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 교회에 중요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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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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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12-27 당신은 하나님 교회에 중요 인사입니다
이제 2002년 한해를 얼마 남겨 두지 않는 시점에 여러분들이 서 있습니다.
어떤 감정이 드십니까?
여느 때 같으면 또 한해가 의미가 없이 지나가는구나?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 을 생각 할 때에 초조함과 허무함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은 올 한 해는 그런 마음이 라기 보다는 제 나름대로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하심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오히려 감사하고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리고 내년에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맡기고 살아야 하겠다는 믿음이 생기고 그리고 내년에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 하실 것인가? 하는 기대가 되어 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불안하십니까? 허무하십니까? 그리고 소망이 없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생각 일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왜 장래에 대한 기대가 서지 않습니까?
내 스스로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니 내가 어떠한 인물로 사용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지식과 의지의 삶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나간 올 한 해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여러분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행동한 것들이 무엇이었습니까?
극히 인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여기에 집중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렇게만 살다 보니 많은 근심과 걱정이 떠나지 않았고 나를 위하여 열심히 살아 왔지만 오히려 만족해하지 못하여 불안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캄캄한 터널을 벗어날까를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취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삶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은 전적인 인간의 삶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은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 우리가 원하는 아름다운 선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이룰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그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그러니 약하고 무능한 인간이 나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세상적에서 자기 충족을 위하여 살아가니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엊그저께 한 여인이 남편이 교통사고로 인하여 죽었다고 교통 상해 사망 신고를 하고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수속을 밟은 과정에서 그 시신 검사 결과 이상한 징조가 발견되어 보험금 타기는커녕 오히려 남편 살해 사건으로 구속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위한다는 생활에 얽매이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렇게도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8살 난 아이까지 두고도 그 남편을 죽일 수도 있었고 그 보다 더 한 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남편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을 했지만 병원비는 많이 들고 그렇다고 치료 될 가망은 없고 하니 퇴원을 시키고 또 어려운 가정에서 짐만 된다고 생각을 하니 인간적으로는 안 되었지만 20일 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굶겨 죽였던 것입니다.
도저히 이 여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로는 더 이상의 선을 행 할 힘도 그리고 이유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잘 못된 여인이라 하여 구속하고 처벌을 할 것입니다.
아니 저런 나쁜 사람이 있나 라고 할 것입니다 만은 과연 이 자리에서 누가 이 여인에게 나는 절대로 당신과 같지 않다 라고 하며 돌을 던 질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대로의 극한 상황이 오면 자신의 안전한 삶을 위해 그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는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닙니까?
이렇게 인간은 선을 지키기에는 약하고 또한 힘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 하나 지탱하기도 힘이 드는데 어찌 남을 살피고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소히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나라 중. 고교생의 90% 이상이 한국사회는 부패사회라는 인식을 갖고 있고 청소년들의 부패에 대한 윤리의식도 우려할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조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반부패국민연대가 지난 9월 한 달간 서울 등 전국 12개 도시의 중. 고교생 3천17명(남학생 1526명, 여학생 1489명)을 대상으로 부패인식 설문조사를 실시, 2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부패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2.2%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응답을 했고 특히 자신들의 부패에 대한 윤리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3%가 보는 사람이 없으면 법질서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성인들이 바르게 자라고 깨끗하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청소년들의 의식도 이미 세상의 썩은 물에 오염이 심각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 온 삶이요 또 다시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 무엇이 만족하다고 할 삶이되겠으며 그리고 어떤 새로운 소망을 기대 할 수가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그저 여기를 봐도 답답하고 저기를 봐도 답답할 뿐이지 않습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내 주위에서 일어날까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변화를 가지고 오지 않은 이상 우리의 삶의 의식 속에서는 결코 무슨 기대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만족과 소망적인 삶은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에 척추를 앓은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은 키가 135세티 그리고 몸무게는 35키로 얼마나 작은 체구를 가지고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은 그러나 그 몸을 가지고도 남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그 모습에서 웃음을 볼 수 있었으며 삶의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옆 사람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십시오
어디 한번 제대로 웃는 얼굴을 가졌는지 뭐가 그리 불만인지 계속 찡그리고 있지 않습니까?
삶의 행복의 비결은 나 자신을 위하기보다 먼저 내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데 사용되어 지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된다면 내가 그렇게도 염려하며 걱정하는 삶이,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 그 삶이 참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요 참으로 소망적인 삶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라도 나의 사고를 바꿔야 하고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으로 전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붙여 있는지 소속이 어딘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여러분의 삶은 만족해 질 것이요 살아 갈수록 소망 적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글에서 로마 교회를 향하여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는 것은 오히려 구원을 가져오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중요한 인사라는 것을 인식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 붙여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을 구성하는 지체는 여럿입니다.
고전12: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체 하나, 하나는 그 몸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그 지체는 언제든지 몸을 이루는 한 핵심 멤버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소속이 되어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붙어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몸된 교회를 떠나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만족하지도 않은 것이요 그리고 결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15: 4-7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붙여 있을 때에는 무한한 긍정입니다.
그러나 붙여 있지 않음은 그 자체가 한없는 부정이요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복되고 소망이 있는 삶이 되려고 한다면 예수에게 속하여 있어야 합니다.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귀한 존재라 할지라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중요하지 못합니다.
렘 2:14-19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수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야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왜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이 되고 생수를 마시지도 못하고 구정물을 마시느냐?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닌가?
왜 우리에게 행복이 없고 소망이 없는 자가 되는가?
우리는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예상하지 못한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이루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알고 사용이 되어 져야 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는 여럿이기 때문에 다 그 특징이 다르게 사용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그 원하시는 대로 그 지체를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몸을 위하여 지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대로 사용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 몸 된 교회를 위하여 …….
테러 분자가 레바논의 미 해병대 본부를 폭파하여 해병 청년들이 이백 수십 명이나 전사하고 생존자는 16명뿐이었습니다. 당시 미 해병대 사령관 4성 장군 폴 켈리(Paul Kelley)가 이들에게 훈장을 (Purple Hearts)수여하는 중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많이 다친 한 군인은 온 몸에 호스들을 잔뜩 꽂고 있었으며 보지도 말도 못했는데 켈리 장군이 그의 침대 옆에 가서 자기가 사령관 켈리 장군이라고 했더니 앞을 못 보는 그 해병은 손을 내밀어 장군의 어깨를 더듬어 계급장의 별을 하나씩 만져서 정말 장군인가 확인하고는 손가락으로 시트위에 무엇을 쓰는데 알아 볼 수가 없어서, 간호원이 손에 펜을 쥐어 주어 종이판을 대어 주었더니 다음과 같이 쓰는 것이었습니다. Semper Fi-그리고는 손에 힘이 없어서 연필을 떨어드렸는데 Semper Fidelis! 이 말은 해병대의 모토로서, 항상 충성하라! 끝까지 충성하자! 라는 뜻입니다. 나는 내 직무에 충성을 다 했을 뿐이다라고 표현하는 이 장면에서 해병대 사령관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지체의 사명은 말 그대로 생명을 다한 충성이 있을 뿐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 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충성은 말 그대로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대충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사울 왕 과의 싸움에서 한 번은 베들레헴 곁에 있는 우물물을 먹고 싶다고 하였을 때에 그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서 그 물을 길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그 떠온 물을 보고서 하는 말이 이것은 물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바친 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명을 아끼지 충성된 용사들을 통하여 다윗의 나라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교회가 이렇게 세워져 가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충성을 하는 자들을 통하여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부산의 모 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 성도들을 자랑하는데 우리 교회 제직들에게 일렬로 서서 부산 앞바다로 나아가라 해도 안 갈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이들이 충성을 하느냐? 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충성만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그 지체의 보존 방법은 그리고 영광스러움은 그 몸을 위하여 충성하는 길입니다.
왜 우리 가운데는 온 몸과 마음과 물질로서 헌신하며 충성하는 자들이 있는 줄을 아셔야 합니다.
이들이 죽을 려고 그렇게 합니까?
지식이 모자라서 팔푼이기 때문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이 충성이야 말로 자신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반드시 사는 길이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됩니다.
좀 주를 위하여 남은 시간이라도 죽고 충성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지 여러분이 살 길이 열립니다.
그렇게도 죽으려고 하지 않으니 살 길은커녕 죽을 일만 쌓이는 것 아닙니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제는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왜 내게 주어진 믿음의 길에 열심과 충성을 가져야 하는 가를 아셔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소속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디가 우리 편인지도 모르고 행하면 되겠습니까?
또 한 가지 내게 주어진 은사를 충성되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충성된 지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존귀해 지고 존귀해진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은 참으로 존귀가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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