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피해 숨은 곳에서 나와 은혜를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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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8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창 세 기 3: 7-10 하나님을 피해 숨은 곳에서 나와 은혜를 받읍시다.
어제 오전에 우리 집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다자고자로 11시에 KBS 1 방송을 틀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번에 백기홍 감독이 축구에 대하여 인터뷰하는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고 해서 재방송이라도 하는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문재진 집사님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문재진 집사님이라 하면 지체장애 2급 뇌성마비 장애자입니다. 교회를 다니며 매년 달력을 주문받아서 일년을 생활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마침 사랑의 카네이션이라는 프로그램에 약20분간 출연이 되어나오더라구요
자신이 장애자며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지 할 수 없는 노인들을 돌보는 내용들로 엮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10년이 넘도록 알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있었고 우리 성도들 중에도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지체 장애자라는 틀에 매여 있는 자가 더 이상 아니라 거기에서 자유하고 있었으며 이미 다른 성한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선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생각하며 그 어머니에 베풀지 못한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입니까? 그가 믿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나 이야기를 하면 항상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에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자유하고 있는 자였으며 오히려 자신이 원망과 한숨과 걱정과 비하하는 산물이 아니라 선을 위하여 아름답게 사용되는 자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우리 가운데는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 매여 완전히 삶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또 한 사람의 삶을 들어다 보게 되었습니다.
문재진 집사와 같은 40대의 남자였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문집사님은 46세 이 사람은 43세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 종이 되어 그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2전에 그의 부모님들이 돌아 가셨는데 그로니깐 그의 나이 11세부터 43세가 되도록 그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집에서 거의 폐허가 된 동굴 같은 곳에서 32년간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습니다. 선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릅니다. 도를 닦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모에게 너무 불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를 떠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11살 아이가 부모에게 불효했다면 얼마나 했겠으며 지금까지 32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 그 죄의 문제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자신 혼자 살아가기도 너무나도 답답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우울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조금이라도 그 생각의 사고를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인데 아직까지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와 같은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생각과 사고를 바뀌기만 하면 보라 옛것이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사람이 행복하고 복 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은 결코 인간적인 조건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똑같이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들이 있었지만은 그러나 그들의 사고를 어떻게 가지느냐? 에 따라서 장애자라도 얼마든지 선을 위하여 자가 될 수가 있고 정상인이라 해도 스스로 불행한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보면 스스로 작은 힘을 가지고도 남을 행복하게 하며 살아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 되도 스스로 비관하며 불행해 하며 남을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자신의 팔자를 사람의 조건에 두고 있느냐? 하나님께 두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약 1:16-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어 놓은 사람이요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놓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 차이가 참으로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참으로 자유케 하리라 할렐루야!
우리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 올 수가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피해서 숨어 살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꺼리고 있고 그리고 나오고 싶어도 나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거저 하나님을 피하여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 모든 이들의 삶이 되고 있습니다.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소히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삶의 짐에 눌려서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겨우 생각하는 것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가 최대의 과제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오면 됩니다.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느냐?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오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님이 다 감당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죄를 범한 인생이 죄악에 눈이 띄어 자기 자신을 바라 볼 때에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나뭇잎 치마는 오래 가지를 못하고 햇볕에 말라 부셔지고 또 해 입고 또 부셔지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루어 놓은 것 같아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 또 일이 생기고 또 일이 생기고 감당하기가 너무 힘든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매일 매일 그렇게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삶이 내게는 피 할 수 없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불러서 다시는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지 않아도 될 아주 질기고 평생을 입을 수 있는 치마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이 가죽으로 만든 치마였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가죽 옷이 생기려면 짐승을 잡아야 하는데 아담의 가죽 옷을 짓기 위해서는 짐승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대신 피를 흘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만 의지하기만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은 훌륭한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하이든에게 묻기를 “당신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ꡓ 하이든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셔서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작곡한 곡 가운데 유명한 천지 창조라는 곡이 있는데 찬송가 75장입니다. 그는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톤의 실낙원에 근거해서 그는 이 위대한 천지 창조를 작곡했는데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되던 날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파서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뒤 자석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키며 “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ꡓ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을 때 하이든은 청중들의 환호를 중단시키면서 말하기를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ꡒ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ꡓ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위대한 [천지창조]라는 위대한 곡을 주신 것입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삶은 세상에서 무엇을 얻기 위하여 매여 있는 종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선을 위하여 살아 갈 수 있는 자가 되고 선을 위하여 살아가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놀랍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는 우리의 삶에 매여 여유도 없고 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모든 조건에 매여 있지 않고 자유하며 살아 갈 수 있는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브라질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벨로 호리전테에 출판소가 있어서, 그는 적어도 매년 한 번씩 브라질을 여행하며 거기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여러 단체를 방문하는데 한번은 서부 브라질을 떠나 벨로 호리전테로 가기 위해 비행기 출발 시간 수 분 전에 공항 매표창구에 도착을 하고보니 매표원은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표를 끊을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끊어 주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가 탈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 있었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타야 했지만 그는 매표창구에서 돌아 나와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앉아 그 일에 대하여 그가 기도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포르투갈어로 방송이 나왔습니다. ꡒ공항이 안개에 싸여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ꡓ
그 즉시 그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65장 24절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ꡒ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ꡓ 가방을 집어 들고 그는 서둘러 매표창구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탈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표를 끊어 달라고 부탁하니 표를 받자마자 안개가 걷히고 비행기는 이륙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가 어떤 일을 할 기회도 갖기 전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화라도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을 피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거기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전도자 요한 웨슬레의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즉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이 최선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어떤 상황이든 우리에게는 최선의 시간이고 최대의 행복입니다. 현재가 언제나 극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으로 더 확실하게 우리의 식탁에 같이 앉아 주시고 우리의 침상에 같이 누워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보다 더 중대하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어제 오전에 우리 집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다자고자로 11시에 KBS 1 방송을 틀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번에 백기홍 감독이 축구에 대하여 인터뷰하는 내용을 방송한 적이 있다고 해서 재방송이라도 하는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문재진 집사님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문재진 집사님이라 하면 지체장애 2급 뇌성마비 장애자입니다. 교회를 다니며 매년 달력을 주문받아서 일년을 생활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마침 사랑의 카네이션이라는 프로그램에 약20분간 출연이 되어나오더라구요
자신이 장애자며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지 할 수 없는 노인들을 돌보는 내용들로 엮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10년이 넘도록 알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있었고 우리 성도들 중에도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지체 장애자라는 틀에 매여 있는 자가 더 이상 아니라 거기에서 자유하고 있었으며 이미 다른 성한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선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생각하며 그 어머니에 베풀지 못한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입니까? 그가 믿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나 이야기를 하면 항상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에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자유하고 있는 자였으며 오히려 자신이 원망과 한숨과 걱정과 비하하는 산물이 아니라 선을 위하여 아름답게 사용되는 자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우리 가운데는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 매여 완전히 삶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또 한 사람의 삶을 들어다 보게 되었습니다.
문재진 집사와 같은 40대의 남자였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문집사님은 46세 이 사람은 43세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 종이 되어 그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2전에 그의 부모님들이 돌아 가셨는데 그로니깐 그의 나이 11세부터 43세가 되도록 그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집에서 거의 폐허가 된 동굴 같은 곳에서 32년간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습니다. 선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릅니다. 도를 닦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모에게 너무 불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를 떠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11살 아이가 부모에게 불효했다면 얼마나 했겠으며 지금까지 32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 그 죄의 문제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자신 혼자 살아가기도 너무나도 답답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우울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조금이라도 그 생각의 사고를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인데 아직까지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와 같은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생각과 사고를 바뀌기만 하면 보라 옛것이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사람이 행복하고 복 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은 결코 인간적인 조건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똑같이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들이 있었지만은 그러나 그들의 사고를 어떻게 가지느냐? 에 따라서 장애자라도 얼마든지 선을 위하여 자가 될 수가 있고 정상인이라 해도 스스로 불행한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보면 스스로 작은 힘을 가지고도 남을 행복하게 하며 살아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 되도 스스로 비관하며 불행해 하며 남을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자신의 팔자를 사람의 조건에 두고 있느냐? 하나님께 두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약 1:16-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어 놓은 사람이요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놓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 차이가 참으로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참으로 자유케 하리라 할렐루야!
우리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 올 수가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피해서 숨어 살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꺼리고 있고 그리고 나오고 싶어도 나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거저 하나님을 피하여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 모든 이들의 삶이 되고 있습니다.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소히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삶의 짐에 눌려서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겨우 생각하는 것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가 최대의 과제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오면 됩니다.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느냐?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오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님이 다 감당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죄를 범한 인생이 죄악에 눈이 띄어 자기 자신을 바라 볼 때에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나뭇잎 치마는 오래 가지를 못하고 햇볕에 말라 부셔지고 또 해 입고 또 부셔지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루어 놓은 것 같아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 또 일이 생기고 또 일이 생기고 감당하기가 너무 힘든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매일 매일 그렇게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삶이 내게는 피 할 수 없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불러서 다시는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지 않아도 될 아주 질기고 평생을 입을 수 있는 치마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이 가죽으로 만든 치마였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가죽 옷이 생기려면 짐승을 잡아야 하는데 아담의 가죽 옷을 짓기 위해서는 짐승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대신 피를 흘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만 의지하기만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은 훌륭한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하이든에게 묻기를 “당신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ꡓ 하이든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셔서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작곡한 곡 가운데 유명한 천지 창조라는 곡이 있는데 찬송가 75장입니다. 그는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톤의 실낙원에 근거해서 그는 이 위대한 천지 창조를 작곡했는데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되던 날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파서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뒤 자석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키며 “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ꡓ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을 때 하이든은 청중들의 환호를 중단시키면서 말하기를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ꡒ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ꡓ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위대한 [천지창조]라는 위대한 곡을 주신 것입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삶은 세상에서 무엇을 얻기 위하여 매여 있는 종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선을 위하여 살아 갈 수 있는 자가 되고 선을 위하여 살아가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놀랍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는 우리의 삶에 매여 여유도 없고 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모든 조건에 매여 있지 않고 자유하며 살아 갈 수 있는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브라질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벨로 호리전테에 출판소가 있어서, 그는 적어도 매년 한 번씩 브라질을 여행하며 거기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여러 단체를 방문하는데 한번은 서부 브라질을 떠나 벨로 호리전테로 가기 위해 비행기 출발 시간 수 분 전에 공항 매표창구에 도착을 하고보니 매표원은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표를 끊을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끊어 주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가 탈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 있었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타야 했지만 그는 매표창구에서 돌아 나와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앉아 그 일에 대하여 그가 기도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포르투갈어로 방송이 나왔습니다. ꡒ공항이 안개에 싸여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ꡓ
그 즉시 그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65장 24절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ꡒ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ꡓ 가방을 집어 들고 그는 서둘러 매표창구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탈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표를 끊어 달라고 부탁하니 표를 받자마자 안개가 걷히고 비행기는 이륙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가 어떤 일을 할 기회도 갖기 전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화라도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을 피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거기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전도자 요한 웨슬레의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즉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이 최선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어떤 상황이든 우리에게는 최선의 시간이고 최대의 행복입니다. 현재가 언제나 극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으로 더 확실하게 우리의 식탁에 같이 앉아 주시고 우리의 침상에 같이 누워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보다 더 중대하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