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택이 당신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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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53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창세기 13: 8-18 믿음의 선택이 당신을 살립니다
서울 개포동에 사시는 강태원이라는 올해 83세의 할아버지는 지난 8월 15일 밤에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실향민으로서 해방 직후 아내와 돌이 막 지난 아들을 남겨 두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그는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시장에서 쉰 떡을 사 먹어가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광장시장에서 포목상을 차렸고 60년대 개발 당시 싸두었던 땅이 많이 올라 그는 많은 돈을 벌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도 그렇거니와 폐가 딱딱해지는 폐섬유증을 앓고 있어 요양 중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 밤에 그렇게 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한 것이 무엇입니까?
270억이나 되는 재산을 어떻게 하느냐? 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전 재산을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써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KBS 방송국에 기탁을 하고서는 하는 말이 오늘은 밤에 잠이 잘 올 것 같네 원래 자식을 잘 키우려면 재산을 물려주면 안 되는 법이야
그는 1남 4녀의 자녀가 있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결정을 하였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음성 꽃동네에 100억 상당의 부동산을 익명으로 기증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평생의 수고를 헛되이 돌리지 아니하고 선을 위한 좋은 기회로 만들었으니 그가 살아온 그 어떤 선택보다 가장 귀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성경에 어떤 젊은이가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을 상담을 하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당신이 소유한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나눠주고 그리고 나를 쫓으라 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그 사람은 바른 방법을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인 고로 근심하여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그 결과는 여태까지 아무리 잘 살았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영생을 취할 선의 기회를 버림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선을 행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선택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인생의 결과는 상당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하는 차이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에도 볼 수 있고 마찬가지로 세상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는 어떤 때 주어집니까?
범사의 주어진 생활에서 선을 이루기 위한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철야 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생활을 하는 자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범사의 모든 생활을 믿음으로서의 선택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에게는 상당한 곤욕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조카 롯과의 인간관계의 문제요 물질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의 종들이 서로 목축들을 돌보기 위하다 보니 초장과 우물물 등을 가지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 모든 이들이 살아가는 범사에 일어 날 수 있는 흔한 일들이 아닙니까?
여기에서 어떤 이는 축복의 결과를 가져오고 어떤 이는 멸망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 기준은 좋은 것을 취했다 못 취했다가 아니고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선택의 기회를 조카에게 먼저 주었습니다.
아마 그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요
조카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하는 마음에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카는 배려하는 삼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부모 없는 자신을 이렇게 까지 성공하게 한 삼촌의 사랑과 수고는 그의 안 중에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소유하고 이루어 보겠다는 심정이었을 뿐입니다.
마음대로 선택의 기회가 왔을 때에 그의 시각에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만을 차지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무엇이든지 내가 좋을 대로하는 것이었지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소알 땅 즉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하게 되는데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표현 할 때에 여호와의 동산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그 뒤에 애굽과 같았다는 말은 그 롯의 마음이 애굽 즉 세상에 속해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롯의 선택은 전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며 세상적인 것인 것을 마음의 소욕대로 선택을 한 것입니다.
비록 그 땅은 물이 넉넉하고 초장이 펼쳐진 기름진 땅이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멸하기로 작정된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선택은 그 순간에는 좋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밭을 탐내어 자신의 욕심대로 그 밭을 소유했지만 그 순간에 그는 행복했는지 몰라도 결국은 그 일로 그 집안은 하나님 앞에서 몰락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길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글에서 그 자신을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고 자신에게 관계된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자신은 오히려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시고 구원을 시켜 주심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한 선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하심을 아셔야 합니다.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는 절대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그 누운 더러운 곳에 다시 들어 눕지만 사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자리에 들어와서도 자꾸만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옛것을 버리고 잊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서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 줄 아십니까?
옛것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혈기와 정욕과 욕심이 가득한 옛 사람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살아 가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아니 더 큰 축복을 받은 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선택은 믿음의 선택입니다.
그 믿음의 선택은 하나님의 의지요 하나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나의 의지를 이루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골 백번 이것을 가디고 믿습니다. 해도 신념은 될지 모르나 믿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그의 말씀은 절대로 멸망의 소리가 아니라 한없고 끝이 없는 축복의 소리입니다. 할렐루야!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 이런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나 사람이 보시기에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모든 인간적인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혈과 육이 쭉 빠지고 그리스도의 의지에 붙잡혀서 사는 모습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의 선택을 보십시오
그에게는 전혀 인간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이 순간에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쩌면은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전혀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보면 좋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신은 전혀 아무 것도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인간적으로 스스로가 너무 똑똑하여 하나님이 하실 기회를 전혀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는 하나님이 안 주신다고 말을 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는 인간이지만은 그가 사용되기는 하나님의 의지대로 사용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 내어놓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어쩌면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러한 태도를 보시고 너무나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고 축복을 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하였을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보라 너와 너 자손에게 줄 것이다 그리고 한번 밟아 보라 할렐루야!
어찌 롯에게는 들려주시지 않았습니다.
전혀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하기로 생각만 하시고 계셨습니다. 아예 듣을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정 들리지 않으면 엎드려서 들릴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것도 부족하면 이미 일러준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말씀인지 언제든지 그 말씀은 나를 살리는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낙담케 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언제든지 구원의 소식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면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되며 모두가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그 교회는 3천여 명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부임 첫 주일예배가 끝나고 나자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와 인사를 하더니 “목사님 수고가 많으시겠습니다. 수천명 교인들의 마음을 다 맞추시려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일 그는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수천 명이 넘는 여러분의 비위나 마음을 맞춰주기 위해 이 교회에 부임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저더러 3천여 명의 비위를 낱낱이 맞추라한다면 저는 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제 말을 순종하고 따른다면 저는 생명 다해 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저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를 맞춰가며 삽시다.
그리고 믿음의 선택은 실력입니다. 아무나 믿음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싶어도 안됩니다.
평상시에 얼마큼 신앙 생활에 열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았는가에 따라 결정적인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롯은 그의 평상시의 생활은 인간적으로 세상적인 것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믿음적인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실 롯의 생활을 보면 소돔 성에서 천사를 통해서 멸망의 소식을 일러주었을 때에 그의 사위들이 롯의 말을 듣고 농담으로 여겼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하고는 상관이 없는 집안이었지를 잘 보여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를 볼 때에 인간적인 실수는 있었지만은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볼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사람이었음을 잘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가 장소를 옮겨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기서 역시 여호와를 우;L하여 단을 쌓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잘 아셔야 합니다.
복을 달라고 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모든 일을 감당 할 때에 복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불러서 복을 주시려고 한다고 여기기 전에 먼저 복을 받을 믿음의 그릇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곧 믿음의 사람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일이 잘 안 된다고만 하기 전에 내가 믿음으로 하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안되더라도 믿음으로 하십시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모든 일에 축복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은 믿음으로 행 할 것 밖에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하면 버릴 것이 없고 화라도 복이 되고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가져 올 것입니다.
서울 개포동에 사시는 강태원이라는 올해 83세의 할아버지는 지난 8월 15일 밤에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실향민으로서 해방 직후 아내와 돌이 막 지난 아들을 남겨 두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그는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시장에서 쉰 떡을 사 먹어가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광장시장에서 포목상을 차렸고 60년대 개발 당시 싸두었던 땅이 많이 올라 그는 많은 돈을 벌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도 그렇거니와 폐가 딱딱해지는 폐섬유증을 앓고 있어 요양 중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 밤에 그렇게 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한 것이 무엇입니까?
270억이나 되는 재산을 어떻게 하느냐? 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전 재산을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써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KBS 방송국에 기탁을 하고서는 하는 말이 오늘은 밤에 잠이 잘 올 것 같네 원래 자식을 잘 키우려면 재산을 물려주면 안 되는 법이야
그는 1남 4녀의 자녀가 있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결정을 하였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음성 꽃동네에 100억 상당의 부동산을 익명으로 기증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평생의 수고를 헛되이 돌리지 아니하고 선을 위한 좋은 기회로 만들었으니 그가 살아온 그 어떤 선택보다 가장 귀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성경에 어떤 젊은이가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을 상담을 하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당신이 소유한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나눠주고 그리고 나를 쫓으라 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그 사람은 바른 방법을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인 고로 근심하여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그 결과는 여태까지 아무리 잘 살았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영생을 취할 선의 기회를 버림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선을 행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선택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인생의 결과는 상당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하는 차이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에도 볼 수 있고 마찬가지로 세상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는 어떤 때 주어집니까?
범사의 주어진 생활에서 선을 이루기 위한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철야 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생활을 하는 자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범사의 모든 생활을 믿음으로서의 선택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에게는 상당한 곤욕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조카 롯과의 인간관계의 문제요 물질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의 종들이 서로 목축들을 돌보기 위하다 보니 초장과 우물물 등을 가지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 모든 이들이 살아가는 범사에 일어 날 수 있는 흔한 일들이 아닙니까?
여기에서 어떤 이는 축복의 결과를 가져오고 어떤 이는 멸망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 기준은 좋은 것을 취했다 못 취했다가 아니고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선택의 기회를 조카에게 먼저 주었습니다.
아마 그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요
조카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하는 마음에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카는 배려하는 삼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부모 없는 자신을 이렇게 까지 성공하게 한 삼촌의 사랑과 수고는 그의 안 중에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소유하고 이루어 보겠다는 심정이었을 뿐입니다.
마음대로 선택의 기회가 왔을 때에 그의 시각에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만을 차지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무엇이든지 내가 좋을 대로하는 것이었지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소알 땅 즉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하게 되는데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표현 할 때에 여호와의 동산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그 뒤에 애굽과 같았다는 말은 그 롯의 마음이 애굽 즉 세상에 속해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롯의 선택은 전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며 세상적인 것인 것을 마음의 소욕대로 선택을 한 것입니다.
비록 그 땅은 물이 넉넉하고 초장이 펼쳐진 기름진 땅이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멸하기로 작정된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선택은 그 순간에는 좋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밭을 탐내어 자신의 욕심대로 그 밭을 소유했지만 그 순간에 그는 행복했는지 몰라도 결국은 그 일로 그 집안은 하나님 앞에서 몰락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길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글에서 그 자신을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고 자신에게 관계된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자신은 오히려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시고 구원을 시켜 주심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한 선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하심을 아셔야 합니다.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는 절대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그 누운 더러운 곳에 다시 들어 눕지만 사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자리에 들어와서도 자꾸만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옛것을 버리고 잊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서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 줄 아십니까?
옛것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혈기와 정욕과 욕심이 가득한 옛 사람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살아 가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아니 더 큰 축복을 받은 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선택은 믿음의 선택입니다.
그 믿음의 선택은 하나님의 의지요 하나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나의 의지를 이루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골 백번 이것을 가디고 믿습니다. 해도 신념은 될지 모르나 믿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그의 말씀은 절대로 멸망의 소리가 아니라 한없고 끝이 없는 축복의 소리입니다. 할렐루야!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 이런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나 사람이 보시기에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모든 인간적인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혈과 육이 쭉 빠지고 그리스도의 의지에 붙잡혀서 사는 모습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의 선택을 보십시오
그에게는 전혀 인간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이 순간에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쩌면은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전혀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보면 좋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신은 전혀 아무 것도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인간적으로 스스로가 너무 똑똑하여 하나님이 하실 기회를 전혀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는 하나님이 안 주신다고 말을 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는 인간이지만은 그가 사용되기는 하나님의 의지대로 사용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 내어놓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어쩌면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러한 태도를 보시고 너무나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고 축복을 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하였을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보라 너와 너 자손에게 줄 것이다 그리고 한번 밟아 보라 할렐루야!
어찌 롯에게는 들려주시지 않았습니다.
전혀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하기로 생각만 하시고 계셨습니다. 아예 듣을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정 들리지 않으면 엎드려서 들릴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것도 부족하면 이미 일러준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말씀인지 언제든지 그 말씀은 나를 살리는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낙담케 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언제든지 구원의 소식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면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되며 모두가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그 교회는 3천여 명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부임 첫 주일예배가 끝나고 나자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와 인사를 하더니 “목사님 수고가 많으시겠습니다. 수천명 교인들의 마음을 다 맞추시려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일 그는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수천 명이 넘는 여러분의 비위나 마음을 맞춰주기 위해 이 교회에 부임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저더러 3천여 명의 비위를 낱낱이 맞추라한다면 저는 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제 말을 순종하고 따른다면 저는 생명 다해 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저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를 맞춰가며 삽시다.
그리고 믿음의 선택은 실력입니다. 아무나 믿음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싶어도 안됩니다.
평상시에 얼마큼 신앙 생활에 열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았는가에 따라 결정적인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롯은 그의 평상시의 생활은 인간적으로 세상적인 것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믿음적인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실 롯의 생활을 보면 소돔 성에서 천사를 통해서 멸망의 소식을 일러주었을 때에 그의 사위들이 롯의 말을 듣고 농담으로 여겼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하고는 상관이 없는 집안이었지를 잘 보여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를 볼 때에 인간적인 실수는 있었지만은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볼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사람이었음을 잘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가 장소를 옮겨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기서 역시 여호와를 우;L하여 단을 쌓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잘 아셔야 합니다.
복을 달라고 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모든 일을 감당 할 때에 복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불러서 복을 주시려고 한다고 여기기 전에 먼저 복을 받을 믿음의 그릇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곧 믿음의 사람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일이 잘 안 된다고만 하기 전에 내가 믿음으로 하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안되더라도 믿음으로 하십시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모든 일에 축복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은 믿음으로 행 할 것 밖에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하면 버릴 것이 없고 화라도 복이 되고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가져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