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살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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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77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이사야 55:6-13 당신의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살 길이 열립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합니까?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합니까?
데카르트는 말하기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사람은 생각하고, 머리 속에 생각이 들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각 할 수 있는 사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이 없지요
어떤 사람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한도가 넘으면 정신 질환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무슨 생각 무슨 생각, 생각이 꼬리를 물지 않습니까? 오늘날에 생각하는 모임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의 장래를 생각하는 모임,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 환경을 생각하는 전국 교사의 모임, 바른 교육 행정을 생각하는 모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택시 생각을 하는 기사들의 모임, 물고기의 생각, 고향 생각, 이 생각 저 생각 등등 참으로 생각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연재가 끝이 났지만 광수 생각이라는 모 신문에 연재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보다가 나중에는 광수 생각을 내가 보고 이해하고 받아드리느라고 생각을 하다가 참 머리가 더 복잡해지더라고요 광수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하고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광수도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도 알기 어려운 생각을 하다가 그만 연재가 중단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은 생각을 하게하고 참으로 끝이 없어요. 유쾌한 생각 슬픈 생각 기분 좋은 생각 기분 나쁜 생각 이런 것들이 그냥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많이 끼치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머리 속에는 거의 매일 수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습니다. 소리는 1초에 360m을 움직이고 또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30만 킬로미터를 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빛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빛보다 수십억 배가 빠른 원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빠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1초에도 광활한 우주를 수십 바퀴나 돌 수 있으며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하고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빠른 생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 생각이 우리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사의 엄청난 사건들 모두가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의 수필가 렐프 웰드 에머슨은 “사람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도 “사람이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솔로몬도 잠23:7에서 “대제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생각하는 것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말씀이며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나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죽습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살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여러분들이 어떠한 생각들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 왔느냐? 에 따라서 오늘 이 시간의 나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생각에 대한 단어가 그 어느 단어에 못잖은 1227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각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보았습니까?
1227번이나 기록된 생각이란 단어는 2가지로 요약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는데 얼마큼 차이가 있느냐?
오늘 본문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러면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는 어느 정도의 차이를 이야기 하는 줄 아십니까? 잘 모르 실 것입니다.
생명과 사망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전적으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면은 땅의 생각과 사망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각만을 하면서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속에서 나의 삶이 만들어져 왔으니 살겠다는 긍정적이기 보다는 죽게 다는 부정적인 모습이 가득합니다.
대체로 우리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보십시오.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아니 나 자신을 보십시오.
인생이 망하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낙천적인 생각을 가져라 하는데 어디 이것이 쉽습니까?
저도 지금까지 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서 얼마나 손해를 많이 봤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아버지가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 때문에 고심을 하다가 아마 세상에서 그 아이의 병에 대하여는 극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도움을 구하려 왔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이 아이를 치유를 할 수 있거든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평상시에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 즉 부정적인 상태를 예수님에게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눈에는 예수님조차도 자신의 문제에 할 수 있다 라는 전적인 긍정이 되지 못하고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90%는 부정이요 긍정은 10% 정도로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내가 할 수 없어서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둔 줄로 아느냐? 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향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신데…….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나의 모든 삶의 문제를 예수님은 전적으로 해결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기 보다는 할 수 있다면 이라는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의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까?
할 수 있다와 할 수 있거든 의 차이는 굉장합니다.
할 수 있다 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생기지만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말은 전적인 신뢰가 생기지 않고 언제든지 다른 길로 빠질 소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서 들어 나고 있지 않습니까?
주일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개 잡는다 어디 노는 건수만 생기면 얼마든지 하나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제 좋을 때로 가버리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답답하면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하는 말이 할 수 있으면 도와주세요……. 얼마나 부정적입니까?
그러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버리고 믿음은 뒤로 배수진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 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길은 이 길 밖에 없는데 무슨 다른 생각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 한분뿐이십니다. 믿습니까? 정말이십니까? 믿어지십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께 향하여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아버지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은 부정적인 삶을 살아 왔던 자에게 강한 긍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 실 줄은 모르지만 그런데 그 믿음이 아무런 실력을 발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그래서 하는 말들이 왜 내가 믿는데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거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안 되게 하시면 어떡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모든 일을 안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건질 구원의 힘이 없으신 것도 아닙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극한 부정도 부정으로 보시지 않았습니다.
극한 부정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은 합력하여 선을 가져오게 하시고 화라도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13절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날 것이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변화여 소망이 되고 두려움이 변화여 평안이 되고 사망이 물려가고 생명을 찾아 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믿음은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실제로 긍정적인 삶이 찾아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 바라보게 되면 은 긍정적인 것조차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십시다.
나의 믿음이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꾸게 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소리를 질려 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하시니 예수님은 이미 그 아이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여 그 귀신을 쫓아내고 아이를 깨끗케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내가 하나님에게 향하여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부정적인 믿음이 된 것을 회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렇게 되느냐? 하든지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도 열심인데 하나님은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인가? 절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정적이지 마십시오.
그러면 부정적인 그대로 되고 맙니다. 악인은 그 염려하는 데로 되고 의인은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누나 의인 입니까? 하나님께 언제든지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내 스스로 공치사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만 하면 됐다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이라도 하나님에게 대한 긍정적인 사고로 바꾸신다면 하나님은 그 순간부터 여러분들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하시고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시고 생명과 평안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도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하나님 중심적일 때에만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 십니까? 그리고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까?
여러분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좁은 줄 아십니까? 머리카락 하나 흰 것을 검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정적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 생각만을 앞세우거나 하나님의 생각을 무시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얼른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문둥환자가 되어 엘리사에게 치유 받기를 원하여 찾아 왔습니다.
엘리야는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하기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참 신기합니다.
병 낫기를 원하여 온 나아만 장군이 그 주문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는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아예 찾아오지를 말지 자신의 생각으로 지금까지 문둥병이 치유되지 못했는데 아주 다급한 이 순간까지도 내 생각에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향하여 내 생각에는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합당하게 인도하여 주시는 데도 하는 말이 내 생각에는 왜 내 생각대로 안 되는냐?는 말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종이 되고 왜 애굽과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내 생각이 그들을 망쳐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아셔야지요.
하늘과 당 만큼이요 죽음과 생명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길로 인도 할 때에 스스로 자취함이 아니냐?
저는 너무나도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입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느냐? 아닙니다.
가르쳐 주심이 없었느냐? 아닙니다. 내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빨리 내 생각을 빼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을 주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람 장군은 자신이 장군이라고 아는 모양인데 문둥이가 그의 몸을 썩게 만들고 끝내는 장군은 고사하고 이 성에서 추방당하고 결국은 그 생명도 살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서 고집을 피우는 이 장관을 볼 때에 너무나도 답답한 수행원이 한 마디 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이 병 낫기를 원 한다면 이것보다 더 한 것을 시켜도 해야 할 일인데 지금 무슨 말하고 있습니까?
그대로 당신 고집 피우고 문둥이로 그냥 돌아 갈 것입니까?
누가 의사 누가 환자이지 누가 피조된 인간이고 누가 창조주 하나님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 이 말에 정신이 뻐적나서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바꿔 먹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거져 우리는 오늘도 종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겠습니다. 하는 태도로 바꿔보십시오
그 순간에 놀라운 일이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 내 생각만하고 있으니 여러분의 생각이상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그 모양 그 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 보십시오.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과 축복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11-12절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합니까?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합니까?
데카르트는 말하기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사람은 생각하고, 머리 속에 생각이 들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각 할 수 있는 사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이 없지요
어떤 사람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한도가 넘으면 정신 질환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무슨 생각 무슨 생각, 생각이 꼬리를 물지 않습니까? 오늘날에 생각하는 모임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의 장래를 생각하는 모임,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 환경을 생각하는 전국 교사의 모임, 바른 교육 행정을 생각하는 모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택시 생각을 하는 기사들의 모임, 물고기의 생각, 고향 생각, 이 생각 저 생각 등등 참으로 생각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연재가 끝이 났지만 광수 생각이라는 모 신문에 연재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보다가 나중에는 광수 생각을 내가 보고 이해하고 받아드리느라고 생각을 하다가 참 머리가 더 복잡해지더라고요 광수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하고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광수도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도 알기 어려운 생각을 하다가 그만 연재가 중단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은 생각을 하게하고 참으로 끝이 없어요. 유쾌한 생각 슬픈 생각 기분 좋은 생각 기분 나쁜 생각 이런 것들이 그냥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많이 끼치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머리 속에는 거의 매일 수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습니다. 소리는 1초에 360m을 움직이고 또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30만 킬로미터를 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빛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빛보다 수십억 배가 빠른 원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빠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1초에도 광활한 우주를 수십 바퀴나 돌 수 있으며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하고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빠른 생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 생각이 우리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사의 엄청난 사건들 모두가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의 수필가 렐프 웰드 에머슨은 “사람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도 “사람이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솔로몬도 잠23:7에서 “대제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생각하는 것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말씀이며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나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죽습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살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여러분들이 어떠한 생각들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 왔느냐? 에 따라서 오늘 이 시간의 나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생각에 대한 단어가 그 어느 단어에 못잖은 1227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각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보았습니까?
1227번이나 기록된 생각이란 단어는 2가지로 요약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는데 얼마큼 차이가 있느냐?
오늘 본문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러면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는 어느 정도의 차이를 이야기 하는 줄 아십니까? 잘 모르 실 것입니다.
생명과 사망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전적으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면은 땅의 생각과 사망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각만을 하면서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속에서 나의 삶이 만들어져 왔으니 살겠다는 긍정적이기 보다는 죽게 다는 부정적인 모습이 가득합니다.
대체로 우리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보십시오.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아니 나 자신을 보십시오.
인생이 망하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낙천적인 생각을 가져라 하는데 어디 이것이 쉽습니까?
저도 지금까지 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서 얼마나 손해를 많이 봤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아버지가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 때문에 고심을 하다가 아마 세상에서 그 아이의 병에 대하여는 극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도움을 구하려 왔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이 아이를 치유를 할 수 있거든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평상시에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 즉 부정적인 상태를 예수님에게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눈에는 예수님조차도 자신의 문제에 할 수 있다 라는 전적인 긍정이 되지 못하고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90%는 부정이요 긍정은 10% 정도로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내가 할 수 없어서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둔 줄로 아느냐? 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향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신데…….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나의 모든 삶의 문제를 예수님은 전적으로 해결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기 보다는 할 수 있다면 이라는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의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까?
할 수 있다와 할 수 있거든 의 차이는 굉장합니다.
할 수 있다 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생기지만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말은 전적인 신뢰가 생기지 않고 언제든지 다른 길로 빠질 소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서 들어 나고 있지 않습니까?
주일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개 잡는다 어디 노는 건수만 생기면 얼마든지 하나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제 좋을 때로 가버리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답답하면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하는 말이 할 수 있으면 도와주세요……. 얼마나 부정적입니까?
그러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버리고 믿음은 뒤로 배수진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 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길은 이 길 밖에 없는데 무슨 다른 생각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 한분뿐이십니다. 믿습니까? 정말이십니까? 믿어지십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께 향하여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아버지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은 부정적인 삶을 살아 왔던 자에게 강한 긍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 실 줄은 모르지만 그런데 그 믿음이 아무런 실력을 발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그래서 하는 말들이 왜 내가 믿는데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거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안 되게 하시면 어떡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모든 일을 안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건질 구원의 힘이 없으신 것도 아닙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극한 부정도 부정으로 보시지 않았습니다.
극한 부정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은 합력하여 선을 가져오게 하시고 화라도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13절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날 것이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변화여 소망이 되고 두려움이 변화여 평안이 되고 사망이 물려가고 생명을 찾아 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믿음은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실제로 긍정적인 삶이 찾아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 바라보게 되면 은 긍정적인 것조차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십시다.
나의 믿음이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꾸게 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소리를 질려 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하시니 예수님은 이미 그 아이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여 그 귀신을 쫓아내고 아이를 깨끗케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내가 하나님에게 향하여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부정적인 믿음이 된 것을 회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렇게 되느냐? 하든지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도 열심인데 하나님은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인가? 절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정적이지 마십시오.
그러면 부정적인 그대로 되고 맙니다. 악인은 그 염려하는 데로 되고 의인은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누나 의인 입니까? 하나님께 언제든지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내 스스로 공치사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만 하면 됐다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이라도 하나님에게 대한 긍정적인 사고로 바꾸신다면 하나님은 그 순간부터 여러분들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하시고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시고 생명과 평안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도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하나님 중심적일 때에만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 십니까? 그리고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까?
여러분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좁은 줄 아십니까? 머리카락 하나 흰 것을 검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정적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 생각만을 앞세우거나 하나님의 생각을 무시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얼른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문둥환자가 되어 엘리사에게 치유 받기를 원하여 찾아 왔습니다.
엘리야는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하기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참 신기합니다.
병 낫기를 원하여 온 나아만 장군이 그 주문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는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아예 찾아오지를 말지 자신의 생각으로 지금까지 문둥병이 치유되지 못했는데 아주 다급한 이 순간까지도 내 생각에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향하여 내 생각에는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합당하게 인도하여 주시는 데도 하는 말이 내 생각에는 왜 내 생각대로 안 되는냐?는 말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종이 되고 왜 애굽과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내 생각이 그들을 망쳐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아셔야지요.
하늘과 당 만큼이요 죽음과 생명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길로 인도 할 때에 스스로 자취함이 아니냐?
저는 너무나도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입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느냐? 아닙니다.
가르쳐 주심이 없었느냐? 아닙니다. 내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빨리 내 생각을 빼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을 주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람 장군은 자신이 장군이라고 아는 모양인데 문둥이가 그의 몸을 썩게 만들고 끝내는 장군은 고사하고 이 성에서 추방당하고 결국은 그 생명도 살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서 고집을 피우는 이 장관을 볼 때에 너무나도 답답한 수행원이 한 마디 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이 병 낫기를 원 한다면 이것보다 더 한 것을 시켜도 해야 할 일인데 지금 무슨 말하고 있습니까?
그대로 당신 고집 피우고 문둥이로 그냥 돌아 갈 것입니까?
누가 의사 누가 환자이지 누가 피조된 인간이고 누가 창조주 하나님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 이 말에 정신이 뻐적나서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바꿔 먹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거져 우리는 오늘도 종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겠습니다. 하는 태도로 바꿔보십시오
그 순간에 놀라운 일이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 내 생각만하고 있으니 여러분의 생각이상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그 모양 그 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 보십시오.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과 축복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11-12절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