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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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2014-06-16 08:59본문
욥기23:8-14 작정하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6월의 보석은 진주입니다. 진주는 사연이 있는 보석입니다.
서구 사람의 풍습에 시집가는 딸에게 엄마가 진주를 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시집갈 때 엄마가 주는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릅니다. 왜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불리는가 하면 조개 속에 모래알 이 하나 들어가게 되면 이 모래알로 인한 상처를 견디기 위해서 나카라는 분비물을 내어 이 모래알을 코팅시켜 버립니다. 이 나카를 뿜어내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 진주는 많은 고통과 아픔을 참아내야 한답니다.
그러나 조개 속에 들어온 이물질인 모래알이 들어간다고 다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래알이 들어오면 진주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나는 고통스럽지만 나카를 계속 뿜어내어 모래알과 싸우고 대치하여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냥 모래알이 주는 아픔을 외면하거나 도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조개는 결국 이 모래가 주는 계속적인 상처로 인해 조개는 썩어 갑니다. 나카를 분비하여 진주를 만들어가는 조개도 고통이 있고 그 모래알이 주는 고통을 모른 척, 혹은 회피하며 대충 사는 조개에게도 아픔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본문에 욥이라는 인물은 역시 그에게는 주어진 힘든 삶에서 실패자로 낙인이 찍히지 않고 오히려 정금같이 태어났다고 하였습니다.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욥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욥은 자신의 인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치 큰 죄가 있는 자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이며 입술로도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바르게 살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주어진 삶의 짐을 벗어 버릴 수가 있지 않았습니다.
과연 인생이 이렇게까지 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지금까지 모은 재산이 알 수 없는 재난을 당해 하루아침에 소실되고 몇 년을 걸쳐 낳은 그가 사랑하는 자식들이 벼락과 강도를 만나 죽게 되고 그 자신마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 몹쓸 피부병에 걸려 뼈를 깎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며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평생 함께 하고 위로와 의지가 될 줄 알았던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은 위로의 말을 한다고 하였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근심케 하기만 하였습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사람들도 비웃고 손가락질 합니다.
이러한 비참함 가운데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너무나도 귀하고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을 점점 깨달아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알았다는 것입니까?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나를 잘 아십니다
욥의 신앙은 하나님이 아신다는 고백 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무엇을 또 안다는 것입니까?
내 삶을 통하여 나를 단련하셔서 순금같이 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심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마음을, 환경을, 나의 삶을 알고 계십니다.
시편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욥은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뜻에 능한 자로 세우실 것을 알고 계십니다.
쇠철판을 두들겨서 칼을 만드면 만원이 되고 정교하게 하여 바늘을 만들면 28만원이 되고 더 섬게하며 만들면 수천 수억을 호가 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 왜 이렇게 담금질을 하십니까?
야고보서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연단하고 담금질하여 정결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사용하길 원하심이 나의 삶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믿음의 귀감이 되고 있음은 그의 생애를 통하여 생활고도 겪었으며 자식을 얻을 이유 때문에 얻은 그 자녀로 인하여 기쁨은 잠시 가정이 깨어지는 연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종들 가운데 어느 한사람도 삶의 연단 없이 그냥 안일과 평탄 가운데 이루어짐이 없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세상으로 나올 때에 세상의 짐을 가지고 삶을 시작합니다.
남자는 경제의 짐을 지고 여자는 해산의 수고와 남자에게 종속이 됨을 그리고 세상은 가시와 엉겅퀴로 인간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뿌리가 된 다윗은 간통과 살인을 저지르는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것으로 많은 아픔과 부끄러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다윗의 가문이 망하는 가문이 된 것이 아니라 연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가 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정죄를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속에 있는 인간의 정욕과 세상적인 방법, 자기중심적인 통치원리를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성령의 사람 , 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로서 세우기 위해서 그 속에 있는 더러운 찌꺼기를 걸러내는 작업을 하십니다.
시편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되고 매달리게 됨으로 세상중심, 탐욕중심의 인간이 하나님 중심, 진리 중심의 정결한 인간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시편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을 통해서 정결케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들어서 죄를 짓는 근거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성공한 사람이 있는 가하면, 가난했기 때문에 비굴하게 속이고 사기나 치며 일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은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가난이라는 환경에 대해 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축복도 되고 저주도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내 나아가는 길에 두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사망과 화를 자초하지 말고 생명과 복을 취하여야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과 복을 취하도록 연단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역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히12:5-11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포기할 수 없는 아비의 마음, 이것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고난 당 할 때에 정결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물질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건강의 문제 때문에 오랜 동안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건강했을 때 주신 건강으로 의의 병기로 나를 드리지 못하고 불의의 병기로 이 몸을 사 용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자녀 문제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계십니까?
지난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서 자녀답지 못하게 하나님 마음을 힘들게 했고 고통을 드리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십시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고통의 사건들은 내가 살아온 삶들의 모습들과 다 직면하게 됩니다.
고난은 죄악을 들추어냅니다.
고통을 감소시키거나 피해볼 요량을 모색하기보다는 고난을 주심은 나를 순금같이 귀하게 하시려고 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11-12절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하나님은 그 뜻하신 바를 이루십니다
13-14절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
똑같은 심령으로 나를 찾아오셔서 그의 뜻은 언제나 사랑이십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Gentle love와 Tough love라고 표현합니다.
Gentle love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내가 원하는 데로 다 배려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Tough love는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거칠게 몰아세우시는 경우입니다. 엄히 대하십니다. 사랑의 다른 표현 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일정한 뜻을 가지고 Gentle love로 혹은 Tough love로 내게 찾아오십니다.
고난당할 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기며 살게 하십니다.
아직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고난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감사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복이 되시는 줄 아십니까?
그러면 고난 끝 행복시작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주의 뜻에 내 자신을 드려보십시오 그러면 행복합니다
환경으로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환경에 구애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을 경험할 때는 감사와 찬양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조금 후에 물 없는 길을 사흘씩 걷게 되고 양식이 떨어지게 되고 물이 없을 때는 금방 불평과 원망의 사람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느낌이나 환경에 의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변함없이 사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감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따라 살게 되면 늘 요동 합니다.
지금의 느낌이 아닌 그 분과 맺은 언약, 성령의 감동하심에 사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나를 작정 하셨습니다.
이 작정을 어떻게 생각 되십니까?
속상합니까?
아니면 감사합니까?
다윗은 믿음으로 살자 할 때에 가장 기뻐했다고 하였습니다.
시122: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믿음으로 살자 할 때가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하나님이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말합니다.
내같은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불변합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를 비롯한 온 우주와 역사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여지고,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모든 일을 다 포괄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천사와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세밀한 일까지도 계획하고 이루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취소시키거나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작정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또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미리 세워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을 믿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자신은 우연히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주권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참되고 유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욥의 고난을 말하지만 그 고난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다면 고난도 의미가 없고 고난 그 자체로 지겨운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요 고난이 없는 삶을 살아도 결국은 그 삶도 죽고 보니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고백 하십시다.
욥과 같이 내 발이 그의 정한 걸음을 바로 따라야지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였다. 내가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6월의 보석은 진주입니다. 진주는 사연이 있는 보석입니다.
서구 사람의 풍습에 시집가는 딸에게 엄마가 진주를 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시집갈 때 엄마가 주는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릅니다. 왜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불리는가 하면 조개 속에 모래알 이 하나 들어가게 되면 이 모래알로 인한 상처를 견디기 위해서 나카라는 분비물을 내어 이 모래알을 코팅시켜 버립니다. 이 나카를 뿜어내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 진주는 많은 고통과 아픔을 참아내야 한답니다.
그러나 조개 속에 들어온 이물질인 모래알이 들어간다고 다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래알이 들어오면 진주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나는 고통스럽지만 나카를 계속 뿜어내어 모래알과 싸우고 대치하여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냥 모래알이 주는 아픔을 외면하거나 도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조개는 결국 이 모래가 주는 계속적인 상처로 인해 조개는 썩어 갑니다. 나카를 분비하여 진주를 만들어가는 조개도 고통이 있고 그 모래알이 주는 고통을 모른 척, 혹은 회피하며 대충 사는 조개에게도 아픔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본문에 욥이라는 인물은 역시 그에게는 주어진 힘든 삶에서 실패자로 낙인이 찍히지 않고 오히려 정금같이 태어났다고 하였습니다.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욥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욥은 자신의 인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치 큰 죄가 있는 자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이며 입술로도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바르게 살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주어진 삶의 짐을 벗어 버릴 수가 있지 않았습니다.
과연 인생이 이렇게까지 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지금까지 모은 재산이 알 수 없는 재난을 당해 하루아침에 소실되고 몇 년을 걸쳐 낳은 그가 사랑하는 자식들이 벼락과 강도를 만나 죽게 되고 그 자신마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 몹쓸 피부병에 걸려 뼈를 깎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며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평생 함께 하고 위로와 의지가 될 줄 알았던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은 위로의 말을 한다고 하였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근심케 하기만 하였습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사람들도 비웃고 손가락질 합니다.
이러한 비참함 가운데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너무나도 귀하고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을 점점 깨달아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알았다는 것입니까?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나를 잘 아십니다
욥의 신앙은 하나님이 아신다는 고백 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무엇을 또 안다는 것입니까?
내 삶을 통하여 나를 단련하셔서 순금같이 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심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마음을, 환경을, 나의 삶을 알고 계십니다.
시편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욥은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뜻에 능한 자로 세우실 것을 알고 계십니다.
쇠철판을 두들겨서 칼을 만드면 만원이 되고 정교하게 하여 바늘을 만들면 28만원이 되고 더 섬게하며 만들면 수천 수억을 호가 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 왜 이렇게 담금질을 하십니까?
야고보서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연단하고 담금질하여 정결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사용하길 원하심이 나의 삶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믿음의 귀감이 되고 있음은 그의 생애를 통하여 생활고도 겪었으며 자식을 얻을 이유 때문에 얻은 그 자녀로 인하여 기쁨은 잠시 가정이 깨어지는 연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종들 가운데 어느 한사람도 삶의 연단 없이 그냥 안일과 평탄 가운데 이루어짐이 없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세상으로 나올 때에 세상의 짐을 가지고 삶을 시작합니다.
남자는 경제의 짐을 지고 여자는 해산의 수고와 남자에게 종속이 됨을 그리고 세상은 가시와 엉겅퀴로 인간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뿌리가 된 다윗은 간통과 살인을 저지르는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것으로 많은 아픔과 부끄러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다윗의 가문이 망하는 가문이 된 것이 아니라 연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가 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정죄를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속에 있는 인간의 정욕과 세상적인 방법, 자기중심적인 통치원리를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성령의 사람 , 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로서 세우기 위해서 그 속에 있는 더러운 찌꺼기를 걸러내는 작업을 하십니다.
시편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되고 매달리게 됨으로 세상중심, 탐욕중심의 인간이 하나님 중심, 진리 중심의 정결한 인간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시편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을 통해서 정결케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들어서 죄를 짓는 근거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성공한 사람이 있는 가하면, 가난했기 때문에 비굴하게 속이고 사기나 치며 일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은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가난이라는 환경에 대해 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축복도 되고 저주도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내 나아가는 길에 두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사망과 화를 자초하지 말고 생명과 복을 취하여야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과 복을 취하도록 연단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역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히12:5-11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포기할 수 없는 아비의 마음, 이것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고난 당 할 때에 정결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물질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건강의 문제 때문에 오랜 동안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건강했을 때 주신 건강으로 의의 병기로 나를 드리지 못하고 불의의 병기로 이 몸을 사 용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자녀 문제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계십니까?
지난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서 자녀답지 못하게 하나님 마음을 힘들게 했고 고통을 드리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십시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고통의 사건들은 내가 살아온 삶들의 모습들과 다 직면하게 됩니다.
고난은 죄악을 들추어냅니다.
고통을 감소시키거나 피해볼 요량을 모색하기보다는 고난을 주심은 나를 순금같이 귀하게 하시려고 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11-12절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하나님은 그 뜻하신 바를 이루십니다
13-14절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
똑같은 심령으로 나를 찾아오셔서 그의 뜻은 언제나 사랑이십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Gentle love와 Tough love라고 표현합니다.
Gentle love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내가 원하는 데로 다 배려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Tough love는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거칠게 몰아세우시는 경우입니다. 엄히 대하십니다. 사랑의 다른 표현 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일정한 뜻을 가지고 Gentle love로 혹은 Tough love로 내게 찾아오십니다.
고난당할 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기며 살게 하십니다.
아직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고난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감사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복이 되시는 줄 아십니까?
그러면 고난 끝 행복시작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주의 뜻에 내 자신을 드려보십시오 그러면 행복합니다
환경으로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환경에 구애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을 경험할 때는 감사와 찬양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조금 후에 물 없는 길을 사흘씩 걷게 되고 양식이 떨어지게 되고 물이 없을 때는 금방 불평과 원망의 사람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느낌이나 환경에 의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변함없이 사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감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따라 살게 되면 늘 요동 합니다.
지금의 느낌이 아닌 그 분과 맺은 언약, 성령의 감동하심에 사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나를 작정 하셨습니다.
이 작정을 어떻게 생각 되십니까?
속상합니까?
아니면 감사합니까?
다윗은 믿음으로 살자 할 때에 가장 기뻐했다고 하였습니다.
시122: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믿음으로 살자 할 때가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하나님이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말합니다.
내같은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불변합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를 비롯한 온 우주와 역사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여지고,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모든 일을 다 포괄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천사와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세밀한 일까지도 계획하고 이루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취소시키거나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작정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또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미리 세워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을 믿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자신은 우연히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주권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참되고 유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욥의 고난을 말하지만 그 고난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다면 고난도 의미가 없고 고난 그 자체로 지겨운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요 고난이 없는 삶을 살아도 결국은 그 삶도 죽고 보니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고백 하십시다.
욥과 같이 내 발이 그의 정한 걸음을 바로 따라야지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였다. 내가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