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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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59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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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13-17 당신은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 그 말은 그 효력이 다 한 것 같습니다.
영국 BBC 인터넷 판이 4일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인간의 피부 껍질 1건에 최고 9천600달러에 주변 말라위와 잠비아, 콩고 등지로 팔려나갔다고 있다고 보도 했습니다. 인간 피부는 주로 납치 살해된 젊은이들로부터 벗겨진 것들로 희생자 나이를 기준으로 최저 2천400달러에서 최고 9천600달러까지의 값이 매겨졌습니다. 이 피부의 껍질 용도는 아프리카 각국 주술사들은 밀거래가 되어 종교의식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인간피부 밀거래조직 1곳을 적발해 13명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는데 탄자니아 남서부 므베야 지역에서는 13세 소년 등 모두 6명의 젊은이들이 살해돼 피부가 벗겨진 것으로 조사됐는데 그 희생자들은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이 모두 파악됐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될 때에 과연 인간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이 되어집니다. 육신이 살아서 자신의 욕구를 위하여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하나 만족해보지 못하고 죽어서도 그 육신이 편안하지 못한 게 인생이 구나 아니 내 육신의 죽은 몸까지도 사람들의 그 어떠한 물질적인 충족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생각 할 적에 참으로 슬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탄자니아 수도 다르 에스 살람에서는 밀거래 됐다 적발된 피부를 선보이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인생이 무엇이라고 말 하고 싶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인생이 무엇이다는 대답이 나오게 됩니다.
그 사람이 무슨 노래를 주로 즐겨 부르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관을 알게 되고요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를 보아도 그 삶의 삶을 유추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 사람의 대화하는 언어를 보면? 역시 그 사람은 인생의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밖으로 들어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면에 가지고 있는 삶의 대한 모습은 틀림없이 그 사람의 삶의 형태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아니이스 딘이란 학자는 우리 인생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를 못하고 선입감을 가지고 본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대로 제 멋대로 본다는 것입니다.
객관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주관성이 있다는 것은 좋게 들릴지 모르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주관성은 상당한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바르게 보지 못하고 내 인간의 주관성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나의 삶 역시 내 인간이라는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삶을 지금까지 살아 왔고 앞으로도 잘못된 이 삶에 어떠한 기회가 주어져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삶에 수정이 가해지지 않으면 그의 삶은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한 삶을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참으로 인생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막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2-3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 세대가 삶을 이끄는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어떤 의식 구조를 가지고 지금 살아가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 사람들은 행선지가 분명합니다.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체류 기간이 확실합니다. “일년을 유하며”할 일이 뚜렷했습니다. “장사하여” 더구나 그 예측하는 결과가 자신 있었습니다. 그의 일년 동안의 삶의 목적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결같이 “이(利)를 보리라”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삶의 목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성경이 기록 될 당시 1세기의 상인들의 가치관은 철저한 물질주의였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인간이 그 인간이지 어디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질 그 당시에도 그러했고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미래 어느 순간에도 이 같은 물질관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을 것이며 이것은 임박한 심판의 징조라고 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먹고 마시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방법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만 도취되어 영원한 삶을 잊어버리고 당장의 이익만을 사는 사람들이 되어 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삶의 모습이 되어 이렇게만 살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인생을 책임져 주고 축복을 보장해 주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내일을 모르는 불확실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잠언 27장 1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했습니다. 하루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3절에서는 사람들이 일 년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년을 계획하면서 눈앞의 내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성경은 계획성 있는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없는 계획은 미래가 보장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농사가 잘 되어 소출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자, 금년에는 농사가 잘 되어서 현재의 창고로는 다 보관할 수가 없구나, 창고를 좀 더 증축해야지.’ 그래서 창고를 많이 늘렸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창고마다 풍성한 농산물로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이 부자는 자기 영혼을 향하여 만족해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것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날 밤에 부자에게 나타나셔서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이 뉘같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자는 농산물이 잘되는 것을 보고 창고를 넓히는 일에 착수 할 만큼 미래 지향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의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미래는 확실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일을 기대하고 내일에 꿈을 꾸고 할 그러한 여유 있는 시간이 마냥 주어져 있지 않는 짧은 생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만이 내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의 시간인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행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 명예, 권력. 때가 지나면 내 손에서 떠납니다. 잠깐 소유했다가 내 놓는 것입니다.
아니 자발적으로 내 놓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 깊이 생각해 보면 죽는 연습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것 죽는 연습입니다. 일어나고 눕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그러나 언젠가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고 아니 깨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도 세상의 모든 일을 그치는 일종의 죽는 연습입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주일이 되면 세상의 모든 일 전부 중단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차피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다 중단하고 가야하지 않습니까.
주일을 지키는 것이 곧 세상일을 중단하는 훈련입니다. 세상일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연습을 하는 심정으로 주일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바쁘다고 핑계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일에 매여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르게 응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한 불행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인생은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실 내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있습니까? 이 세상의 처음 출발하는 태어난 것 자체가 내 뜻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내 뜻을 굽히지 않고 내 만의 뜻을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내가 믿고 싶어서 예수 믿는 자라 한다면 언젠가는 여러분은 내가 믿기 싫어서 안 믿을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 중에 그런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내 마음 속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배제한 삶이 얼마나 무모하고 얼마나 불확실하며 얼마나 후회하게 만들고 얼마나 나를 망하게 하는 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살아 왔으니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아 왔음을 통감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꾸는 때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위한 선을 행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상당하게 고민스럽게 되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를 하는 중국 연변 화룡의 동성진 경로당을 섬기는 김병환 권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중국에서 원치 않는 경로당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20여명이 되는 양로들을 돌보다보니 너무 힘이 들고 짜증이 나서 어찌 이런 일은 큰 기업이나 기관에서 할 일이지 어찌 우리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주 불평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3월에 한국에 오자마자 기도원에 찾아가서 금식을 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가슴이 저리도록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기도를 들었을 것입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해야 된다면 여건을 만들어 주셔야 지요 감당하겠다는 기도가 아니라 피하도록 혹은 여건을 달라고 하였더니 응답이 없었던 것입니다.
내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뜻은 그 선을 감당하기 위함이요 아니 감당 할 수 있도록 하시게 합니다.
그러나 진작 사람이 구하는 기도는 선의 요구에 부정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와서 그 사정들을 다 이야기하려고 하고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 참여 하였다가 그만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충격이 아니라 마25:14-30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 합시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설교의 본문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 해 드린다면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의 즐거움에 우리 모두를 참여 시키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의 즐거움에 참여 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적당량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대로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잘 하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런 불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는 다른 이들과 같이 많은 것을 주시지 않았나? 하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면 내가 주의 일을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따져서 묻을 일이 아닙니다.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능력대로 적당하게 주셨습니다. 네게 주신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나님은 다 그 그릇대로 적당하게 하셨지 더 하시지도 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런 내용 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과 드린 기도에 이 말씀은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습니까?
이 말씀을 얼마나 많이 읽었고 얼마나 많은 목사님들한테 들었는데도 자신하고는 무관한 것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분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하는데 다이제스터 전화카드 20만 원짜리를 제게 쓰라고 주시는 거예요 중국에서 쓸려고 준비한 모양인데
그리고 이 분이 돌아가서 이 경로원을 얼마나 잘 보살피는지 그 편지 내용에 보니 그 분이 살아났더라고요 구구절절이 감사와 긍정의 문구로 채워져 있고요 제가 게시판에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 교회 주보에 주일 아침 금식으로 선교 구제 장학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주일 아침 금식을 하며 강 건너 형제들을 위해 쓰려고 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금년 여름 수련회는 일송정 아래 혜란 강변에서 하시면 어떻겠냐고 물어 오셨습니다? 식사는 무공해 야채와 토끼 고기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연못에는 잉어가 1만 마리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우리가 선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선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참으로 행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아직도 세상적인 것에만 몰두하고 괴로워하지 말고요
새벽 기도회에 열심히 나오시는 한분이 계시는데 열심히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하시는데 그 짐 보따리를 하나님의 선한 뜻에 맡기지 못하고 있으니 제가 보기에 얼마나 답답한지 …….
선한 일에 맡겨 버리면 그 문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쁨이요 감사요 축복이요 더 온전케 될 일입니다.
나의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선을 위한 복된 삶이란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에게는 숱한 어려운 문제가 많습니다. 그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이것해 주세요. 저것해주세요 그러면 잘 하겠습니다는 생각과 기도는 그만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까?
저 전라도 순천에 순동교회 박병선 집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의 직업은 순천시의원입니다. 그는 2002년 2월 3일 처음 아내의 인도를 받고 교회 출석을 했습니다. 그가 교회 처음 나가서 무엇을 구하였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이 교회의 빈 자리는 제가 다 채우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하고 한 해에 750명을 전도 했다고 합니다.
전도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한 것이 놀랍고 더욱이 그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서원을 하고 나니 그 때에 어떤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리는 듯했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듯한 전율을 느끼고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선에 내 자신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썩어질 육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한번 새로운 결단을 내리십시오
이런 사람 하나님이 붙잡으시고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도록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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