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이 당신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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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6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요한복음11:25-27 예수님만이 당신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지금 온 세계는 급성 호흡기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사스라는 질병이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죽음에 이르도록 합니다. 이 질환의 증상은 감염 후 2~7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데 38도 이상의 고열. 두통. 근육통 등 독감 같은 증상이 4~5일 나타나다 폐렴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엔 3~5일 만에 급속히 호흡 곤란이 오고, 저(低)산소증에 의한 호흡 부전(不全)에 빠질 수 있고 급기야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양성 반응을 가진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결코 안심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질병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홍콩에서는 이 사스로 인하여 가슴 아픈 한 사연을 접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스에 감염된 한 임산부가 항생제 치료를 거부하다 눈을 감은 34세 여인의 모정이었습니다. 임신 26주째였던 이 여인은 사스에 감염돼 프린세스 마거릿 병원에 입원한 뒤 줄 곧 항생제 치료를 거부해 왔는데 태아보다 산모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의료진의 간곡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항생제를 복용하면 아기가 기형아가 된다는 의식으로 끝내 거부하다가 산모의 상태가 악화되자 병원의 의료진은 아기라도 살려야 한다는 판단으로 자난 14일 제왕절개 수술을 단행했는데 결국 그녀는 수술이 끝난 지 한 시간 만에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 옆에서 애타게 바라보는 남편이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며 힘을 내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도 하고 외쳤지만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모정입니까?
그러나 더욱 가슴이 아픈 일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희생을 하며 어렵게 건져낸 이 어린 생명이 그렇게도 염려하고 설마설마 했던 사스가 이미 뱃속에서부터 감염이 되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이 아이의 생명 또한 그 어미의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하였듯이 보장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죽음 앞에는 그 누구도 더 이상의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란한 가정의 행복이 사스라는 질병 앞에 무참히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누가 이러한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비단 사스라는 질병만이 우리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내고 행복을 깨뜨리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행복해지고 싶은 인생들이 그 행복의 꿈은 산산 조각이 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참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오늘이 2000 여 년 전에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 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모두가 그들이 죽어 묻힌 무덤들만이 자랑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무덤을 경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그의 무덤은 열려져 있습니다.
그는 살아서 지금도 그를 의지하고 믿는 자들에게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는 권세를 주시는 분으로 이 시간에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 마음에 살아 계신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이 사실들을 우리에게 잘 일어 주고 있습니다.
죽은 지 사흘이 되어 섞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라는 청년의 시신이 무덤 속에 장사(葬事)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에게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동정어린 마음과 함께 젊은 사람이 일찍 죽었구나하며 슬퍼해 주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습니까? 장례식 잘 치러주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분이 부모님이 되었든지 자식이 되었든지 아내요 남편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는 3일 안에 모든 일을 정리해야만 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의 현장에 찾아 오셔서 죽음의 그늘이 가득 차 있는 모든 것이 끝나버린 이 초상집을 잔치 집으로 바꾸시고 말았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그 무덤에서 이끌어 내어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25-26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그 어떤 세상의 권세자가 누가 함부로 이런 말을 감히 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 인생에게 죽음이 찾아 왔는지 아십니까? 원래부터 인생에게 죽음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죄의 값으로 찾아 온 것입니다. 죄의 형벌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지 않고 영생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죄인의 길을 자초하여 죽음을 불러 드린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지금도 우리 인생들의 사는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아니 나 자신을 보십시요 무엇하나 죄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죄를 먹고 마시고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이 아닙니까?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살맛이 나기 보다는 죽을 맛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살맛입니까? 죽을 맛입니까?
그러면 그 죄 값을 누가 대신 치러 주기만 하면 죽음에서 자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죄의 값은 죄인이 그 죄 값을 치룰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분이 이 죄 값을 치룰 수가 있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짐 아니 여러분의 죄짐 아니 나의 죄짐을 대신 져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겠습니까? 믿기만 하면 죄에서 자유 함을 얻고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받아드리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어려워서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아 온 삶의 형태가 이런 복된 소식을 받을 수 없은 삶을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함 사람은 사랑을 하지 못하듯이 속아 살고 속이며 살고 불신의 가운데만 살아 왔기 때문에 이러한 대속의 사실이 믿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히 누가 값없이 이렇게 해 주셨는가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 드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마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온 삶의 형식하고 너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죄 값을 치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사실은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받아 드릴 용량이 없습니다. 너무 용량이 작아서 그래요 오직 이 사실은 믿음으로만 받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은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내가 죄인 인줄 알고 그 죄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자라면 누구든지 값없이 공짜로 주시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들도 누구든지 원하시기만 하면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도 다른 모든 이들도 믿음으로 받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고 만하니 아직도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은 것이요 그러나 믿는 사람은 벌써 그 은혜를 받고 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집은 피울 때가 따로 있지 제 죽어 가는 마당에 고집은 무슨 고집이 필요합니까?
그러면 믿는 자들이 받을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오늘 이루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심을 자는 새 생명을 얻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롬 3:23-24).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0:9-10).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 광야의 길을 간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막의 불 뱀이 나와서 사람들을 물어 모두 그 불뱀의 독으로 인하여 모두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때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높이 달고 누구든지 그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람들이 다 죽어가면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똑 같아요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어찌 놋뱀을 쳐다본다고 해서 죽어가는 자가 죽지 않고 살아 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도대체 신뢰가 가지 않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인간에게서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봐요 믿음이 생기는가?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원의 지식과 선비의 지식이 영광과 구원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은 자리에 내어 놓았습니다.
결국은 신뢰가 안가고 믿음이 안 간다고 해서 쳐다보지 않았던 자는 그냥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 어디 한번 믿어보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하고 아니 다 죽어 가는데 살린다는 말이 감사하고 고맙구나 참으로 복음이구나 하고 쳐다본 자들은 다 살아났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설마 예수가 날 살려 주겠나 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받은 자는 한 사람도 없고 참으로 이제 구원은 예수님 밖에 없다하고 믿는 자들 아니 나 같은 죄 많은 자에게도 이렇게 믿으라고 기회를 주니 너무 감사하다하고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어리로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예수님을 받아 드리고 나 같은 자에게도 영생의 축복을 받으라고 불러 주심에 감사하고 받아드리시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참으로 기원합니다.
복음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음으로 멸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 아니라 살아서 여러분의 삶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 자들에게는 이런 증거가 그의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들은 그들의 생활과 가정과 그의 인격에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먼저 얻게 될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를 얻었다는 참 좋은 증거입니다.
내가 참으로 영생의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가 여러분의 마음에서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방에 한 여인은 남편이 5명이나 되었지만 참으로 만족하지 못했어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으로도 만족함이 없어 앞으로 바꿀 계획이 있어요. 앞으로 이 여인은 행복을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남편을 얻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마음에서 참 기쁨과 평안이 찾아 온 것입니다.
성경에 그 마음에 생수의 강이 넘쳐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에서도 형통케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먼저 가정생활이 변화가 됩니다. 부부의 애정금실이 부활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부활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부활합니다. 형제간의 우애심도 부활합니다. 친구간의 의리도 부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업도 부활케 합니다. 부활 신앙을 갖은 자는 절대로 아주 넘어져 실패하지 않습니다.
시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보니 내 생활에도 예수님이 축복을 하십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자는 영원히 영생하는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마지막 날에 여러분의 죽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개구리가 같이 놀다가 밤이 되어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보자라고 하니 하루살이가 하는 말이 내일이 뭔데 하는 겁니다.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 없지만 내일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찾아 올 때에 메뚜기에게 내년에 보자 하니 메뚜기가 내년이 뭔데 라는 것입니다. 메뚜기에게는 내년이 없지만 내년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만나자고 하니 안 믿는 자는 천국이 뭔데 하는 것입니다.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에게는 천국이 없지만 분명히 영생하는 천국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영원히 잘 사는 것은 더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복음은 이 세상에서도 100배나 되는 축복을 받을 것이요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 복음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당장 이 시간부터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 주위에 살맛이 나는 일들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죽은 일이 생겨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믿고 영생의 복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온 세계는 급성 호흡기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사스라는 질병이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죽음에 이르도록 합니다. 이 질환의 증상은 감염 후 2~7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데 38도 이상의 고열. 두통. 근육통 등 독감 같은 증상이 4~5일 나타나다 폐렴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엔 3~5일 만에 급속히 호흡 곤란이 오고, 저(低)산소증에 의한 호흡 부전(不全)에 빠질 수 있고 급기야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양성 반응을 가진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결코 안심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질병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홍콩에서는 이 사스로 인하여 가슴 아픈 한 사연을 접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스에 감염된 한 임산부가 항생제 치료를 거부하다 눈을 감은 34세 여인의 모정이었습니다. 임신 26주째였던 이 여인은 사스에 감염돼 프린세스 마거릿 병원에 입원한 뒤 줄 곧 항생제 치료를 거부해 왔는데 태아보다 산모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의료진의 간곡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항생제를 복용하면 아기가 기형아가 된다는 의식으로 끝내 거부하다가 산모의 상태가 악화되자 병원의 의료진은 아기라도 살려야 한다는 판단으로 자난 14일 제왕절개 수술을 단행했는데 결국 그녀는 수술이 끝난 지 한 시간 만에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 옆에서 애타게 바라보는 남편이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며 힘을 내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도 하고 외쳤지만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모정입니까?
그러나 더욱 가슴이 아픈 일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희생을 하며 어렵게 건져낸 이 어린 생명이 그렇게도 염려하고 설마설마 했던 사스가 이미 뱃속에서부터 감염이 되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이 아이의 생명 또한 그 어미의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하였듯이 보장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죽음 앞에는 그 누구도 더 이상의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란한 가정의 행복이 사스라는 질병 앞에 무참히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누가 이러한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비단 사스라는 질병만이 우리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내고 행복을 깨뜨리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행복해지고 싶은 인생들이 그 행복의 꿈은 산산 조각이 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참으로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참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오늘이 2000 여 년 전에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 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모두가 그들이 죽어 묻힌 무덤들만이 자랑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무덤을 경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그의 무덤은 열려져 있습니다.
그는 살아서 지금도 그를 의지하고 믿는 자들에게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는 권세를 주시는 분으로 이 시간에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 마음에 살아 계신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이 사실들을 우리에게 잘 일어 주고 있습니다.
죽은 지 사흘이 되어 섞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라는 청년의 시신이 무덤 속에 장사(葬事)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에게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동정어린 마음과 함께 젊은 사람이 일찍 죽었구나하며 슬퍼해 주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습니까? 장례식 잘 치러주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분이 부모님이 되었든지 자식이 되었든지 아내요 남편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는 3일 안에 모든 일을 정리해야만 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의 현장에 찾아 오셔서 죽음의 그늘이 가득 차 있는 모든 것이 끝나버린 이 초상집을 잔치 집으로 바꾸시고 말았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그 무덤에서 이끌어 내어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25-26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그 어떤 세상의 권세자가 누가 함부로 이런 말을 감히 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 인생에게 죽음이 찾아 왔는지 아십니까? 원래부터 인생에게 죽음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죄의 값으로 찾아 온 것입니다. 죄의 형벌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지 않고 영생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죄인의 길을 자초하여 죽음을 불러 드린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지금도 우리 인생들의 사는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아니 나 자신을 보십시요 무엇하나 죄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죄를 먹고 마시고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이 아닙니까?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살맛이 나기 보다는 죽을 맛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살맛입니까? 죽을 맛입니까?
그러면 그 죄 값을 누가 대신 치러 주기만 하면 죽음에서 자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죄의 값은 죄인이 그 죄 값을 치룰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분이 이 죄 값을 치룰 수가 있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짐 아니 여러분의 죄짐 아니 나의 죄짐을 대신 져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겠습니까? 믿기만 하면 죄에서 자유 함을 얻고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받아드리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어려워서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아 온 삶의 형태가 이런 복된 소식을 받을 수 없은 삶을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함 사람은 사랑을 하지 못하듯이 속아 살고 속이며 살고 불신의 가운데만 살아 왔기 때문에 이러한 대속의 사실이 믿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히 누가 값없이 이렇게 해 주셨는가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 드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마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온 삶의 형식하고 너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죄 값을 치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사실은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받아 드릴 용량이 없습니다. 너무 용량이 작아서 그래요 오직 이 사실은 믿음으로만 받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은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내가 죄인 인줄 알고 그 죄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자라면 누구든지 값없이 공짜로 주시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들도 누구든지 원하시기만 하면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도 다른 모든 이들도 믿음으로 받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고 만하니 아직도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은 것이요 그러나 믿는 사람은 벌써 그 은혜를 받고 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집은 피울 때가 따로 있지 제 죽어 가는 마당에 고집은 무슨 고집이 필요합니까?
그러면 믿는 자들이 받을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오늘 이루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심을 자는 새 생명을 얻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롬 3:23-24).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0:9-10).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 광야의 길을 간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막의 불 뱀이 나와서 사람들을 물어 모두 그 불뱀의 독으로 인하여 모두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때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높이 달고 누구든지 그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람들이 다 죽어가면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똑 같아요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어찌 놋뱀을 쳐다본다고 해서 죽어가는 자가 죽지 않고 살아 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도대체 신뢰가 가지 않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인간에게서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봐요 믿음이 생기는가?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원의 지식과 선비의 지식이 영광과 구원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은 자리에 내어 놓았습니다.
결국은 신뢰가 안가고 믿음이 안 간다고 해서 쳐다보지 않았던 자는 그냥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 어디 한번 믿어보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하고 아니 다 죽어 가는데 살린다는 말이 감사하고 고맙구나 참으로 복음이구나 하고 쳐다본 자들은 다 살아났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설마 예수가 날 살려 주겠나 하고 믿지 않는 자는 구원받은 자는 한 사람도 없고 참으로 이제 구원은 예수님 밖에 없다하고 믿는 자들 아니 나 같은 죄 많은 자에게도 이렇게 믿으라고 기회를 주니 너무 감사하다하고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어리로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예수님을 받아 드리고 나 같은 자에게도 영생의 축복을 받으라고 불러 주심에 감사하고 받아드리시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참으로 기원합니다.
복음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음으로 멸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 아니라 살아서 여러분의 삶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 자들에게는 이런 증거가 그의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들은 그들의 생활과 가정과 그의 인격에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먼저 얻게 될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를 얻었다는 참 좋은 증거입니다.
내가 참으로 영생의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가 여러분의 마음에서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방에 한 여인은 남편이 5명이나 되었지만 참으로 만족하지 못했어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으로도 만족함이 없어 앞으로 바꿀 계획이 있어요. 앞으로 이 여인은 행복을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남편을 얻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마음에서 참 기쁨과 평안이 찾아 온 것입니다.
성경에 그 마음에 생수의 강이 넘쳐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에서도 형통케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먼저 가정생활이 변화가 됩니다. 부부의 애정금실이 부활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부활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부활합니다. 형제간의 우애심도 부활합니다. 친구간의 의리도 부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업도 부활케 합니다. 부활 신앙을 갖은 자는 절대로 아주 넘어져 실패하지 않습니다.
시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보니 내 생활에도 예수님이 축복을 하십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자는 영원히 영생하는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마지막 날에 여러분의 죽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개구리가 같이 놀다가 밤이 되어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보자라고 하니 하루살이가 하는 말이 내일이 뭔데 하는 겁니다.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 없지만 내일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찾아 올 때에 메뚜기에게 내년에 보자 하니 메뚜기가 내년이 뭔데 라는 것입니다. 메뚜기에게는 내년이 없지만 내년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만나자고 하니 안 믿는 자는 천국이 뭔데 하는 것입니다.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에게는 천국이 없지만 분명히 영생하는 천국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영원히 잘 사는 것은 더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복음은 이 세상에서도 100배나 되는 축복을 받을 것이요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 복음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당장 이 시간부터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 주위에 살맛이 나는 일들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죽은 일이 생겨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믿고 영생의 복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