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섬기는 믿음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5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요한복음 6:4-13 감사로 섬기는 믿음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 밀런 (Miilan)이 낳은 에디슨(Edison, Thomas Alva)은 무선전신기, 활동사진기, 축음기, 백열전구 외에도 수많은 기계를 발명하여 인류 세계에 크게 공헌한 대발명가입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평생 2000여개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연구입이다. 그래서 에디슨은 지금까지 발명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디슨은 그가 처한 환경은 결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만족 할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그는 결코 천재가 아니고 어렸을 때는 저능아 취급을 받아서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긴 기차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차 안에 작은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던중 기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화학 약품이 든 약병 하나가 떨어져 불이 났습니다. 그 동안 연구한 내용들이 불에 탔습니다. 그리고 에디슨도 위험하게 되어 그 때 차장이 급히 달려와 에디슨을 차창 밖으로 내어 던졌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귀를 다쳐 청력을 잃고 귀머거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을 바쳐 수많은 연구를 했고 그 결과로 많은 발명을 인류 문화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감사함으로 받아드리는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귀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소리를 잘 듣지 못하니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내가 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귀머거리가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감사는 감사 할 일들을 불러오고 불평하면 불평 할 일들을 불러 오게 됩니다.
딤전 4: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불평하는 곳에서는 지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불만하고 불평하는 것은 잠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했으니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잠 30:15-16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불만하는 자는 결코 만족 할 수가 없고 감사하는 자로 바꾸어 질 때 그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 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지 그리고 불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하는지를 보십시오.
저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 자꾸만 임하여 삶에 만족 할 수 있도록 하시만은 그렇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은혜가 되지 않고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사람이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를 가장 높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 할 수가 있지만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불평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참으로 믿음이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척도는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될 수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확실한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에 대하여 긍정적이요, 그리고 그 긍정적인 모습이 감사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 할 수 있음은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믿음 주세요. 믿음 주세요. 하지 말고 감사하는 자가 될 때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바꿔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를 잘 살펴보십시오.
감사 할 일이 많습니까? 불평 할 일이 많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감사와 불평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평의 요소를 붙잡고 일하시지 않으시고 감사의 조건을 가지시고 역사를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보십시오.
누구에게 일감을 주고 누구에게 잘 해 주고 싶습니까?
불평 불만하는 자입니까?
주었던 것도 빼앗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주고 싶고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까?
내 아내도 내 남편도 내 자식도 불평 불만해 보십시오. 참으로 싫지 않습니까? 잘 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아내 남편 자녀를 볼 때에 얼마나 잘해 주고 싶고 더 잘해 주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예배요 제사 재물로 보시고 그것을 상당히 영화롭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감사하는 곳에 당연히 큰 구원을 가져오게 하심은 당연한 일입니다.
감사하는 믿음이 없어서 어려운 가운데 자꾸만 빠져가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감사 하면은 그 지옥 같은 삶이 드디어 천국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는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가장 긍정적으로 여기는 믿음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일어 주면은 언제든지 부정적으로 대함으로 그들의 삶에 구원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을 바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좋으셔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선한 계획을 가지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행할 것을 일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선한 뜻을 참으로 긍정적으로 감사하면서 받아 드리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대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인 내용이 대체로 보면 인간적으로 아주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게 무엇입니까?
남는 것은 인간적인 본래의 모습만 남은 것이지 하나님의 뜻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맙니다.
양파는 계속 까면 안 됩니다.
그게 알맹인데 껍질인줄 알고 계속 까기만 해 보세요
아무런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굶주리고 있는 무리들에게 배불리 먹이시려고 하시는 선한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인간들은 역시 똑똑합니다. 합리성과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에 부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 돈으로도 배불리 먹을 수가 없습니다.
꼭 우리 가운데서도 돈을 먼저 따지고 내세우는 자가 있습니다.
누가 돈이 있어야 할 줄을 모르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더 중요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이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자들이 돈으로 망하였지 그 돈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는커녕 언제든지 제동만 걸었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이루어진 선한 일들을 하나하나 보면 은 만약에 돈을 우선순위로 했더라면 참으로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 돈하다가 보니 지금까지도 이루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이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도 내 형편을 고려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형편에 매여 있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에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행동해 보십시오.
생각지 않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또한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는 그 뜻에 따라 내 형편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순진한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어른은 아는 것이 많아 먼저 계산되고 먼저 판단을 합니다.
벌써 그 결과를 스스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결과는 언제든지 부정적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그렇게 해서 안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순종을 하지 않는 이유를 보게 되는데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그렇게 한다고 되겠느냐? 는 어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행에 옮길 수도 없고 옮기지 않지요 그러니 그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런 것 같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잘난 어른들입니다.
본문에서도 어른 빌립의 말을 따랐다면 어른 안드레의 말을 따르면 당연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아닌 어린 아이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에 따라 드려졌을 뿐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드려지는 데 의미가 있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신의 최선을 드리기 보다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에 더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을 이루시고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어른이 되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까지 다 판단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하실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인 줄로 여겨집니다.
개 중에 어떤 이는 내가 헌신하면 어떻게 하는 것 아니냐?
그것도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이유가 되어 하나님께 제대로 헌금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 자신이 헌신되는 것으로 성도로서 할 일이지 그 다음은 내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헌신하였듯이 그 나머지 결과도 하나님이 선한 뜻대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살해하기 위하여 별별 짓을 다하는 사울 왕 앞에서 무슨 선한 일을 행하고 싶겠습니까?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죽이는 일이 자신이 행할 일이 아니요 하나님이 기름부음을 받아 세운 왕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를 기뻐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기는커녕 그의 옷자락을 벤 것을 회개하기 하지 않습니까?
그 과정도 그 결과도 하나님의 선한 뜻에 있는 줄로 알고 내 자신이 선한 뜻에 드려지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 아이는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사용되어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하나님의 선한 뜻에 드려진다는 그 자체가 축복이 되고 기적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는…….
나의 가장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드려진다면 가장 큰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내가 능력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선한 뜻에 따라 드려지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필요한 것에 5,000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능력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선한 뜻에 드려짐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부가 드려짐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나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 할 수가 없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믿음이 인색하였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아직까지도 5000명분의 양식을 구하고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5000분의 일은 드리지 않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완전한 것을 주시면 하겠습니다.
이것은 결코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신 분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야 할 5000분의 일의 헌신을 드리는 감사하는 믿음이 솔직히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긍정적으로 행하십시오.
결코 어른이 되어 따지고 결론을 내지 말고 그 뜻을 감사함으로 표현함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아니 기적 같은 경험을 하지 못 할 자가 한 사람도 없는 줄 믿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 밀런 (Miilan)이 낳은 에디슨(Edison, Thomas Alva)은 무선전신기, 활동사진기, 축음기, 백열전구 외에도 수많은 기계를 발명하여 인류 세계에 크게 공헌한 대발명가입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평생 2000여개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연구입이다. 그래서 에디슨은 지금까지 발명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디슨은 그가 처한 환경은 결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만족 할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그는 결코 천재가 아니고 어렸을 때는 저능아 취급을 받아서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긴 기차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차 안에 작은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던중 기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화학 약품이 든 약병 하나가 떨어져 불이 났습니다. 그 동안 연구한 내용들이 불에 탔습니다. 그리고 에디슨도 위험하게 되어 그 때 차장이 급히 달려와 에디슨을 차창 밖으로 내어 던졌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귀를 다쳐 청력을 잃고 귀머거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을 바쳐 수많은 연구를 했고 그 결과로 많은 발명을 인류 문화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감사함으로 받아드리는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귀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소리를 잘 듣지 못하니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내가 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귀머거리가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감사는 감사 할 일들을 불러오고 불평하면 불평 할 일들을 불러 오게 됩니다.
딤전 4: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불평하는 곳에서는 지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불만하고 불평하는 것은 잠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했으니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잠 30:15-16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불만하는 자는 결코 만족 할 수가 없고 감사하는 자로 바꾸어 질 때 그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 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지 그리고 불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하는지를 보십시오.
저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 자꾸만 임하여 삶에 만족 할 수 있도록 하시만은 그렇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은혜가 되지 않고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사람이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를 가장 높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 할 수가 있지만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불평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참으로 믿음이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척도는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될 수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확실한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에 대하여 긍정적이요, 그리고 그 긍정적인 모습이 감사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 할 수 있음은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믿음 주세요. 믿음 주세요. 하지 말고 감사하는 자가 될 때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바꿔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를 잘 살펴보십시오.
감사 할 일이 많습니까? 불평 할 일이 많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감사와 불평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평의 요소를 붙잡고 일하시지 않으시고 감사의 조건을 가지시고 역사를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보십시오.
누구에게 일감을 주고 누구에게 잘 해 주고 싶습니까?
불평 불만하는 자입니까?
주었던 것도 빼앗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주고 싶고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까?
내 아내도 내 남편도 내 자식도 불평 불만해 보십시오. 참으로 싫지 않습니까? 잘 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아내 남편 자녀를 볼 때에 얼마나 잘해 주고 싶고 더 잘해 주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예배요 제사 재물로 보시고 그것을 상당히 영화롭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감사하는 곳에 당연히 큰 구원을 가져오게 하심은 당연한 일입니다.
감사하는 믿음이 없어서 어려운 가운데 자꾸만 빠져가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감사 하면은 그 지옥 같은 삶이 드디어 천국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는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가장 긍정적으로 여기는 믿음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일어 주면은 언제든지 부정적으로 대함으로 그들의 삶에 구원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을 바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좋으셔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선한 계획을 가지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행할 것을 일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선한 뜻을 참으로 긍정적으로 감사하면서 받아 드리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대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인 내용이 대체로 보면 인간적으로 아주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게 무엇입니까?
남는 것은 인간적인 본래의 모습만 남은 것이지 하나님의 뜻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맙니다.
양파는 계속 까면 안 됩니다.
그게 알맹인데 껍질인줄 알고 계속 까기만 해 보세요
아무런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굶주리고 있는 무리들에게 배불리 먹이시려고 하시는 선한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인간들은 역시 똑똑합니다. 합리성과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에 부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 돈으로도 배불리 먹을 수가 없습니다.
꼭 우리 가운데서도 돈을 먼저 따지고 내세우는 자가 있습니다.
누가 돈이 있어야 할 줄을 모르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더 중요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이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자들이 돈으로 망하였지 그 돈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는커녕 언제든지 제동만 걸었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이루어진 선한 일들을 하나하나 보면 은 만약에 돈을 우선순위로 했더라면 참으로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 돈하다가 보니 지금까지도 이루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이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도 내 형편을 고려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형편에 매여 있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에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행동해 보십시오.
생각지 않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또한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는 그 뜻에 따라 내 형편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순진한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어른은 아는 것이 많아 먼저 계산되고 먼저 판단을 합니다.
벌써 그 결과를 스스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결과는 언제든지 부정적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그렇게 해서 안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순종을 하지 않는 이유를 보게 되는데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그렇게 한다고 되겠느냐? 는 어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행에 옮길 수도 없고 옮기지 않지요 그러니 그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런 것 같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잘난 어른들입니다.
본문에서도 어른 빌립의 말을 따랐다면 어른 안드레의 말을 따르면 당연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아닌 어린 아이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에 따라 드려졌을 뿐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드려지는 데 의미가 있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신의 최선을 드리기 보다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에 더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을 이루시고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어른이 되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까지 다 판단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하실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인 줄로 여겨집니다.
개 중에 어떤 이는 내가 헌신하면 어떻게 하는 것 아니냐?
그것도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이유가 되어 하나님께 제대로 헌금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 자신이 헌신되는 것으로 성도로서 할 일이지 그 다음은 내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헌신하였듯이 그 나머지 결과도 하나님이 선한 뜻대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살해하기 위하여 별별 짓을 다하는 사울 왕 앞에서 무슨 선한 일을 행하고 싶겠습니까?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죽이는 일이 자신이 행할 일이 아니요 하나님이 기름부음을 받아 세운 왕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를 기뻐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기는커녕 그의 옷자락을 벤 것을 회개하기 하지 않습니까?
그 과정도 그 결과도 하나님의 선한 뜻에 있는 줄로 알고 내 자신이 선한 뜻에 드려지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 아이는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사용되어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하나님의 선한 뜻에 드려진다는 그 자체가 축복이 되고 기적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적을 가져오는 감사는…….
나의 가장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드려진다면 가장 큰 일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내가 능력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선한 뜻에 따라 드려지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필요한 것에 5,000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능력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선한 뜻에 드려짐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부가 드려짐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나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 할 수가 없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믿음이 인색하였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아직까지도 5000명분의 양식을 구하고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5000분의 일은 드리지 않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완전한 것을 주시면 하겠습니다.
이것은 결코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신 분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야 할 5000분의 일의 헌신을 드리는 감사하는 믿음이 솔직히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긍정적으로 행하십시오.
결코 어른이 되어 따지고 결론을 내지 말고 그 뜻을 감사함으로 표현함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아니 기적 같은 경험을 하지 못 할 자가 한 사람도 없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