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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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10회 작성일 2013-11-11 20:29본문
요한복음8:31-36 진정한 자유
구속과 억압을 받은 자 만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축복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간의 억압을 당하고 해방을 얻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인제 핍팍기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꽃다운 처녀들이 일본 군인들의 성 노리개 감이 되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 대하여 매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지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해방되어 누리는 이 자주 민주국가의 기쁨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에 구조나 체계에 내 자유함을 잃고 구속 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유롭다 보다는 또 다시 굴레에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내 삶에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 본문에 내 인생의 삶에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줄 수 있는 그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마가복음 5장에서는 2천 마리 귀신 떼가 괴롭히는 거라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더러운 귀신과 사나운 귀신에 들려서 인격의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마치 현대인의 상징과도 같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속에서는 불안, 공포, 좌절, 절망, 고독, 권태, 악독, 탐욕, 이기심, 우월감, 시기심, 분노, 증오, 거짓, 죽음 등이 그의 의식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를 상실하고 이러한 사상들에 사로잡혀 인격의 자유함이 없었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이었습니다. 그냥 끌려가는 삶입니다.
그가 살아가는 삶이란 오직 타락과 굴종과 방종과 파괴등 이었습니다.
그 귀신들린 사람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 소리 질렀습니다.자신의 몸을 해하면 서 말입니다.
물론 남에게 피해도 피해지만 이 얼마나 자신의 괴로운 삶의 모습입니까?
인격의 교제가 없는 무덤 사이에서 소리 지르며 오직 좌절과 절망, 그리고 분노뿐인 모습에서 우리는 자유를 상실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즉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쇠사슬에 매여서 말 그대로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를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인격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해방시키셨습니다.
귀신들아 그에게서 나오라 귀신 떼가 모두 쫓겨 가고 평화와 자유가 이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그러면 왜 인간은 자유함이 없는가? 죄의 속박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부르너는 정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자유는 인간이 원하는 모든 자유의 성취는 체제가 바뀐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구속하는 죄가 있는 한 구속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를 구속하는 죄가 있는 한 진정한 자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그 어디에도 참 자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율법이 우리의 모든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 율법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롬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래서 사단의 정죄함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이 율법 에서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에서 자유함을 누릴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진정한 자유를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입니까?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33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남의 노예가 된 적이 없다. 자유하고 잇는 자에게 자유를 운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으라고 하면 반발합니다.
나는 지금 지금 구원받아야 될 처지에 있지 않다! 나는 속박 받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고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하고 싶으면 하고 내 만큼 자유로운 자가 어디 잇느냐?
그러나 자유란 세상적인 신분이나 처지나 지위가 아닙니다.
내 맘대로 한다고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정말 내 맘대로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며, 그 결과로 속박이 없는지도 의문입니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신체적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참 자유가 아닙니다. 그러면 뭡니까?
자유를 알려면 우선 우리가 무엇에 매여 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죄에 매여 잇다는 것입니다.
34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너희는 죄에 매여 있다! 너희는 죄의 종이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인데 너희는 항상 죄를 짓고 있지만 죄가 죄인지 모르고 죄 가운데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 죄란 한 번의 실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악행입니다.
한두 번 과실로 죄를 짓는다면 죄의 종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실수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이는 틀림없이 죄에게 매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죄에 매여 있다고 시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죄에 매인 사실을 모릅니다.
왜 똑똑한 지성인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할까요? 왜 강도들은 감옥살이 하고 나와서 또 반복할까요?
왜 사람마다 한번 미워했으면 됐지 왜 두고두고 미워하면서 속을 썩일까요?
한번 시기하고 질투했으면 그만이지 왜 반복적으로 질투하고 다툽니까?
나라마다 전쟁을 한번 하면 됐지 왜 두고두고 전쟁을 합니까?
인간은 모두가 죄에 매여 있습니다. 죄의 노예들입니다.
마음에서 죄의 지배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노예입니다.
인류는 총체적으로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과거의 제국들이 몰락한 것도 죄 때문입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도 죄 때문이고, 자본주의가 몰락하는 것도 죄 때문입니다.
내가 망하게 된 것도 죄 때문입니다.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철저하게 돈으로 평가하고, 돈으로 교환하고, 돈으로 지배합니다.
국가 간 정의는 국력의 힘일 뿐입니다.
인류는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정의를 실천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지도 못하지만 알아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죄의 노예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인간의 계율에 매여 하나님께 귀를 열지 않았습니다.
39-41절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할 리가 없습니다.
누가 주님의 불의를 목격했습니까? 주님은 결코 죄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들은 시기심과 교만 때문에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것, 의로움을 의로움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죄인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죄로부터의 자유, 죄를 짓지 않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자유는 영혼 내부의 일입니다.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도, 영혼이 매여 있으면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혼이 매여 있으면 양심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혼이 매여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신분이나 혈통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자유인이 아니라 영혼의 자유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배하는 배후는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마귀의 주 전공은 배신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합니다. 배척하게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죄를 짓게 만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엄중히 심판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되어 두 가지 죽음을 선고 받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적 죽음이요, 둘째는 영적 죽음입니다. 아무도 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들로 죄를 짓게 만들고 죽게 만듭니다.
이 마귀의 사슬에서 스스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주십니다.
31-32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정한 자유가 어디서 오는가? 주님의 제자가 되면 자유롭게 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희랍인 조르바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고 그것이 자유일까요? 제멋대로 행동할 때에 걸리는 게 없나요? 가족과 이웃, 함께하는 사람들은 아프고 곤란해져도 되나요? 나만 즐거우면 됩니까?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미친 사람이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남을 불행하게 만들거나, 남에게 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자유는 인간 스스로 쟁취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에서 신앙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진리란 바로 예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아는 만큼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학문적으로 무식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남녀노소 유무식을 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 진리의 소유자입니다.
자유는 그런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 때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됩니다.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첫째는 정죄 받지 않는다는 뜻이고, 둘째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먼저 정죄를 면합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정죄에서 벗어납니다.
결코 정죄될 일이 없으니 처벌도 없고, 죄와 무관하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해방운동이나 혁명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제자가 되면 얻게 되는 선물입니다.
자유인 특징은 종은 마지못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자발적으로 일을 합니다.
종 은 어쩔수 없이 무엇인가를 합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기쁨으로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일을 합니다.
종은 어떠한 일에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인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바로 자유인의 삶입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진정한 자유는 사탄에게서 자유롭게 합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생활에서 자유합니다.
시32:6-7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참 자유는 우리를 죽음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공포입니다.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가장 완벽한 종말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 이 끝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바로 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고전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래서 죽음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구속과 억압을 받은 자 만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축복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간의 억압을 당하고 해방을 얻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인제 핍팍기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꽃다운 처녀들이 일본 군인들의 성 노리개 감이 되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 대하여 매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지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해방되어 누리는 이 자주 민주국가의 기쁨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에 구조나 체계에 내 자유함을 잃고 구속 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유롭다 보다는 또 다시 굴레에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내 삶에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 본문에 내 인생의 삶에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줄 수 있는 그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마가복음 5장에서는 2천 마리 귀신 떼가 괴롭히는 거라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더러운 귀신과 사나운 귀신에 들려서 인격의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마치 현대인의 상징과도 같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속에서는 불안, 공포, 좌절, 절망, 고독, 권태, 악독, 탐욕, 이기심, 우월감, 시기심, 분노, 증오, 거짓, 죽음 등이 그의 의식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를 상실하고 이러한 사상들에 사로잡혀 인격의 자유함이 없었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이었습니다. 그냥 끌려가는 삶입니다.
그가 살아가는 삶이란 오직 타락과 굴종과 방종과 파괴등 이었습니다.
그 귀신들린 사람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 소리 질렀습니다.자신의 몸을 해하면 서 말입니다.
물론 남에게 피해도 피해지만 이 얼마나 자신의 괴로운 삶의 모습입니까?
인격의 교제가 없는 무덤 사이에서 소리 지르며 오직 좌절과 절망, 그리고 분노뿐인 모습에서 우리는 자유를 상실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즉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쇠사슬에 매여서 말 그대로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를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인격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해방시키셨습니다.
귀신들아 그에게서 나오라 귀신 떼가 모두 쫓겨 가고 평화와 자유가 이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그러면 왜 인간은 자유함이 없는가? 죄의 속박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부르너는 정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자유는 인간이 원하는 모든 자유의 성취는 체제가 바뀐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구속하는 죄가 있는 한 구속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를 구속하는 죄가 있는 한 진정한 자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그 어디에도 참 자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율법이 우리의 모든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 율법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롬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래서 사단의 정죄함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이 율법 에서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에서 자유함을 누릴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진정한 자유를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입니까?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33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남의 노예가 된 적이 없다. 자유하고 잇는 자에게 자유를 운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으라고 하면 반발합니다.
나는 지금 지금 구원받아야 될 처지에 있지 않다! 나는 속박 받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고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하고 싶으면 하고 내 만큼 자유로운 자가 어디 잇느냐?
그러나 자유란 세상적인 신분이나 처지나 지위가 아닙니다.
내 맘대로 한다고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정말 내 맘대로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며, 그 결과로 속박이 없는지도 의문입니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신체적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참 자유가 아닙니다. 그러면 뭡니까?
자유를 알려면 우선 우리가 무엇에 매여 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죄에 매여 잇다는 것입니다.
34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너희는 죄에 매여 있다! 너희는 죄의 종이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인데 너희는 항상 죄를 짓고 있지만 죄가 죄인지 모르고 죄 가운데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 죄란 한 번의 실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악행입니다.
한두 번 과실로 죄를 짓는다면 죄의 종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실수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이는 틀림없이 죄에게 매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죄에 매여 있다고 시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죄에 매인 사실을 모릅니다.
왜 똑똑한 지성인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할까요? 왜 강도들은 감옥살이 하고 나와서 또 반복할까요?
왜 사람마다 한번 미워했으면 됐지 왜 두고두고 미워하면서 속을 썩일까요?
한번 시기하고 질투했으면 그만이지 왜 반복적으로 질투하고 다툽니까?
나라마다 전쟁을 한번 하면 됐지 왜 두고두고 전쟁을 합니까?
인간은 모두가 죄에 매여 있습니다. 죄의 노예들입니다.
마음에서 죄의 지배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노예입니다.
인류는 총체적으로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과거의 제국들이 몰락한 것도 죄 때문입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도 죄 때문이고, 자본주의가 몰락하는 것도 죄 때문입니다.
내가 망하게 된 것도 죄 때문입니다.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철저하게 돈으로 평가하고, 돈으로 교환하고, 돈으로 지배합니다.
국가 간 정의는 국력의 힘일 뿐입니다.
인류는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정의를 실천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지도 못하지만 알아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죄의 노예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인간의 계율에 매여 하나님께 귀를 열지 않았습니다.
39-41절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할 리가 없습니다.
누가 주님의 불의를 목격했습니까? 주님은 결코 죄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들은 시기심과 교만 때문에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것, 의로움을 의로움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죄인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죄로부터의 자유, 죄를 짓지 않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자유는 영혼 내부의 일입니다.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도, 영혼이 매여 있으면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혼이 매여 있으면 양심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혼이 매여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신분이나 혈통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자유인이 아니라 영혼의 자유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배하는 배후는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마귀의 주 전공은 배신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합니다. 배척하게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죄를 짓게 만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결국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엄중히 심판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되어 두 가지 죽음을 선고 받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적 죽음이요, 둘째는 영적 죽음입니다. 아무도 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들로 죄를 짓게 만들고 죽게 만듭니다.
이 마귀의 사슬에서 스스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주십니다.
31-32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정한 자유가 어디서 오는가? 주님의 제자가 되면 자유롭게 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희랍인 조르바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고 그것이 자유일까요? 제멋대로 행동할 때에 걸리는 게 없나요? 가족과 이웃, 함께하는 사람들은 아프고 곤란해져도 되나요? 나만 즐거우면 됩니까?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미친 사람이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남을 불행하게 만들거나, 남에게 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자유는 인간 스스로 쟁취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에서 신앙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진리란 바로 예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아는 만큼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학문적으로 무식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남녀노소 유무식을 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 진리의 소유자입니다.
자유는 그런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 때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됩니다.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첫째는 정죄 받지 않는다는 뜻이고, 둘째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먼저 정죄를 면합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정죄에서 벗어납니다.
결코 정죄될 일이 없으니 처벌도 없고, 죄와 무관하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해방운동이나 혁명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제자가 되면 얻게 되는 선물입니다.
자유인 특징은 종은 마지못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자발적으로 일을 합니다.
종 은 어쩔수 없이 무엇인가를 합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기쁨으로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일을 합니다.
종은 어떠한 일에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인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바로 자유인의 삶입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진정한 자유는 사탄에게서 자유롭게 합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생활에서 자유합니다.
시32:6-7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참 자유는 우리를 죽음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공포입니다.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가장 완벽한 종말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 이 끝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바로 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고전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래서 죽음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