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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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59회 작성일 2014-06-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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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5:15-18 지혜 있는 인생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 두 갈래로 길이 나 있었습니다.
두 길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한동안 나그네로 서서 한쪽 길이 굽어 꺾여 내려한 곳으로
눈이 닿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이 길은 풀이 더 우거지고 발자취도 적어, 누군가 더 걸어가야 할 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 길을 걷는다면, 다른 쪽 길과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요.
그 날 아침 두 갈래 길에는 똑같이 밟은 흔적이 없는 낙엽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쪽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법.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제 2013년을 돌이 킬 수 없는 길을 왔습니다.
내가 걸어온 모습대로 그리고 지금의 나의 모습이 설정 되었습니다.
이제는 2014년의 길을 가여 합니다.
이 한해도 언젠가는 돌이 킬 수 없는 길이 될 것이며 그리고 내가 걸어온 대로 내 모습이 설정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벌써 나의 2014년의 결과물 들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내 인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가리켜서 어리석은 삶 곧 지혜 없는 자의 삶을 살았든지 지혜로운 삶을 살았든지 둘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고 지혜로운 인생이 되라고 합니다.
15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까? 시간이 정하여 져있습니다.
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마냥 내 인생의 시간이 마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세월이란 헬라어 원문에는 미리 계산이 되고 할당되고 확정된 어떤 시즌이나 때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저 세월이 끝없이 흘러가고 반복되는 어떤 사건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맡겨 놓으신 세월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번 밖에 없는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어떻게 아껴야 합니까?
이 아끼라는 헬라어로 이 단어는 속량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속량은 조선시대 노비에게 대가를 받고 그들의 신분을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하던 제도입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죄의 값으로 핏값으로 치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값을 주고 기회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만물이 타락하면서 시간도 타락된 인간의 손에 의해 악용돼 왔습니다.
이런 시간을 대가를 지불하고 선용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시간을 활용하며 살던 생활을 중단하고 쾌락을 즐기던 생활 패턴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이것이 내가 함부로 살아도 된다는 변명은 될 수 없습니다.
18 세기 미국에서 일어나 영적 대각성 운동에 불을 붙였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불과 스무 살에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생일이 되기 직전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결의한 것 중에 칠십 번째 항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나는 한순간의 시간이라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시간을 이용하겠다
칼빈은 마귀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 내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쓸 수도 있고 나를 위하여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쓰자고 하면 이유와 핑계가 많지만 나를 위하여 시간을 쓰는 데는 관대합니다.
향락을 위해 쓰는 시간은 많지만 하나님을 위해 쓰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시간과 기회는 하나님께서 똑같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양적인 개념의 시간으로 살면 얼마나 살았느냐? 가 기준이 됩니다.
100세를 산다고 하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질적인 개념을 가지고 살면 무엇을 하면서 살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삽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얼마나 살았느냐의 양적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는 질적인 시간 개념으로 심판하십니다.
이것이 지혜 없는 사람과 지혜 있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지혜로운 인생은 주의 뜻을 구하는 자입니다.
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영국의 문필가 카알라일(Thomas Carlyle)은 이 세상 사회는 내가 영광을 누릴 처소가 아니라, 내가 쓰여 질 처소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나 결과는 허무밖에 없습니다.
1964년 아사히신문의 1천만 엔 현상공모에 당선된, 일본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대표작 빙점은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원죄를 다루며, 등장인물간의 인간사와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고...
미우라 아야꼬가 잡화상을 부부가 하였는데 자신의 가계는 번창이 되어 좋았는데 한편으로 다른 가계는 장사가 되지 않아 오히려 고민에 빠졌습니다. 근처의 다른 가게들이 안 된다고 한숨소리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의논하여 우리 가게가 잘 되는 것이 옆 가게를 망하게 하는 것인 줄 몰랐어요, 가게를 줄입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일 것 같아요.
그녀는 가게를 축소하고 물건의 가짓수를 줄이고 손님들을 옆 가게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시간이 남게 되었고, 그 시간에 소설 빙점을 쓰게 되었습니다. 빙점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기업의 이익을 이 모양으로 나눌 수 있는 기회는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만약에 이런 뜻을 알지 못하면 자신만 배터지면 큰 복이 라고 여기는 어리석음에 빠질 것이요 더 의미 있는 기회는 얻지 못 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인생은 성령 충만을 구하는 삶입니다.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사11:2절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요한 웨슬리(John Wesley)가 성령을 체험하고 강력한 영향을 끼치자 옥스포드 대학에서 웨슬리를 초청했습니다.
웨슬리는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으시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 최고의 석학인 교수들의 반응을 보니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만났고,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예수와 함께 생활했고, 자신의 눈으로 예수님의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명령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머물며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렸고 오순절날 성령 충만함을 받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이 전도하자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 여러분은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까? 예수와 함께 식사했습니까? 예수의 기적을 직접 보기라도 했습니까?
예수를 만나고 함께 먹고 기적을 목격했던 제자들도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은 다음에야 영혼을 건질 수 있었다면 하물며 당신들이야 말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쓰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웨슬리의 설교를 들은 교수들이 깨어졌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 성령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산업혁명의 위기를 겪던 영국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국민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빈부격차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교회마다 사람들이 밀려오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않고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밀려오는 시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방탕한 죄의 습관을 끊어 버릴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는커녕 끌려 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고 후회뿐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삶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이며 방탕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방탕과 향락에는 술이 빠질 수 없으며 우상제사와 함께 따라오는 것은 술의 축제였습니다.
왜 그렇게 기분 좋게 만드는 술을 취하지 말라고 하였을까요?
술에 취한 사람들은 절제하지 못한 채 방탕한 삶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절제가 되어 지지 않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에 실수가 많아지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술 때문에 죄를 범하고 술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술 때문에 실수를 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아무리 음주문화가 판을 치는 세상을 살아갈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절제의 열매가 있기 때문에 방종이나 방탕에 이르게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이런 환경 속에 계속하여 머무르는 것을 경고하며 성령에 붙들리어 살아가기를 권고하였습니다.
즉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주인이 되셔서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 가시도록 준비되어 있는 상태가 성령충만함입니다
성도들이 그러한 문화 속에 살아가는 동안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자신의 의지대로 살 못하고 오직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도 단 한번이 아니라 계속적인 상태입니다.
고전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극적 측면입니다.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한 사람은 방탕합니다. 절제가 없어집니다. 쓸데없는데 용기가 있습니다.
지나친 행동을 말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몸을 한 곳에 심히 몰두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선한데 용기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의 적극적 측면입니다. 말씀 듣는 것과 기도와 순종입니다
초대교회 120문도는 기도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곧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을 따라 기도했습니다.
눅11:11-13절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고넬료 가정에 일어난 성령의 부어주심도 베드로의 전한 말씀을 듣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행10:44-45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올 한해도 시작되었습니다. 1년이 또 금방 지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라고 말씀합니다. 지혜로운 자 같이 세월을 아끼고 주의 뜻을 이해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열매 맺는 축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대의 풍조에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행 따라,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라는 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과 다르면 불안한 것이 현대인입니다. 그래서 유행이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유행에 둔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좁은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
세상은 넓은 길은 찾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멸망의 길입니다.
시대의 풍조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풍조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어진 환경과 때를 탓하지 말고 그 주어진 시간에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얼마나 탓합니까?
우리가 선행을 하려면 때를 탓하고, 시대를 탓하고 시간을 탓하므로 거두고 맙니다.
신앙생활은 시간을 내어서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남아서 할 일이 없을 때, 교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는 때를 탓하고 때를 선용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합니다.
현재의 시간은 주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올 한해도 결코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떠나지 않으실 것이요, 자신의 언약을 깨지 않으실 것이요,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바꾸지도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실 것입니다.
제발 어리석고 지혜 없는 인생이 되지 말고 지혜로운 한 해가 되어 올 년 말에는 놀라운 인격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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