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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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12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마태복음 2:1-12 모든 삶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신학 주석 책 중에서 20권으로 된 내촌감삼이라는 일본인 목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그는 유명한 목회자요 신학자인데 원래는 불교에 입문하여 무엇인가 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애를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소이 자신의 몸을 쳐서 고행을 하며 도를 닦았는데 그의 말을 인용해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죄를 속하기 위하여 참선을 하는데 정좌를 하고 손끝에 촛불을 켜서 그 촛불이 다 타고 손끝의 살이 타기까지 하기를 수없이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내 죄를 속할 수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정좌를 하고 부동자세로 참선을 하는 동안 둔부의 살이 썩기까지 하고 왼쪽 눈이 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고행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러보겠다는 신념이 대단하였지만은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의 어떤 수단도, 어떤 방법도 죄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는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지은 죄이며,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은 결코 죄에서 자유 함을 얻을 수가 없고 그 자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종이 되어 살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방법은 의로운 피를 죄인을 대신하여 흘려 대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 것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가 되고 선물을 주고받고 즐거운 음악과 파티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구주로 찾아 왔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만나는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오시던 첫 번째 성탄절에도 모든 이들이 이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오늘 동방의 박사들과 그리고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만이 구주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참으로 우리의 모든 삶에 자유를 주시고 그리고 구원의 축복을 주신다고 하지만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지만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나 만나지를 못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빛과 대조가 되는 어둠이 가득한 캄캄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솔직히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 하는 지식 이상의 깨달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자가 죄에 빠지고, 사단에게 소속되어 버린 근본문제에 빠진 자신에 대한 절망감을 느껴 보았습니까?
그 징후를 살펴 볼 때에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다 지쳐 버렸습니다. 아예 포기한 사람들도 늘어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나라, 개인과 시대를 한번 돌아보세요. 사람이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서 죽게 된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난무하던 시대였습니다. 종교는 참과 거짓을 혼동 시켜 버립니다. 다른 구원을 말하는 타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성전에서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거짓 종교인들이 난무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철저하게 진리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들까지도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정치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로마의 학정과 헤롯의 폭압적인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불안을 느끼고 자기 아내들과 자식들을 무참하게 죽인 미치광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인정이 황폐하게 메말랐던 시기였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가 모든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하라 명령했습니다. 베들레헴에 온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에 들지 못하고 마구간으로 갔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임산부를 여관주인은 그들을 내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종교적으로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방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방황의 종지부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가?를 보시고 여러분들 또한 그러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진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지금도 페르시아 지방은 별로 점을 치고 그 운명을 판단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그 당시에도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세상을 읽고 운명을 점쳤습니다.
우주가 아무리 허허막막 할지라도 우연은 없습니다. 역사위에 되어지는 수많은 일들, 의미 없이 되어지는 일들이 아닙니다. 역사의 수많은 사건들, 목적 없는 반복이 아닙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장의 일은 농장 주인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결실로 가고 있듯이 우주섭리와 인류역사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 때 이일이 일어나고 저 때 저 일이 일어나고, 이 때 이일이 성취되고 저 때 저 일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과학자가 역사에 나타나 무엇을 발견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위대한 정치가가 역사에 나타나 역상의 질서에 영향을 주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역사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나타나 위대한 글을 남겨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하늘나라 건설을 향해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이 때 이 일이 필요하면 이 일이 있게 하시고 저 때 저 일이 필요하면 저 일이 있게 하십니다. 이 때 이 사람이 필요하면 이 사람을 들어 쓰시고 저 때 저 사람이 필요하면 저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반드시 만물의 이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사모하는 심령에게는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모든 창조물에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신성이 분명히 보여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변명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날마다 범사에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주관하심을 만나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구원의 은혜를 못 받은 이유는 우리의 범사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참으로 만나기를 사모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대대적인 성탄 행사를 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모하고 찾으면 만날 것입니다.
마 7: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기도로 찾고 말씀으로 찾고 열심히 예배에 참여함으로 찾고 순종함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찾을 때에 인도함을 잘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신분이 아닙니다. 어느 민족이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종교인인가 아닌가를 보시지 않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가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그 마음 중심이 어떠한가를 보십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마음 바탕이 바르냐? 동방사람, 이방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마음바탕이 삐뚤어 졌느냐? 대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은 마음속의 영혼의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의 영혼의 자세가 어떠했기에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제쳐 두시고 성탄축하자 제1호라는 엄청난 은혜를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때때로 의외의 인물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목사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종이 아니라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실례는 역사 속에서, 성경 속에서, 혹은 여러분의 환경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성탄” 이는 우주적인 대 사건이요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대 제사장이나 당시 교계를 주름잡던 종교인들이 제일먼저 축하에 참여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관심했고 대신 종교 전통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고 유대인들도 아니고 종교의 종자도 모르는 천문학 박사들이 극적인 축하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종교전문가들은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성경을 읽어 메시아 탄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에만 그쳤을 뿐 그들의 생활은 별개였습니다.
그리스도전설에는 별을 보고 길을 떠난 왕들과 박사들이 많았다는 것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오다가 별을 잃어버렸거나,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고 말았고 대 중국역사에도 보면 주 왕조 차오왕 24년 4월 8일에 남서쪽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서역으로 관리 차유와 친킹, 학자 왕준과 15명의 사람들을 새로 나신 성인을 만나게 하기 위해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구세주를 환영하기 위해 갔으나, 중간에 인도의 석가모니 포교 단을 만나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잘못알고,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방의 세박사들은 험난한 길을 끝까지 별의 인도를 받아 감으로써 아기예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진리를 몰라서 구원의 은혜를 못 받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심각한 일이 있는데 길로 인도 할 때에 따라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많은 유혹과 낙심을 참아야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까지 가는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길을 잘 갈 수 있었음은 별의 인도함을 따라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구원을 입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별과 같이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데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는 별빛을 보고 따라 갔다는 말은 말씀의 은혜를 상징하기도 하고 실제로 별이 빛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주의 성령님이 여러분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안에서 끝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 중에도 그리스도의 길을 좇아 나섰다가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단의 방해에 길을 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유혹에 사로잡혀, 진리에서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별을 바라보며 쫓아가던 박사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감동을 받은 자가 승리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박사들은 자기들이 발견한 별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으로 예수를 만났습니다.
지식은 행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이미 죽은 믿음이요 그 믿음은 아무런 구원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오 만 주의 주인이심을 안다면 틀림없이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것입니다.
이 박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표적인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황금과 유황과 몰약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자신에게 귀한 분이신 줄로 여기지 못하는 분은 귀한 것을 자신들을 위해 다 소비 할 것이요 주를 위하여 사용 할 것은 찌꺼기나 드릴 것입니다.
오래전에 영국 런던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런던 교외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행의 사람이 농가 주인에게 우산을 하나만 빌릴 수 있겠느냐고 청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우산을 빌려 달라고 하니 안 빌려줄 수는 없고 해서 자기가 쓰던 우산 중에서 다 부러진 낡은 우산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한 여인에게 그 우산을 씌워 주고 거기를 떠났습니다. 며칠 후 어떤 사람이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가 주었던 우산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라 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우산을 빌렸던 여인의 사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인은 여왕 엘리자베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농부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 분을 영접했을 것인 데, 그 분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것을. 오래 전 영국 런던 교외 어느 허름한 농가에서 여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실수가 성탄을 맞이했 던 팔레스틴 땅에도 일어났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 오셨지만 이 사건의 엄청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던 특권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 길을 찾아 와서 그리고 겸손하게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혹시 우리는 세상 ?에 도취되어서 더 중요 한 일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l944년 6월 나치 독일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준 한 사건이 있습니다.
히틀러가 제일 신임하던 독일의 명 장 로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롬멜 장군은 독일이 구라파 와 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남부 해안을 지키고 그 지역을 요새화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5월 말 며칠간 그곳의 날씨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바다에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안개가 껴서 작전을 전개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롬멜 장군은 며칠동안 좀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6월 6일이 롬멜 장군 부인의 생일이어서 장군은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왔 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롬멜 장군은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롬멜 이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갔던 것이 독일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 주게 된 것입니다.
작은 일 때문에 중대한 일을 실수하는 비극이 개인이나 국가에 종종 일어납니다.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입니다.
살아가려면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 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나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을 경배하며 맞이하여야 할 일이 얼마나 중요하신지 아셔야 합니다.
첫 번 성탄절에는 종교 지도자들, 믿음 좋다고 뽐내는 사람들은 다 참예를 못했으나 뜻밖의 사람, 동방박사들은 최초의 경배자로 참예했습니다. 그들은 마음바탕이 깨끗해 하나님께 발탁 받은 사람이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대망한 사람들이요, 먼 거리를 마다않고 불원천리 찾아온 사람들이요, 천신만고를 잘 참은 사람들이요, 귀한 예물을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도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을 소유하여 별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번 성탄절에 주님을 만나는 놀라운 축복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신학 주석 책 중에서 20권으로 된 내촌감삼이라는 일본인 목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그는 유명한 목회자요 신학자인데 원래는 불교에 입문하여 무엇인가 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애를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소이 자신의 몸을 쳐서 고행을 하며 도를 닦았는데 그의 말을 인용해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죄를 속하기 위하여 참선을 하는데 정좌를 하고 손끝에 촛불을 켜서 그 촛불이 다 타고 손끝의 살이 타기까지 하기를 수없이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내 죄를 속할 수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정좌를 하고 부동자세로 참선을 하는 동안 둔부의 살이 썩기까지 하고 왼쪽 눈이 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고행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러보겠다는 신념이 대단하였지만은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의 어떤 수단도, 어떤 방법도 죄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는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지은 죄이며,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은 결코 죄에서 자유 함을 얻을 수가 없고 그 자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종이 되어 살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방법은 의로운 피를 죄인을 대신하여 흘려 대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 것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가 되고 선물을 주고받고 즐거운 음악과 파티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구주로 찾아 왔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만나는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오시던 첫 번째 성탄절에도 모든 이들이 이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오늘 동방의 박사들과 그리고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만이 구주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참으로 우리의 모든 삶에 자유를 주시고 그리고 구원의 축복을 주신다고 하지만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지만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나 만나지를 못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빛과 대조가 되는 어둠이 가득한 캄캄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솔직히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 하는 지식 이상의 깨달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자가 죄에 빠지고, 사단에게 소속되어 버린 근본문제에 빠진 자신에 대한 절망감을 느껴 보았습니까?
그 징후를 살펴 볼 때에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다 지쳐 버렸습니다. 아예 포기한 사람들도 늘어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나라, 개인과 시대를 한번 돌아보세요. 사람이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서 죽게 된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난무하던 시대였습니다. 종교는 참과 거짓을 혼동 시켜 버립니다. 다른 구원을 말하는 타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성전에서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거짓 종교인들이 난무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철저하게 진리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들까지도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정치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로마의 학정과 헤롯의 폭압적인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불안을 느끼고 자기 아내들과 자식들을 무참하게 죽인 미치광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인정이 황폐하게 메말랐던 시기였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가 모든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하라 명령했습니다. 베들레헴에 온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에 들지 못하고 마구간으로 갔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임산부를 여관주인은 그들을 내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종교적으로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방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방황의 종지부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가?를 보시고 여러분들 또한 그러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진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지금도 페르시아 지방은 별로 점을 치고 그 운명을 판단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그 당시에도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세상을 읽고 운명을 점쳤습니다.
우주가 아무리 허허막막 할지라도 우연은 없습니다. 역사위에 되어지는 수많은 일들, 의미 없이 되어지는 일들이 아닙니다. 역사의 수많은 사건들, 목적 없는 반복이 아닙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장의 일은 농장 주인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결실로 가고 있듯이 우주섭리와 인류역사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 때 이일이 일어나고 저 때 저 일이 일어나고, 이 때 이일이 성취되고 저 때 저 일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과학자가 역사에 나타나 무엇을 발견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위대한 정치가가 역사에 나타나 역상의 질서에 영향을 주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역사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나타나 위대한 글을 남겨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하늘나라 건설을 향해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이 때 이 일이 필요하면 이 일이 있게 하시고 저 때 저 일이 필요하면 저 일이 있게 하십니다. 이 때 이 사람이 필요하면 이 사람을 들어 쓰시고 저 때 저 사람이 필요하면 저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반드시 만물의 이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사모하는 심령에게는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모든 창조물에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신성이 분명히 보여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변명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날마다 범사에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주관하심을 만나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구원의 은혜를 못 받은 이유는 우리의 범사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참으로 만나기를 사모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대대적인 성탄 행사를 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모하고 찾으면 만날 것입니다.
마 7: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기도로 찾고 말씀으로 찾고 열심히 예배에 참여함으로 찾고 순종함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찾을 때에 인도함을 잘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신분이 아닙니다. 어느 민족이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종교인인가 아닌가를 보시지 않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가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그 마음 중심이 어떠한가를 보십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마음 바탕이 바르냐? 동방사람, 이방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마음바탕이 삐뚤어 졌느냐? 대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은 마음속의 영혼의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의 영혼의 자세가 어떠했기에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제쳐 두시고 성탄축하자 제1호라는 엄청난 은혜를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때때로 의외의 인물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목사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종이 아니라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실례는 역사 속에서, 성경 속에서, 혹은 여러분의 환경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성탄” 이는 우주적인 대 사건이요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대 제사장이나 당시 교계를 주름잡던 종교인들이 제일먼저 축하에 참여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관심했고 대신 종교 전통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고 유대인들도 아니고 종교의 종자도 모르는 천문학 박사들이 극적인 축하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종교전문가들은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성경을 읽어 메시아 탄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에만 그쳤을 뿐 그들의 생활은 별개였습니다.
그리스도전설에는 별을 보고 길을 떠난 왕들과 박사들이 많았다는 것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오다가 별을 잃어버렸거나,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겨 길을 잃고 말았고 대 중국역사에도 보면 주 왕조 차오왕 24년 4월 8일에 남서쪽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서역으로 관리 차유와 친킹, 학자 왕준과 15명의 사람들을 새로 나신 성인을 만나게 하기 위해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구세주를 환영하기 위해 갔으나, 중간에 인도의 석가모니 포교 단을 만나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잘못알고,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방의 세박사들은 험난한 길을 끝까지 별의 인도를 받아 감으로써 아기예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진리를 몰라서 구원의 은혜를 못 받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심각한 일이 있는데 길로 인도 할 때에 따라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많은 유혹과 낙심을 참아야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까지 가는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길을 잘 갈 수 있었음은 별의 인도함을 따라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구원을 입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별과 같이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데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는 별빛을 보고 따라 갔다는 말은 말씀의 은혜를 상징하기도 하고 실제로 별이 빛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주의 성령님이 여러분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안에서 끝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 중에도 그리스도의 길을 좇아 나섰다가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단의 방해에 길을 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유혹에 사로잡혀, 진리에서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별을 바라보며 쫓아가던 박사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감동을 받은 자가 승리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박사들은 자기들이 발견한 별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으로 예수를 만났습니다.
지식은 행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이미 죽은 믿음이요 그 믿음은 아무런 구원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오 만 주의 주인이심을 안다면 틀림없이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것입니다.
이 박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표적인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황금과 유황과 몰약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자신에게 귀한 분이신 줄로 여기지 못하는 분은 귀한 것을 자신들을 위해 다 소비 할 것이요 주를 위하여 사용 할 것은 찌꺼기나 드릴 것입니다.
오래전에 영국 런던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런던 교외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행의 사람이 농가 주인에게 우산을 하나만 빌릴 수 있겠느냐고 청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우산을 빌려 달라고 하니 안 빌려줄 수는 없고 해서 자기가 쓰던 우산 중에서 다 부러진 낡은 우산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한 여인에게 그 우산을 씌워 주고 거기를 떠났습니다. 며칠 후 어떤 사람이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가 주었던 우산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라 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우산을 빌렸던 여인의 사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인은 여왕 엘리자베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농부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 분을 영접했을 것인 데, 그 분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것을. 오래 전 영국 런던 교외 어느 허름한 농가에서 여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실수가 성탄을 맞이했 던 팔레스틴 땅에도 일어났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 오셨지만 이 사건의 엄청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던 특권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 길을 찾아 와서 그리고 겸손하게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혹시 우리는 세상 ?에 도취되어서 더 중요 한 일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l944년 6월 나치 독일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준 한 사건이 있습니다.
히틀러가 제일 신임하던 독일의 명 장 로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롬멜 장군은 독일이 구라파 와 전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남부 해안을 지키고 그 지역을 요새화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5월 말 며칠간 그곳의 날씨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바다에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안개가 껴서 작전을 전개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롬멜 장군은 며칠동안 좀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6월 6일이 롬멜 장군 부인의 생일이어서 장군은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왔 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롬멜 장군은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롬멜 이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갔던 것이 독일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 주게 된 것입니다.
작은 일 때문에 중대한 일을 실수하는 비극이 개인이나 국가에 종종 일어납니다.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입니다.
살아가려면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 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나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을 경배하며 맞이하여야 할 일이 얼마나 중요하신지 아셔야 합니다.
첫 번 성탄절에는 종교 지도자들, 믿음 좋다고 뽐내는 사람들은 다 참예를 못했으나 뜻밖의 사람, 동방박사들은 최초의 경배자로 참예했습니다. 그들은 마음바탕이 깨끗해 하나님께 발탁 받은 사람이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대망한 사람들이요, 먼 거리를 마다않고 불원천리 찾아온 사람들이요, 천신만고를 잘 참은 사람들이요, 귀한 예물을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도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을 소유하여 별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번 성탄절에 주님을 만나는 놀라운 축복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