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의지하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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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41회 작성일 2014-01-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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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5:1-6 말씀에 의지하는 생활
1871년 어느 날 시카고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하루 동안 계속된 화재로 시카고의 온 시가지가 불바다가 되었고 상업지역은 완전히 소실되었고 300명의 사망자를 내었습니다. 이 화재로 무디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도 완전히 불타버렸습니다. 신문기자들에게는 이것이 좋은 뉴스 꺼리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기자가 빈정거리며 무디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잔지 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주신다고 설교하셨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보시고 도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이 말을 듣고 무디 목사는 말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었소. 그랬더니만 이제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이 오지 않았겠소. 큰 교회를 짓기 위해서는 이 교회를 헐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화재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기 때문에 교회를 허는 비용을 덜어주신 것이지요. 앞으로 얼마나 큰 교회가 생길 것인지 잘 보시오.
그러자 기자들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무디목사는 화재가 나자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와 겨우 목숨을 건졌기 때문에 빈주먹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온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이 심술궂게 물었습니다. 그럼 돈은 갖고 계십니까?
무디 목사는 옆구리 끼고 있던 성경책을 꺼내 보이면서,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 아무리 사용하여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이 성경책을 갖고 나왔지요! 기자 여러분들은 머지않아 새롭게 세워진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무디목사는 몇 년 후에 정말 크고 훌륭한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믿음이란 불탄 교회의 잿더미에서 절망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꿈을 보았습니다
무디 목사는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신사입니다.
개역한글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의 성경 책안에는 빨간 줄이 가득 그어져 있고 깨달은 것들이 여백에 적혀져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나오는 글자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t 하나는 p라는 글자였습니다. t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삶 속에 적용 try해 보았다는 것이고 P는 증명 prove 증명해 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디는 이 말씀을 그냥 읽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오면서 그의 삶은 항상 풍요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비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의 청사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에게는 지적인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피나는 노력을 했음에도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상황입니다.
누가 말하기를 인생은 빈 배와 같다고 합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지금까지 살아 왔지만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아직도 빈 배의 허무함입니다.
그런데 이 빈 배에 주님이 오시면 달라집니다.
나 스스로가 상당히 만족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면 그 인생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그러나 내 삶에서 그리 만족하지 못해도 어려움을 당해도, 그 일로 인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면 사실 그 빈 배에 주님이 타시면 이것은 사실 영적 의미에 있어서 엄청난 축복입니다.
본문에 베드로는 그 인생의 빈 배에서 예수님은 그 자리에 타시고 그 곳에 말씀으로 함께 할 때에 채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기로가 생겼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삶과 그렇지 못한 삶입니다.
아직도 진정 만남이 없어 만족하지 못하여 허덕이는 삶에 채움의 새로움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채움의 주체인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는 것입니까?
그 예수님은 언제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저술한 책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특정한 종파나 의식을 통해서 발견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인생 경험을 통해서 발견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에 의지할 때 한 인간을 주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경말씀을 통해서만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생활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난 사람입니다.
그곳은 베드로의 삶의 현장입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4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장소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어디서든지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만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사랑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빈 배에 오르시는 예수님 그 배에서 하시던 말씀을 계속하시는 예수님
오늘따라 더 허전함을 느끼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관심을 가지신 것입니다.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잘 순종하면 예수님을 발견하게 될 뿐 아니라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참모습도 발견하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신을 바로 발견 할 수 있음은 예수님을 알고부터입니다.
인간의 최고 고등 학문이 철학은 제 아무리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해도 지금까지 그 답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은 우상의 종교는 모두가 철학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유명하다는 승려가 한 말인데 더 이상 그들이 뭐 더 말 할 것이 있겠습니까?
주님을 만난 베드로 고기가 많이 잡힌 데에 놀라움도 있었지만 많이 잡힘으로 인하여 자신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8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것은 굉장한 발견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한 것보다 더한 것입니다.
내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내 뜻대로 안됨을 원망하고 우울하기도 했는데...
모든 희로애락의 기준이 나였는데
사람이 변동이 심한 것도 인간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는 그래도 자기 자신을 신뢰 할 만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자신에게 실망을 하지 않는 것도 대단한 것이지요
자신에게 실망하는 사람은 자신을 너무 과대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여 보니 전혀 보지 못했던 자기의 또 다른 모습을, 아니 자기의 참된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라는 그 분과 함께 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라는 말은 나 같은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제발 상대하지 말아 주십시오
진정 주님을 만난 자의 고백입니다.
죽은 자와 방불합니다 혹은 배설물과 같습니다.
또는 벌레와 지렁이 티끌 같은 자 영원히 망하기에 합당한자입니다.
이 사실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주 위대한 발견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많은 말씀으로 은혜를 받지만 이런 고백은 없지 않습니까?
만일 그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만나 허탕 치는 줄 알았는데 고기 많이 잡아서 좋고, 돈 더벌어서 좋고, 그렇게 평생 고기잡이 하다가 죽었을 런지도 모릅니다.
누가 구원함에 이릅니까?
오직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뿐입니다.
아무리 유식하고 똑똑하고 지식이 많고 돈 잘 번다해도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요 소망 없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나타내기는 좋아하지만 자기의 치부나 약점을 들어내기는 꺼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무리 자기를 감추려 해도 다 드러나게 됩니다.
예리한 칼날 같아서 모든 것을 갈라 해부합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만이 자신의 진짜 모습인 죄인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을 때 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 진다면 틀림없이 은혜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들려지는 말씀이 아무개한테 하는 말씀으로 들려 진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활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말씀에는 엄청난 축복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으로 끌어오는 길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게 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상15:22-23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순종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할 것이 없습니다. 순종이 하나님의 복을 불러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신11:27-28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수1:7-8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그런데 문제는 말씀이 내 안에 너무 메말라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암8:11-12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지금은 은혜 받을 때에 구원의 때입니다.
얼마나 말씀이 풍성하십니까?
언젠가는 말씀을 구하여 다녀도 얻지 못할 때가옵니다.
왜 내 삶이 메마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모든 문제가 답답하기만 합니까?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말씀을 필요로 하는 자인지를 모르고 스스로 말씀에서 기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하나님의 말씀을 품지 못해 메말라버린 마음 때문에 우리의 삶에 하늘의 풍요를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량이 없습니다.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내 안에서 감동과 기쁨으로 역사하지 못하는 것은 말씀이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중단하고 있음은 내 안에 말씀이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의 부인 하와를 찾아와 유혹했던 뱀으로 가장한 사탄은 자기 숭배를 종요합니다.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자기숭배 사상을 넣어주었습니다.
하나님 판단보다도 내가 한 판단이 옳다는 겁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 청년회 봉사를 아주 열심히 하는 청년이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목사님에게 1년간만 쉬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자유로워지면서부터 교회에 나오면 뒷자리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졸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속리산에 놀러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멀리 떠나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친구에게 매여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토요일이면 밤새도록 마시고 취해서 주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느 토요일 밤에 청년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습니다. 밤새도록 실컷 마시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에 나이트클럽에 화재가 나서 수 십 명의 청년들이 불속에서 죽어갔습니다. 그 화재 사건이 바로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거기서 죽었고 시체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청년의 가슴에 뺏지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교회 이름이 찍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통곡했습니다. 내가 너를 죽였다. 내가 너무 인간적인 생각으로 너에게 1년을 쉬게 한 것이 너를 결국 이렇게 사망의 골짜기로 넣었구나!
오늘도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순종하는 자만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신다는 말씀은 생각하려고 들지도 않습니다. 그저 주시겠다고 했으니 달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 나 어리석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은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합시다. 그러면 우리 영이 먼저 축복을 받고 육신도 각 종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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