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무엇을 하리이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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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20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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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 3:7-14 믿음은 무엇을 하리이까?에서 시작된다
지난 20일 모 교회에서 보장된 수입, 세상적인 영화를 뒤로 미룬 채 지난해 캐나다로의 이민을 간 개그우먼 이성미(45) 집사가 13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개그우먼이란 직업을 가졌지만 제가 사람들에게 주는 웃음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웃음이나 진정한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믿음생활은 지난 89년 방송활동 중 개인적으로 견디기 힘든 사건을 통해 시작되어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칩거 생활을 하던 그녀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박미선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눈길이 적은 새벽기도부터 시작을 하였다고 합니다.
“새벽기도에 나섰지만 초신자가 기도 방법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무작정 가서 하나님께 인사하고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투정부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11일째 되던 날 방언이 터졌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이 집사는 곧바로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이와 함께 하나님은 어려움이 생길 때 기도해줄 친구, 삶에 의문을 가질 때 해답을 제시해 줄 목사님 등 귀중한 믿음의 동역자를 선물로 주셨고 그녀의 믿음의 깊이도 점점 더해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규칙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연예계에서 신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힘든 연예계에서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 행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주일날 방송 프로그램 제의는 모두 거절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PD들도 이제 이성미는 주일에는 일 안하는 연예인으로 알고 제의를 안 하더군요. 술이나 담배도 그렇게 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지키지 못하지만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신앙생활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신앙생활 처음 시작 때부터 이성미 집사 나름의 신앙 철학이 있었기 때문. 하나님께 하나하나씩 순종하고 끊임없이 기도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십일조에 대한 약속을 꼭 지켜 나가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스천의 향기를 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신앙을 갖기까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갖고 보니 왜 이렇게 좋은 것을 나만 알고 있을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안에서의 행복을 모두 같이 누렸으면 합니다.” 라고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무슨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도 중요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말도 귀하지마는 그 보다 더 귀하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현대 교회와 성도의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해 주시지 않느냐? 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자신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에는 하나님 역시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시지 못하신 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없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은혜를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사람들의 인격을 밭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던져 주어도 그것을 포용하고 받아 드리지 못하면 결실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든지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자가 있습니다.
수 백번 수 천번 말씀을 들어도 별 볼일이 없고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받기는 받고 고개를 끄떡하고 마음에 수긍은 하지만은 자신의 교만과 아집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말씀의 사람으로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이 또한 자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입니까?
아마 고생 많이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말씀보다 세상적인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제대로 결실을 하지 못합니다.
말씀은 그렇지만 형편을 앞세우고 사정을 핑계되고 인정을 중요시 하는 사람입니다.
그 형편 그 사정 그 인정따라 해 보십시오 그것이 그 사람 살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리십니다.
그러나 100배 60배 30배 결실하는 사람은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잘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인하여 참고 무슨 일이든지 말씀을 우선하여 자신이 말씀이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바꾸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의 내용도 당연히 바꾸어져 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주세요. 하고 요구만을 하는 사람이 가치가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하며 자신을 내어 놓은 사람이 더 가치가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익숙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나만을 위하여 구하는 데만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많은 무리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바라보며 나아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굶주렸던 사람들이 음식을 발견한 것처럼 목말라 사막을 헤매던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유대 인들은 세례 요한을 향하여 나아왔습니다.
사실 이들은 40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지만 그 동안 닫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듣는 예언자의 소리였기 때문에 수많은 군중들이 요단강 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참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원하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하여 무리를 지어 나아 왔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들이 원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오는데 있어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일에 사실 내가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실제적이며 당연히 행해야 일들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원한다는 마음으로만 가지고 일이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만큼 내 자신이 들어 지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믿음 역시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여기에 진정한 믿음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입니까? 라는 간구함이 따르는 것입니다.
한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는 유명한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와 같은 물음이 있지 않습니까?
10절 무리가 물어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2절 세리들도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14절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오늘 주님은 나에게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희가 무엇이 필요로 하고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하십니다.
그것만이 기도의 제목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복 받기 위한 마음이 없어서 기도를 하지 않아서 얻지 못함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들의 소욕만을 위함으로서 그 기도가 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간혹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시작 했는데 나중에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자신들하고는 상관이 없이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되고 교회를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된 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사용 될 것이며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기도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 내 기도가 나만을 위한 기도에서 머물고 있다면 아직도 내가 믿음이 없구나 아직도 이방인들의 기도에 머물고 있구나?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아무런 응답이 없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기도가 하나의 형식에 그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무엇을 구 할 때에 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이 기뻐하시고 역사하시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응답을 하십니다.
물론 거기에는 내가 원하는 그 이상의 축복이 있습니다.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그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 주실 것이라고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 연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주를 위하여 하나님의 집을 세운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자신의 소욕만을 위하여 기도했다면 결코 그 나라는 영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역대의 왕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들의 나라가 왜 견고히 서지 못하였습니까?
그들의 자신들을 위하지 않았습니까?
자신들을 위하여 구하지 않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자신만을 위한 기도만이 있었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그 무엇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만을 세우는 자리에 서 있는 자가 아니라 내 자신이 그 무엇을 하여야 하는데 마음을 두는 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참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참다운 믿음으로 축복을 받을 자로 만들어 지고 변화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기도하는 자이며 말씀에 인도함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어떠하였기 때문인 줄 아십니까?
자신들의 문제가 많은데 그 문제에서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 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헌신해야겠습니다,
내가 이번에 인테리어에 이렇게 헌금을 하겠습니다.
그러한 고백과 헌신과 헌금을 하는데 저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신이 드려짐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소망을 가지게 됨은 하나님이 그 만큼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같은 역사하심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한번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합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11절 백성들은 두벌 옷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13절 세리들은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14절 군병들은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아야 할 것을 헤아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자신이 행 할 것을 행치 않고 자신의 필요만을 구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너무나도 자신들의 문제에만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원하시는 것은 나를 참으로 복되게 하심 인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받으시고 원하심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관심을 가지시고 축복하심을 아셔야 합니다.
물질을 원하심은 여러분의 물질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몸을 원하심은 몸에 관심을 가지고 게심이요 여러분의 일평생을 원하심은 여러분의 일평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심이요 여러분의 전부를 원하심은 여러분의 전부를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까?
그 아들을 인하여 아들은 물론이요 그 가정을 온전케 하시고 복이 되게 하시기 위하심입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자라면 어찌 아들을 내어 놓을 수가 있었겟습니까?
이 일로 아들이 죽었습니까?
망하였습니까?
이 일로 아들이 온전케 되고 그 가정이 축복을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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