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이 당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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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7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요한복음 10:7-15 예수님만이 당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역사이래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한 단어는 부정적인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의 말대로 부정적으로 생활이 이끌어져 나왔다면 인류는 그 누구도 살아남은 자가 없고 다 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절대로 부정적으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긍정적인 흐름으로 흘러와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가 얻은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의 사고는 부정적입니다. 그 결과는 다 죽게 생길 것입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왜 죽게 생겼는가? 에 대하여 명확하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답하고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 5:13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사1:26-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사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하나님 그 분이 구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론 옛날에도 마찬 가지로 사람들은 한결같이 먹을 것 입을 것 등등이 없어서 극히 일차적인 문제를 가지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원망하고 부모, 형제, 주위사람을 탓하고 주어진 환경을 불평해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하여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마는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것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고와 삶 속에서 참으로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죽을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을 얻고 살아나려고 한다면 먼저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삶이 되도록 원하시고 계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필요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하나님은 무심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지혜와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그 천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 무엇 하시고 계시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무시지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밤낮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절대로 할 일이 없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 필요를 해결 할 수 있는 능력도 물론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심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나의 구원과 풍요로운 삶은 역시 믿음입니다.
믿음의 대상과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모든 문제의 해결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문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며
11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구원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삶에 궁색하고 지치고 메마른 자들을 향하여 당신의 풍성하심을 허락하시려고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 한 성도께서 일을 마치고 허겁지겁 올라오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제 마음에 감동이 되어 혹시 무엇을 원하십니까?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약 5억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단도직업으로 말하시는데 참으로 원초적이다 싶더라고요
이렇게까지 대답이 나올지를 생각을 못 했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평소에 그렇게도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좋아요
5억 정도냐 5억 달러도 아니고 로또 복권도 일등하면 175억 정도가 된다는데……. 하나님이 이것쯤이냐?
제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이야 5억씩이나 할까요? 아니면 이게 기도 제목 전부야 하시겠습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문제는 5억을 주고 안주고가 아니라 5억이 필요한 그기에 합당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장 5억을 준다고 안 준다고도 지금하시지 않았습니다.
5억보다 더 많이 주실지 아니면 내게 조금 있는 것도 다 털어 가실지 더 빚을 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기에 대하여는 묵묵 부담이시고 다만 들려주시는 말씀은 믿음이 필요하다는 대답 밖에 하시지 않았습니다. 믿음만 요구하셨습니다.
내가 지녀야 할 그 믿음이 지금 내가 꼭 필요로 하는 5억의 현찰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나를 구원 할 것이며 이 믿음이 나의 삶을 풍성케 할 것이며 이 믿음이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허락하면 믿음이 생길 것으로 여기지만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 문제는 해결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과 주시면 믿음이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보이면 하고 계시니 이런 줄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줄 달리기는 누가 이기겠습니까?
역사이래로 사람이 이겼다는 말이 없고 하나님이 날마다 이기셨습니다.
사람이 천하를 다 얻었다 할지라도 제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문제는 아니 참으로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할 일은 육신적인 것만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먼저 믿음을 얻기 위함인 줄 아시니 바랍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도 산을 옮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꾸만 문제가 먼저하고 나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믿음이 먼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행하는 그 믿음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은 놀라운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역시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는 하나님은 어떤 성도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그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줄 아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그런 말씀을 주시더라고요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부자이신가를 보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성도님을 통하여서 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도해 주다가 이런 내용을 말씀 하시는 것은 처음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축복을 얼마나 해 주고 싶어도 하나님이 아무런 말씀 하시지 않으시니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 형 가인은 동생 야곱에게만 축복을 해주시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애원하며 나에게도 축복해 주시기를 간청했지만 너에게는 축복해 줄 것이 없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인데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 을 보아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축복을 받은 야곱은 인간적으로 간사함도 있고 실수도 있지만 그는 믿음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인간적으로 의리가 있고 사나이다운 면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믿음적인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복이 되고 복이 되지 않음의 기준은 얼마나 인간적인 조건이 띄어나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에 있지 않고 과연 얼마나 믿음 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에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성도들을 바라 볼 때에 그 사람이 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절대로 인간적인 것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똑똑하다 하지 않다로 하지 않습니다. 배웠다 배우지 않았다로 하지 않습니다.
왜 제가 제 마음대로 성도들을 축복하고 하지 않고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음은 그들의 믿음입니다.
과연 이 사람이 행하는 일이 믿음으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 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하실 적에 그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입니다.
믿음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이제 올 한 해도 4분지 3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돈, 직장, 사업, 등등 육신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아니 이 믿음 안에는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남음이 있는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올 해 우리 교회 표어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인정받고 행함으로 복을 받자 아닙니까?
믿음이 없으면 아예 인정이 없습니다.
믿음적인 행위에는 반드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아직까지 나는 복이 되지 못하고 복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이 복이 없어서 복 된 자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복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이 일러 주는 믿음 곧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먼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의 생각과 인간의 형편을 예수님보다 앞장세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정석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 형편이 이러하니 지금 내 사정이 어떻다하며 이렇게만 말을 하고 있다면 거기에 무슨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무슨 필요하며 믿음이 요구 되겠습니까?
그러니 거기에는 믿음이 항상 결여 되니 아니 필요가 없으니 어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무슨 구원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무슨 축복이 되겠습니까?
항상 인간적인 그것 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닙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믿음보다 먼저 행하는 것을 강도로 절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절도가 내개 무슨 유익을 주겠습니까?
유익은커녕 나에게 얼마나 해를 입힐는지 모릅니다.
늑탈하고 해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나섬으로 강절도 당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하고 싶은 자들에게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는 내일을 하라 그러면 내가 네 일을 해 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많은 역사를 가져 왔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형편과 사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믿음적인 것이 항상 먼저 이었습니다.
히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믿음은 말씀에 내 인격과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내 자신이 복된 자가 되시기를 원하고 게십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어도 전혀 변함이 없이 인간 그대로 남아 있는 기적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 보십시오
결국은 여러분들이 꼼짝하지 못하고 항복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다 잃어버리기 전에 아니 내 생명이 다하기 전에 항복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 권속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과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도대체 안 들어요.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를 막고 진저리를 치고 도망을 갑니다.
교회는 천국 타작마당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고릅니다.
저는 날마다 이러한 심정으로 사역을 합니다. 네편 내편 편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 편으로 세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알곡은 거둬 드리고 쭉정이는 불태워 버립니다.
곡식을 뜨는 키를 보십시오.
까불수록 곡식은 안 쪽으로 다가오고 쭉정이는 밖으로 밀려 나갑니다.
저는 늘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가 매를 가지고 아이들을 때리며 교훈 할 때에 참 자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지만 남의 자식은 보따리 싸서 아예 나가 버립니다. 여기 아니면 어디 살 데가 없나 하고 말입니다.
가륫유다는 예수님께서 네 갈 길로 가라 하니 그 시로 어두운 데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주를 떠나서도 살 수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아도 살아 갈 자신이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26-27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왜 순종하지 않느냐?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왜 순종 못하지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내가 구원을 받을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까?
따지고 판단 할 이유가 없는 줄로 여겨집니다.
아멘으로 그냥 받아 드릴 것뿐입니다. 우리가 숨을 쉴 때 따지고 숨을 쉽니까?
그냥 자동으로 쉬는 것 아닙니까?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든지 종이 듣겠습니다. 하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역사이래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한 단어는 부정적인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의 말대로 부정적으로 생활이 이끌어져 나왔다면 인류는 그 누구도 살아남은 자가 없고 다 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절대로 부정적으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긍정적인 흐름으로 흘러와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가 얻은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의 사고는 부정적입니다. 그 결과는 다 죽게 생길 것입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왜 죽게 생겼는가? 에 대하여 명확하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답하고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 5:13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사1:26-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사45: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하나님 그 분이 구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론 옛날에도 마찬 가지로 사람들은 한결같이 먹을 것 입을 것 등등이 없어서 극히 일차적인 문제를 가지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원망하고 부모, 형제, 주위사람을 탓하고 주어진 환경을 불평해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하여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마는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것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고와 삶 속에서 참으로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죽을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을 얻고 살아나려고 한다면 먼저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삶이 되도록 원하시고 계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필요로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하나님은 무심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지혜와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그 천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 무엇 하시고 계시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무시지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밤낮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절대로 할 일이 없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 필요를 해결 할 수 있는 능력도 물론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심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나의 구원과 풍요로운 삶은 역시 믿음입니다.
믿음의 대상과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모든 문제의 해결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문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며
11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구원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삶에 궁색하고 지치고 메마른 자들을 향하여 당신의 풍성하심을 허락하시려고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 한 성도께서 일을 마치고 허겁지겁 올라오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제 마음에 감동이 되어 혹시 무엇을 원하십니까?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약 5억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단도직업으로 말하시는데 참으로 원초적이다 싶더라고요
이렇게까지 대답이 나올지를 생각을 못 했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평소에 그렇게도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좋아요
5억 정도냐 5억 달러도 아니고 로또 복권도 일등하면 175억 정도가 된다는데……. 하나님이 이것쯤이냐?
제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이야 5억씩이나 할까요? 아니면 이게 기도 제목 전부야 하시겠습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문제는 5억을 주고 안주고가 아니라 5억이 필요한 그기에 합당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장 5억을 준다고 안 준다고도 지금하시지 않았습니다.
5억보다 더 많이 주실지 아니면 내게 조금 있는 것도 다 털어 가실지 더 빚을 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기에 대하여는 묵묵 부담이시고 다만 들려주시는 말씀은 믿음이 필요하다는 대답 밖에 하시지 않았습니다. 믿음만 요구하셨습니다.
내가 지녀야 할 그 믿음이 지금 내가 꼭 필요로 하는 5억의 현찰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나를 구원 할 것이며 이 믿음이 나의 삶을 풍성케 할 것이며 이 믿음이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허락하면 믿음이 생길 것으로 여기지만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 문제는 해결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과 주시면 믿음이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보이면 하고 계시니 이런 줄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줄 달리기는 누가 이기겠습니까?
역사이래로 사람이 이겼다는 말이 없고 하나님이 날마다 이기셨습니다.
사람이 천하를 다 얻었다 할지라도 제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문제는 아니 참으로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할 일은 육신적인 것만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먼저 믿음을 얻기 위함인 줄 아시니 바랍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도 산을 옮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꾸만 문제가 먼저하고 나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믿음이 먼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행하는 그 믿음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은 놀라운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역시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는 하나님은 어떤 성도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그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줄 아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그런 말씀을 주시더라고요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부자이신가를 보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성도님을 통하여서 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도해 주다가 이런 내용을 말씀 하시는 것은 처음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축복을 얼마나 해 주고 싶어도 하나님이 아무런 말씀 하시지 않으시니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 형 가인은 동생 야곱에게만 축복을 해주시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애원하며 나에게도 축복해 주시기를 간청했지만 너에게는 축복해 줄 것이 없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인데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 을 보아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축복을 받은 야곱은 인간적으로 간사함도 있고 실수도 있지만 그는 믿음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인간적으로 의리가 있고 사나이다운 면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믿음적인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복이 되고 복이 되지 않음의 기준은 얼마나 인간적인 조건이 띄어나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에 있지 않고 과연 얼마나 믿음 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에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성도들을 바라 볼 때에 그 사람이 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절대로 인간적인 것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똑똑하다 하지 않다로 하지 않습니다. 배웠다 배우지 않았다로 하지 않습니다.
왜 제가 제 마음대로 성도들을 축복하고 하지 않고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음은 그들의 믿음입니다.
과연 이 사람이 행하는 일이 믿음으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 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하실 적에 그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입니다.
믿음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이제 올 한 해도 4분지 3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돈, 직장, 사업, 등등 육신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아니 이 믿음 안에는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남음이 있는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올 해 우리 교회 표어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인정받고 행함으로 복을 받자 아닙니까?
믿음이 없으면 아예 인정이 없습니다.
믿음적인 행위에는 반드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아직까지 나는 복이 되지 못하고 복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이 복이 없어서 복 된 자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복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이 일러 주는 믿음 곧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먼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의 생각과 인간의 형편을 예수님보다 앞장세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정석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 형편이 이러하니 지금 내 사정이 어떻다하며 이렇게만 말을 하고 있다면 거기에 무슨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무슨 필요하며 믿음이 요구 되겠습니까?
그러니 거기에는 믿음이 항상 결여 되니 아니 필요가 없으니 어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무슨 구원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무슨 축복이 되겠습니까?
항상 인간적인 그것 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닙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믿음보다 먼저 행하는 것을 강도로 절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절도가 내개 무슨 유익을 주겠습니까?
유익은커녕 나에게 얼마나 해를 입힐는지 모릅니다.
늑탈하고 해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나섬으로 강절도 당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하고 싶은 자들에게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는 내일을 하라 그러면 내가 네 일을 해 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많은 역사를 가져 왔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형편과 사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믿음적인 것이 항상 먼저 이었습니다.
히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믿음은 말씀에 내 인격과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내 자신이 복된 자가 되시기를 원하고 게십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어도 전혀 변함이 없이 인간 그대로 남아 있는 기적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 보십시오
결국은 여러분들이 꼼짝하지 못하고 항복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다 잃어버리기 전에 아니 내 생명이 다하기 전에 항복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 권속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과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도대체 안 들어요.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를 막고 진저리를 치고 도망을 갑니다.
교회는 천국 타작마당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고릅니다.
저는 날마다 이러한 심정으로 사역을 합니다. 네편 내편 편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 편으로 세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알곡은 거둬 드리고 쭉정이는 불태워 버립니다.
곡식을 뜨는 키를 보십시오.
까불수록 곡식은 안 쪽으로 다가오고 쭉정이는 밖으로 밀려 나갑니다.
저는 늘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가 매를 가지고 아이들을 때리며 교훈 할 때에 참 자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지만 남의 자식은 보따리 싸서 아예 나가 버립니다. 여기 아니면 어디 살 데가 없나 하고 말입니다.
가륫유다는 예수님께서 네 갈 길로 가라 하니 그 시로 어두운 데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주를 떠나서도 살 수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아도 살아 갈 자신이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26-27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왜 순종하지 않느냐?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왜 순종 못하지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내가 구원을 받을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까?
따지고 판단 할 이유가 없는 줄로 여겨집니다.
아멘으로 그냥 받아 드릴 것뿐입니다. 우리가 숨을 쉴 때 따지고 숨을 쉽니까?
그냥 자동으로 쉬는 것 아닙니까?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든지 종이 듣겠습니다. 하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