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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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66회 작성일 2014-10-12 16:31본문
에베소서4:20-24 새 사람을 입자
옛날부터 옷은 그의 신분을 드러냈습니다.
황제나 황후가 입는 옷이 다르고, 태자와 태자비가 입는 옷이 다르고, 사대부 집안이 입는 옷이 다르고, 양반이 입는 옷, 평민이 입는 옷, 상민이나 천민들이 입는 옷이 달랐습니다.
이것은 고대로 올라가면 갈수록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옷으로 사람의 신분을 구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람의 신분을 말하면서 옛 사람으로의 옷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의 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느냐 아니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나치에 저항하다가 죽임당한 본회퍼라는 독일 신학자는 그리스도인은 종교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오셔서 진정한 인간이 무엇인지 보여주셨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아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분처럼 진정한 인간으로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며 축복임을 강조했습니다.
금욕적으로 세상을 도피하여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세상과 단절하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20-21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며 그 이름으로 구원함을 받으며 그를 믿고 회개하여 영생을 얻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밀레도에서 에베소장로들을 만나 고별설교를 할 때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행20:17-21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얼마 후에 거짓교사가 와서 제자들을 미혹케하고 진리에서 어그러지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에베소 성도들 중에 거짓교사에게 미혹을 당해 진리에서 벗어나 방탕 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방탕으로 이끌었던 이단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초대교회때 새로운 신앙의 형태가 나타났는데 영지주의 사상이다.
영지주의는 영혼은 구원받고 육신은 결국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육신은 무슨 죄를 짓든 선을 행하든 구원 받는데 는 상관이 없다는 이론이다.
그러니 영혼은 구원받고 육신은 세상의 쾌락을 즐길 수 있으니 영지주의는 당시 믿음이 온전치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은 구원 받고 육신은 육신의 소욕대로 살고
아주 내 입 맛에 딱 맞은 훌륭한 교리가 있으니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메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이 같은 헬라 문화인 영지 주의 사상을 조심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배웠습니까?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함은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도록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배우다라는 헬라어에서 제자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예수를 배우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웠다면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마음으로 믿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배우며 닮아가는 제자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삶이 다르지 않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나의 영혼은 구원받았으니 육체가 죄를 짓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거짓 교리에 빠져 육체적으로 방탕한 삶을 사는 성도들을 보고 바울은 분개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방탕은 영혼구원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미혹했다.
영지주의가 말하는 육체의 소욕은 무엇인가?
17-19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이방인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좇는 마음의 허망한 것은 헛된 것 무익한 것이다.
허망하다는 말은 방향이 없다 목표가 없다는 말입니다.
삶의 목적을 상실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바를 마음에 담고 그 마음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행동은 늘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어떤 행동의 결과는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쓸데없는 일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그 방향이 분명해 졌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로서 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인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허망한 것을 추구하며 헛된 것에 목을 매는가?
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라고 했는데 총명은 이해하는 마음인데 하나님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의 기능이 상실했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기능이 상실되어서 도저히 하나님을 알수 없고 그래서 하나님대신 허망한 욕망을 좇아간다는 것이다.
무지함이란 무식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지식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일체 없다는 뜻이다.
세상의 인간의 지식으로는 가득차고 넘쳐나지만 정작 생명의 씨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없다.
그 무지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무지함이란?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분간하질 못하는 그런 상태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마음이 상실된 것은 그 마음을 아주 단단한 껍질이 덮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의 굳어짐이다.
굳어짐은 완악함을 의미하는 말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능력들에 대하여 전혀 깨달음이나 감격 등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기능을 마비시킨 것은 그 위에 두껍고 단단하게 덮고 있는 세상의 지식과 경험과 죄와 욕망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의 분리는 인간이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탯줄이 끊어진 태아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의 생명은 이미 영적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두껍게 덮고 있는 죄의 욕망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양심이 마비되어 방탕과 방임과 탐욕에 매우 자유롭게 한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행하면서도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든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고 떳떳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기회만 나면 그것을 계속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가져올 파멸과 심판을 알지 못합니다.
방임상태입니다.
방임은 포기상태입니다. 거기다 기대를 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됨을 포기한 겁니다.
예수 믿기 전의 옛 사람은 마음이 허망하여져서 방향감각을 잃었고,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하게 되고 완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욕심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의 삶은 한 마디로 욕심을 좇아 사는 삶이었습니다.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사람에 대한 수식어가 매우 길다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유혹은 미혹 기만 망상이요
욕심은 금지된 것에 대한 갈망이요
썩어져가는 것은 파리해지고 황폐해지고 오염되어져가는 것이요
구습은 과거의 삶의 모양 즉 죄악된 삶을 말하고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에서 벗어버린다는 말은 버리다 묻다 죽이다는 의미입니다.
옛사람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망상을 좇는다.
그런데 그 잡을 수 없는 망상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처절하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간절함과 갈망이 사람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룰 수 없는 망상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내 육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사는 것이다.
이 얼마나 헛된 망상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으셨고 그 결국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다.
에덴에서 죄를 짓고는 살수가 없고 쫓겨났습니다.
바래서는 안 될 것을 바라는 것이 욕심이며 죄악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야릇한 열망과 그리움을 가진다.
이것은 귀신의 역사이다.
바울은 이러한 망상에 대한 욕망을 단번에 끊어버리고 아니 땅에 묻어버리고 죽여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는 자는 하나님을 따라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죄를 비웠으면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채워야 하고 더러운 죄의 옷을 벗었으면 광채 나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
새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23-24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거듭나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요
새롭게 되는 혁신 쇄신 수선하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남은 일회적으로 나타나지만 새롭게 되는 것은 반복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단번에 거듭났지만 반복해서 나 자신을 혁신하고 쇄신하고 고치고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 쇄신되어야 합니까?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런데 이렇게 새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이다.
심령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마음의 가장 중요한 좌소이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인데 우리의 영혼이 있는 곳이다.
심령이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가?
지식과 철학과 삶의 경험은 우리의 마음을 두꺼운 각질로 덮을 뿐이다.
심령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은 곧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이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과 세상의 철학과 종교적 신념을 벗겨 내버리고 하나님의 진리로 내 마음을 덮어야 한다.
새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의로 창조되어진 사람이며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창조되어진 사람이다.
인간이 어떤 만물보다도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 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 모습이 회복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아야합니다.
그것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새 사람만이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내 인생 내 가정 내 삶이 새 사람이 된 내가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잘 짜여진 새 옷을 입어야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생각을 의의 생각으로 바꾸어야합니다.
거짓된 양심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고쳐 먹어야합니다.
육적인 안목을 가졌다면 영적인 것으로 돌려놓아 새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보다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놀라워할 진정한 인간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습니다. 날마다 승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 자가 돕니다.
받을 상급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옷은 그의 신분을 드러냈습니다.
황제나 황후가 입는 옷이 다르고, 태자와 태자비가 입는 옷이 다르고, 사대부 집안이 입는 옷이 다르고, 양반이 입는 옷, 평민이 입는 옷, 상민이나 천민들이 입는 옷이 달랐습니다.
이것은 고대로 올라가면 갈수록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옷으로 사람의 신분을 구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람의 신분을 말하면서 옛 사람으로의 옷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의 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느냐 아니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나치에 저항하다가 죽임당한 본회퍼라는 독일 신학자는 그리스도인은 종교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오셔서 진정한 인간이 무엇인지 보여주셨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아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분처럼 진정한 인간으로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며 축복임을 강조했습니다.
금욕적으로 세상을 도피하여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세상과 단절하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20-21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며 그 이름으로 구원함을 받으며 그를 믿고 회개하여 영생을 얻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밀레도에서 에베소장로들을 만나 고별설교를 할 때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행20:17-21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얼마 후에 거짓교사가 와서 제자들을 미혹케하고 진리에서 어그러지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에베소 성도들 중에 거짓교사에게 미혹을 당해 진리에서 벗어나 방탕 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방탕으로 이끌었던 이단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초대교회때 새로운 신앙의 형태가 나타났는데 영지주의 사상이다.
영지주의는 영혼은 구원받고 육신은 결국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육신은 무슨 죄를 짓든 선을 행하든 구원 받는데 는 상관이 없다는 이론이다.
그러니 영혼은 구원받고 육신은 세상의 쾌락을 즐길 수 있으니 영지주의는 당시 믿음이 온전치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은 구원 받고 육신은 육신의 소욕대로 살고
아주 내 입 맛에 딱 맞은 훌륭한 교리가 있으니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메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이 같은 헬라 문화인 영지 주의 사상을 조심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배웠습니까?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함은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도록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배우다라는 헬라어에서 제자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예수를 배우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웠다면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마음으로 믿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배우며 닮아가는 제자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삶이 다르지 않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나의 영혼은 구원받았으니 육체가 죄를 짓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거짓 교리에 빠져 육체적으로 방탕한 삶을 사는 성도들을 보고 바울은 분개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방탕은 영혼구원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미혹했다.
영지주의가 말하는 육체의 소욕은 무엇인가?
17-19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이방인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좇는 마음의 허망한 것은 헛된 것 무익한 것이다.
허망하다는 말은 방향이 없다 목표가 없다는 말입니다.
삶의 목적을 상실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바를 마음에 담고 그 마음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행동은 늘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어떤 행동의 결과는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쓸데없는 일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그 방향이 분명해 졌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로서 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인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허망한 것을 추구하며 헛된 것에 목을 매는가?
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라고 했는데 총명은 이해하는 마음인데 하나님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의 기능이 상실했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기능이 상실되어서 도저히 하나님을 알수 없고 그래서 하나님대신 허망한 욕망을 좇아간다는 것이다.
무지함이란 무식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지식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일체 없다는 뜻이다.
세상의 인간의 지식으로는 가득차고 넘쳐나지만 정작 생명의 씨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없다.
그 무지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무지함이란?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분간하질 못하는 그런 상태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마음이 상실된 것은 그 마음을 아주 단단한 껍질이 덮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의 굳어짐이다.
굳어짐은 완악함을 의미하는 말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능력들에 대하여 전혀 깨달음이나 감격 등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기능을 마비시킨 것은 그 위에 두껍고 단단하게 덮고 있는 세상의 지식과 경험과 죄와 욕망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의 분리는 인간이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탯줄이 끊어진 태아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의 생명은 이미 영적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두껍게 덮고 있는 죄의 욕망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양심이 마비되어 방탕과 방임과 탐욕에 매우 자유롭게 한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행하면서도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든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고 떳떳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기회만 나면 그것을 계속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가져올 파멸과 심판을 알지 못합니다.
방임상태입니다.
방임은 포기상태입니다. 거기다 기대를 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됨을 포기한 겁니다.
예수 믿기 전의 옛 사람은 마음이 허망하여져서 방향감각을 잃었고,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하게 되고 완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욕심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의 삶은 한 마디로 욕심을 좇아 사는 삶이었습니다.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사람에 대한 수식어가 매우 길다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유혹은 미혹 기만 망상이요
욕심은 금지된 것에 대한 갈망이요
썩어져가는 것은 파리해지고 황폐해지고 오염되어져가는 것이요
구습은 과거의 삶의 모양 즉 죄악된 삶을 말하고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에서 벗어버린다는 말은 버리다 묻다 죽이다는 의미입니다.
옛사람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망상을 좇는다.
그런데 그 잡을 수 없는 망상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처절하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간절함과 갈망이 사람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룰 수 없는 망상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내 육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사는 것이다.
이 얼마나 헛된 망상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으셨고 그 결국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다.
에덴에서 죄를 짓고는 살수가 없고 쫓겨났습니다.
바래서는 안 될 것을 바라는 것이 욕심이며 죄악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야릇한 열망과 그리움을 가진다.
이것은 귀신의 역사이다.
바울은 이러한 망상에 대한 욕망을 단번에 끊어버리고 아니 땅에 묻어버리고 죽여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는 자는 하나님을 따라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죄를 비웠으면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채워야 하고 더러운 죄의 옷을 벗었으면 광채 나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
새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23-24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거듭나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요
새롭게 되는 혁신 쇄신 수선하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남은 일회적으로 나타나지만 새롭게 되는 것은 반복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단번에 거듭났지만 반복해서 나 자신을 혁신하고 쇄신하고 고치고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 쇄신되어야 합니까?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런데 이렇게 새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이다.
심령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마음의 가장 중요한 좌소이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인데 우리의 영혼이 있는 곳이다.
심령이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가?
지식과 철학과 삶의 경험은 우리의 마음을 두꺼운 각질로 덮을 뿐이다.
심령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은 곧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이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과 세상의 철학과 종교적 신념을 벗겨 내버리고 하나님의 진리로 내 마음을 덮어야 한다.
새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의로 창조되어진 사람이며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창조되어진 사람이다.
인간이 어떤 만물보다도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 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 모습이 회복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아야합니다.
그것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새 사람만이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내 인생 내 가정 내 삶이 새 사람이 된 내가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잘 짜여진 새 옷을 입어야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생각을 의의 생각으로 바꾸어야합니다.
거짓된 양심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고쳐 먹어야합니다.
육적인 안목을 가졌다면 영적인 것으로 돌려놓아 새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보다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놀라워할 진정한 인간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습니다. 날마다 승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 자가 돕니다.
받을 상급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