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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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4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로마서 8:26-28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어제 아침시간부터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까지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와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컴퓨터를 켜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기록한 모든 내용이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지 참으로 속이 무지무지하게 상하였습니다.
컴 속에서 여기 저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냥 꺼도 저장되어 있기 마련인데 어찌 이렇게 감쪽같이 날아가 버리고 재목만 덩그러니 남아 있느냐? 말입니다.
다시 설교를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분주했는지 모릅니다.
이게 우리 사람이 하는 일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나라는 인생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요 또한 완전하지도 못한 자임을 실감이 갑니다.
우리 성도 중에 누가 핸드폰을 세탁기에 돌렸다고 하지를 않습니까?
무엇인가? 사람은 신이 아니요 완전하지 못한 인간임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한 언론가이요 골동품을 수집하는 이가 유럽의 한 왕가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구입하려고 유럽으로 가서 그 그릇을 찾는데 오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수년의 세월을 보내고 많은 수고 끝에 그 정보를 알아내었습니다. 미국의 한 언론인이 수집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그 언론인이 다른 이가 아닌 본인이었고 오래 전에 자신이 그것을 구입해서 창고에다가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수고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이 아닙니까?
진작 기억을 하고 알았더라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오늘 우리 신앙인 들도 그러하다고 여겨집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신앙 생활을 하지만은 헛된 세월만 보내었지 참으로 그 믿음으로 무엇인가 자신의 삶에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구원을 가져오고 삶에서 승리를 하고 무엇이든지 감당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우리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반드시 구원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세상에서 실패하는 좌절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내가 소유한 믿음은 조그마한 일만 생겨도 실패하고 좌절을 맛보고 헤어나지 못 하는 것입니까?
그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기보다는 자기자신에게서 출발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칼라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으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만들어져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그 사람의 믿음대로 자신들의 모습이 설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늘 항상 성도들을 바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들의 믿음대로 행하고 있네요
그 믿음 이하도 아니요 그 이상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에 사람마다 그 사람의 믿음대로 다 달리 나타내었습니다.
곧 너희의 믿음대로 될지니라 이었습니다.
각자가 제 믿음대로 행하고 은혜도 받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너무 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제 자신을 둘러봅니다.
왜 나는 대 교회를 만들지 못했는가 내가 다른 이들보다 못하는 것이 무엇인데 하는 말을 할 수도 있고 하나님에게 그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만 은 이제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적으로 내가 믿음이 없는 것이 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라도 믿음 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여야 갰다는 생각이 앞을 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아서 못 받은 것이 아니요 우리가 잘 되도록 인도해 주시지 않아서 잘 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간 것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믿음 적이고 믿음 적이지 못하다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행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믿음 적인 일이요 인간적인 생각에 서면은 믿음 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행한다는 말은 도적질하고 사기하고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선인군자같이 윤리나 도덕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는 큰 걸림돌이 인간적인 도리를 강조하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스리는 인간적인 혈육의 문제라도 믿음 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로 보면 극히 인간적인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불완적한 것이며 헛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것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그것들을 버리고 나를 쫓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혈과 육을 가지고 구원을 받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생각 즉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등 인간이 만들어 내어놓은 제도 등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전되면 철학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골 2: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인간적으로 일을 행하는 이는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이요 교만하기 이를 때가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아 버리는지 모릅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알기로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것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다 이스라엘의 엘리사에게로 병을 낫기 위하여 찾아 왔습니다.
그러면 엘리사가 지시하는 대로 받아 드리면 그의 병은 완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어떤 신분인지도 모르고 하는 말이 내 생각에는 하고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으니? 주위의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하겠느냐? 말입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는 말씀 앞에 그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펼치고 자기의 지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하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고치는 사람이 누구이고 누가 고침을 받아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피조물이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를 두고 힐문(詰問)하는 거나 뭐가 다릅니까?
만물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가 누구입니까?
사람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그리고 조금 아는 지식을 가지고 다 아는 것같이 나서는 것입니다.
차라리 새끼 밴 암콤을 만나는 것이 미련한자를 만나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하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이 사람 나아만이 말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일리가 있고 합리적이요 이성적이요 실용적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은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이 없는 인간적인 일일뿐입니다.
주위에서 바라 볼 때에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화를 낼 사람은 누구인데 자신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인간적인 지식을 가지고 완전히 뭉개 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 하나님을 이겨서 무엇이 되겠다는 것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까?
저는 간혹 이런 모습을 볼 때에 어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네가 내 보다 더 똑똑하니 더 하는 데로 해봐라 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내버려 둘 것입니다.
네 스타일대로 해 봐라 이게 얼마나 무서운 벌인지 모릅니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 이상 역사가 없고 더 이상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다 보다가 못한 종들이 이 사람 나아만을 깨우칩니다.
왕하 5: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다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더 큰 일을 하라고 해도 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였습니다.
복을 받을 사람은 말씀을 받아 드리는 믿음이 생기는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지만 그 날 따라 잡은 것이 없이 허탕을 치고 왔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능력들을 다 동원하였지만 은 허탕이었습니다.
물가에서 그물을 씻고 돌아가려던 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고기 잡으러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의 지식과 경험하고는 맞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까?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갭이 생길 때에 그것을 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 바로 이것입니다.
내 생각과 지식과 경험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수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아셔야합니다. 내 주관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 아닙니다.
착하고 순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성령님이 역사를 많이 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인간적인 것을 내어버린 자들에게 역사를 하시는데 이들이 성령이 기도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여 기도한 것마다 다 응답을 받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성도 가운데 몇 명이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니 참으로 모든 성도들이 이런 경험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떤 이는 인간적인 것이 가득차 있어서 이것이 빠지지 아니하는 한 그 믿음은 언제든지 인간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지금 우리 가운데 어떻게 역사를 하고 계시는 줄 아십니까?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 적인 기도가 아니라 제 마음대로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믿습니다 하니 얼마나 담담한 노릇입니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치 국만 마시고 있는 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엉뚱한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기도는 참으로 잘 드리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도는 응답이 생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도와주시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면 되겠구나 하고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무엇인지 잘 못 오해를 하시면 안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고 그 생각을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뜻을 따라 기도하고 그 뜻에 따라 사용되어지는 것이요
그렇게 되고 보니 응답이요 그리고 역사가 일어 나는 것입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눅 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제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는 기도를 드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인간적인 기도를 열심히 드리고 있습니까?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 보십시오
성령이 말씀하시고 일러주실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좋은 길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는 다윗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것이요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모든 합력 하여 선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기도하시기를 지체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성령은 여러분을 지도하실 것이요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잘 배우고 그리고 공적 예배에 참석 새벽기도 철야 기도에 반드시 여러분을 인도 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어제 아침시간부터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까지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와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컴퓨터를 켜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기록한 모든 내용이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지 참으로 속이 무지무지하게 상하였습니다.
컴 속에서 여기 저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냥 꺼도 저장되어 있기 마련인데 어찌 이렇게 감쪽같이 날아가 버리고 재목만 덩그러니 남아 있느냐? 말입니다.
다시 설교를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분주했는지 모릅니다.
이게 우리 사람이 하는 일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나라는 인생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요 또한 완전하지도 못한 자임을 실감이 갑니다.
우리 성도 중에 누가 핸드폰을 세탁기에 돌렸다고 하지를 않습니까?
무엇인가? 사람은 신이 아니요 완전하지 못한 인간임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한 언론가이요 골동품을 수집하는 이가 유럽의 한 왕가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를 구입하려고 유럽으로 가서 그 그릇을 찾는데 오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수년의 세월을 보내고 많은 수고 끝에 그 정보를 알아내었습니다. 미국의 한 언론인이 수집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그 언론인이 다른 이가 아닌 본인이었고 오래 전에 자신이 그것을 구입해서 창고에다가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수고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이 아닙니까?
진작 기억을 하고 알았더라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오늘 우리 신앙인 들도 그러하다고 여겨집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신앙 생활을 하지만은 헛된 세월만 보내었지 참으로 그 믿음으로 무엇인가 자신의 삶에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구원을 가져오고 삶에서 승리를 하고 무엇이든지 감당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우리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반드시 구원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세상에서 실패하는 좌절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내가 소유한 믿음은 조그마한 일만 생겨도 실패하고 좌절을 맛보고 헤어나지 못 하는 것입니까?
그 믿음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기보다는 자기자신에게서 출발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칼라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으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만들어져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그 사람의 믿음대로 자신들의 모습이 설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늘 항상 성도들을 바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들의 믿음대로 행하고 있네요
그 믿음 이하도 아니요 그 이상도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에 사람마다 그 사람의 믿음대로 다 달리 나타내었습니다.
곧 너희의 믿음대로 될지니라 이었습니다.
각자가 제 믿음대로 행하고 은혜도 받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너무 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제 자신을 둘러봅니다.
왜 나는 대 교회를 만들지 못했는가 내가 다른 이들보다 못하는 것이 무엇인데 하는 말을 할 수도 있고 하나님에게 그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만 은 이제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적으로 내가 믿음이 없는 것이 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라도 믿음 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여야 갰다는 생각이 앞을 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아서 못 받은 것이 아니요 우리가 잘 되도록 인도해 주시지 않아서 잘 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간 것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믿음 적이고 믿음 적이지 못하다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행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믿음 적인 일이요 인간적인 생각에 서면은 믿음 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행한다는 말은 도적질하고 사기하고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선인군자같이 윤리나 도덕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는 큰 걸림돌이 인간적인 도리를 강조하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스리는 인간적인 혈육의 문제라도 믿음 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로 보면 극히 인간적인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불완적한 것이며 헛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것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그것들을 버리고 나를 쫓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혈과 육을 가지고 구원을 받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생각 즉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등 인간이 만들어 내어놓은 제도 등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전되면 철학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골 2: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인간적으로 일을 행하는 이는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이요 교만하기 이를 때가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아 버리는지 모릅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알기로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것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다 이스라엘의 엘리사에게로 병을 낫기 위하여 찾아 왔습니다.
그러면 엘리사가 지시하는 대로 받아 드리면 그의 병은 완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어떤 신분인지도 모르고 하는 말이 내 생각에는 하고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으니? 주위의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하겠느냐? 말입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는 말씀 앞에 그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펼치고 자기의 지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하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고치는 사람이 누구이고 누가 고침을 받아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피조물이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를 두고 힐문(詰問)하는 거나 뭐가 다릅니까?
만물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가 누구입니까?
사람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그리고 조금 아는 지식을 가지고 다 아는 것같이 나서는 것입니다.
차라리 새끼 밴 암콤을 만나는 것이 미련한자를 만나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하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이 사람 나아만이 말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일리가 있고 합리적이요 이성적이요 실용적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은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이 없는 인간적인 일일뿐입니다.
주위에서 바라 볼 때에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화를 낼 사람은 누구인데 자신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인간적인 지식을 가지고 완전히 뭉개 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 하나님을 이겨서 무엇이 되겠다는 것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까?
저는 간혹 이런 모습을 볼 때에 어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네가 내 보다 더 똑똑하니 더 하는 데로 해봐라 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내버려 둘 것입니다.
네 스타일대로 해 봐라 이게 얼마나 무서운 벌인지 모릅니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 이상 역사가 없고 더 이상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다 보다가 못한 종들이 이 사람 나아만을 깨우칩니다.
왕하 5: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다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더 큰 일을 하라고 해도 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였습니다.
복을 받을 사람은 말씀을 받아 드리는 믿음이 생기는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지만 그 날 따라 잡은 것이 없이 허탕을 치고 왔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능력들을 다 동원하였지만 은 허탕이었습니다.
물가에서 그물을 씻고 돌아가려던 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고기 잡으러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의 지식과 경험하고는 맞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까?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갭이 생길 때에 그것을 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 바로 이것입니다.
내 생각과 지식과 경험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수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아셔야합니다. 내 주관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 아닙니다.
착하고 순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성령님이 역사를 많이 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인간적인 것을 내어버린 자들에게 역사를 하시는데 이들이 성령이 기도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여 기도한 것마다 다 응답을 받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성도 가운데 몇 명이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니 참으로 모든 성도들이 이런 경험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떤 이는 인간적인 것이 가득차 있어서 이것이 빠지지 아니하는 한 그 믿음은 언제든지 인간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지금 우리 가운데 어떻게 역사를 하고 계시는 줄 아십니까?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 적인 기도가 아니라 제 마음대로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믿습니다 하니 얼마나 담담한 노릇입니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치 국만 마시고 있는 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엉뚱한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기도는 참으로 잘 드리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도는 응답이 생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도와주시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면 되겠구나 하고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무엇인지 잘 못 오해를 하시면 안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고 그 생각을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뜻을 따라 기도하고 그 뜻에 따라 사용되어지는 것이요
그렇게 되고 보니 응답이요 그리고 역사가 일어 나는 것입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눅 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제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는 기도를 드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인간적인 기도를 열심히 드리고 있습니까?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 보십시오
성령이 말씀하시고 일러주실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좋은 길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는 다윗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것이요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모든 합력 하여 선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기도하시기를 지체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성령은 여러분을 지도하실 것이요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잘 배우고 그리고 공적 예배에 참석 새벽기도 철야 기도에 반드시 여러분을 인도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