것뿐이었습니다. 율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의 그 아름다움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빛 아래서 모든 것을 선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환경입니다.
고후5:16-17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복음의 빛, 예수의 빛, 십자가의 빛으로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며 사건을 바라보게 될 때 모든 것은 선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악해 보이는 사람도 악하지 않다고 바라보고 접근하면 반드시 그 사람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람뿐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버릴 사람이 없습니다. 버릴 환경이 없습니다. 버릴 경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이것은 받아들이고 저것은 물리치고, 올라가는 것은 기분 좋고 내려가는 것은 기분 나쁘고, 형통은 좋고 불통은 나쁘고, 성공하는 것은 좋고 실패하는 것은 나쁘고, 건강은 좋고 질병은 나쁘고, 이렇게 가리지 맙시다. 한 번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봅시다. 그리하면 4절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생활로 감사 유지
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렇습니다. 어떤 것을 받아들이기 거북하고 힘들 때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거룩해질 수가 있습니다.
사람도 사건도 고통도 환경도 그 무엇도 말씀과 기도로 감사함으로 그리스도의 뜻안에서 받아 드립시오
그러면 합력해서 선이 될 것이요 화라도 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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