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인정받고 행함으로 복을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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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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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5-13 믿음으로 인정받고 행함으로 복을받자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는 독일의 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법관이 되기 위해서 에루프르트 대학에 들어가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함께 길을 가다가 옆에서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수도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서 많은 고행을 했습니다. 심한 노동 명상 금식, 기도 그러나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과거보다 분명히 선을 행하고 죄를 더 적게 짖는데 마음의 가책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그리이스 성경책을 발견하고 보던 중 로마서 1:17절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는 비로소 이 말씀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무슨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모든 사실을 믿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수고해서 내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시에 로마 교황청에서는 면죄부를 사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교회의 행위에 반대을 하고 그 유명한 종교 개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시간까지 우리는 나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하였습니까?
그러나 무엇을 이루었다하기 보다는 오히려 짐을 더 지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루지 못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이루었다 할지라도 허전함을 금 할 길이 없었습니다.
마치 루터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도원에 들어가서 소히 종교적인 행위를 하였지만 오히려 그에게는 문제가 해결 되었다 라기 보다는 더욱 짐이 더 무거워질 뿐이었습니다.
자꾸만 우리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사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 진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그냥 남아 있고 오히려 더 큰 짐으로 다가 오고 있을 뿐입니다.
유명한 전도자 바울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그 나름대로의 선을 열심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행한 일은 가시채를 뒤 발길질 하는 것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선을 따르면 따를수록 그에게는 점점 고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는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달리 방법이 없고 오직 유일의 방법이라고 여기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을 가질 필요가 없고 내가 선히 여기는 데로 살아가면 가장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인생의 길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게하며 비참하게 만들고 허무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는 그의 회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인생이 70이요 강건하여 80을 산다 할지라도 수고와 슬픔뿐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저의 교회는 참으로 우리 성도들의 짐을 내려 주고 싶을 뿐입니다.
여태까지 내 스스로 지고 오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성경에는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말씀이 없다. 웃으실 줄 몰라서가 아니라 웃으실 만한 일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우셨다는 기사는 많다. 그만큼 우실 일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사람들이 영접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그만큼 우실 일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사흘이나 되어 냄새가 낫을 때에 사람들은 말씀으로 다시 살릴 수 있는 예수님을 믿기 보다는 죽은 자로만 생각하고 애곡을 하고 잇으니 에수님이 너무나도 황당하셔셔 울어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는 말씀 한 마디면 나사로는 그 죽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나 올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죽은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걸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지를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믿지 않고 또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은 상당히 기뻐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엘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믿음있는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뻐셨겠습니까?
한 백부장의 믿음은 모처럼 예수님을 흐뭇하게 했는데 알고 보면 백부장이 예수님께 무엇을 해 드려서가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이 백부장의 요청을 들어 주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랜만에 귀한 믿음을 만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믿음있는 자를 찾으시고 그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하시는 일을 그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방인 백부장은 어떤 믿음을 보였습니까?
말씀을 듣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우리지 않습니다.
믿음은 겸손입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조건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무슨 체면을 세우고 아직도 내가 무엇인가를 할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의는 다 낡은 옷과 같아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이 방해가 되는 줄 알고 배설물과 같이 버리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백부장은 예수님이 동네에 들어가셨는데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식민지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 주둔군인 로마의 백부장이 만인의 눈앞엔 길거리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예사스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와같은 행위는 평소에 볼 수 없는 것임은 물론, 상부에 보고 되면 백부장에게 큰 문책이 내릴 위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부장은 서슴지 않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께 무릎을 꿇고 내 집에 중풍들린 종이 있는 큰 괴로움을 당하니 고쳐주소서하고 절하며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자가 취하는 태도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결코 인간 누구 앞에 나왔다고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스타일 다 구깁니다.
여기에 서 있는 목사부터 여러분보다 잘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도 여러분보다 띄어 난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인간 누구누구 앞에 서로 평가하고 비교하기 위해 오신 자들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올라 온 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이 무릎을 끊고 이스라엘 어떤 인간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만유의 주재자 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교회에서도 자꾸만 인간적인 조건을 내 세우면 나도 모르게 교만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있는 나를 생각 할 때에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은혜가 되는 사람은 얼마나 겸손해 지고 순진해 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어린아이 같이 순진해 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무엇입니까?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감사합니다 하고 받은 것입니다.
나에게 말씀을 하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다는 것을 안다면 그 말씀에 감히 토를 달겠으며 의심을 하겠읍니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어찌 그 말씀만 들어도 감지 덕분입니다 하지 않겠습니까?
이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은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이신 줄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해야 할 분이 아니고 그 명령만을 듣는 것만도 황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백부장은 권세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이 가진 권세의 배후에는 로마 정부의 권세가 있습니다. 로마의 권세란 로마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치, 경제, 군사력을 총 집합한 것입니다.
당시의 로마의 권세는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기에 예수님의 권세야말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위대한 창조주의 권세라는 것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예수님께 예수님, 주의 말씀 한마디면 천지만물이 다 만들어지는데 저희 집까지 오실 필요가 있습니까? 말씀만 해주시면 병이 깨끗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한 위대한 신앙 고백이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하고 능력이 있는 줄 아십니까?
별로 위대하지 못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능력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 시카고에서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고, 더욱이 시가지 한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렸는데 이를 보고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 하셨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두십니까?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없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주먹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볼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하고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15년 전에 한번 가봤습니다.
이제 좀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가에 귀를 기우려 보십시오
금보따리 돈 보따리 떨어지나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말씀으로 찾아 오십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면 상당히 곤란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말씀하고 관계가 없이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성장이 없고요 아무런 하나님으로부터 기대 할 만한 것이 없어요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실 때에 꼭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말씀을 하십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부뚜막의 소금이 짜다는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집어넣어야 맛을 내는 것입니다.
많은 말씀의 은혜를 받고 말씀을 받았지만은 말씀의 행위가 없는 것은 위장되고 가증하고 그 믿음은 아무런 역사를 가져오지 못하는 죽은 믿음입니다.
말씀을 주어도 이 말씀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을 하는 아무런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행치 않는 일이 우리 가운데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다음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가니라고 했습니다.
가라 가보니 그 시로 나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새로운 결단입니다.
집을 떠나 올 때에 하인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말씀을 믿고 다시 그 하인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은 말씀하시니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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