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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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77회 작성일 2014-08-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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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4:6-9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지금 대한민국은 물상식한 선주와 그 배후의 인물들 그리고 운행 중 술 마시고 책임을 전가하는 선장등 선원들로 인하여 침몰된 여객선에 죽어간 아까운 생명들로 인한 그 문제 해결에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나도 힘들어 하고 정치권 국민들 역시 지쳐져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그리고 장본인을 끝까지 밝혀 처리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한 유가족의 단식도 부족하여 전 국민이 위하여 단식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경찰 검찰도 정부도 심지어 대통령까지 무시해 버리고 수사권 기소권까지 다 달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억울하다 후회가 된다 당신들 때문이다 개죽음이다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처벌을 해야 한다 이것만이 남아 버렸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 대한민국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지 국민이 무엇을 위하는 자인지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반군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하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20일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와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IS는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미국인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를 참수하는 4분짜리 영상을 SNS 계정을 통해 게재했다.
이 동영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군의 이라크 반군 공습을 승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미국기자 폴리가 진짜 살인자는 미국 지도자들 이라고 외치며 살해되는 충격적인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참고로 이슬람 수니파 반군은 많은 기독인들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살해를 하고 많은 기독인들이 산으로 쫓겨 먹을 물마저 없어 죽어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살해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서 공급을 시작하여 그 위기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수 당한 기자 폴리의 어머니인 다이앤 폴리는 아들이 처형된 영상이 공개된 뒤 페이스 북을 통해 아들이 자랑스럽다는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렸습니다.
어머니 다이앤 폴리는 아들은 이 시간까지 시리아 국민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투쟁해왔다며 아들 폴리가 더 없이 자랑스럽다고 전했으며 이어 아들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선사한 즐거움에 감사한다. 내 아들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자 형제였고 기자이자 인간이었다고 말을 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어머니를 보고 대단하고도 멋진 미국 국민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부모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참상 앞에 개죽음이라는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는 의지보다도 지금까지 행하여 온 그 아들의 충실한 기자로서의 삶이 더욱 돋보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저 역시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주어진 목적을 다이루었고 그리고 그 죽음은 말 그대로 자랑스럽고 그 아들은 고통스러운 아들로 남은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남겼고 그리고 감사의 마음까지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아니 만약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찾아오는 인생이라는 종착역에서 나를 어떤 인물로 만들어 놓았습니까?
다른 이들이 나를 볼 때에 불쌍한 자로 남기겠습니까?
스스로 살아온 인생을 가치 없고 불쌍하고 허무하고 원통하고 억울한 삶을 만들어야 합니까?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이들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와 봤지 않습니까?
그게 나를 그렇게 만족하게 해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에도 앞으로도 역시 나를 위하여 살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분명히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인생의 진정한 복된 사람은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왜 주를 위한 삶이어야 합니까?
주께 받은 은혜에 감사함의 표현입니다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먹어도 먹지 않아도 주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니 감사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불란서의 나폴레옹은 전 구라파를 점령하고, 점령지마다 부대를 주둔시키며 곳곳에 보초병을 세웠습니다. 하루는 나폴레옹이 한밤중에 보초병들의 경계태세를 살펴보려고 나갔습니다.
어느 보초막에 갔더니 한 사병이 너무나 피곤해서 자신의 총을 옆에 세워 놓은 채, 쭈그리고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얼마나 피곤한가? 잠깐 쉬지. 내가 대신 보초를 서 줄게라고 위로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그 사병은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일생 동안 나폴레옹을 위해서 충성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다투고 있느냐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만 이야기하다보니 그런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상대방을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다가 서로 판단을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먹는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산하 곳곳에 산재했던 우상 신전에서는 매일같이 많은 양의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그처럼 우상 앞에 일단 제사 드려진 고기는 그 일부만 제사장이 취하고 나머지는 시장으로 유통되어 나와 소비자에게 팔려 나갔습니다.
그러니 어떤 기독신자가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 이것이 우상제물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일부 초신자, 즉 아직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에 붙잡혀 있는 자들은 무조건 고기를 사먹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행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오늘날 일반적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오히려 더 잘 철저하게 믿으려 하는 신자들로 분류하려 하겠지만, 성경은 그런 자들을 오히려 믿음이 연약한 자라고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란 말은, 음식에 대하여 자유할 만큼 신앙이 성숙한 자를 가리킵니다.
즉 사람이 율법 지킴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음을 확신하며, 또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등을 잘 알고 있는 신자들인 것입니다.
먹지 않는 자는 먹는다고 시험이 들고 먹는 자는 믿음이 없어서 못 먹는다고 판단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용납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신자는 그처럼 서로를 향하여 우월감이나 비판의식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비판하고 싶어 죽겠지요
미안하지만 그 미워죽겠는 그 사람도 역시 하나님이 피 흘려 값주고 사셨습니다.
우리 모두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영접해 주신 상태라는 말입니다.
결코 내 믿음이 아무개 보다 낫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나 상대방이나 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받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아 주셨는데 비판하기보다는 사랑으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를 위해 사는 목적은 같아도 그 방식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고전12:12-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 신앙양심의 자유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바로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의 생활입니다.
신앙양심의 자유란 것이 순전히 자기를 위하여, 자기 욕심, 자기 편리를 위하여 무분별하게 오용되기 시작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자기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하는 존재인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왜 주를 위한 삶이어야 합니까? 이 삶이 인생의 의미요 목적입니다
당신 삶의 궁극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금방 대답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삶의 궁극적 이유는 몰라도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니 그런 것을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궁극적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생존을 위해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인생들의 삶을 단순화하여 형용하자면 일하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일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것을 아는 미용사는 손님으로서 이것저것 대화를 붙입니다.
자신이 결혼 전에는 여러 가지 꿈도 많았고 할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게 다 살아 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그냥 이런 것 때문에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옳거니 몸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여기에서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결코 다른 그 무엇을 위하여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본능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딱 맞는 말 자신을 바로 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인생 허무를 말할 것입니다.
짐승은 본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그 인격으로 살아갑니다.
그 인격은 하나님을 위하는 삶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명시한 말씀입니다.
나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살아가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훨씬 더 힘듭니다.
삶의 목적을 가지고 분명한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하나님의 목적이 나를 통하여 성취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가야지 짐이 가벼워지고 내 삶에 쉼이 있습니다.
고후5:13-15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 그 삶의 목적이 서 있기 때문에 그 앞에는 어떤 것도 장애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고후11:23-28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왜 주를 위한 삶이어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주인이요 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눅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하셨습니다.
롬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영생 할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소유 개념이 다릅니다.
주의 소유임을 인정하며 삽니다
대상29:11-12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세상만사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기한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시간도 주의 것입니다.
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내 것이 라는 나를 위하여 라는 것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당신 삶의 궁극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하여 나는 서슴없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복되고 영광스럽고 상금이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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