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시인하고 인정 할 때에 구원을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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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35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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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 믿음은 시인하고 인정 할 때에 구원을 가져옵니다.
중국은 춘절을 맞이하여 13-18억이나 되는 인구가 가족과 친지를 만나기 위하여 귀성 행렬에 동참한다고 합니다. 넓고도 넓은 나라이기에 어떤 이는 10여일이나 되는 시간을 귀성을 위해 보내지만 결코 지겹다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고향을 찾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도 만나기를 원하느냐? 라는 질문에 그들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기다리고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자신들의 몸보다도 더 큰 보따리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나누어 줄 옷과 선물들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에 인간이 정을 이렇게도 그리워하고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무엇이든지 다 베풀어 주고 싶어 하는 이 성품은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혈육의 정으로만 인간의 관계를 유지 하려고하니 이 정이 한계를 다 할 때에는 얼마나 허무하고 슬플 것인가?를 생각 할 적에 아름답다고만 여겨지지 않고 나중에 혈육의 정으로만 그들의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은 목회자인 저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짐을 금 할 길이 없습니다.
중국에 못지않게 유교의 영향아래 있는 우리나라도 음력설을 쉬는데 굉장한 이산가족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3800만 명이 이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우리 역시 인지상정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볼 때에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하여 설음식을 장만하고 또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는 선물들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참으로 기쁘게 만나니 이 순간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말하기를 이렇게도 좋아하는 설을 3일만 쉴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10일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보다 스트레스 해소하는데 온 민족이 행복해지는 비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음 대통령은 설 추석을 10여일쯤 쉬게 한다고 공약을 하면은 당선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 자식이 만나고 부모님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챙겨서 보따리 보따리 싸서 보내고 자식은 용돈을 두둑이 내어 놓고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 모습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지 모릅니다.
무엇인가? 부족하고 이러한 혈육의 만남은 혈육의 정이 있는 만큼 더 혈육이기 때문에 당할 아픔을 생각 할 적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또 한 가지 아름답지 못한 것은 반드시 감사해야 할 그 분 곧 하나님을 그들의 생활 가운데 빼버라고 인정하지를 못하고 하나님께 받은 것만을 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여기고만 있으니 이 얼마나 무지하고 하나님의 질투를 살만한 일을 하느냐? 말입니다.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을 누가 주셨습니까? 꿈에라도 잊지 못할 그 사랑을 받고 부모들은 누가 주셨습니까? 맛있는 5곡백과를 가지고 산해진미로 즐겁게 나누어 먹도록 내신 분이 누구십니까?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 아니시고 누구십니까?
내 가정을 주시고 가족의 즐거움을 주셨지마는 겨우 우리 인생은 혈과 육신만을 자랑하고 즐거워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도 지난 2일간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 않으시니 형제들만이 만나서 혈육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좀 혈육의 정이 부족 한점이 있었다 할지라도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만 은 그러나 참으로 혈육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혈육적인 것으로는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미비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피차 만족 할 수가 있으며 유사시에 무슨 일을 당 한다할찌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 형제들의 혈육의 정은 우리 하나님이 피차 함께 계시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성도 여러분들은 부모 형제들과 혈육의 정을 나누었습니까? 참으로 피차 만남이 만족하였습니까?
아직도 다 나누지 못하여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도 계시는데요
어찌 우리 인생이 혈육의 정으로만 만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혈육으로만 부모 자식 형제간의 모든 정을 다 나누지 못하여 마음아파하고 아니면 그 혈육의 관계 때문에 더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롬 8: 5-13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육신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육신으로만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은 삶을 살아야 참된 삶을 사는 자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혈육의 관계만을 중요시 여기고 그 선에서 끝난다면 참으로 여러분들은 그 육체로 잘 사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슬픔에 처할 것이요 망 할 것입니다.
올 일월에 모 방송국에서 한국인 미주 이민 100년 특집에서 이런 사실을 보고 저 역시 참으로 무엇인가 가슴을 꽉 누르는 것 같은 슬픔을 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에 경기도 포천에 사는 한 남자가 1905년에 22세의 아내와 4개월 된 아들을 남겨두고 미국으로 돈을 벌겠다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하와이로 갔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소망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위하여 많은 돈을 벌어서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은 결국은 나이 채 50이 되지 못하여 미국의 한 철광 광부로 일하다가 갱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는 꿈에라도 그리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그의 삶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시신마저 불이 타서 그 인줄을 알지 못하고 그 주위의 정황을 보고 그의 시신인줄 알고 무덤을 만들었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 KBS 방송국에서 미국 이민 특집으로 만드는 중 그의 무덤을 기점으로 하여 역으로 그 사람의 기구한 신분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는 하와이에서 2여년 파인애플 농장에서 50센트 정도의 노임을 받고 일을 하다가 본토에 가면 1달러 50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샌프란시스코로 해서 본토에서 돈을 벌기 위하여 이곳저곳을 헤매 다니는 것을 추적 할 수가 있었습니다. 농장에 농원으로 석탄 광부로 철광석 광부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가족을 그리워 하다가 그의 생애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였다는 말이 없고 그의 다른 후손도 남겨져있지를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요 통탄해 할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의 아들의 아들 그리고 또 그 아들 증손자가 이와 같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즉 증조 할아버자가 이국 땅에서 이렇게 고국을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아버지를 자신의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머니, 곧 그의 아내를 그리워하시다가 끝내 그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타국에서 돌아가신 것을 너무나도 가슴 아파하며 혈육의 정을 억재하지 못하여 그 할아버지의 묘비에다가 그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아내와 아들의 묘지의 흙을 가지고 가서 붙고 한국의 사과와 배를 가지고 그 앞에 절을 하면서 그리고 하는 말이 할아버지는 고국의 이 과일을 한번도 잡줘보지 못하고 돌아갔셨습니다 하고 흐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혈육을 가진 우리들의 삶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당시의 한국계의 신문을 보면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회를 위하여 헌금을 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그의 수입의 일부분을 또한 독립군 자금을 위하여 내어 놓은 부분들을 많이 찾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려운 외로운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은 그가 믿은 신앙의 힘으로 그의 역경을 잘 감당하고 살았고 선한 일에 사용이 되었으니 비록 이 세상에서는 사랑하는 혈육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은 천국에서 만날 길을 열어 놓고 있었으니 그 삶은 결코 슬픔의 빛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주 위대하고 귀한 믿음의 삶을 살았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그 후손들도 참으로 이 할아버지를 만나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혈육의 정에서만 흐느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믿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과 회한의 역사로만 보지 말고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야만 하는 가장 큰 교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 아이고 우리 엄마 우리 아빠,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참으로 내 새끼 내 새끼가 그렇게 귀하고 우리 엄마 우리 아빠가 나를 위해 그렇게 수고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혈육의 정만으로는 안 됩니다.
내 부모 잘해드리고 내 자식 잘 되기를 비는 것에서 우리 인생을 끝내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내 부모, 내 자식 모두가 하나님이 참으로 축복해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영접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번 설 명절에 여러분은 얼마나 내 사랑하는 혈육의 정을 나누는 가족들에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시인하게 하였습니까?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없고 복되고 귀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육신적인 정만을 요구하고 베풀고 있는데 이제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그 연휴는 어떤 것인 줄은 모르지만 동생이 형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일입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동생이 내려가지고 했는데 형이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니 그 혈기를 이기지 못해서 형을 죽인 것입니다. 아니 형은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형이 되가지고 등등 이런 것일 것입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이 혈육적인 문제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도 문제가 많은 것을 봅니다.
동생이 형수에게 이럴 수 있느냐? 우리 부모에게 형제가 형제간에 시누이가 올케에게 왜 우리 부모에게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느냐? 하고 정을 요구합니다.
시누이 자신이 시부모님에게나 잘하지 간섭하는 이런 일들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부모 자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부요 부부가 더 가깝고 중요한 일인데 시누이가 시부모보다 우선입니다.
부부가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하든지 간섭하지 말고 가만히 나 두어야합니다.
또 어떤 남편은 아내가 부모에게 잘 못한다고 아내를 무시하는데 그것도 잘못되었습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잘 타일러 이해를 시키고 아내와 잘 협력해서 부모님들과의 관계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보다 결혼한 사람은 부부가 우선입니다. 우리네 부모님들도 자녀들을 위한 양육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혈육의 관계에 매여 참으로 만들지 못할 비극들을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너무 인간의 정에 매여 있고 이것만을 요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참으로 인간적인 것 너무나도 인간적인 요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신체적인 조건은 무엇인가를 인간의 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누구든지 간에 정을 요구하고 그에게 정을 베풀지 않으면 상당히 우울해지고 불쾌해하고 살 소망까지 잊어버릴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이 모두가 다 그러하지 않습니까?
마치 베드로와 요한이가 지나가니 아니나 다를까 5절 저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낼 것이요 동정을 던져 줄 것이요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인간의 정을 피차 충족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는 평생 그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정을 요구하며 살다가 정에 굶주리고 죽을 것입니다.
아니 정이 만족하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을 보여주고 인정하고 시인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1일 지구 귀환 도중 공중 폭발해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습니까?
미대통령 부시는 성명에서 “이 우주인들은 이러한 위험을 알고서도 자신들이 인생에서 높고도 고귀한 목표를 갖고 있음을 인식해 기꺼이 이 위험을 마주했다. 용기와 대담성과 이상을 지닌 이들이었기에 우리는 더욱 그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또한 모든 미국인들은 오늘 갑작스러운 충격과 슬픔에 잠긴 이들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니다. 온 국민이 여러분과 슬픔을 같이 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사랑한 이들은 언제나 이 나라의 존경과 감사를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이 목숨을 걸었던 대의는 계속될 것이다. 인류는 발견과 이해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의 세계 너머 암흑으로 인도되고 있다. 우주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 하늘에서 우리는 파괴와 비극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멀리에 위안과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어떤 혈육의 정에 매여 있는 사건으로 보지 않고 더 멀리 바라다보는 인류의 소망의 한 장으로 바라보고 있었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이 사건을 믿음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모습이야 말로 너무나도 감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성명을 계속 하기를 “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누가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였느뇨. 수많은 별들을 하나하나 지으시고 저마다 이름을 지으신 분이 아니었더냐. 그의 위대한 권능과 큰 힘으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지니라고 설파했다. 별의 이름을 지은 창조자는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일곱 영혼의 이름도 알고 있다. 컬럼비아호 승무원들은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무사히 영원한 집에 도착하리라고 기도할 수 있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그들이 원하는 인간적인 정을 베풀지는 않았지만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육신 정이 없지만은 아니 그것으로는 그를 근본적인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믿음을 보여주고 인정하고 시인케 할 때에 그 앉은뱅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 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혈육의 정으로 참으로 만족해 할 수 없고 오히려 정으로 인하여 더 불쾌해지고 불만족해 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정에 매여 있는 자가 더 이상 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으로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 믿음의 복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혈육의 정에 매여 정으로 모든 만족을 얻고 결국 정으로 망 할 자에게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시인치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믿음 때문에 내 사랑하는 자들이 아직도 정에 목말라하며 받을 구원과 거리가 멀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신인하고 인정하는 믿음 속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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