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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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18회 작성일 2013-11-1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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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4:14-18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그렇게 무더위가 극성하던 여름도 어느 날 지나가 버리고 아침저녁으로 춥다고 느껴지는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이 가을에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곡백과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추석,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이때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할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 날을 맞이하였으니 즐겁고 마음이 풍족하였다.
가윗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 즉 반보기라고 한다.
우리 문헌에는 12세기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지만 그 시원을 밝히는 내용은 아니다. 이 자료를 통해서 추석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추석은 애초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로서 이날 명절식으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올려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이 중요한 행사다. 추석 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여 여름 동안 묘소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준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차례는 대체로 4대 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부터의 관행이다.
요사이는 4대가 아니라 1대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콘크리트를 씌우고 인조 잔디를 씌우기도 합니다.
대대로 따져 올라가 보면 만나게 됩니다.
행17:22-29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족보를 따져 올라가 보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족보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족보 말입니다.
예수님부터 75대 쯤 올라가보니 하나님이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입니다.
요셉부터 거슬려 41대가 다윗 왕입니다.
다윗부터 13대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11대 할아버지가 노아입니다.
노아의 9대 할아버지가 아담이요
그 아담은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최초의 사람입니다.
오늘 이 인류의 세대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서 우리 인생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루스드라에 나면서 발을 쓰지 못하여 걷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믿음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8-10절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이게 보통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신이 한 것으로 여기는 일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래서 신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마치 이 명절에 오곡백과를 얻고 보니 조상에게 감사하고 싶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 것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인 가를 아는 바울과 바나바는 결코 그렇게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요 장차 진노를 받을 일이기 때문에 옷을 찢으며 그들에게 바른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14-15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위치와 가는 길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부터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간 아담이 떠나간 장소에서 자녀를 낳으니 그 자녀도 하나님을 떠나간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습니다.
택한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특별히 택하셔서 자기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러도 그들은 듣지 아니 하였습니다.
렘7: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떠나갔습니다.
사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의 경전에는 해당종교의 위인들이 흠이 없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잘못이나 허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다.
모든 종교 경전들은 위인들이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보이는 데에 초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인 됨과 허물이 많음을 아는 자는 여호와께로 돌아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이유는 자신이 의로움 인 줄 알 때였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됨은 죄인인 줄 알 때입니다.
눅15:18-20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러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위인들은 한결같이 허물투성이다. 허물없는 사람이 없다.
성경은 그들의 허물과 잘못 밝히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는다.
성경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간 그 자체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을 때 기드온은 불과 300면의 병사로 미디안의 대군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주권을 회복한다. 격파한 기드온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기드온이 소수의 300명의 소수로 미디안을 격퇴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탁월한 전략가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이름 없는 농부였다. 그럼에도 그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누구든지 하나님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이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추앙받던 기드온은 정말 자신이 대단한 인물로 착각하게 된다. 그가 죽을 때 아들이 70명이었다. 딸은 얼마나 많았을까? 처첩은 얼마나 많았는가? 그는 세검에 첩은 두고 첩으로부터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기드온의 아들은 정확하게 71명이었다. 한 사람이 배다른 수많은 여자로부터 수많은 자식을 낳으면 불화가 일어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드온이 죽자 아비멜렉은 자기형제들 70명을 한꺼번에 대학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가. 69명의 형제들이 목숨을 잃었고 요담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아비멜렉은 스스로 세겜의 왕으로 옹립되었다.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두개골이 깨져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나?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낸 구국의 영웅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을 때 무명의 농부였으나 구국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분수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했을 때 그 역시 죽은 후에도 다른 사람을 찌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을 찌르는 흉기, 가시나무가 되고 말았다.
인간이 자신의 분수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것은 이렇듯 중요하다.
막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들의 전설에 의한 잘못된 하나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곳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전설을 승화하고 발전시켜 쓰스 신당의 부흥과 발전을 기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바울과 바나바가 지체장애인을 걷게 하는 기적의 사건을 일으키자, 그들은 두 사도를 쓰스와 허메라고 하며 제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옷을 찢는 외침은 이들의 잘못된 하나님 이해를 안타까워하며, 잘못된 하나님 이해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을 하나님 되도록 하라는 요청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신앙하면서, 이 신앙을 어떠한 목적에 이용하는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인간이 만든 많은 이념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자기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의 뜻과 목적에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백세에 난 아들이 그에게는 생명보다도 더 귀중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아들, 이삭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을 거부한 사람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그의 믿음은 이삭이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과감히 거부한 신앙을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하나님이 주신 축복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때 그것은 우상입니다
15절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하나님이 아닌 것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을 때, 바울이 옷을 찢으며 거부했던 것처럼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는데서 인간의 바른 삶이 시작되고 세워집니다.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친히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사정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바다의 근원과 형편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모든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경영하시는 분이십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만족함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사도바울이 루스드라를 찾아 설교했을 때,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선천성 마비자도 있었다.
그는 온 중심을 다해 바울의 설교를 집중해 들었고 사도바울은 설교하면서 그를 주목하여 보고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를 향해 큰 소리로 네 발로 일어서라고 명령했고 그와 동시에 그 선천성 마비자는 벌떡 일어나 걷게 되었다.
뉴욕의 이발협회는 선행을 베풀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길가에서 잠자고 있는 거지를 데려다가 목욕을 시키고, 양복을 입히고, 머리를 근사하게 깎아주었습니다. 거지가 아주 훌륭한 신사가 되었습니다. 이발협회는 자신들의 선행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사람을 다시 빈민굴로 돌려보낼 수 없다면서 일자리와 방을 얻어주고,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출근하도록 했습니다. 거지는 감사하며 가더니 다음날 12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9시부터 기다리던 이발협회원들은 그 거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거지는 어느 더러운 골목 길가에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술에 곯아떨어져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이렇듯 이발을 하고 새 양복을 입었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인격이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번 중추절을 통하여 내 친지들이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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