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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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98회 작성일 2014-06-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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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37: 5-9 여호와를 소망하자
짐 콜린스는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8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석방된 스톡테일 장군의 이야기에서 포로수용소처럼 참담한 곳에서 그토록 긴 세월을 보내고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언젠가는 포로로서의 시간이 끝나리라는 믿음을 결코 잃지 않았고 수용소를 빠져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의 사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했습니다.
본문의 다윗 역시 그가 어떻게 그의 세월을 잘 지내왔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시를 노년기에 섰는데, 인생의 오랜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면 결코 그 삶은 헛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62:1-2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62:5-7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왜 하나님을 소망하느냐? 하면 내 인생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5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맡기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맡기면 이룬다는 말은 붙드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서 붙들다라는 말은 양육 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는 말씀은 기은 열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인생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양육을 하십니다.
유대의 속담에 자녀를 사랑하면 고기를 잡아 주지 않고 잡는 법을 일러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양육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당 할 수 있도록 양육해 주십니다.
범사의 일에 하나님의 양육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가면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음식을 내게 주게 하였다고 합니다.
9절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음식을 주게 하였다는 표현은 양육하다는 뜻입니다.
히4:14-16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사도 바울이 풍랑 끝에 멜리데 섬에 도착했을 때에 그곳 사람들에게 훌륭한 대접을 받게 된 연유가 있는데 추위를 이기려고 장작불을 피웠는데, 나무 무더기에서 나온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그 독사는 아주 맹독성 독을 가진 독사였습니다.
그 독사에 대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독사에게 물린 일로 인해 바울이 죽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 독사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은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양육이십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는 신앙이 아니라 감당하는 믿음이 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맡길 것인가?
기도로 아뢰는 것입니다.
시55:16-17절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다윗은 언제나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그에게 말씀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특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특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종종 성도들의 기도는 참으로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곤경에 빠질 때 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게 되었을 때가 되었을 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입니까?
기도는 일상적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이 제일 좋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내어 놓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주께 맡긴다는 것은 주께서 선한 결말을 내는 것을 믿습니다.
약5:10-11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실 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함은 힘이 듭니다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므로 내 길을 온전히 맡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얼굴의 안색이 없어집니다.
한나라는 여인은 자신의 문제로 얼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주께 기도하고 맡길 때에 얼굴색이 바뀌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다가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주께 소망을 두면 평안하게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엄 부드는 아름답고, 쾌활하며, 교양 있는 여인으로서 기독교 사업에 매진하여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죽을 질병에 걸려 죽음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니 친구가 찾아와서는 병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미러엄은 평안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주의 뜻을 받아 드리는 것은 더욱 더 위대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살아도 하나님의 품안에 있고 죽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은 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욥1:20-22절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나의 인생길에서 가든지, 멈추든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만사가 주께 있음을 알 때에 그것만큼 평안하고 잘 운행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시끄러운 것이 정치요 그리고 내 자신에 관한 일들입니다.
이게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제일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맡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하지 못합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창세이후로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개인의 생사하복이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까?
어떤 나라가 흥왕했고 어떤 나라가 멸망했습니까?
어떤 사람이 행복했고 어떤 사람이 불행해 했습니까?
하나님께 그 나라와 그 자신을 맡겼는지 맡기지 못했는지에 있지 않습니까?
맡기지 못해 불평하고 맡김으로 평안해 집니다.
맡김으로 질서가 서고 맡기지 못함으로 힘들어 집니다.
7-8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이 말씀은 사색과 명상이 아니라 경험과 투쟁을 통해 연단을 거쳐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극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불평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격심한 시련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너무하신다는 생각하거나 말하기 쉽습니다.
이같은 유혹에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멋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왕좌를 노리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피신을 가는 길에 시므이가 저주의 말을 하며 욕을 할 때에 곁에 있던 장군이 이 늙은이의 목을 쳐라 는 명을 내리소서 라고 할 때에 이 유혹의 길 이 원통한 일에서 그는 휘말리지 않고 참으로 복 받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삼하16:7-12절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사람이 극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받은 유혹은 포기해 버리거나 절망 가운데 좌절해 버리고 싶은 그것입니다.
또 아주 일반적인 유혹은 현재의 시련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인생을 포기해 버린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위치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떠난 자들이 있습니다.
가정을 포기하고 가족을 포기하고 직장을 버리고 학교를 떠나고 삶의 터전을 떠나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합니다.
부모의 위치 자녀의 자리 아내와 남편의 자리 국민이기를 아니 사람이기를 포기해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더욱 더 무서운 것은 믿음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는 어리석음에 빠져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의 인생을 보십시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 삶의 혼란과 정신적 혼란 속으로 빠져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은 이런 유혹에서 자신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시16:7-11절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자는 그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9절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신약에서 온유라는 성품은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러므로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는 온유한자입니다.
삶이 풍성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를 기다리는 성품은 온유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온유에 대한 시를 쓴 것에 대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온유함은 세상에서 거의 유약함이나 비겁함의 동의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유한자를 경멸합니다.
그래서 온유한자는 세상에서는 주변인간으로 소외되어 무시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온유한자는 속절없이 세상의 강한 자들의 유희를 지켜보는 구경꾼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온유한자는 손해보고 빼앗기는 패배자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온유한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고 약속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그의 조카 롯의 종들 사이에 소돔 고모라의 땅을 에워싸고 갈등이 생겼을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양도합니다.
그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기득권을 포기합니다. 그에게 온유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롯이 선택한 소돔 고모라는 결국 불바다가 됩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온유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살았고, 다윗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게 구박당하고 사지에 던지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에게 주어진 미션에 성실합니다.
다윗도 사울 왕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 다닙니다.
그러나 그는 신하된 본분에 성실하며 왕을 용서합니다.
마침내 요셉은 총리가 되고 다윗은 왕이 되어 형제들을 섬기게 됩니다. 온유가 승리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는 친히 스스로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재판을 받으시며 십자가로 가시는 도상에서 지속적으로 고난을 받으시며 일방적인 형벌을 감수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으로 이 모든 상황을 수용하셨고 저항을 포기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허다한 인류가 그 앞에 머리 숙여 그를 왕과 하나님으로 경배합니다. 온유가 승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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