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은 더 이상 고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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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28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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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 16-18 이제 당신은 더 이상 고아가 아닙니다.
지금 온 국민이 꿈에라도 생각하지 못한 세계 4강의 위업을 달성한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요즘 월드컵 경기 때마다 어시스트로 승리의 주역이 되었던 이영표(26·PSV아인트호벤) 선수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모 기독 신문과의 인터뷰을 보고 이 선수가 보통 큰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구나? 성령님의 크신 은혜를 입었음을 실감 할 수가 있었습니다.
“월드컵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었어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고 월드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참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실제적으로 느끼고 있는 자입니다. 말마다 하나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때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평범한 선수에 머무를 수도 있었을 테지만 하나님은 그를 긴요하게 쓰시기 위해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게 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당시 월드컵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느끼면서 열심히 그라운드를 뛰었습니다.
그가 지난 6일날 결혼을 했습니다. 신부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하자 이영표 선수는 거침없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람이고요, 존경할 만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보시기에 좋아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제가 복 받은 셈이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제 아내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을 아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항상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그의 삶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빼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확신, 도우심을 기다리는 기도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이 그의 대화 가운데 스스럼없이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저는 신이 나서 그에 관한 기사를 읽어 나갔습니다.
유명한 축구인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그 하나님께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신이 나게 한 것입니다.
사실 저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생각을 하며 관심을 가질 때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실 그가 말로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생활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에서도 그의 식지 않는 전도 열정은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포와 함께 영어를 배우는 학생 등 2명을 교회로 인도했으며 아인트호벤에서 함께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지성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고 분명히 교회에 다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지성이와 함께 네덜란드에 보내신 이유를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자신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히딩크 감독을 믿음의 생활로 인도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영어 실력이 부족해 본격적인 전도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머지않아 함께 교회에 다닐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라고 자신을 했습니다.
“결코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보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힘들고 지칠 때 저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주십시오.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의 신앙의 연륜은 결코 길지 않았습니다. 겨우 2년 남짓입니다.
2001년 봄에 한 집사님의 전도를 받고 이 짧은 시간에 이런 변화를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는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하여도 하나님 함께 하심의 신앙 고백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욱이 전도한다는 것은 엄두를 내지를 못하고 자신의 신앙 겨우 유지 할 뿐입니다.
평생을 믿어도 한 사람 인도하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찌 이영표 선수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어 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운동 중에 문득 제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님, 왜 제가 운동하는지 아시죠. 라고 묻고 있는 거예요.” 그가 그라운드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듯이 전 세계 모든 민족들이 이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니 경기를 하면서 기도를 할 수 있었다니 얼마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는가를 가히 짐작이 가며 그 기도와 사모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충만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담장을 넘을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을 지을 수 있음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혼자 두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이미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곧 성령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더 이상 고아와 같은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주의 자녀로서의 하나님의 도우심과 관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기적 같은 축복 된 삶이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물론 받지도 못 할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 성령님이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관심을 받고 살게 될 것입니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의 다이에나 왕세자비가 자살 소동을 벌리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모든 것을 다 누려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깐 그의 삶은 행복해 질 수가 없고 결국은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찾아 갔지만 음주한 기사의 교통사고로 그의 아쉬운 인생은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고,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합니다.
그리고 죄인 된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계십니까?
아마 우리 중에는 나는 지독히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줄로 압니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하는 일도 안 되고 가정도 평안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도 안하고 마음에는 기쁨도 평안도 감사도 없고......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성령님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게 하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도록 하게도 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사랑을 할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받는 것으로만 안 되고 사랑을 받기 보다는 사랑을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길이 진정한 행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의 사랑을 받은데 행복하기 보다는 사랑을 주는데 더 행복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놀랍게도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최고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홀로 두시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사랑 할 수 있는 마음을 여러분들에게 주심으,로 여러분들을 최고로 행복하게 만드십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입니다. 자신의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다 떠나보내고 홀로 자신 밖에는 없는 아픔, 바로 그 고독이 우리의 인생에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가장 무서운 벌은 독방에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고독’을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고독, 나를 사랑하는 자도 다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그 진한 고독.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고독......
사람은 중년이 되면 불현듯 이 고독을 느낀다고 합니다. 청년기의 고독은 인생의 허무와 철학을 위한 고독이지만, 중년의 고독은 사랑을 갈구하는 고독입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던져주고 싶은 그런 고독이 깃듭니다.
이 고독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여자는 어느 날 집안을 다 정리하고 홀로 텅 빈 집에 있을 때에 불현듯 자신은 혼자라는 것, 이제껏 살아온 것이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라는 고독한 질문이 자신을 괴롭힙니다. 자식은 자기들의 길을 가고 있고, 남편은 자신에게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자신은 시대에 뒤쳐져있는 느낌이며 헛된 인생을 산 것 같은 아픔이 자신을 압박합니다.
남편은 직장과 생업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한 몸을 쉬지 못합니다. 어느 날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며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낍니다. 주위에 친구들이 사고로 질병으로 하나 둘 죽었다는 소식에 자신의 차례도 언제 올지 모른 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경쟁사회에서 자신은 자꾸만 뒤로 쳐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고 자신은 홀로라는 생각에 고독감을 느낍니다.
이 고독은 삶의 용기를 앗아가며, 이제껏 살아온 삶에 기쁨을 상실합니다. 이 고독의 순간을 잘 극복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은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더 우울함에 빠지기 전에 성령님의 함께 하심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런 낙이 없다고 할 때가 오기 전에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은 나의 삶을 전반적으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도와주십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돕기 위해 곁에 부름을 받고 와 계신 분이란 뜻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지금 우리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우리를 도우시기 위하여 우리 곁에 와서 계십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성령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공기로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으니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령님께서도 이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계셔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겠습니까?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참다운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고, 이런 사람의 마음에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셨는데, 그가 가시면서 내가 또 다른 선생, 잘못이 없이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줄 다른 선생을 너희에게 보내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절 내 이름으로 무엇을 whatever 구하든지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for anything 구하면 시행하리니……. 무엇이든지 어떠한 것인지 간에 ……. 성령님께 의지하면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실수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 분께 기회를 드리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여 주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 사소한 것부터 크고 굉장한 것까지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고 큰 소망을 보이시고 준비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던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참다운 이해 없이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들과 로마의 군병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큰 절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셨을 때에는 진리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들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그 소망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진리를 담대하게 외치는 예수님의 증인(행1:8)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하십니다.
롬 8:26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기 보니 ‘성령님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도 도와주시는데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도 함께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미련함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데 안타깝기만 하고 기도가 되지 않는 경험을 다하셨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런데 성령님이 이러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은 약합니다. 가장 강한 자 같지만 가장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리스 신화중에 트로이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스 장군의 아버지는 아들인 아킬레스를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의 신은 그를 죽음의 강인 스킥스강에다가 잠그라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거기에다가 담급니다. 그러나 발목을 잡고 담겨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발뒤꿈치는 담그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헤파이스토스’라는 갑옷을 입힙니다. 그는 최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발뒤꿈치였습니다. 적장인 페리스왕자가 이것을 알고는 발뒤꿈치를 화살을 쏘아 아킬레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지금도 의학자들은 인간의 발뒤꿈치 근육을 ‘아킬레스 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인간은 약점 투성이이며 연약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이것을 노리고 공격을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넘어집니다.
“결점 중에서 가장 큰 결점은 자기 자신은 결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고 영국의 철학자 칼라일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알고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알 때에 우리는 스스로 이 세상의 삶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도우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도 보혜사 성령님을 주시고 이 성령님의 도움 속에서 이 세상의 삶을 승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중보의 기도를 하시며,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위하여 기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시려고 하시면 기도시키십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서라도 기도하게 하십니다.
한장의 종이는 누구나 쉽게 찢을 수 있을 만큼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나 이 약한 종이를 두터운 콘크리트 벽에다 붙여 보십시오. 함부로 그 종이를 찢거나 뚫지 못합니다. 강하고 두터운 콘크리트가 그 종이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스스로를 놓고 보면 정말 미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인생이지만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만유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심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아무도 우리를 꺾거나 찢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놀랍고 위대하며 우리를 한없이 유익하게 해줍니다.
성령님을 모시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을 받지 않은 성도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회개와 깨달음과 변화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권능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승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축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성령으로 충만한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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