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믿음의 결단이 장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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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0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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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수 기 14: 20-24 지금 믿음의 결단이 장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당한 과거에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그 문명의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위시하여 수많은 전자 제품들이 우리 사람들의 생활을 풍성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역량에 따라 그 혜택을 누리는 정도는 다 달라집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 모두에게 최근에 만들어진 최신의 정보가 가득한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나누어 주었다고 합시다. 이 컴퓨터 하나만 잘 이용한다면 모든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삶을 상당히 편리하게 풍성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음악, 미술, 동영상, 전자 메일, 각종 정보, 만남, 교환, 경제적인 업무까지 무궁무진 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기기도 사용 할 수 있는 지식이 없어 이용을 못한다면 이 기기의 혜택은 많이 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유익을 얻는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없어서 못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능력이 없어서 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은혜를 받아 감격하고 감사하는데 어떤 이는 그 은혜하고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없는 것같이 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시는 불공평하시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정복하고 다스리라 누구에게나 주시는 기회요 축복이요 또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은혜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요 은혜와 상관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시 믿음으로 사는 자들과 믿음으로 행치 않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누구에게든지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 나도 달랐습니다.
많은 무리들은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땅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같은 인물은 그 땅을 실제로 볼 뿐만 아니라 차지하였다는 것입니다.
똑 같은 교회 생활과 신앙의 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에 대하여 듣기만 들었지 전혀 상관이 없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은 그 은혜를 실제로 누리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실제적으로 그 은혜와 상관이 없는 자로 남아 있습니까?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가신다면 참으로 곤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다시 세상으로 내려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영원히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로 전락이 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보장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중에는 날마다 순간마다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만족하는 자들로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반도 결과는 지금 이들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적을 두고 다니면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신앙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막연히 잘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홀(漫忽)히 여기지 말지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절대로 삶을 엉뚱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믿음의 모습대로 장래가 결정 지어 지는 것입니다.
육체로 살면 섞어 질 것을 성령으로 살면 생명적인 것을 거두게 됩니다.
저는 날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특히 성도들의 지금의 삶의 모습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가? 에 따라 모든 자들의 삶의 모습이 결정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내 처지를 두고 하나님을 탓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그 어떤 사람도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는 원망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불평한다고 원망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이 다시 새롭게 하고 복되게 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핑계가 통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불평하고 원망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얼마나 하나님 앞에 내 스스로가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되고요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 지는 삶이 된다는 아셔야 합니다.
민14:36-37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출16:7-8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원망의 대상이 누구이었든지 간에 그 원망을 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나를 시험하고 청종치 않고 멸시한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행해야 하는 소망적인 일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하는 과거사 적인 일에 매여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내가 앞으로 행해야 할 믿음의 요구를 수용하는 마음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 믿음이 여러분의 장래를 아니 당장 이 시간부터 복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고백하고 행해야 할 믿음이지만 사실 이 믿음은 우리 가운데 이루기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옛날의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원망입니다. 원망은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우리 자신을 매어 놓은 일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믿음으로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옛날로 돌아가는 구조를 다 버려야 합니다. 배설물과 같이 버려야 할 것입니다.
툭하면 못 믿겠다하고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인간적으로 해결하고 이래서 되겠습니까?
화난다고 술이나 벌컥 마시고 신세 한탄이나 하고 다른 사람들 원망하고 시비나 붙어서 되겠습니까?
이게 해결 방법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믿지 않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해야 합니다.
내 손이 죄를 범하면 손이라도 찍어 버리고 내 눈이 죄를 범하면 눈이라도 빼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삼국 통일을 위해 의지를 키워나갔던 김유신은 한 때 천관이라는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술집을 자주 드나들므로 이 사실을 안 어머니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듣고 깊이 반성한 김유신은 자신을 태운 말이 술집 문 앞에 가서 멈추자 말의 목을 베어 버렸다는 고사가 있지 않습니까?
믿음은 의지가 요구되고 헌신이 요구 되어 집니다.
술에 술탄 듯이 물에 물탄 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끊을 때는 끊어야지 개가 짓는다고 해서 달리는 절대로 기차가 서지 않습니다.
개야 너는 짖어라 기차는 간다해야지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서서 왜 짓는데 왜 그렀는데 그래 속상하더라도 짖지 마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옛날로 돌아 갈 건수를 다 막아 버려야 합니다.
통상 우리 가운데는 믿음으로 행하는 자보다 행치 않는 자들이 더 많습니다.
그만 그 수가 많음에 위로를 받고 괜찮겠지 하는 마음, 심지어는 그것이 잘 한 것으로까지 여기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수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믿음 없는 다수보다는 믿음 있는 소수를 기뻐하십니다. 부정적인 다수보다는 긍정적인 소수를 좋아하십니다. 불평하는 다수보다는 감사하는 소수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당신에게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의지가 서지 않을 때에는 틀림없이 자신들의 삶에 두려움과 미래의 불 확신으로 두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야곱이 아들들의 범죄로 온 집안이 몰락의 위기에 잔뜩 겁을 먹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방향을 전환 할 때에 오히려 그 주위의 이방인들이 두려워하여 야곱의 족속을 건드리지 못하였고 새로운 장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또한 믿음은 말씀에 긍정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불신의 대표적인 것은 순종하기 전에 부정적으로 시험부터 합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을 결코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자들을 붙잡고 주의 일을 하였습니다.
교회 일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부정적인 자들을 통하여 교회의 그 어떤 일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자들을 통하여 교회는 힘을 얻고 점점 확장되고 성장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은 갈렙에게는 그 가나안을 주신 이유는 온전히 좇았는데 곧 긍정적인데 있었습니다.
온전히 행함은 내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내가 소유 할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실려고 하실 때에는 절대로 대충 대층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너는 내게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를 불러 축복을 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창17;1-2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전혀 그릇이 없지 않습니까? 있어도 눈곱만하게 만들어서 그거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갈증만 생기지 전혀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온전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음적으로 행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직 믿음이 없어서 초신자라서 하지 마십시오 초신자의 믿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누가 말합니까?
예수님의 우편에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믿은 지가 한나절도 안 되는 그런 믿음도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아직도 내 믿음의 약함을 핑계 삼고 나는 아직 그렇게 할 수 없어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안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당장에 이익을 따라 행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멀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집에 찾아가서 한 움큼뿐인 양식을 과부를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엘리야를 대접하기 위하여 사용되기를 원했습니다. 당장의 입장을 따르면 이 양식은 전적으로 과부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이 과부는 그 양식으로 그를 살릴 것이 아니요 그의 마지막 식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요구에 사용되었을 때에 그 양식은 그의 가족을 위한 평생의 양식이 되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겨우 하루 앞도 바라보지 않고 육을 위해서만 사는 자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이율곡 선생은 10년의 앞날을 내다보며 임진왜란을 대비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영국 수상 처칠은 20년을 내다보았습니다. 또한 유명한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100년 앞을 내다보았습니다.
나 역시 오늘 하루에 매여 있지 말고 10, 20년, 평생을 바라보고 아니 우리대만 생각하지 말고, 자녀들과 후손들을 생각하고 영생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현실만 보지 말고, 현실에만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을 내다보는 믿음의 눈으로 창조적인 새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민수기 14장 24절 말씀을 봅시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셨습니다.
성도님들! 흔들리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지진이 잦은 곳에 누가 좋은 집을 지으려 하겠습니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셨습니다(마 7:24). 우리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은 이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깊이내린 신실한 성도들 되시면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예레미야 17장 7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면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림이 없겠지요. 하나님은 복 주시고자 찾으십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믿음은 내게 약속하신 축복된 삶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기대를 가지고 그렇게 준비하며 그렇게 될 것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무엇인가 그의 기대하는 바는 그를 다 떠나 버리고 아무런 낙이 없다하는 때가 반드시 찾아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 할 것입니다.
외면하지 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될 것으로 믿고 행하십시오.
복 받은 자같이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인간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믿음으로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는 자가 많이 생길 줄을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 자신이 믿음의 결단을 하지 않고 있다고 그에게는 그 어떤 것도 이루어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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