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영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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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2014-06-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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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8:1-6 어린이를 영접하자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가장 보기에 좋은 것은 사람이요 그리고 가장 보기 좋은 구성은 가정입니다.
내가 구성되어 있는 가정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나이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날, 윌 뒤랑(Will Durant)이라는 철학자는 지금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우리 시대의 가정이 점차 무너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은 가정과 국가라고 말하면서 만일 이 두개의 기둥 중에서 국가라는 기둥을 뽑아버린다면 가정으로 그 사회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가정이라는 기둥을 뽑아버린다면 그 사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정이 국가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흑인인권 운동가 M.L King목사님의 일화 중에 그가 흑인들의 권익을 위하여 싸울 때에 미국의 FBI가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사생활을 조사하였는데 부도덕한 점이 하나 포착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터트려서서 루터 킹목사의 인권운동에 치명타를 줄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고 간부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묵인하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만일에 그것을 문제 삼아 계속해서 곤경에 빠뜨렸다면 그 가정 역시 곤경에 빠졌을 것이며 미국이 낳은 위대한 지도자를 사장 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가정은 축복의 터전이었습니다.
시128:1-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가정의 구성원은 부부가 되고 그 열매로 자녀를 선물로 받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어린이를 생각해 봅시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는 아이들이었는데, 대게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신분이나 권한이 상승했다.
유대인 문화에서는 아이들을 멸시하기보다는 사랑해 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사랑에 근거한 지위 외에는 어떠한 지위도 없었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받은 것 외에는 아무런 권세나 특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고정된 관념에서 아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1-3절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돌이켜 라는 표현은 방향 전환, 혹은 잘못한 것에 대한 회개를 암시합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너희가 돌이켜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어린아이들이나 남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과 극빈자 혹은 사회적 약자와 같은 소자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보게 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사람의 숫자를 셀 때 여자와 아이들은 빼놓고 남자의 숫자만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는 여자와 아이들은 그 당시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는 남성들만을 조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만해도 어린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어린 것이 또는 이놈이 심지어 애새끼 등등으로 비하하여 불렀습니다.
머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놈이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어린이들에게 존댓말 쓰자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어리신 이라는 뜻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만든 이유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어린이에 대한 애호정신을 앙양함으로써 이들을 바르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923년 방정환등이 주축이 된 아동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1927년 5월 5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왜 어린이같이 되자고 하십니까?
천국을 소유한자
3절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은 어린아이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의 존재여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신자는 천국의 존재여부보다는 천국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미 이 땅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와 있는 천국이지만 그 모습을 알지 못하면 천국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천국이 어떤 모습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지옥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지옥은 어린아이 같지 아니한 모습, 즉 생존을 위해서 경쟁하고, 높고 낮은 자가 존재하고, 서로 높아지기 위해서 다투고 하는 모습이 곧 이 땅에서의 지옥의 모습이 되는 것이고, 이 땅에서의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그 모임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천국에서 누가 높아지느냐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만큼 천국에서 대우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상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심의 정도에 따라 대우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죄인 된 인간에게는 극히 당연한 생각입니다.
세상 방식은 능력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것입니다.
능력에 따라 차별을 두어야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단이 지배하는 땅의 속성에 불과합니다.
천국은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행함에 대한 결과에 따라서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죄악 된 사고방식이 우리의 본성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어린아이에 비유하신 것은 천국은 계급이 없는 것이 천국이기 때문에 계급의식을 가지고 살고,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천국에 함께 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의 열심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다른 계산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환경을 가지고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위도 없으며 자신보다 못하다고 남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모습이다 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린아이를 내세우신 것입니다.
어린이는 자신을 낮추는 자
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말씀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헨리 나우웬 교수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리웠고 그는 항상 정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우웬이 만든 20여 권의 저서는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나우웬이 많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아 보호시설에 직원으로 취업했습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정신지체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대학자인 당신이 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이런 일을 합니까? 하고 물으면 그는 나는 그 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정상을 향해 달려왔지만 한 장애인을 만난 후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나만 보일 뿐이고 내리막길에서는 다른 이들도 보이고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진실한 고백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내가 달려 온 길은 나만 있지 않습니까?
나만 관계된 것만 있지 않습니까?
절대로 나의 안중에는 남이 없지 않습니까?
남이 없는데 어찌 남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이 보일 리 있겠습니까?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속성이 아니면 결코 천국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결코 천국을 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힘이 드니 천국으로 가기 위하여 열심히 살자가 아닙니다.
이미 이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열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열심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게 되는데 천국은 열심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자기 힘을 의지하는 않는 모습,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모습, 이 모습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천국입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묻는 것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열심과 힘을 가지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모든 가능성을 두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내 힘으로도 세상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예수님도 열심히 믿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살겠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도 내가 열심히 믿겠다고만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부모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즉 성도의 모습은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기 힘을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행위에 대해서 합당한 대우를 받으려고 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반발을 하게 됩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열심으로 생각하면 그 예배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내 힘과 의지로 주일을 지키고 헌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 나를 도우셔서 주님을 찾아 나올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 같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마음이 진심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께 관심을 두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의 모임이 천국이고, 계급이 없고, 차별이 없고, 행위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면서 모여드는 그것이 바로 교회이며 천국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소유한자가 어린 아이를 영접 할 수 있습니다.
5-6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연자 맷돌은 여인들이 돌리는 맷돌이 아니라 소가 끌어서 돌리는 큰 맷돌을 말합니다.
이런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결과는 뻔합니다.
이처럼 어린 아이를 영접하지 않고 실족케 하는 자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가 어린 아이를 영접하고, 어떤 자가 어린 아이를 실족케 합니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린 아이를 영접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상실한 자는 어린 아이를 실족케 합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 는 주님의 말씀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한 자가 어린 아이를 영접할 경우,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자신 안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과 실족케 하는 것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반면에 어린 아이를 실족케 하는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없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주님께 범죄하는 자요,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자는 천국에서 큰 자는 고사하고 들어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자신을 어린 아이와 같이 낮추는 자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며, 실족시키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자며,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서 주님의 제자들로서 큰 자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얼마나 잘 못되어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도 여전히 세상적인 큰 자 개념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상호간에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며, 사단의 까불림을 당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어른처럼 높아진 마음을 회개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겸손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어린 아이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린 아이를 실족시키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하라고 하십니다.
울 도로티 로놀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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