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사랑 아내의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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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21회 작성일 2014-06-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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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5:22-25 남편의 사랑 아내의 복종
오늘은 부부 주일로 교회적으로 정했습니다.
어린이 주일도 있고 어버이 주일도 있는데 정작 가정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부부 주일은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는데 21일로 정한 이유는 둘이 하나가 되라는 뜻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부모도 중요하고 자녀도 중요하지만 좋은 부모 좋은 자녀는 좋은 부부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먼저 만드신 것도 아니요 자녀를 먼저 만드신 것도 아니요 부부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이 부부를 두고 가정이라 합니다.
몇 년 전에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에릭과 라일이라는 십대 형제가 유산을 빨리 받아서 유흥비로 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부모를 권총으로 쏴 죽이고 강도로 위장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400만 불의 유산을 상속받아서 몇 달 만에 수백만 불을 라스베가스에서 탕진을 했습니다. 동생이 심리학자에게 상담을 하다가 범죄가 들어 났는데 그런데 그 아이들이 선임한 변호사는 죽은 아버지를 동성애자로 몰아서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온 자식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모를 우발적으로 살해 한 것이라는 변론을 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들은 배심원들을 설득해서 재판에서 이겼고 또 다시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아버지를 죽여 버릴 수 있는 시대, 그리고 자기의 명예를 위해 언제든지 아버지를 동성애자로 몰아세울 수 있는 이 시대가 어떻게 초래된 것입니까?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집안의 권위자인 아버지를 수시로 무시하고 멸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권위로부터의 보호라든지, 권위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상위 권위자에 대한 예의를 상실하게 되고, 결국은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상위의 권위자 부모도 언제든지 죽여 버릴 수 있는 잔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아름다운 부부의 관계는 상위의 권위가 세워지는데 있습니다.
22-24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아내들은 남편을 그리스도께 하듯 복종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말을 오해해서 많은 이들이 아내를 장악하고 억압하고 그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는 것의 핑계 구절로 삼았었습니다.
지금도 이 말씀을 듣는 남자들 중에는 아내를 억압하고 군림하라는 것으로 좋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남자의 가재도구처럼 물건으로 취급되어졌고 아무런 법적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 의무적으로 드렸던 기도문에 하나님 저를 이방인이나 종이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내용이 제일 처음 기도를 여는 문구였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복종은 굴종의 뜻이 아니라 질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아내들이여, 질서를 위해 남편을 머리의 자리에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창조 질서 상 남자에게 복종하여 뱀이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유혹을 했을 때 남자에게 상의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고 혼자 결정을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당신도 먹으라고 남자의 권위를 타고 넘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를 저주하실 때 남자는 너를 다스리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십니다.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남편은 너를 다스리고 너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질서를 깨 버렸기 때문에 너는 남편을 장악하려고 하고 남편은 너를 계속해서 다스리려고 하는 그 죄의 양상이 계속해서 너희 가정에 있게 될 것이라는 엄청난 저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정들이 그렇게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여자들이 먼저 남자를 잡든지 남자가 여자를 잡든지 해야 한다고 교육시키지 않습니까?
결혼 초에 잡지 않으면 평생 잡혀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내가 잡나 네가 잡나 이런 죄악에서 자유함을 얻는 자입니다.
아내들은 창조의 질서 상 먼저 창조 된 남자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남편들은 그 아내를 잘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려 하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해부학적으로도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고 힘이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생리학 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는 여자를 다스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그렇게 해부학적으로나 생리학 적으로도 창조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를 남자보다 연약한 그릇이라고 칭한 것입니다.
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몸은 정상적인 발육을 할 수도 없고 정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바로 복종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여성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남편이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데 무슨 복종을 하라는 것입니까?
복종할만해야 복종할 것 아닙니까?
머리가 내리는 명령을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뇌성마비라고 합니다.
아내가 머리인 남편의 뜻에 복종하지 않게 되면 그 가정은 뇌성마비 걸린 사람처럼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따르기도 하고 따르지 않기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3절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이 세상에서 남편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아내입니다.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남편이라는 자가 어떤 자인 줄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의 말에 복종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요즘은 여성상위시대라고 하면서 여성의 지위를 부채질하니까 더욱 복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남편 비하의 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집 큰 아들, 머슴,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 고개 숙인 남자, 이사 갈 적에 아내의 애완견을 안고 있어야 따라 갈 수 있는 존재
툭하면 그런 남편하고 헤어져라 그래서 황혼 이혼이 점점 많아집니다.
남편을 자기 멋대로 끌고 다니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은 남편에 복종할 때 그 영혼이 가장 행복해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창조의 질서를 따를 때에 가장 아름다운 선을 이루어져갈 수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한 주체는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만들면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며 살 때 그 영혼이 가장 행복해지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니라
머리니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다고 하십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었다는 것은 남편이 위에 있고 아내는 그 아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머리라는 것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우대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머리라는 정확한 개념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세요, 그 관계가 머리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기 몸을 버리셨습니다. 그게 머리입니다.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내의 머리된 남편들은 아내를 그리스도가 자신을 줌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이란 말의 뜻은 에로스, 필레오, 아가페라는 뜻이 있습니다.
에로스라는 단어는 대체적으로 육체적인 사랑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에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육체적인 사랑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으로 육신 속에 있는 본능도 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의해서 주신 것들입니다.
육체의 사랑도 우리가 잘 못 사용하여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대로 바르게 사용하면 정말로 선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살 때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육체적인 사랑입니다.
남녀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1절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여기 합한다는 말은 육체적인 사랑 즉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에 있어서 이 육체적인 에로스의 사랑은 기본으로 필요한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7:1-5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다만 중요한 것은 자기 아내를 사랑할 때 이 에로스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사랑이 필레오라는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좋아한다는 말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에로스가 육체적인 사랑이라고 한다면 필레오는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간에 형제간에 가까이 지내면서 좋아하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육신적인 사랑도 있어야 하지만 단순히 육신적인 사랑만 가지고는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요사이 헤어지는 이유가 불륜보다 생각이 맞지 않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는 정말로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자기 아내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가 의외로 서로 좋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단점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부들이 서로 좋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단점을 보지 않고 아니 보이지 않아 보이더라도 이해를 하고 용납을 하고 오히려 단점이 사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점을 더 많이 보고 좋아할 수 있는 남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스겔16:6-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아가페의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할 때 쓰는 단어는 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단순히 육체적인 사랑을 하거나 좀 더 나아가서 정신적인 사랑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남편의 아내 사랑은 이 아가페의 사랑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교회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지금까지 남편들이 얼마나 말로만 형식적으로만 사랑을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 교회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그게 머리된 삶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 육신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아내라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부부라는 관계는 상대가 죽어야 끝나는 관계입니다.
실로 인생이란 긴 세월을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생기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위해 자신을 죽는 데까지 내어놓으라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 같이 남편들도 그렇게 하라 하십니다.
왜 남편이 죽어야 합니까?
이 같은 사랑을 통해 아내가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바로 남편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6-28절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아내는 내 살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입니다.
창2:22-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내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인간관계와 관계의 그물 속에서 유독 나와 함께 결혼하여 아내가 된 사람이므로 내게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지체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과 헌신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과의 단순한 인간관계에서 그치지 말고, 궁극적으로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복종과 사랑의 관계는 하나님의 명령에 사랑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복종 할 수 없는 남편 도저히 사랑이 되지 않는 아내로 말미암아 집안을 지옥으로 만드는 도구가 되지 말고 믿음으로 극복하여 축복의 도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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