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합당한 행위에 당신의 생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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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4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민수기 14:20-25 말씀에 합당한 행위에 당신의 생사가 있습니다
전남 보길도의 동쪽 끝 막다른 해안절벽에 큰 바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팔십 삼세 늙은 몸이 거치른 만리길을 가노라
한마디 말이 어찌 그렇게 큰 죄가 되어
세 번이나 쫓겨나니 신세만 궁하구나
북쪽하늘 해를 바라보며 끝없이 넓은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조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있어
감격하여 외로이 눈물 흘리네.
이 글은 우암 송시열이(1607-1689) 숙종15년(1689)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 중에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잠시 머물면서 쓴 글입니다.
1689년(숙종 15) 숙종과 장희빈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균이 2달만에 원자(元子)로 정 호 되자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이 아직 인현왕후 민비가 젊다는 상조론(尙早論)을 주장하다가 그해 6월 한양으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전라도 정읍에서 숙종의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개의 왕의 어명이 얼마나 컸기에 어명을 어김에 당시의 주자학으로 유명한 송시열이라는 인물도 사약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난여름에 이 곳을 다녀오면서 이 글을 접한 한 원로 목사님의 사모님은 말 한마디의 어김이 이렇게 무서운 죄가 되는 줄 몰랐어요 나이 여덟 세 살에 이 엄명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내 나이 70이라고 하지만 조심해도 보통 조심해서는 안 될 일이구나 하며 오늘 참으로 귀한 교훈을 받고 갑니다 하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비단 땅의 임금에 대한 명이 그렇게도 무섭다고 한다면 만 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명은 참으로 어떠하시겠습니까?
일찍이 다윗 왕은 자신이 일개 나라의 왕이라 하지만은 만 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생명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라는 말은 곧 말씀과 상관이 없는 행위는 사망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그 어떤 구원이나 생명 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들은 아예 말씀 앞에다가 생명의 말씀이라 이렇게 표기를 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말씀을 통하여 생명이 살고 죽고 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천지 만물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이 만물이 운행되는 것이 어디에서 그런 힘과 질서가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무엇인가 주관자가 있고 주권자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만물을 주관하는 주권자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이 만물에 대하여 잘 아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바로 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의 손에 만물이 다 달려있는 것 아닙니까?
자식이 없어서 기도하던 한나라는 여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시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태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그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절대 주권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았고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이렇게 찬송을 하였습니다.
삼상 2: 6-10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우리가 믿은 하나님 여러분 시시하게 우습게 생각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만물의 생존 문제가 하나님께 손에 있습니다.
나의 생사고락이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아주 하나님을 시시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하나님을 대하는 일이 있는데 그러면 언제 우리가 망 할 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멸시하는 자와 순종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우습게 여기는 자는 가나안의 축복을 받기는커녕 광야에서 다 무덤을 파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지요
어떻게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데 내가 멸시하는 하나님에게서 무슨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은혜를 받으려는 행동이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순종한 자는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은혜 받은 것이 당연하지요
대단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순종하는데 어찌 대단한 축복을 받지 못 할 이유가 없지요
하나님을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은 이제 연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단하게 여기고 순종 할 때에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대단한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나보다 못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들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에게 절대 순종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삼하 22: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시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그리고 그의 말씀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여겼습니다.
이제는 아무렇게나 대충 그냥 믿어도 되는 하나님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솔직히 드리고 순종하는 재물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바로 안다면 참으로 아무렇게나 신앙 생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 생각보다 못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생각 아래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 전부가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을 꺼야? 하지 마십시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시 139: 1-10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피 할 수 없는 하나님이요 내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관하심이라고 하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걸 아는 것은 큰 은혜이지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면 어찌 여기까지 이를 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이걸 모르니 참으로 답답한 것입니다.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행한 모두가 다 하나님의 주관하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종살이하며 고통 가운데 있을 때나 그 가운데 기적을 나타내어 구원하시는 일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는 아무런 책임의식을 가지지 아니하고 어떤 문제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에는 비로소 하는 말이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이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한계 안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면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되고 해결 할 수 있는 일들만이 있다면 하나님은 존재 할 이유가 없고 그 이름을 부를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신기하고 기이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며 그가 원하시는 일을 행하기를 즐겨 하는 것입니다.
온 땅이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듯이 오늘 나의 삶의 생사고락이 우리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 통치자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평안이며 또한 생명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지혜롭고 복된 사람인지 모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시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시 16: 8-11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하나님께 모든 것이 있음을 믿는다면 여러분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삶과 축복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왜? 내가 축복을 받지 못하나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장사하든지 직장 생활을 하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나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 기도를 드릴 제목이 있다면 내가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은 말씀에 내 자신을 드리는 순종입니다.
말씀대로 하옵소서 이런 자를 보시고 주님은 큰 믿음이라고 하시고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을 주시더라도 그 말씀 앞에 재물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구원이요 축복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에 얼마나 사모하며 갈급해하며 어찌 말씀에 내 인생을 걸지 않겠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성도에게도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말씀으로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복을 받지 못할 자는 말씀을 받아 드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못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지 않는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그러니 축복을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을 받을 자는 다르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받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 마음대로 믿습니다가 믿음이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으니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만 있어야 되겠습니까?
미치겠고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순종하는 자는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드리고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니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 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저는 철야 기도회에나 또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들에게 전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난 철야 기도 시간에는 한 성도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여러 길이 있으니 한 길만 고집하지 말라고 하시고 다만 교회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순종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당신은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민 14: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전남 보길도의 동쪽 끝 막다른 해안절벽에 큰 바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팔십 삼세 늙은 몸이 거치른 만리길을 가노라
한마디 말이 어찌 그렇게 큰 죄가 되어
세 번이나 쫓겨나니 신세만 궁하구나
북쪽하늘 해를 바라보며 끝없이 넓은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조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있어
감격하여 외로이 눈물 흘리네.
이 글은 우암 송시열이(1607-1689) 숙종15년(1689)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 중에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잠시 머물면서 쓴 글입니다.
1689년(숙종 15) 숙종과 장희빈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균이 2달만에 원자(元子)로 정 호 되자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이 아직 인현왕후 민비가 젊다는 상조론(尙早論)을 주장하다가 그해 6월 한양으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전라도 정읍에서 숙종의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개의 왕의 어명이 얼마나 컸기에 어명을 어김에 당시의 주자학으로 유명한 송시열이라는 인물도 사약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난여름에 이 곳을 다녀오면서 이 글을 접한 한 원로 목사님의 사모님은 말 한마디의 어김이 이렇게 무서운 죄가 되는 줄 몰랐어요 나이 여덟 세 살에 이 엄명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내 나이 70이라고 하지만 조심해도 보통 조심해서는 안 될 일이구나 하며 오늘 참으로 귀한 교훈을 받고 갑니다 하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비단 땅의 임금에 대한 명이 그렇게도 무섭다고 한다면 만 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명은 참으로 어떠하시겠습니까?
일찍이 다윗 왕은 자신이 일개 나라의 왕이라 하지만은 만 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생명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라는 말은 곧 말씀과 상관이 없는 행위는 사망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그 어떤 구원이나 생명 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들은 아예 말씀 앞에다가 생명의 말씀이라 이렇게 표기를 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말씀을 통하여 생명이 살고 죽고 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천지 만물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이 만물이 운행되는 것이 어디에서 그런 힘과 질서가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무엇인가 주관자가 있고 주권자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만물을 주관하는 주권자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이 만물에 대하여 잘 아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바로 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의 손에 만물이 다 달려있는 것 아닙니까?
자식이 없어서 기도하던 한나라는 여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시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태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그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절대 주권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았고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이렇게 찬송을 하였습니다.
삼상 2: 6-10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우리가 믿은 하나님 여러분 시시하게 우습게 생각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만물의 생존 문제가 하나님께 손에 있습니다.
나의 생사고락이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아주 하나님을 시시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하나님을 대하는 일이 있는데 그러면 언제 우리가 망 할 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멸시하는 자와 순종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우습게 여기는 자는 가나안의 축복을 받기는커녕 광야에서 다 무덤을 파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지요
어떻게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데 내가 멸시하는 하나님에게서 무슨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은혜를 받으려는 행동이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순종한 자는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은혜 받은 것이 당연하지요
대단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순종하는데 어찌 대단한 축복을 받지 못 할 이유가 없지요
하나님을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은 이제 연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단하게 여기고 순종 할 때에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대단한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나보다 못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들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에게 절대 순종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삼하 22: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시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그리고 그의 말씀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여겼습니다.
이제는 아무렇게나 대충 그냥 믿어도 되는 하나님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솔직히 드리고 순종하는 재물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바로 안다면 참으로 아무렇게나 신앙 생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 생각보다 못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생각 아래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 전부가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을 꺼야? 하지 마십시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시 139: 1-10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피 할 수 없는 하나님이요 내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관하심이라고 하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걸 아는 것은 큰 은혜이지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면 어찌 여기까지 이를 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이걸 모르니 참으로 답답한 것입니다.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행한 모두가 다 하나님의 주관하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종살이하며 고통 가운데 있을 때나 그 가운데 기적을 나타내어 구원하시는 일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는 아무런 책임의식을 가지지 아니하고 어떤 문제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에는 비로소 하는 말이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이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한계 안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면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되고 해결 할 수 있는 일들만이 있다면 하나님은 존재 할 이유가 없고 그 이름을 부를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신기하고 기이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며 그가 원하시는 일을 행하기를 즐겨 하는 것입니다.
온 땅이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듯이 오늘 나의 삶의 생사고락이 우리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 통치자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평안이며 또한 생명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지혜롭고 복된 사람인지 모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시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시 16: 8-11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하나님께 모든 것이 있음을 믿는다면 여러분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삶과 축복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왜? 내가 축복을 받지 못하나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장사하든지 직장 생활을 하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나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 기도를 드릴 제목이 있다면 내가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은 말씀에 내 자신을 드리는 순종입니다.
말씀대로 하옵소서 이런 자를 보시고 주님은 큰 믿음이라고 하시고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을 주시더라도 그 말씀 앞에 재물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구원이요 축복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에 얼마나 사모하며 갈급해하며 어찌 말씀에 내 인생을 걸지 않겠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성도에게도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말씀으로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복을 받지 못할 자는 말씀을 받아 드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못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지 않는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그러니 축복을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을 받을 자는 다르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받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 마음대로 믿습니다가 믿음이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으니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만 있어야 되겠습니까?
미치겠고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순종하는 자는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드리고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니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 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저는 철야 기도회에나 또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들에게 전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난 철야 기도 시간에는 한 성도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여러 길이 있으니 한 길만 고집하지 말라고 하시고 다만 교회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순종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당신은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민 14: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