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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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25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요한복음 14:26-27 당신의 인생을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지난 목양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중에 안양에서 목회 하시는 사모님 한 분은 자신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제단에 엎드려서 기도하며 부르는 찬송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찬송의 가사가 이 땅에서의 걱정을 표현하는 찬송이었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픔 일을 많이 보고 늘 걱정하여도... ...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
이 찬송을 부르시며 목이 메여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나의 인생을 논하라고 한다면 어디 눈물을 보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참고 있을 뿐 그리고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성경의 지도자들도 이 인생을 밝게 보기보다는 힘들게 바라보았습니다.
부귀와 영화를 누린 솔로몬까지도 인생을 논하가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같이 헛되도다
모세같은 이는 이스라엘 무리를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는 엄청난 큰 일을 하였지만 그의 남겨둔 글에서 그의 인생을 이렇게 논하지 않았습니까?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말에 저 역시 동감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늙어 죽는 것이 아닙니까?
단편적인 예로 삶이 힘들어 질 때 종종 `나는 얘들 때문에 살아. 얘들만 없으면 오늘도 죽을 수 있을 텐데 할 수 없이 살아하며 삶 자체가 모두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폐쇄적이요 어두운 삶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 인생을 슬프게 만들고 또한 걱정만 하고 사는 자로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을까요?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어둡게 살도록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이 땅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삶이 고통스럽고 걱정하며 살도록 하지 않으시고 행복하게 살도록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근심과 두려움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움과 근심이 아니라 진정한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 계심과 역사 하심을 보여주며 기이한 일을 행하심을 보여 주며 인생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시 150: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시 150: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우리의 신앙인들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신앙의 갈등을 상당히 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한 형편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어떻게 될까? 실패하지 않을까? 내가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어찌 되는 거 아닐까? 중한 병이 들지 않을까? 직장에서 쫒겨나지 않을까? 등등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삶인데 걱정거리가 눈앞에다가 왔는데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참으로 황당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고민을 하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자연을 두고 걱정하지 말 것을 설명을 하셨습니다.
마 6:25-3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자연을 기르시고 키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의 걱정에서 자유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여름에 자연을 대하는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2박 3일간의 지리산 지역을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러분 무엇을 느끼는 것이 없었습니까?
어떻게 자연이 저렇게도 훌륭하게 잘 자라고 번식이 되어 가는가 말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면 산마다 초목들이 아주 푸르게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저는 감탄하고 놀라 버렸습니다.
어디 사람들보고 이것들을 키우고 번식시키라고 하면 몇 나무가 가꾸고 몇 평이나 풀을 키우겠습니까?
이제는 좀 느껴야 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우리 일까보냐? 하는 믿음의 담대함이 생겨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 걱정거리의 방향을 다른 대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걱정만 하지 말고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바쁘면 걱정 할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할 일이 없으니 걱정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할 일이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참으로 놀라운 존재로 되어 질 것입니다.
나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죽지 못해서 사는 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가치가 없는 자입니까?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들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살려고 발버둥치고 생존 경쟁에서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죽지 못해서도 아니라 주께서 주의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 살려 두었기 때문에 힘껏 사는 것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삶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데려가시면 기쁜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자신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뜻은 평안과 축복과 구원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할렐루야!
성령이 오시게 되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는 말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길을 모르니까 어디까지나 불안한 것입니다. 인생을 잘 모르니까 두렵고 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바로 알게 되면 두려울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것을 알게 하고 성령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함은 우리들 옆에서 돕고 말씀하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상담해 주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궁극적인 결과를 알게 됨으로 가지는 평안이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른 것입니다. 확실한 장래를 안다는 것은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십니까?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자들은 장래가 훤하게 열려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평안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중국은 집안에 여자가 들어앉아 있으면 로마은 전쟁이 끝난 상태, 전쟁이 없는 상태(팍스) 한국은 고요한 상태, 시골 풍경화(산수, 강, 초가집, 마당엔 고추, 강아지, 빨래하는 아낙들, 저녁밥 짓는 연기가 굴뚝 위로 몽글몽글 솟아나는 ) 성경의 샬롬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 꽉 찬 상태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약속하셨던 메시아로 가득찬 것을 말합니다.
사9:6,그 이름은 평강의 왕(샬롬의 왕)이라 할 것인데 다윗의 위에 앉아 영원토록 그 나라를 보존하리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겔37:24-28,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자기 백성과 맺을 언약, 그 언약은 하나님이 이제 영원토록 자기 백성들 중에 거하겠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성삼위 하나님께서 그 거처를 우리 속에 두시고 그 성소를 우리 속에 두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기 시작하신 것을 드디어 우리가 이제 평안을 얻었다는 것이다.
월터 C. 카이저 박사의 「영적 회복이 필요할 때」라는 책에서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상태가 바로 이런 ‘영적 회복이 필요한’ 때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번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하게 느슨한 신앙의 상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바로 이런 영적인 역사에 대해 느끼고 깨달으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있다는 그런 사실을 전혀 잊어버리고 저 멀리 계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는 멀리 계시지 않고 성령님으로 오셔서 내 마음속에 임재하면서 나와 함께 동거동락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교훈해 주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내주 하시는 은혜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을 얼마나 의식하면서 민감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영적으로 예민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알고,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십니다. 어디서든지 계십니다.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민감한 신앙생활입니다.
엡 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그의 모든 인격과 생각이 그의 모든 육신의 행동이 그의 모든 두뇌의 활동이 술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영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성령의 지배를 100%받아서 그의 생활이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모든 일에 앞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가 이 말을 하면 기뻐하실까 ? , 행동을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의 이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 하면서 살피는 것입니다.
좀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은 집에서 가구를 배치할 때도, 주여 이농을 어디에 놓으면 주님께서 보시기가 좋겠습니까?
집에서 못을 하나 치더라도 주여 이 못을 어디에 치는 것이 좋겠습니까?
직장에서 사업하면서 대화를 나눌 때 먼저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 주여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겠습니까 ? 라고 물을 정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신앙 생활을 민감하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내 속에 거하시고, 나와 동거동락하면서 나와 대화를 나누시는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무시하고 육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에 있는 약 64년동안 여왕과 더불어 영국 정치에 깊게 관계한 윌리암 에워드 글래드스톤이라는 저명한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무장관, 자유당총재, 하원의원 등을 역임하였고 총리로 4번씩이나 있으면서 실제적인 대영제국 통치자로서의 생애를 보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 정치가의 뒷모습을 추적해보면 너무나도 귀한 신앙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래드스톤이 아홉살 되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는 그의 생활의 모습을 보고 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확신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21세때에 기록한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실행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 안에서의 생활을 나의 심령최대의 습관으로 삼는 것이다.
그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기도함으로 능히 이기고 연설하려고 할 때도 언제나 고요한 시간을 내어 기도했고 내각이 위기를 당했을 때도 하루 세번은 반드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한번은 옥스퍼드에 있는 자기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하여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버릇을 갖는 일이 가장 유익한 일이며 또한 이런 습관을 얻는 것이 그 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그의 침대 위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라는 말을 적어서 걸어 놓고, 이는 나의 가장 큰 위로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일국의 총리가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 순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그 삶을 늦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늘 주의 친절한 팔에 안겨있는 그 자신을 발견했고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그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살벌한 정치 세계에서 겁과 두려움 없이 영으로 사는 사람으로 성공적인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이 땅위에서 어떠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간절히 바라건대 육의 지배를 받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영의 지배를 받는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목양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중에 안양에서 목회 하시는 사모님 한 분은 자신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제단에 엎드려서 기도하며 부르는 찬송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찬송의 가사가 이 땅에서의 걱정을 표현하는 찬송이었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픔 일을 많이 보고 늘 걱정하여도... ...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
이 찬송을 부르시며 목이 메여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나의 인생을 논하라고 한다면 어디 눈물을 보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참고 있을 뿐 그리고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성경의 지도자들도 이 인생을 밝게 보기보다는 힘들게 바라보았습니다.
부귀와 영화를 누린 솔로몬까지도 인생을 논하가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같이 헛되도다
모세같은 이는 이스라엘 무리를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는 엄청난 큰 일을 하였지만 그의 남겨둔 글에서 그의 인생을 이렇게 논하지 않았습니까?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말에 저 역시 동감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늙어 죽는 것이 아닙니까?
단편적인 예로 삶이 힘들어 질 때 종종 `나는 얘들 때문에 살아. 얘들만 없으면 오늘도 죽을 수 있을 텐데 할 수 없이 살아하며 삶 자체가 모두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폐쇄적이요 어두운 삶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 인생을 슬프게 만들고 또한 걱정만 하고 사는 자로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을까요?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어둡게 살도록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이 땅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삶이 고통스럽고 걱정하며 살도록 하지 않으시고 행복하게 살도록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근심과 두려움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움과 근심이 아니라 진정한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 계심과 역사 하심을 보여주며 기이한 일을 행하심을 보여 주며 인생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시 150: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시 150: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우리의 신앙인들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신앙의 갈등을 상당히 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한 형편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어떻게 될까? 실패하지 않을까? 내가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어찌 되는 거 아닐까? 중한 병이 들지 않을까? 직장에서 쫒겨나지 않을까? 등등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삶인데 걱정거리가 눈앞에다가 왔는데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참으로 황당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고민을 하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자연을 두고 걱정하지 말 것을 설명을 하셨습니다.
마 6:25-3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자연을 기르시고 키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의 걱정에서 자유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여름에 자연을 대하는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2박 3일간의 지리산 지역을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러분 무엇을 느끼는 것이 없었습니까?
어떻게 자연이 저렇게도 훌륭하게 잘 자라고 번식이 되어 가는가 말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면 산마다 초목들이 아주 푸르게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저는 감탄하고 놀라 버렸습니다.
어디 사람들보고 이것들을 키우고 번식시키라고 하면 몇 나무가 가꾸고 몇 평이나 풀을 키우겠습니까?
이제는 좀 느껴야 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우리 일까보냐? 하는 믿음의 담대함이 생겨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 걱정거리의 방향을 다른 대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걱정만 하지 말고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바쁘면 걱정 할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할 일이 없으니 걱정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할 일이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참으로 놀라운 존재로 되어 질 것입니다.
나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죽지 못해서 사는 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가치가 없는 자입니까?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들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살려고 발버둥치고 생존 경쟁에서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죽지 못해서도 아니라 주께서 주의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 살려 두었기 때문에 힘껏 사는 것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삶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데려가시면 기쁜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자신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뜻은 평안과 축복과 구원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할렐루야!
성령이 오시게 되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는 말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는 길을 모르니까 어디까지나 불안한 것입니다. 인생을 잘 모르니까 두렵고 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바로 알게 되면 두려울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것을 알게 하고 성령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함은 우리들 옆에서 돕고 말씀하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상담해 주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궁극적인 결과를 알게 됨으로 가지는 평안이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른 것입니다. 확실한 장래를 안다는 것은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십니까?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자들은 장래가 훤하게 열려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평안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중국은 집안에 여자가 들어앉아 있으면 로마은 전쟁이 끝난 상태, 전쟁이 없는 상태(팍스) 한국은 고요한 상태, 시골 풍경화(산수, 강, 초가집, 마당엔 고추, 강아지, 빨래하는 아낙들, 저녁밥 짓는 연기가 굴뚝 위로 몽글몽글 솟아나는 ) 성경의 샬롬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 꽉 찬 상태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약속하셨던 메시아로 가득찬 것을 말합니다.
사9:6,그 이름은 평강의 왕(샬롬의 왕)이라 할 것인데 다윗의 위에 앉아 영원토록 그 나라를 보존하리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겔37:24-28,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자기 백성과 맺을 언약, 그 언약은 하나님이 이제 영원토록 자기 백성들 중에 거하겠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성삼위 하나님께서 그 거처를 우리 속에 두시고 그 성소를 우리 속에 두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기 시작하신 것을 드디어 우리가 이제 평안을 얻었다는 것이다.
월터 C. 카이저 박사의 「영적 회복이 필요할 때」라는 책에서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상태가 바로 이런 ‘영적 회복이 필요한’ 때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번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하게 느슨한 신앙의 상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바로 이런 영적인 역사에 대해 느끼고 깨달으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있다는 그런 사실을 전혀 잊어버리고 저 멀리 계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는 멀리 계시지 않고 성령님으로 오셔서 내 마음속에 임재하면서 나와 함께 동거동락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교훈해 주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내주 하시는 은혜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을 얼마나 의식하면서 민감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영적으로 예민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알고,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십니다. 어디서든지 계십니다.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민감한 신앙생활입니다.
엡 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그의 모든 인격과 생각이 그의 모든 육신의 행동이 그의 모든 두뇌의 활동이 술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영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성령의 지배를 100%받아서 그의 생활이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모든 일에 앞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가 이 말을 하면 기뻐하실까 ? , 행동을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의 이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 하면서 살피는 것입니다.
좀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은 집에서 가구를 배치할 때도, 주여 이농을 어디에 놓으면 주님께서 보시기가 좋겠습니까?
집에서 못을 하나 치더라도 주여 이 못을 어디에 치는 것이 좋겠습니까?
직장에서 사업하면서 대화를 나눌 때 먼저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 주여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겠습니까 ? 라고 물을 정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신앙 생활을 민감하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내 속에 거하시고, 나와 동거동락하면서 나와 대화를 나누시는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무시하고 육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에 있는 약 64년동안 여왕과 더불어 영국 정치에 깊게 관계한 윌리암 에워드 글래드스톤이라는 저명한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무장관, 자유당총재, 하원의원 등을 역임하였고 총리로 4번씩이나 있으면서 실제적인 대영제국 통치자로서의 생애를 보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 정치가의 뒷모습을 추적해보면 너무나도 귀한 신앙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래드스톤이 아홉살 되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는 그의 생활의 모습을 보고 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확신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21세때에 기록한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실행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 안에서의 생활을 나의 심령최대의 습관으로 삼는 것이다.
그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기도함으로 능히 이기고 연설하려고 할 때도 언제나 고요한 시간을 내어 기도했고 내각이 위기를 당했을 때도 하루 세번은 반드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한번은 옥스퍼드에 있는 자기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하여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버릇을 갖는 일이 가장 유익한 일이며 또한 이런 습관을 얻는 것이 그 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그의 침대 위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라는 말을 적어서 걸어 놓고, 이는 나의 가장 큰 위로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일국의 총리가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 순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그 삶을 늦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늘 주의 친절한 팔에 안겨있는 그 자신을 발견했고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그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살벌한 정치 세계에서 겁과 두려움 없이 영으로 사는 사람으로 성공적인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이 땅위에서 어떠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간절히 바라건대 육의 지배를 받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영의 지배를 받는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