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를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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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14회 작성일 2014-01-1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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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27-32 주 예수를 믿으라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에 대한 간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주 예수를 믿으라는 해답을 바울이 주었습니다. 그러면 간수는 왜, 무엇 때문에 구원을 얻는 방법을 물었습니까?
옥중의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다가 도망가지 않고 남아 있는 죄수 바울과 실라를 만났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이 상황은 간수에게 있어서는 정신적인 혼란과 혼돈입니다.
그 혼란은 간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적이어서 자결밖에는 그 일을 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데 대해 서 다른 사람들 곧 바울과 실라의 늠름한 것을 본 데서 자신도 모르게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상황은 간수로 하여금 비명과 같이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밤에 지진이 났습니다. 그래서 옥문이 열리고 그 매었던 족쇄가 다 풀렸습니다.
간수는 자다 뛰어 나와서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갔으리라고 지래 짐작을 하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죄수를 놓쳤으면 그 죄값을 받을 테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네 몸을 해치 말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신보다 더 큰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인 그 죄수들이 문이 열렸는데도 안 도망가고 앉아 있더란 말입니다.
그때 간수가 순간적으로 어떤 혼란 속에 빠진 것입니다.
죄수들이란 갇혀 있으면 결국 죽음이나 그 비슷한 수준의 비참한 모습으로 끝나도록 붙잡혀 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족쇄로 다 채워져 있으니까 죽을 권리도 빼앗기고 있지요.
그러니 간수 쪽에서 보자면 이 죄수들이 도망갈 절호의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안 도망가고 있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구원에 관한 질문이 나옵니다.
간수가 자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가 몸담고 살고 있는 그 현실과 상황, 조건 속에서는 탈출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수인 이들은 탈출구가 열린데도 그 길로 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개 자신과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가 되니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구원을 그가 몸담고 살고 있는 모든 환경과 조건을 자기 뜻대로 전환시켜 주는 것으로 믿음을 행사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조금 전 간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뜻이 됩니다.
그의 절망은 지금 그가 겪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판단 속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구원은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현재의 조건과 환경을 내가 충족하고 만족하도록 해 줄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구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구원은 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간수로서 죄수를 놓치자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알고 있는 가치 체계 속에서는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한 마디로 주 예수를 믿으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55:7-9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도대체 믿으라는 예수는 누구입니까?
사실 예수님은 3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것도 공생애는 3년이었습니다. 세상에 계실 때에 한 권의 책도 남긴 일이 없습니다. 한 편지의 글도 남기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내려오면서 그 분에 대한 책은 가장 많이 기록되었고 또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예수에 대한 기록으로써의 성경은 가장 많이 팔리고 읽혀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앞 다투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기독교를 선택하였고 국제 연합인 유엔(UN)도 기독교 정신에 의하여 설립 되었습니다.
예수는 누가 믿든지 아니 믿든지 역사의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역사는 B. C와 A. D로 구분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후의 새 역사와 문화 속에서 온 인류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사를 내려오면서 변함없이 가장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고 또는 생명을 바쳐서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삶의 전부를 포기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위하여, 선교하기 위하여 순교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학자의 말대로 이 세상의 모든 정치가나 사상가나 어떤 지도자를 합친다 하여도 예수님의 영향에 미치지 못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올바른 변화를 가져왔고 번영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마다 한결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마16:15-16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죄로부터 주어진 저주와 인간의 모든 불행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불행한 운명 속에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항상 인간은 세 가지의 불행의 문제 속에서 살아갑니다.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구원이란 여러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불행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과거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가 있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다. 인간관계, 물질관계, 사회와의 관계,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라는 것이 발목을 잡고 평생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없어질 수 과거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세상은 고해라 합니다. 어느 곳이나 고통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공중권세를 마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인간은 고난 속에서 불행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질병과 가난, 실패와 불행한 환경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면 평안한 것 같아도 내면에 고통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인간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내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 죽음의 문제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모르지만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으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주어졌던 인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복음을 받아 드릴 기회다
보통 인간들이 무엇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합리성과 이성적이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갖는 이러한 사고 체계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속에 고정되어서 그 벽을 허물지 않으려고 하는 폐쇄적 구조(closed system), 즉 내가 알고 있는 이해와 사고의 테두리 안에서만 세계를 보는 시각을 말합니다.
이것에 반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개방적 사고형태(open system)라 하며 이런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자연적인 상황이 일어났고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이 벌어졌는데 도망가서 생명을 건져야 할 죄수가 그냥 그 자리에 태연하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간수는 이 상황에서 자결을 하는 것이 해답입니다.
그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이해의 범주 내에서는 이것은 죽음으로 끝을 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복음입니다.
죽을 이유가 없어졌고 자신의 여태까지 축척한 경험은 무효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선언은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복음 속에는 이런 중요한 또 다른 국면이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과적으로 궁극적 구원 내세적입니다.
결과적으로 궁극적 구원 즉 내세적일 때 내 현실의 입장만을 바라보면서 행, 불행으로만 따지고 죽느니 사느하나님이 나에게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내가 보고 있는 이 정도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고후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스케일이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보고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더 깊은 메시지로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이 삶과 우리의 시간이라는 것은 더 완전한 것, 더 중요한 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요 목표된 것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불과하지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지가 아니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설사 감옥에 갇혀서 맥없이, 덧없이, 이름 없이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평가되며 영원한 곳에서 더 완벽한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니까 조금도 절망일 수도 없고 비극일 수도 없고 원통할 것일 수도 없으며 그것이 자기를 흔들 수 없지만 이 간수에게 있어서는 이 땅이 전부고 여기서 사는 모든 것이 최후의 것이고 이 땅을 지나면 끝이니까 여기에 있는 것으로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해서 기고만장할 수도 있고 절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하는 말 속에는 당신이 알고 있고 당신이 목표하고 있고 당신이 계산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것을 모르면 당신은 큰일 납니다. 머리, 즉 사고 체계를 여십시오. 이런 뜻입니다.
복음은 원하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구원이다
간수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한다는 것은 나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당한다할지라도 즉 내 목숨을 주고 바꾸어서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시인하겠다는 강렬한 신앙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진정한 거듭남과 회심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
즉 목숨을 주고 바꾸어서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라고 적용하는 것은 성경을 크게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은 말씀의 순종이다
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어느 한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며 그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하신 말씀을 인정하고 순종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도 어느 한 사람을 믿는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의 한 이야기를 믿고 따르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체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믿음이라는 영적 작용이 발동하기에 앞서서 그 믿음의 대상이 되는 분의 말씀이 반드시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단순히 그를 믿는다고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하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나의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강한 신념과 결의 또한 세상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겠다는 강한 의지의 굴복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인을 구원하는 믿음이다.
오늘날 신자들이 왜 생활에 진정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간수와 같이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믿는다는 말을 무엇인지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다고 보통 얘기를 하지요? 믿음이 없는 것도 여러 가지입니다만 그중에는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더 큰 세계, 초월이 있다는 걸 알고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것이 절대 우연이거나 값없는 것이 아니며 이 고통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절대 체계 속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신상에 절하지 않는 죄로 잡혀 용광로에 집어넣는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내가 세상에서 최고 통치자다. 너희는 거기서 살아날 아무런 힘이 없다. 내 말을 듣고 살겠느냐? 아니면 내말을 거역하고 죽겠느냐?
여기에 구원의 믿음이 있습니다.
단3:17-18절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지금 주님은 세상을 보고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보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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