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15회 작성일 2014-06-04 10:25

본문

시편1:1-6 복 있는 사람은
얼마 전 추신수 선수가 미국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간 1억 3천만 달러(한화 약 1,371억원)이라는 거액의 계약을 체결해 화제가 된 가운데, LA다저스에 속한 클레이튼 커쇼 선수가 배가 되는 7년간 2억 1,500만 달러(약 2,282억원)에 계약을 맺어 또다시 이슈가 됐다. 류현진 선수와 같은 팀으로 잘 알려진 커쇼 선수는 만 26세의 젊은 나이에 역사상 가장 몸값이 비싼 투수가 됐다 커쇼의 연봉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복된 생활을 말하려고 합니다. 만 23세 때 쓴 커쇼의 어라이즈(arise)라는 책에서 커쇼는 우리 두 사람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인다 그러면 인생에서 돈과 지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발견한다 고 했습니다.
벌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얻는 복에 대하여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는 무엇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는 복이란 개념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더불어 물질적인 의미로 번성, 성공, 번영의 복이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축복을 하셨을 때에 이런 의미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창1:27-28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축복의 말씀이 노아와 그의 세 아들들에게도 그대로 전하여졌습니다.
창9: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믿음의 조상을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지시할 땅으로 보내실 때도 축복 하셨던 말씀입니다.
창12: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역시 이 축복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지금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또 하나의 축복은 행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복 있는 사람은 이란 의미는 행복한 사람은 이란 뜻입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먹고 사는 것에 아무 걱정도 없다 할지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그건 행복이 아닙니다.
올 한해가 참으로 행복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행복하십니까?
어떤 자가 행복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는 원래 올바른, 정직함 이란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결국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고, 정직하게 따를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1-2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왜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본은 하나님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채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악인들의 꾀를 따르는 자입니다. 이것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말씀합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는 자입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오만자의 자리에 앉는 자입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이 굳어져서 내 생각과 고집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말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말씀하셔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들이 악인이고, 죄인이고, 오만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읊조리다 는 표현이 맞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읇조리다라는 뜻은 뜻을 음미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읊다
말씀을 중얼중얼 거리면서 읽는 다는 것입니다.
시편에도 많은 곳에서 읇조리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을 자주 중얼거리다 보면 그 말이 나의 귀에 들려 나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의 견인력이라고 합니다.
학교에 가면 교훈이 있지요
어떡합니까?
계속 읇조리지 않습니까?
그것이 세뇌가 되어 나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 제일 잘하는 곳이 북쪽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읇조리지 않고 수령님의 뜻을 읊조리니 이상한 데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움을 당 할 때마다 시편에서는 읊조리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시편119:23절,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그리고 새벽부터 읇조렸다고 했습니다.
시편119:148절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제가 경헌 하기로도 새벽 기도가 참 좋은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읽지만 말고 중얼거리는 것을 습관화해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119: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묵상은 두 번째로 되새김질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그 의미를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일정한 시간에 그것을 꺼내어 그 의미를 깨닫는 다는 것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묵상에서 그들의 운명이 갈렸다고 합니다.
사울은 다윗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에 대한 경쟁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정적 제거를 사명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윗은 주야로 하나님만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미운 원수를 생각하고 묵상한 것이 아니라 복된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 읊조리며 묵상하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원수를 묵상하다가 원수만 만드는 인생을 살았고, 다윗은 성경을 묵상하다 복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운 사람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일할 때나 쉴 때나 미운 사람을 묵상합니다. 입으로도 욕하고 저주합니다. 사울 같은 인생을 살 사람입니다.
그러나 미운 사람, 싫은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다 하나님께 맡기고 좋은 일을 묵상하고, 감사할 일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다윗 같은 인생을 살 사람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제일 많이 묵상하십니까? 하나님입니까 원수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밥입니까?
어떤 것을 묵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사울로도 만들 수 있고 다윗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복 있는 사람은 깨달음과 삶의 태도가 하나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감동받고, 설교 시간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고 감동은 되었으나 삶의 현장에 나가서 그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 주일 설교를 듣지만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믿음과 행위가 일치되는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일상의 생활이 형통합니다.
형통이란 말은 번성한(prosperous)이란 뜻 또는 성공적(successful)이란 말로 번역돼 있습니다.
성경은 요셉의 삶을 형통한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써 형통했습니다.
창39: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3절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여 그의 형통함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보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또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면서 살았습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주식회사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성공에 대한 정의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형통의 뜻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형통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시냇가는 히브리 원어에서는 자연적인 하천 또는 물줄기라기보다는 인공적인 수로에 더 가까운 말입니다.
그러면 자연적인 하천과 인공적인 수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자연적인 하천은 말 그대로 자연적이기에 물이 흐르고 흐르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자연에 달려 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흐르고 가뭄이 들면 흐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적인 수로는 농사라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수로이기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물이 흐르기도 하고 흐르지 않기도 합니다.
즉 농사철 비록 가뭄이 들지라도 밭이나 작물에 물이 필요하면 물이 흐르는 곳이 수로입니다.
농부에게 있어 수로는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항상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물을 얻는 것에 있어 자연적 하천보다 인공적인 수로가 농부에게 더 큰 신뢰를 줍니다.
또한 심은 나무라는 것도 자연적으로 자란 나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심은 나무를 뜻합니다.
운 좋게 시냇가에 씨가 떨어져 자기 멋대로 자란 나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시냇가에 심겨지고 농부에 의해 관리되어지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수로에서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물을 공급 받을 수 있고 농부로부터 잘 관리를 받아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것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계절에 따라 싹이 나야 할 때 싹이 나고 꽃이 피어야 할 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할 때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농부에게 예측 가능한 나무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예측 가능한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복 있는 사람은 예측 가능한 사람입니다.
예측 가능한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라고 해서 큰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농부가 가을에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딸 것을 기대하는 믿음과 같이 마땅하고 당연한 믿음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예측 가능하다. 왜냐 하면 형통은 예측 가능함이 전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형통의 사전적인 의미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감입니다.
여기서 뜻대로는 예상한 대로 또는 예측한 대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삶이나 일에 있어 불확실성이 증가한다면 우리는 예상하거나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형통은 믿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간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믿고 신뢰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삶의 불확실성을 제거한 예측 가능한 삶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 삶 속에서 그는 안정과 믿음을 가집니다.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삶에 대하여 믿음이 갑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측 가능한 삶을 선물로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입니다.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정하다는 말은 알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시139:1-4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의인들의 길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섰을 때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의 길을 안다. 이런 말씀을 해주실 때 이 말씀처럼 큰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 멋대로 생각과 고집대로 살았다면 내 삶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미7:21-23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