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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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89회 작성일 2014-10-05 20:33본문
예레미야33:1-3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미국의 존 맥스웰 목사는, 인생의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삶의 바른 목적이 있고, 거기에 비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성공을 말하는 이는 계속 해서 그 목적에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현실에 급급하여 내일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당장 필요한 것에만, 심취되어 살아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왕 시드기야때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필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라고 외치며 왕과 대신들을 회개하도록 꾸짖으며 동분서주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의 파멸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급박한 때에 유다왕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시위대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의 답답함은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그는 몸부림을 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가 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격려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3절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에게 그러한 유다에 대한 회복을 약속하셨다면, 그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의 생전에 유다의 회복을 바라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약속하신 것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합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기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궁중 감옥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삶은 마치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듯이 사방으로 막혀있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 저런 문제에 얽혀서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고, 옆으로 가도 막히는 문제에 여러분의 삶이 봉착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마치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나왔으나 사막과 바다와 절벽에 갇힌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 모두가 살아왔던 삶이요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존 로이드 교수는 사람에게는 여섯 가지의 감옥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장점만을 보는 감옥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타인의 단점만을 보는 감옥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오늘과 내일을 암담하게 근심하는 감옥에서 갇혀 살고 있다.
옛것은 모두 좋아 보이고 오늘 것은 모두 보잘것없이 생각되는 향수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타인의 소유는 귀하게 보이고 내가 가진 것은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선망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증오하는 증오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의 감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로이드 교수는 말하기를 이런 인생의 감옥에 자물쇠는 자만심이고 그 자물쇠를 열고 나올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앞에 그의 뜻을 구하는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내 스스로 갇힌 그 감옥에서 나오는 길은 역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로서 인간적인 감옥에 갇힌 자가 하나님의 뜻으로 그 문을 열어 자유를 주십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내 인생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자기 마음대로 길을 계획해서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해도 결국에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허락받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55:8-11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내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많은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260 여번이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뜻이 뭡니까?
설교자 부룩스는 말하기를 그림에 붙은 불은 불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간절하지 않은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까지 아니 그 뜻을 내 것으로 만들기 까지
내가 그 뜻을 순종 할 수 있을 때까지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는 간절했습니다.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결국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눅22:42-44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간절함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럼 내 인생의 꿈과 비전이 무엇입니까?
여태까지 우리는 속고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나를 위하여 라고만 살아 왔습니다.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게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비전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도무지 따라오지도, 흉내 내지도 못하는, 엄청난 비전인 것입니다.
이 비전을 믿음으로 같이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뜻으로 응답하십니다.
나의 수많은 기도가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기도를 살펴보면 10번이나 모두가 자신들을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기 전에는 따라오는 애급 병사로 인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원망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홍해를 건넜을 때는 좋아라고 감사하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또 마실 물이 쓰다고 하여 물 때문에 죽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역시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단 물로 바꿔주셨습니다.
애굽을 나온 지 한 달 반발에 가져온 양식이 떨어질 때에 그들의 기도 제목은 양식을 달라는 것입니다.
애굽에 잇을 때에 고기도 먹고 맛있는 것 먹었는데 하며 기도 제목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맛나를 내려 그들의 양식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기까지 40년간 먹도록 해결해 주셨습니다.
순전히 모두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가 전부였습니다.
도대체 그들의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기도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한 것만이 기도의 제목이 되어 서는 안 되고 이것은 하나님이 떼를 따라서 허락하십니다.
40년간 광야를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옷이 해어지거나 낡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병이 들어서 그 길을 가지 못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이 그 길을 가지 못해느냐입니다.
너무 나도 자신들만을 위한 기도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시대아닙니다.
내가 드리는 바른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60만 명의 이스라엘이 출에급을 하였지만 이들 중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 자는 단 2명뿐입니다.
민14:6-9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결국은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였던 가나안 땅은 바른 기도를 드린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응답하십니다
역사하십니다.
40세 이상의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당시에 정탐 할 때에 태어나지 않았던 그 후의 사람들이 즉 40세 미만의 사람들이 가난 안에 들어가는데 이들 역시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적인 자신을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헤브론 산지를 점령해야 하는데
아무도 겁을 먹고 나서지를 않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갈렙이 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갑니다.
수14:7-15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자체는 근본으로 말하면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 am that I am인데 이 말을 한마다로 번역하면 나다 라는 말입니다.
내가 나지 누구냐 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창조자시오 섭리자시오 전지전능자시오 무소부제자시오 절대 주권자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누가 내가 누구라고 물으면 내가 나라고 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번 하신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을 하실 때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본문의 예레미야는 멸망에 처해 있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동분서주 했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왕을 회개시키고 백성들을 회개시켜야겠다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며 백성들을 깨우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답답해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은 내가 한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은 내가 한다. 나는 일하는 하나님이다. 이루는 것도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다.
비록 옥에 있지만 일은 내가 할 터이니 너는 기도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길을 가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한결같이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긍휼이 여기소서
그리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서 비로소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바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고, 메시야를 통해서 인류가 구원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약(新約)과 구약(舊約)이 무엇입니까?
약속(約束)입니다. 이 안에는 3만 2천 5백 가지의 약속들로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이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그 약속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미국의 존 맥스웰 목사는, 인생의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삶의 바른 목적이 있고, 거기에 비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성공을 말하는 이는 계속 해서 그 목적에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현실에 급급하여 내일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당장 필요한 것에만, 심취되어 살아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왕 시드기야때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필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라고 외치며 왕과 대신들을 회개하도록 꾸짖으며 동분서주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의 파멸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급박한 때에 유다왕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시위대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의 답답함은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그는 몸부림을 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가 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격려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3절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에게 그러한 유다에 대한 회복을 약속하셨다면, 그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의 생전에 유다의 회복을 바라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약속하신 것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합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기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궁중 감옥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삶은 마치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듯이 사방으로 막혀있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 저런 문제에 얽혀서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고, 옆으로 가도 막히는 문제에 여러분의 삶이 봉착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마치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나왔으나 사막과 바다와 절벽에 갇힌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 모두가 살아왔던 삶이요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존 로이드 교수는 사람에게는 여섯 가지의 감옥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장점만을 보는 감옥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타인의 단점만을 보는 감옥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오늘과 내일을 암담하게 근심하는 감옥에서 갇혀 살고 있다.
옛것은 모두 좋아 보이고 오늘 것은 모두 보잘것없이 생각되는 향수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타인의 소유는 귀하게 보이고 내가 가진 것은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선망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증오하는 증오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의 감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로이드 교수는 말하기를 이런 인생의 감옥에 자물쇠는 자만심이고 그 자물쇠를 열고 나올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앞에 그의 뜻을 구하는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내 스스로 갇힌 그 감옥에서 나오는 길은 역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로서 인간적인 감옥에 갇힌 자가 하나님의 뜻으로 그 문을 열어 자유를 주십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내 인생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자기 마음대로 길을 계획해서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해도 결국에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허락받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55:8-11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내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많은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260 여번이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뜻이 뭡니까?
설교자 부룩스는 말하기를 그림에 붙은 불은 불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간절하지 않은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까지 아니 그 뜻을 내 것으로 만들기 까지
내가 그 뜻을 순종 할 수 있을 때까지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는 간절했습니다.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결국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눅22:42-44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간절함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럼 내 인생의 꿈과 비전이 무엇입니까?
여태까지 우리는 속고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나를 위하여 라고만 살아 왔습니다.
이제는 아셔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게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비전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도무지 따라오지도, 흉내 내지도 못하는, 엄청난 비전인 것입니다.
이 비전을 믿음으로 같이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뜻으로 응답하십니다.
나의 수많은 기도가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기도를 살펴보면 10번이나 모두가 자신들을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기 전에는 따라오는 애급 병사로 인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원망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홍해를 건넜을 때는 좋아라고 감사하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또 마실 물이 쓰다고 하여 물 때문에 죽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역시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단 물로 바꿔주셨습니다.
애굽을 나온 지 한 달 반발에 가져온 양식이 떨어질 때에 그들의 기도 제목은 양식을 달라는 것입니다.
애굽에 잇을 때에 고기도 먹고 맛있는 것 먹었는데 하며 기도 제목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맛나를 내려 그들의 양식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기까지 40년간 먹도록 해결해 주셨습니다.
순전히 모두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가 전부였습니다.
도대체 그들의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기도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한 것만이 기도의 제목이 되어 서는 안 되고 이것은 하나님이 떼를 따라서 허락하십니다.
40년간 광야를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옷이 해어지거나 낡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병이 들어서 그 길을 가지 못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이 그 길을 가지 못해느냐입니다.
너무 나도 자신들만을 위한 기도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시대아닙니다.
내가 드리는 바른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60만 명의 이스라엘이 출에급을 하였지만 이들 중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 자는 단 2명뿐입니다.
민14:6-9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결국은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였던 가나안 땅은 바른 기도를 드린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응답하십니다
역사하십니다.
40세 이상의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당시에 정탐 할 때에 태어나지 않았던 그 후의 사람들이 즉 40세 미만의 사람들이 가난 안에 들어가는데 이들 역시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적인 자신을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헤브론 산지를 점령해야 하는데
아무도 겁을 먹고 나서지를 않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갈렙이 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갑니다.
수14:7-15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자체는 근본으로 말하면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 am that I am인데 이 말을 한마다로 번역하면 나다 라는 말입니다.
내가 나지 누구냐 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창조자시오 섭리자시오 전지전능자시오 무소부제자시오 절대 주권자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누가 내가 누구라고 물으면 내가 나라고 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번 하신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을 하실 때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본문의 예레미야는 멸망에 처해 있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동분서주 했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왕을 회개시키고 백성들을 회개시켜야겠다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며 백성들을 깨우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답답해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은 내가 한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은 내가 한다. 나는 일하는 하나님이다. 이루는 것도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다.
비록 옥에 있지만 일은 내가 할 터이니 너는 기도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길을 가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한결같이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긍휼이 여기소서
그리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서 비로소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바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고, 메시야를 통해서 인류가 구원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약(新約)과 구약(舊約)이 무엇입니까?
약속(約束)입니다. 이 안에는 3만 2천 5백 가지의 약속들로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이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그 약속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