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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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71회 작성일 2014-01-16 17:57본문
시편 130:1-6 주를 기다립니다.
12월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번 주는 대림절 혹은 대강절주일로 부릅니다.
대림절이란 그리스도의 오심을 미리 기대하며 준비하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을 가리키는 절기로 교회력으로 보게 되면 새로운 해의 첫 출발 지점으로 다시 말하면 교회력은 새해를 대강절 첫 주로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대림절은 이 땅에 예수께서 오셨다고 하는 과거적 의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모두를 지칭하는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과거적인 면으로는 육신으로 곧 탄생하실 주님을 기다리던 이 천년 전의 상황을 기념하고 재현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삶을 경건히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시므온은 말라기 이후 400년간의 캄캄한 흑암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친히 임마누엘로 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렸습니다.
어린자녀가 부모에게 받을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듯이 거의 100세 가까운 노인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마음으로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현재는 오늘날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장차 세상 종말에 심판주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기쁨으로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행1:8-1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최대의 소망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눈물과 근심과 아픔이 없는 안식처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우리의 수고와 충성에 대한 영광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대림절의 궁극적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유에 누우셨던 아기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초라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예수님은 백말을 타시고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피고의 신분으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묵비권을 행사하셨던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쓰시고 입의 검으로 악인을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 가운데 신앙의 정절을 지키도록 하신 성령을 생각하며, 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부 단장하는 대림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부터 대림절에 이미 초림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다시 한 번 내 마음과 내 생활에서 경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더니 바람소리 갈고 불같은 성령을 경험했듯이 성령 충만을 받은 성령의 대림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신랑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기다려야 합니까?
이 세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에 있기 때문입니다.
1-3절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노력의 실패, 그리고 다른 실패는 나를 약간 실망시킬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그 순간, 그것이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것 같지만, 죄는 반드시 나를 추적하여 나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여기에 어느 누구하나 죄아래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죄의 경험을 모두가 하였고 지금도 죄의 영향 아래에서 고통하고 심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죄의 값는 사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망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든지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이래 잇는 인생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죄에서 자유 함을 얻을 자가 없습니다.
롬3:10-17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죄의 문제에 희망을 알려 준 것입니다.
3-4절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편기자는 이러한 대답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까요?
그의 체험을 통해, 그의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그 스스로도 죄에 한번 빠져 보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수렁에 빠져 낙심과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던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수렁에서 빠져 나와 본 경험이 있기에, 자신의 간증을 하며 우리에게 예,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시51:5-7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이번 대림절은 온갖 죄악에서 자유함을 얻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참으로 원하는 자에게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보다는, 그 죄의 수렁에서 머물러 있는 이유가, 자신과 그리고 자신에게 관계된 사람과 환경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할 수 없어라 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게 사탄이 노리는 수법입니다.
내가 지난번에도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는데, 내가 또 일을 저질러서
혹은 나는 또 이 문제를 가지고 갈 수 없어 나에게는 가능성이 없어 이것이 모두 인간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아비가 아이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할 수 있거든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 사람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나무랐습니다.
막9:22-23절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본문에서도 역시 시편기자가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인 줄 압니까?
사유하심이 주께 있습니다 입니다.
여기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기록한 장부가 아예 없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에 이미 다 해결 되는 것입니다.
히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가 왜 주님을 경외합니까? 주님은 우리의 죄를 감찰하시기보다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쓰인 용서라는 단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쓴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조건 없는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횟수와 상관없습니다.
잘못을 아뢰기만 하면 조건 없이 횟수에 상관이 없이 용서해 주시고 사해 주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람이 잘 못하면 몇 번을 용서해야 합니까?
이게 사람의 용서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죽기까지 조건 없는 용서를 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으로 말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사55:6-8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용서의 범위는 사람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자라도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고 나오기만 하면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용서해 주시며 구원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죄의 수렁에서 끌어낼 수 있습니까? 내 결심입니까? 내 약속입니까? 내가 하는 작은 봉사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줄 믿습니다.
죄를 범했느냐? 나오기만 해라! 돌아오기만 해라! 내 앞에 나와서 부르짖기만 해라!
그것이 몇 번이건, 얼마나 심각한 죄가 되었건,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해 주마!
이런 대림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속죄와 구원의 은혜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5-6절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기다린다는 말은 마치 거지가 부자의 문턱에서 구걸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영어에는 웨이트(wai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뜻은 주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또 다른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손님을 섬기는 사람을 웨이터(waiter)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123:1-3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배우려는 학생같이 기다려야 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주님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내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이방인의 백부장 말씀만 하옵소서 하는 자세가 최고의 믿음입니다.
기다리라 는 말씀에는 아이가 부모님을 기다리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아무 부담감이 없이 부모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부모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갖다 주리라 하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기다리는 것으로 행복합니다.
벧전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주님을 기다림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기다리는 이 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잠잠히 기다리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고 예레미야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가3:25-26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의 뜻은 잠잠히 기다리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힘들어도 자신의 본문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며 잠잠하시기 바랍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스스로 절망 가운데로 자신을 내 몰지 마시고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12월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번 주는 대림절 혹은 대강절주일로 부릅니다.
대림절이란 그리스도의 오심을 미리 기대하며 준비하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을 가리키는 절기로 교회력으로 보게 되면 새로운 해의 첫 출발 지점으로 다시 말하면 교회력은 새해를 대강절 첫 주로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대림절은 이 땅에 예수께서 오셨다고 하는 과거적 의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모두를 지칭하는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과거적인 면으로는 육신으로 곧 탄생하실 주님을 기다리던 이 천년 전의 상황을 기념하고 재현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삶을 경건히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시므온은 말라기 이후 400년간의 캄캄한 흑암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친히 임마누엘로 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렸습니다.
어린자녀가 부모에게 받을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듯이 거의 100세 가까운 노인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마음으로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현재는 오늘날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장차 세상 종말에 심판주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기쁨으로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행1:8-1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최대의 소망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눈물과 근심과 아픔이 없는 안식처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우리의 수고와 충성에 대한 영광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대림절의 궁극적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유에 누우셨던 아기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초라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예수님은 백말을 타시고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피고의 신분으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묵비권을 행사하셨던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쓰시고 입의 검으로 악인을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 가운데 신앙의 정절을 지키도록 하신 성령을 생각하며, 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부 단장하는 대림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부터 대림절에 이미 초림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다시 한 번 내 마음과 내 생활에서 경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더니 바람소리 갈고 불같은 성령을 경험했듯이 성령 충만을 받은 성령의 대림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신랑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기다려야 합니까?
이 세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에 있기 때문입니다.
1-3절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노력의 실패, 그리고 다른 실패는 나를 약간 실망시킬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그 순간, 그것이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것 같지만, 죄는 반드시 나를 추적하여 나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여기에 어느 누구하나 죄아래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죄의 경험을 모두가 하였고 지금도 죄의 영향 아래에서 고통하고 심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죄의 값는 사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망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든지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이래 잇는 인생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죄에서 자유 함을 얻을 자가 없습니다.
롬3:10-17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죄의 문제에 희망을 알려 준 것입니다.
3-4절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편기자는 이러한 대답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까요?
그의 체험을 통해, 그의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그 스스로도 죄에 한번 빠져 보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수렁에 빠져 낙심과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던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수렁에서 빠져 나와 본 경험이 있기에, 자신의 간증을 하며 우리에게 예,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시51:5-7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이번 대림절은 온갖 죄악에서 자유함을 얻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참으로 원하는 자에게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보다는, 그 죄의 수렁에서 머물러 있는 이유가, 자신과 그리고 자신에게 관계된 사람과 환경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할 수 없어라 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게 사탄이 노리는 수법입니다.
내가 지난번에도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는데, 내가 또 일을 저질러서
혹은 나는 또 이 문제를 가지고 갈 수 없어 나에게는 가능성이 없어 이것이 모두 인간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아비가 아이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할 수 있거든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 사람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나무랐습니다.
막9:22-23절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본문에서도 역시 시편기자가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인 줄 압니까?
사유하심이 주께 있습니다 입니다.
여기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기록한 장부가 아예 없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에 이미 다 해결 되는 것입니다.
히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가 왜 주님을 경외합니까? 주님은 우리의 죄를 감찰하시기보다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쓰인 용서라는 단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쓴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조건 없는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횟수와 상관없습니다.
잘못을 아뢰기만 하면 조건 없이 횟수에 상관이 없이 용서해 주시고 사해 주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람이 잘 못하면 몇 번을 용서해야 합니까?
이게 사람의 용서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죽기까지 조건 없는 용서를 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으로 말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사55:6-8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용서의 범위는 사람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자라도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고 나오기만 하면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용서해 주시며 구원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죄의 수렁에서 끌어낼 수 있습니까? 내 결심입니까? 내 약속입니까? 내가 하는 작은 봉사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줄 믿습니다.
죄를 범했느냐? 나오기만 해라! 돌아오기만 해라! 내 앞에 나와서 부르짖기만 해라!
그것이 몇 번이건, 얼마나 심각한 죄가 되었건,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해 주마!
이런 대림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속죄와 구원의 은혜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5-6절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기다린다는 말은 마치 거지가 부자의 문턱에서 구걸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영어에는 웨이트(wai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뜻은 주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또 다른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손님을 섬기는 사람을 웨이터(waiter)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123:1-3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배우려는 학생같이 기다려야 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주님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내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이방인의 백부장 말씀만 하옵소서 하는 자세가 최고의 믿음입니다.
기다리라 는 말씀에는 아이가 부모님을 기다리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아무 부담감이 없이 부모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부모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갖다 주리라 하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기다리는 것으로 행복합니다.
벧전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주님을 기다림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기다리는 이 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잠잠히 기다리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고 예레미야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가3:25-26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의 뜻은 잠잠히 기다리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힘들어도 자신의 본문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며 잠잠하시기 바랍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스스로 절망 가운데로 자신을 내 몰지 마시고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