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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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63회 작성일 2013-11-11 20:34본문
이사야1:18-20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이사야는 남방유다의 선지자로 유다의왕 웃시야와,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그리고 그 아들 므낫세까지 다섯 왕을 걸쳐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유다가 점점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하여 어려움과 고통을 당함을 보고 백성들을 치유코자 주께서는 말씀의 대변자로 이사야를 부르사 어렵고 힘든 시대에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하였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부르심은 간절한 것입니다.
영적 형편을 묘사하여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1:2-8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지금 치유하지 않으면 영원히 회복 할 수 없는 그러한 지경에 놓인 백성들의 형편을 보시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여 땅이여 귀를 기울어 들으라 라고 하십니다. 듣고 고침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어떠합니까?
제가 지난 추석 기간에 교회 계단에서 지난 날 주일 학교에 열심히 나오던 여자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을 아이데 많이 변하여 있었습니다. 소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 있어 지금 잡아 주지 않으면 돌아오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자신도 죽을 일이요 또 주위의 사람도 죽일 일입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내고 헌신을 해서 붙잡아 주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만 여기고 가는 저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니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고 무엇인가 사랑이 그리워 주일 학교에 나왔지만 이 아이와 끈끈한 교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아이에게 문제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 날 교회에 나와 이렇게 말만하고 말았는데 아쉽습니다.
혹 여러분의 상황은 이러하지 않습니까?
나 역시 영적으로는 치유받아야할 그러한 상태는 아닌지 한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쳐주시려고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또한 죄악 중에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토론을 제안하십니다.
변론하자는 말은 let us reason together(KTV), 나와 시비를 가리자(공동번역),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토론하자는 말씀인가요? 토론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죄를 지었는지? 또한 그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과학문명이 발전한다고 인류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첨단과학은 인간타락에 속수무책입니다. 인간 품질이 나빠지는 것을 조금도 막지 못합니다.
일인당 소득이 몇 만 달러가 넘으면 낙원이 됩니까? 전 국민이 대학공부를 하면 인간사회가 나아질까요?
도덕과 윤리 운동이 인간의 타락을 막아줍니까? 정치나 법 제도가 범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단 한 가지도 인간의 범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 타락은 구제 불능의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인간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죄의 해결책을 선포하십니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네 아들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축복해주려고 오라했습니다.
창48: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우리 영적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예수님께서도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성경의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이야기해보자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떠한 자라도 괜찮습니다 어떠한 죄악을 저질러도 괜찮습니다
오기만 오라는 말씀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자녀가 무슨 죄까지는 봐 주고 그 이상의 죄를 지으면 자녀가 아니지요
호적을 파고 또 파도 자녀는 자녀입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들의 죄악은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 큰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체적인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위선적인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즉 성령의 인도하심보다 육신의 소욕에 끌려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만 종교생활을 하는 위선적인 신앙생활은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수한 제물도, 헌금도, 절기를 지킴도, 기도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11-15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우리의 헌신, 기도, 아름다운 예배, 찬양, 수양회, 선교대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형식으로 드려질 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둘째로 물질주의와 사회의 불의를 구체적인 죄악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이시니 때문에 인간의 가시적인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과 은과 돈은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매혹적입니다. 금과 은을 얻기 위해 신앙은 둘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것도 드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짓 사상에 속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상숭배의 죄악입니다.
사2:6-9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넷째로 인간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교만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해 높아지고자 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항상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심지어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은 죄악상을 지적한 것은 죗값을 치루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 죄악의 고통을 통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이 같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모든 증거는 명백했습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들은 유죄였습니다.
그럼에도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최후 판결을 내리시기 전에 피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겁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음성이요 새 출발할 수 있는 자리로 부르신 은혜의 초대입니다.
주홍이란 히브리말로 두 번 물들인 것이란 뜻이며 시리아 특산의 잘 지워지지 않는 짙은 털가시나무에 붙은 연지 벌레에서 채취한 색소를 말합니다.
또 진홍은 히브리말로 지중해 해안의 조개에서 채취한 검붉은 염료를 말합니다.
주홍이나 진홍이라는 색은 누군가의 피를 불법적으로 흘렸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니엘 호돈은 주홍이라는 색으로 죄라는 상징을 표현한 소설인 주홍글씨를 썼습니다.
이 염료들의 특징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번 붉은 물이 들면 절대로 지워지지 않아요. 천이 낡아 해지는 한이 있어도 빛깔이 바래지는 않습니다.
죄는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내 인생을 따라다닙니다.
죄는 죽어서 다음 세상의 운명까지도 결정합니다.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집니다.
죄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고통과 슬픔으로 보내야 합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빛깔! 그것이 바로 죄의 특성입니다.
죄는 좋은 것을 막고 우리로 하여금 종노릇하게 하는 무서운 사단의 활동매채입니다
우리는 이제 오라하시고 대화하자하시는 우리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창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이겼습니다.
약한 사람하고 강한사람하고 싸우면 대게 누가 이깁니까? 사람하고 마귀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 것입니까?
하나님과 마귀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사람과 하나님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부모와 자식이 싸우면 대게 자식이 판정승으로 이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대부분 져주는 싸움이니까 그러합니다.
우리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싸움에서 영원히 져주시고 그 표적으로 갈보리 산상에다 십자가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승리자라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용서받지 못한 죄가 여러분들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릴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합니다.
사단의 종에서 해방되는 길은 우리의 죄를 우리하나님께 내어놓고 회개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신 용서를 우리에게 주시고 다시 아들의 위치로 회복시켜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든 일에 이기기를 원하신다면 모든 죄를 버리게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인간의 죄악이 크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은 머리부터 발바닥 까지 상한 인간들을 변론으로 초청하십니다.
이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할 만큼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도 모든 삶을 일격에 무너트릴 수 있는 정말 치명적인 죄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죄를 깨달았을 때 침상을 눈물로 띄울 만큼 후회하며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은 회개를 받아 주시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잊으셨습니다.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다윗의 죄를 옮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다윗을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았던 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지 않았기에 하나님께 합한 자가 아니라 죄를 회개하였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든 자가 된 것입니다.
어쩌면은 우리는 너누 의를 요구 받았고 의롭게 살므로 서 축복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죄도 많고 판단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회개함으로 복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축복들을 단숨에 빼앗아갈 수 있는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 죄와 허물이 너무나 크고 무겁기 때문에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해 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치르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고 악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결과들을 우리의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귀로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먹게 될 것입니다.
죄를 해결한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죄의 문제를 떨쳐버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내 자신에게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는 남방유다의 선지자로 유다의왕 웃시야와,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그리고 그 아들 므낫세까지 다섯 왕을 걸쳐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유다가 점점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하여 어려움과 고통을 당함을 보고 백성들을 치유코자 주께서는 말씀의 대변자로 이사야를 부르사 어렵고 힘든 시대에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하였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부르심은 간절한 것입니다.
영적 형편을 묘사하여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1:2-8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지금 치유하지 않으면 영원히 회복 할 수 없는 그러한 지경에 놓인 백성들의 형편을 보시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여 땅이여 귀를 기울어 들으라 라고 하십니다. 듣고 고침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어떠합니까?
제가 지난 추석 기간에 교회 계단에서 지난 날 주일 학교에 열심히 나오던 여자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을 아이데 많이 변하여 있었습니다. 소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 있어 지금 잡아 주지 않으면 돌아오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자신도 죽을 일이요 또 주위의 사람도 죽일 일입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내고 헌신을 해서 붙잡아 주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만 여기고 가는 저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니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고 무엇인가 사랑이 그리워 주일 학교에 나왔지만 이 아이와 끈끈한 교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아이에게 문제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 날 교회에 나와 이렇게 말만하고 말았는데 아쉽습니다.
혹 여러분의 상황은 이러하지 않습니까?
나 역시 영적으로는 치유받아야할 그러한 상태는 아닌지 한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쳐주시려고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또한 죄악 중에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토론을 제안하십니다.
변론하자는 말은 let us reason together(KTV), 나와 시비를 가리자(공동번역),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토론하자는 말씀인가요? 토론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죄를 지었는지? 또한 그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과학문명이 발전한다고 인류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첨단과학은 인간타락에 속수무책입니다. 인간 품질이 나빠지는 것을 조금도 막지 못합니다.
일인당 소득이 몇 만 달러가 넘으면 낙원이 됩니까? 전 국민이 대학공부를 하면 인간사회가 나아질까요?
도덕과 윤리 운동이 인간의 타락을 막아줍니까? 정치나 법 제도가 범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단 한 가지도 인간의 범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 타락은 구제 불능의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인간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죄의 해결책을 선포하십니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네 아들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축복해주려고 오라했습니다.
창48: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우리 영적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예수님께서도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성경의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이야기해보자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떠한 자라도 괜찮습니다 어떠한 죄악을 저질러도 괜찮습니다
오기만 오라는 말씀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자녀가 무슨 죄까지는 봐 주고 그 이상의 죄를 지으면 자녀가 아니지요
호적을 파고 또 파도 자녀는 자녀입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들의 죄악은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 큰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체적인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위선적인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즉 성령의 인도하심보다 육신의 소욕에 끌려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만 종교생활을 하는 위선적인 신앙생활은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수한 제물도, 헌금도, 절기를 지킴도, 기도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11-15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우리의 헌신, 기도, 아름다운 예배, 찬양, 수양회, 선교대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형식으로 드려질 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둘째로 물질주의와 사회의 불의를 구체적인 죄악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이시니 때문에 인간의 가시적인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과 은과 돈은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매혹적입니다. 금과 은을 얻기 위해 신앙은 둘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것도 드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짓 사상에 속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상숭배의 죄악입니다.
사2:6-9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넷째로 인간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교만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해 높아지고자 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항상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심지어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은 죄악상을 지적한 것은 죗값을 치루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 죄악의 고통을 통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이 같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모든 증거는 명백했습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들은 유죄였습니다.
그럼에도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최후 판결을 내리시기 전에 피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겁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음성이요 새 출발할 수 있는 자리로 부르신 은혜의 초대입니다.
주홍이란 히브리말로 두 번 물들인 것이란 뜻이며 시리아 특산의 잘 지워지지 않는 짙은 털가시나무에 붙은 연지 벌레에서 채취한 색소를 말합니다.
또 진홍은 히브리말로 지중해 해안의 조개에서 채취한 검붉은 염료를 말합니다.
주홍이나 진홍이라는 색은 누군가의 피를 불법적으로 흘렸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니엘 호돈은 주홍이라는 색으로 죄라는 상징을 표현한 소설인 주홍글씨를 썼습니다.
이 염료들의 특징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번 붉은 물이 들면 절대로 지워지지 않아요. 천이 낡아 해지는 한이 있어도 빛깔이 바래지는 않습니다.
죄는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내 인생을 따라다닙니다.
죄는 죽어서 다음 세상의 운명까지도 결정합니다.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집니다.
죄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고통과 슬픔으로 보내야 합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빛깔! 그것이 바로 죄의 특성입니다.
죄는 좋은 것을 막고 우리로 하여금 종노릇하게 하는 무서운 사단의 활동매채입니다
우리는 이제 오라하시고 대화하자하시는 우리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창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이겼습니다.
약한 사람하고 강한사람하고 싸우면 대게 누가 이깁니까? 사람하고 마귀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 것입니까?
하나님과 마귀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사람과 하나님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부모와 자식이 싸우면 대게 자식이 판정승으로 이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대부분 져주는 싸움이니까 그러합니다.
우리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싸움에서 영원히 져주시고 그 표적으로 갈보리 산상에다 십자가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승리자라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용서받지 못한 죄가 여러분들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까.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릴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합니다.
사단의 종에서 해방되는 길은 우리의 죄를 우리하나님께 내어놓고 회개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신 용서를 우리에게 주시고 다시 아들의 위치로 회복시켜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든 일에 이기기를 원하신다면 모든 죄를 버리게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인간의 죄악이 크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은 머리부터 발바닥 까지 상한 인간들을 변론으로 초청하십니다.
이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할 만큼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도 모든 삶을 일격에 무너트릴 수 있는 정말 치명적인 죄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죄를 깨달았을 때 침상을 눈물로 띄울 만큼 후회하며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은 회개를 받아 주시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잊으셨습니다.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다윗의 죄를 옮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다윗을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았던 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지 않았기에 하나님께 합한 자가 아니라 죄를 회개하였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든 자가 된 것입니다.
어쩌면은 우리는 너누 의를 요구 받았고 의롭게 살므로 서 축복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죄도 많고 판단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회개함으로 복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축복들을 단숨에 빼앗아갈 수 있는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 죄와 허물이 너무나 크고 무겁기 때문에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해 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치르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고 악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결과들을 우리의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귀로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먹게 될 것입니다.
죄를 해결한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죄의 문제를 떨쳐버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내 자신에게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