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쓰시겠다면 언제든지 준비된 일군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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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60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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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 1-10 주가 쓰시겠다면 언제든지 준비된 일군이 되자
어제는 서평양 노회의 구리 성광교회에서 한 목사님이 정년이 되셔서 은퇴를 하시고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을 하는 원로 목사추대와 목사위임을 하는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밑거름이 되셔서 30년 동안의 헌신을 통하여 교회를 성장시키시고 후배목사에게 물러 주셨습니다. 어느 정도 교세가 확장이 되었고 새로이 건축을 위하여 교회 대지도 구입해 놓았고 훌륭한 일을 하시고 은퇴를 하시는 그 목사님을 보면서 저도 한 20년은 앞으로 목회를 할 수 있으니 후세를 위하여 이 교회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무엇인가를 남겨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할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일은 결코 목사의 혼자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교회가 성장되기까지에는 뒤에서 그 교회를 받들어 헌신하고 수고하는 목사 외에 더 훌륭한 자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날에도 이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자들을 마침 임직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장로임직이 9명 안수집사 임직이 14명 권사 임직이 27면 합 50명의 일군들을 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이 또 다시 교회를 위하여 수고를 하구나 아하 목사님이 이 일을 하시는 그 뒤에서 이렇게 헌신하는 자들이 이렇게도 많이 있었구나 이들이 목사님의 목회 방침에 따르며 수고를 하였구나 그래서 오늘날 이와 같은 아름다운 역사가 있게 되었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가 쓰시기 위하여 준비된 자로 선별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교회를 위한 일군을 세우려고 합니다.
사실 장로도 한 두명 세우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교회가 공회에서 처음으로 세우는 분들이기 때문에 참으로 조심스럽고 두렵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세워져야 할 것인데 그리고 첫 단추부터 잘 뀌어져야 하는데 저는 아직 20년 목회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 선별되는 여러분들도 은퇴를 하기까지 평생의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중요한 일이요 저의 목회에도 중요한 일이며 교회 적으로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여튼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붙잡고 교회를 성장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직임이 없다고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직임이 붙어 있으니 더 열심히 잘 하라는 말입니다.
직임을 세우시는 만큼 능력도 주시고 삶에 축복도 주실 것입니다.
직책을 잘 감당함으로 해서 얼마나 영 육 간에 축복을 받을 지 모릅니다.
저는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할 수만 있으면 세울 수 있는 자들을 다 세워라 는 음성을 듣고 특별한 일이 없이는 하나님이 다 사용하시려고 하셨습니다.
누가 완전한 조건이 되어 세운다면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도 사용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제가 헌신되고 싶습니다 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은 충성 되이 보시고 사용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시니 아무런 이유가 없고 조건이 없이 쓰여지는 일군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씀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새신자 공부를 가르치는 자들까지도 하나님은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거의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올라가시는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되어진 일입니다.
베다니 마을에 오셔서 그 근방에 매어 있는 한 나귀 새끼를 예수님이 끌어오게 하신 다음에 그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그런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유명한 요한 칼빈 선생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 새끼의 모습에서 아! 나의 그림이구나! 그래서 선생의 삶의 모토(motto 좌우명)가 나는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내가 누구인가 압니다. 주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라는 것입니다.
많은 나귀가 있지만 예수님께 선택을 받은 나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나귀 새끼를 지명하여 택하시고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귀 새끼에게는 결정적인 운명의 전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같이 나에게도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세상에 많은 사람 중에서 주님께서 나를 쓰시겠다고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운명이요 축복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왜 나를 찍어 당신의 사람을 만들어셨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에게 또 그 자손에게 복을 주시려고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2-3절을 보면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하셨습니다.
이 말씀 보면 훗날에 내가 나이 들어서 지금까지 지내 온 일생을 추억하면서 아! 내가 왜 이렇게 잘됐나! 내가 왜 이런 복을 누리고 사나!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그렇게 말하게 해 주리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을 많은 나귀 중에 그 나귀 새끼 하나를 예수님이 어디가면 어떤 나무에 매어 있는 나귀 새끼다 하고 분명히 지적했어요. 그리고 그걸 주가 쓰시겠다고 하고 끌어오너라 그리고 실제로 그 나귀 새끼를 끌어 와 가지고 예수님이 그 위에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입니다.
나를 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만 알면 이제 끝나는 거예요. 택함 받은 사람인 것만 확실하면 하나님이 장중에 붙드시고, 다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되게 하시고, 복을 부어 주시는 것이니까 택함 받은 사람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나 같은 자가 택함 받았다는 그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확실하게 아는 증거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그대로 나두면 절대로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한 사람도 예수님께로 나올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6장 44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앉아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오늘 내가 교회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주를 위하여 봉사하고 수고한 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 내가 택함 받아서 이렇게 됐구나! 그렇게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선택받은 사람이구나! 지금은 좀 보잘것없고 많은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나를 선택하시고 실제로 때가 되어서 나를 불러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계속해서 은혜를 부어 주셔서 아름답게 주님이 쓰시는 그릇으로 만드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귀한 자가 되는 거예요.
또한 앞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나귀가 주님을 태우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낱 짐을 운송하는 나귀로서 삶을 마쳤을 것입니다.
나귀 자체는 큰 가치가 없지만 주님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나귀처럼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부르신 주께 감사합시다. 다 썩어서 없어질 우리의 재능과 내 작은 헌신과 봉사가 주님을 위해 가치 있게 쓰임 받고 귀하게 하늘나라를 위해 쓰여진다면 그보다 더 영광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어떤 모양이라도 여러분을 사용하시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선택한 나귀 새끼를 끌어오게 하신 다음에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나귀 새끼를 타고 가실 때 사람들이 종려 가지를 들고 찬양을 부르면서 겉옷을 벗어 길바닥에 펼 때 나귀 새끼도 굉장히 흥분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 다음에 우리를 주님의 영광스런 도구로 만들어서 쓰시는 바로 이것이 사명이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에 에도미 야스히로 라는 사람은 몸이 완전히 마비되어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오른발 엄지발가락뿐입니다. 그 외는 완전히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절망과 슬픔과 저주와 사망의 그늘 속에 잠겨 사는 이 에도미 야스히로 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가까이 오시고 그를 불러 주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 가슴에 있는 절망은 물러가고 어둠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고 싶어했는데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니 나타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생각 끝에 움직일 수 있는 엄지발가락으로 타자를 치는 것을 배워서 필사적인 노력으로 엄지발가락으로 글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문장을 쓸 때에 때로는 하루가 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처참한 노력으로 쓴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나온 것이 엄지발가락이라는 책인데 그 중에 돌이라는 짧은 글이 있습니다.
“나는 돌멩이만도 못한 존재였다 아무 쓸모 없는 돌멩이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사람 앞에 아픔을 주는 자였다
그러한 나에게 예수님이 오셨다 그 후 쓸모 없는 이 돌멩이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귀한 보석으로 바꾸어 졌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왜요? 전에는 사람들에게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밖에 안 된 사람 이였는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사람들이 와서 보고는 그 불행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모습이지만 거기에는 평안이 있고 기쁨의 빛이 흐르고 있고 생기가 있는 것을 보고는 생애 의욕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 사람의 모습에서 힘을 얻고 가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 미쯔노 겐죠 라는 사람은 에도미 야스히로 보다 더하여 이 사람은 엄지발가락도 움직이지 못한 사람이요 말도 하지 못합니다. 의사 표시를 한다면 귀로 말은 들을 수 있는데 눈빛으로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 비참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이 오신 후에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중증 장애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을까요? 매일 불평이나 하고 앉아 있는 사람인데 .... 그렇지만은 이런 사람에게도 그 영혼에 빛을 비쳐 주실 때 하나님의 사랑을 놀랍게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고 알게 하시고 보게 해 주셔야 느끼고 알고 깨닫는 겁니다. 소히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입니다.
멀쩡하게 눈과 귀를 가지고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영적인 눈과 귀가 가리운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어머니와 의사 표현을 눈빛으로 하는데 그 눈빛으로 어머니한테 글자판을 만들어 달라고 하여 그 글자판을 펴놓고 아들이 눈빛으로 사인을 보내면 그 어머니는 사인을 받아 때로는 단어 하나 만드는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그러다 두 모자(母子)가 끓어 안고 울고, 불쌍해서 울기도 하지만 내 불쌍한 아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글을 보고 엄마도 감사해서 울고 그래서 만든 시집이 세 권이나 나왔어요.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하는 책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제목이 슬픔이여 입니다.
슬픔이여 슬픔이여
참으로 고마워 네가 오지 않아 내가 강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슬픔이여 슬픔이여
네가 이 세상에서는 둘도 없는 큰 기쁨, 변치 않는 평안의 주님 곁에 나를 인도 하였도다.”
또 하나는 저렇게도 라는 찬양 시인데
주 예수께서 저렇게도 주 예수께서 저렇게도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시는데
죄를 슬퍼하지 않아도 좋을까 죄를 슬퍼하지 않아도 좋을까
주 예수께서 저렇게도 주 예수께서 저렇게도 우리들을 사랑 하시여 피 흘려 괴로워하시는데
회개하지 않아도 좋을까 회개하지 않아도 좋을까
주 예수께서 저렇게도 주 예수께서 저렇게도 우리들을 구원하시려 어제도 오늘도 부르시는데
주님께로 가지 않아도 좋을까 주님께로 가지 않아도 좋을까
어떻게 그런 분들의 영혼에서 이런 찬양이 나올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은 노래가 평생 누워서 지내는 사람들의 입에서,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쓰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쓰신다고 하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무슨 굉장한 일인 것 같지만 아닙니다. 주님이 내게 오셔서 나를 주님의 도구로 쓰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 안에 절망이 나갔고, 슬픔이 물러가고,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영혼으로 바꾸어지는 것,
우리 나라에도 나 가진 재물 없으나를 지은 송명희 자매라든지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라는 찬양 시를 쓴 이인숙 자매도 중증 장애자입니다. 이들이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 아닙니까?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그런 찬양을 부른 최수동 형제는 중동 사막에 가서 일 하다가 두 다리가 잘린 사람입니다. 두 다리가 몽땅 잘려 나간 다음에 예수님 앞으로 나온 사람입니다.
탕자를 살려 준 주님 말씀에 죄인의 두 다리 묻어 두었네
아들이여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남은 몸, 모든 영혼 바치라 하네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두 다리가 잘린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쓸모 없는 자들을 예수님은 불러내셔서 이렇게 사용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 부름 앞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나를 쓰시려고 하신 예수님 앞에서 주님! 저를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로 주장해 주시옵소서.
순간 순간 주장해 주시옵소서. 왜요? 주님이 주장하지 아니하시면 내 속에 또 악심이 일어나고 복잡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아요.
나를 택하여 부르신 주님은 그대로 두는 게 아니거든요? 나를 부르실 때는 쓸데가 있어서 부르신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실 계획이 있어서 주님의 뜻이 있어서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반드시 그걸 이루시는 것입니다.
나를 되게 하시고 나와 관계된 자들을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선택하고 부르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귀한 도구가 되도록 반드시 세워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비천한 죄인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살면 비록 쓸모 없는 돌멩이같이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가시 노릇이나 하고 정말로 의미 없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 주님이나를 부르셨으니 우리 모두를 참으로 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서 아름답게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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