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도 함으로서 하나님은 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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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1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다니엘 9: 16-23 당신이 기도 함으로서 하나님은 일 하십니다
1972년 4월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월맹군은 춘계 대공세의 일환으로 안케패스의 638고지를 선점함으로서 19번 국도를 보급로로 이용하던 전방의 월남군과 한국군이 고립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10여일 이상 지속된 전투에서 여러 차례 638고지 탈환을 위해 공략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이 안케패스 전투에 집중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한국군 장병들 사이에서는 전쟁 공포증이 퍼졌습니다.
후송되기 위해 자신의 손과 허벅지에 총을 쏴서 자해하는 병사들이 생기고 심지어 공격 명령을 거부하는 초급 지휘관들이 생겨나 군법회의에 회부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투에서 한국인이 승리를 하고 한국군의 용맹을 떨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서 있었는 줄 아십니까?
기독 장병들이 그 전쟁의 와중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는데 있었습니다.
당시에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예하부대를 방문하던 김홍태 목사님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독 장병들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위험에 처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신념이 있었고 전사한다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기독장병들은 모범장병이었고 또 용감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증거로서 당시의 파월 주한 한국군 총사령관인 채명신 장군은 1947년 38선을 남하해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신앙을 말살하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군인의 길을 택했을 만큼 투철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주월 사령관 시절에도 전쟁의 포연 속에서도 기도를 쉬지 않았고 그는 월맹군의 테러 목표 1호로서 숙소에 수류탄과 기관총 로켓포 등의 공격을 허다히 받았지만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생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다는 주관아래 호위차량도 없이 짚차의 덮개조차 열고 다녔다고 합니다.
당시 안케패스 전투의 맹호부대 사단장 정득만 소장은 사령부 진중 교회에서 전쟁 중에서도 연일 20-30명의 장병들이 모여 새벽기도로 모였다고 합니다.
쉽게 끝날 것 같은 전투는 의외로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었으니 정 소장은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기길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이 전선에서 용기를 잃기 앓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 한편으로는 정 소장이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일만 오천의 성도가 맹호부대 일만 오천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일대일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특별 기도회와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매일같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모든 전황을 하나님께 맡긴 정 소장은 그 달 24일 독실한 기독신자인 4중대 3소대장 이무호 중위에게 특공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소대원을 이끌고 적 후방에 침투하여 여명을 기해 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고지 탈환을 위해 공격했지만 유리한 시야를 확보한 적에게 저격 당해 매번 실패로 돌아간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 고지를 탈환 할 수가 있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하면 4월 달에는 한번도 안개가 낀 적이 없고 더욱이 8부 능선까지 안개가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인데 바로 그날 안개가 특공대를 감사고
8부 능선까지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사단장 정 소장은 인간의 모든 작전이 무위로 돌아가고 여러 가지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려 해도 시간에 쫓기는 상황아래 견고한 적진을 무너뜨린 최후의 작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것뿐이다. 나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고 안케패스전투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 받은 신앙의 체험이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안케패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일시 귀국시킬 것을 지시했는데 이 때 선발된 27명의 15명이 기독인 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은 비로소 당신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응답을 가지고 빨리 찾아 왔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찾아왔습니까? 기도하니 그런 일이 벌어 졌습니다. 언제? 기도 할 때였습니다.
단 9:20-23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이 내용 속에서 강조된 단어가 무엇입니까?
기도와 간구라는 단어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데 본문은 무게를 싣고 있었습니다.
역시 다니엘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였다는데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16-23절에서도 기도라는 단어가 부각되어 있습니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우려 들으시며...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주여 들으소서...
이같이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데에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이유와 환경을 핑계 삼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성령님은 얼마나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함을 탄식하고 있고 또한 기도하도록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성도가 기도하지 않고 있음을 볼 때에 너무나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어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갈망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 사람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 할 것인데......
기도 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기도 한데로 축복하신다는 일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아무 것도 기도 한 것이 없으니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도 주실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굉장한 문제가 생기게 되고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나의 삶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이토록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였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각도로 논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은 가장 큰 문제는 기도하지 않음에 있었습니다.
13절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지도 못하였고 기도하지 않음으로 주의 인도하심을 받지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기도하지 않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 같은 이는 기도하지 않음을 죄라고 까지 한 것은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틀림없이 인간적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일이요 또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아니하니 알 수도 없으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 문제에는 축복을 해 주시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해서는 참으로 안됩니다.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과 생활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의 생활상을 보면 근심과 걱정 속에 갇혀져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만사에서 마음이 편하지 못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불평과 불만과 원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순전히 육체적으로 살아 갈 뿐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방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 방탕과 술 취하함 호색과 쟁투와 시기,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이러한 것들이 그를 주관하고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의 삶은 이와 같은 어두움이 그의 생활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사를 부정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모든 축복이 오는 길을 막아 버리고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현상이 일어 나는 줄 아십니까?
우리는 한나라는 여인에게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는 밥맛이 없어서 밥을 제대로 먹기는 커녕 밥을 입에도 대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매일 울고 슬픔에 쌓여 있었으며 원통함을 풀지 못하고 마음에 격동적인 풍랑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으며 삶의 하루하루가 고통 중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혹시 이런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남편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부모 형제 그리고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 식구 중에 이러한 식구가 있다면 모든 식구들이 얼마나 괴로워하겠습니까?
일이 될 것도 잘 안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기도하기 전 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고 부터는 그 모습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밥맛이 돌아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과 고통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 뿐인 줄 아십니까? 부부간에 사이가 좋아 졌습니다. 대인관계가 좋아 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이 잘 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화라도 변하여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안 되는 일이 도저히 해결 될 수가 없는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얻고 도움을 받고 소망이 생기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렘 33: 3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그러니 기도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 축복과 능력의 사람 은혜와 소망의 사람으로 바뀌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면 매일 굿 데이가 되고 새벽에 기도하면 굿 모닝이 되고 점심에 기도하면 굿 에프트눔이 되고 저녁에 기도하면 굿 이브닝이 되고 잠자리에서 기도하면 굿 나잇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기도를 왜 안 합니까?
쓸데없는 데는 온갖 신경을 다 쓰고 진작 여러분을 살리고 복되게 해 줄 하나님에게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다 죽어 가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슨 심보입니까?
기도하기만 하면 그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천사를 보내시고 성령님이 역사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이름을 들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데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습니다.
18절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믿습니까?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의 기도라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나아 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을 열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은 누구든지 기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구의 기도든지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로로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이라도 아니 한번이라도 기도하지 않는 분이라도 기도 할 수 있고 응답이 있습니다.
비견(鄙見)한 예이지만 공군입대를 한 지 수개월 후 한 어떤 불신의 청년이 자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님에도 자기의 그리스도인 아내의 신실한 고모에게 수천 마일 밖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오늘 밤 처음으로 낙하를 합니다! 비록 많은 동료가 낙하하지만 홀로 해내야 합니다. 제가 2번인데 기도가 필요해요!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자정쯤 낙하합니다. 그 고모는 약속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 오자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수천 마일 남쪽에서는 거대한 폭격기가 들판을 가로질러 이륙해서 새까만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안에도 밖에도 불빛은 없었습니다. 갑자기 빨간 전구가 깜빡여 1번 낙하 병에게 신호했습니다. 겁을 먹은 그는 2번에게 난 할 수 없어!하고 돌아섰습니다. 겁내지 않고 침착하게 2번 병사가 낙하할 것을 동의했습니다. 그가 더듬어 문 쪽에 갔을 때 그는 폭격기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을 통해 그는 뛰어 내렸습니다. 그의 낙하산이 펴졌을 때 비행기가 폭발하여 하늘에 화염을 내뿜었습니다. 수 초 후 그 비행기는 벌판에 추락하여 모든 탑승자들이 죽었습니다. 휴가 중에 그는 위스콘신 교회의 교인들에게 간증하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기도응답을 인해 주님께 크게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연 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하는 그 시간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이 들렸을 때에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3일 만에 죽을 사람을 15년 더 살게 했습니다.
이게 우연입니까?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하였기에 살아 난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 할 때에 아말렉에게 승리 할 수 있었고 기도하지 않았을 때에 패배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기도하였기 때문에 승리를 했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패배를 하였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에서 눈을 들어 귀를 기우려 들어 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닫혔던 하늘 문을 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 질병 경제까지도 악한 영까지도 기도를 함으로서 물러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성도들이 기도의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번 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가장 좋은 선물을 준비하시고 여러분들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심을 믿으시고 무엇이든지 기도하여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72년 4월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월맹군은 춘계 대공세의 일환으로 안케패스의 638고지를 선점함으로서 19번 국도를 보급로로 이용하던 전방의 월남군과 한국군이 고립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10여일 이상 지속된 전투에서 여러 차례 638고지 탈환을 위해 공략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이 안케패스 전투에 집중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한국군 장병들 사이에서는 전쟁 공포증이 퍼졌습니다.
후송되기 위해 자신의 손과 허벅지에 총을 쏴서 자해하는 병사들이 생기고 심지어 공격 명령을 거부하는 초급 지휘관들이 생겨나 군법회의에 회부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투에서 한국인이 승리를 하고 한국군의 용맹을 떨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서 있었는 줄 아십니까?
기독 장병들이 그 전쟁의 와중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는데 있었습니다.
당시에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예하부대를 방문하던 김홍태 목사님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독 장병들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위험에 처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신념이 있었고 전사한다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기독장병들은 모범장병이었고 또 용감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증거로서 당시의 파월 주한 한국군 총사령관인 채명신 장군은 1947년 38선을 남하해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신앙을 말살하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군인의 길을 택했을 만큼 투철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주월 사령관 시절에도 전쟁의 포연 속에서도 기도를 쉬지 않았고 그는 월맹군의 테러 목표 1호로서 숙소에 수류탄과 기관총 로켓포 등의 공격을 허다히 받았지만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생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다는 주관아래 호위차량도 없이 짚차의 덮개조차 열고 다녔다고 합니다.
당시 안케패스 전투의 맹호부대 사단장 정득만 소장은 사령부 진중 교회에서 전쟁 중에서도 연일 20-30명의 장병들이 모여 새벽기도로 모였다고 합니다.
쉽게 끝날 것 같은 전투는 의외로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었으니 정 소장은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기길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이 전선에서 용기를 잃기 앓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 한편으로는 정 소장이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일만 오천의 성도가 맹호부대 일만 오천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일대일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특별 기도회와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매일같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모든 전황을 하나님께 맡긴 정 소장은 그 달 24일 독실한 기독신자인 4중대 3소대장 이무호 중위에게 특공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소대원을 이끌고 적 후방에 침투하여 여명을 기해 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고지 탈환을 위해 공격했지만 유리한 시야를 확보한 적에게 저격 당해 매번 실패로 돌아간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 고지를 탈환 할 수가 있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하면 4월 달에는 한번도 안개가 낀 적이 없고 더욱이 8부 능선까지 안개가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인데 바로 그날 안개가 특공대를 감사고
8부 능선까지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사단장 정 소장은 인간의 모든 작전이 무위로 돌아가고 여러 가지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려 해도 시간에 쫓기는 상황아래 견고한 적진을 무너뜨린 최후의 작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것뿐이다. 나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고 안케패스전투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 받은 신앙의 체험이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안케패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일시 귀국시킬 것을 지시했는데 이 때 선발된 27명의 15명이 기독인 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은 비로소 당신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응답을 가지고 빨리 찾아 왔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찾아왔습니까? 기도하니 그런 일이 벌어 졌습니다. 언제? 기도 할 때였습니다.
단 9:20-23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이 내용 속에서 강조된 단어가 무엇입니까?
기도와 간구라는 단어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데 본문은 무게를 싣고 있었습니다.
역시 다니엘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였다는데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16-23절에서도 기도라는 단어가 부각되어 있습니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우려 들으시며...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주여 들으소서...
이같이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데에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이유와 환경을 핑계 삼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성령님은 얼마나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함을 탄식하고 있고 또한 기도하도록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성도가 기도하지 않고 있음을 볼 때에 너무나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어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갈망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 사람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 할 것인데......
기도 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기도 한데로 축복하신다는 일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아무 것도 기도 한 것이 없으니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도 주실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굉장한 문제가 생기게 되고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나의 삶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이토록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였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각도로 논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은 가장 큰 문제는 기도하지 않음에 있었습니다.
13절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지도 못하였고 기도하지 않음으로 주의 인도하심을 받지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기도하지 않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 같은 이는 기도하지 않음을 죄라고 까지 한 것은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틀림없이 인간적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일이요 또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아니하니 알 수도 없으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 문제에는 축복을 해 주시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해서는 참으로 안됩니다.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과 생활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의 생활상을 보면 근심과 걱정 속에 갇혀져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만사에서 마음이 편하지 못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불평과 불만과 원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순전히 육체적으로 살아 갈 뿐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방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 방탕과 술 취하함 호색과 쟁투와 시기,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이러한 것들이 그를 주관하고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의 삶은 이와 같은 어두움이 그의 생활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사를 부정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모든 축복이 오는 길을 막아 버리고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현상이 일어 나는 줄 아십니까?
우리는 한나라는 여인에게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는 밥맛이 없어서 밥을 제대로 먹기는 커녕 밥을 입에도 대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매일 울고 슬픔에 쌓여 있었으며 원통함을 풀지 못하고 마음에 격동적인 풍랑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으며 삶의 하루하루가 고통 중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혹시 이런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남편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부모 형제 그리고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 식구 중에 이러한 식구가 있다면 모든 식구들이 얼마나 괴로워하겠습니까?
일이 될 것도 잘 안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기도하기 전 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고 부터는 그 모습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밥맛이 돌아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과 고통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 뿐인 줄 아십니까? 부부간에 사이가 좋아 졌습니다. 대인관계가 좋아 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이 잘 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화라도 변하여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안 되는 일이 도저히 해결 될 수가 없는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얻고 도움을 받고 소망이 생기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렘 33: 3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그러니 기도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 축복과 능력의 사람 은혜와 소망의 사람으로 바뀌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면 매일 굿 데이가 되고 새벽에 기도하면 굿 모닝이 되고 점심에 기도하면 굿 에프트눔이 되고 저녁에 기도하면 굿 이브닝이 되고 잠자리에서 기도하면 굿 나잇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기도를 왜 안 합니까?
쓸데없는 데는 온갖 신경을 다 쓰고 진작 여러분을 살리고 복되게 해 줄 하나님에게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다 죽어 가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무슨 심보입니까?
기도하기만 하면 그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천사를 보내시고 성령님이 역사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이름을 들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데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습니다.
18절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믿습니까?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의 기도라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나아 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을 열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은 누구든지 기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구의 기도든지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로로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이라도 아니 한번이라도 기도하지 않는 분이라도 기도 할 수 있고 응답이 있습니다.
비견(鄙見)한 예이지만 공군입대를 한 지 수개월 후 한 어떤 불신의 청년이 자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님에도 자기의 그리스도인 아내의 신실한 고모에게 수천 마일 밖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오늘 밤 처음으로 낙하를 합니다! 비록 많은 동료가 낙하하지만 홀로 해내야 합니다. 제가 2번인데 기도가 필요해요!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자정쯤 낙하합니다. 그 고모는 약속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 오자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수천 마일 남쪽에서는 거대한 폭격기가 들판을 가로질러 이륙해서 새까만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안에도 밖에도 불빛은 없었습니다. 갑자기 빨간 전구가 깜빡여 1번 낙하 병에게 신호했습니다. 겁을 먹은 그는 2번에게 난 할 수 없어!하고 돌아섰습니다. 겁내지 않고 침착하게 2번 병사가 낙하할 것을 동의했습니다. 그가 더듬어 문 쪽에 갔을 때 그는 폭격기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을 통해 그는 뛰어 내렸습니다. 그의 낙하산이 펴졌을 때 비행기가 폭발하여 하늘에 화염을 내뿜었습니다. 수 초 후 그 비행기는 벌판에 추락하여 모든 탑승자들이 죽었습니다. 휴가 중에 그는 위스콘신 교회의 교인들에게 간증하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기도응답을 인해 주님께 크게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연 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하는 그 시간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이 들렸을 때에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3일 만에 죽을 사람을 15년 더 살게 했습니다.
이게 우연입니까?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하였기에 살아 난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 할 때에 아말렉에게 승리 할 수 있었고 기도하지 않았을 때에 패배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기도하였기 때문에 승리를 했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패배를 하였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에서 눈을 들어 귀를 기우려 들어 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닫혔던 하늘 문을 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 질병 경제까지도 악한 영까지도 기도를 함으로서 물러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성도들이 기도의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번 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가장 좋은 선물을 준비하시고 여러분들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심을 믿으시고 무엇이든지 기도하여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