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할 감사가 구원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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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77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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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 50:11-15 마땅히 할 감사가 구원의 증거입니다
오늘은 올 한 해를 잘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는 날입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추수 감사 절기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는 감사는 무슨 감사 하고 내 마음에 감사하기는커녕 불만에 가득 찬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감사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 같은 특별한 날을 정하여서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이 같이 감사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반드시 감사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곤충학자가 여러 해 동안 누에고치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누에고치가 터지면서 그 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누에고치가 나비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살펴보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누에고치의 한 끝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구멍으로 아주 힘들게 애를 쓰며 나비가 빠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날개 짓을 해대며 나는 연습을 하더니 하늘을 날아가더라는 것입니다.
이 곤충학자가 또 다시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는 것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비야 그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느냐. 내가 좀 편하게 해주마.\\ 그래서 그는 누에고치가 나올 때 구멍을 크게 뚫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비가 아주 쉽게 그 곳을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큰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나비가 쉽게 나오기는 하지만 날지를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다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곤충학자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비가 그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기까지 여러 날 동안 고통을 당해야 제대로 된 나비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고는 나비가 나비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비가 누에고치를 빠져 나오면서 몸부림을 칠 때에 몸속에 있는 영양분이 나비의 날개 쪽으로 모아져서 날개에 힘이 생겨 드디어 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비에게는 그 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이 고통스럽지만은 불만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힘들게 나오는 것이 그에게는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내게 주어진 그 환경 자체만을 가지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환경을 두고 불만을 하고 사람을 두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기만 하면 얼마든지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해야 할 것 뿐입니다.
왜 내게 이런 것을 주셨을까?
왜 나는 부자가 되지 않을까?
왜 나에게는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지 않을까?
이렇게만 생각하면 우리는 불평과 불만 속에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면 그 불평의 요소는 그 순간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요
오히려 그 불만의 요소가 감사가 되고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도 연악하고 몸도 연약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의 원통하고 억울함도 아신다고 했습니다.
야곱아 너의 원통함을 어찌 수리함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네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는 체 하시지 않으시고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와 담대함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원통함을 들으시고 그 원통함을 수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필요를 체우시고 더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생각 할 적에 감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나의 연약함 만을 바라보고 나의 원통함 만을 생각하고 나의 부족함 필요함만을 생각하여 불평하고 불 만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가운데 나를 강건하게 하시고 내 소원을 들어 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은 어떻게 되시는 줄 아십니까?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되어지십니다.
그러나 내 사정만을 두고 불평을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불평하는 데로 되는 것입니다.
의인은 그 마음에 원하는 것이 이루게 되고 악인은 그 마음에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떻습니까?
아니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이 어떻습니까?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질 것 같은 마음입니까? 아니면 두려워하는 것이 찾아 올 것 같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을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며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행복해 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십니까?
내가 하나님께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 에 따라서 그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십니다.
11절 산에 있는 새도 하나님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에 일고 복중에 생기기 전에도 알고 천지 창조 전에도 알고 계셨다고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멀리 서도 내 생각을 아시고 일어서고 눕는 것도 아시고 마음의 생각 까지도 아시는 하나님께 이제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계십니까?
문제는 모든 것이 내 것으로 여기고 내 것으로만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어찌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내 원하는 대로만 만들려고 해야 합니까?
어떤 이는 아내도 내 원하는 대로 남편도 내 원하는 대로 자식도 내 원하는 대로 내 것이다 하고 점찍어 놓으려고 합니다. 만은 대단히 죄종 하지만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그 주인의 뜻대로 되어집니다.
지난 목요일 우리 교회 박금란집사님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내부 순환도로를 달리다가 중앙 분리대를 들이 받은 것입니다.
제가 볼 때에 참으로 여러 조건이 큰 사고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빨리 가야 한다는 그런 강박감에 70-80키로가 정상인 길을 100-110킬로로 달려 습니다.
내부 순환도로 별로 좋은 길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몸이 좋지 않는 가운데 수면제가 들어있는 약을 드셨으니 잠깐 조는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또 거기에다가 차는 티코 차로 큰 차가 아니고 중앙 분리대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그 길은 많은 차가 달리는 길입니다.
그리고 차는 다시 재생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폐차 처분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그만 받쳐도 큰 사고 내고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걸어 다니고 계십니다.
이빨을 좀 다치고 약간의 타박상을 입으셨지만 다른 이상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박집사님이 이런 제목으로 감사 헌금을 하였습니다.
제 목숨까지도 다 주님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를 위해 이 목숨 다 하게 하소서
제가 이탈리아의 고속도로에서 차를 운행하다가 제 앞차가 과속으로 달려오다가 앞차를 피하다가 그만 전복되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사람의 생명이 가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찌 이 세상에서 내 것이 라고 큰 소리 칠 것이 있습니까?
12절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 것이라고 여기고 내 뜻대로 하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내 뜻대로 안된다고 불편을 해서 될 일입니까?
이런 사람의 입에는 절대로 감사가 나올 수가 없고 평생에 한을 품고 살다가 불만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아는 사람은 내 고집대로 내 뜻대로 정말로 살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고 사실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욥과 같은 이는 만사를 다 잃어 버렸지만 감사하는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감사하는 자만이 또 감사 할 일이 생깁니다.
불평하는 자에게는 또 불평하는 일이 생깁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태까지 내 것으로 여기고 내 마음대로 하면서 내 마음대로 안 되었다고 불평한 것을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입니다 라고 인정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지기를 원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과 감사함이 생길 것입니다.
감사는 더 큰 구원을 가져옵니다.
지난 2 주간에 걸쳐서 두 동생의 장모되신 사돈어른 두 분이 돌아 가셨습니다.
세상은 이들을 바라보고 이제 모두가 끝이 구나하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을 했습니다.
두 분 다 권사님이시고 그들은 평상시에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가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감사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영생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자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다시 기쁨으로 만나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간적으로는 슬픔의 일이지만은 믿음 적으로 볼 때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이 감사절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추수 감사절은 우리 인생의 구원하고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추수 감사는 무엇입니까?
일년 동안 수고하여 거둬드린 알곡을 창고에 드리는 일입니다.
피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열매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고 그 알곡은 당연히 창고 드리는 것과 같이 참으로 하나님께 주어진 인생을 선한 도구로 수고한 사람이 하나님께 알곡 되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었을 때에 120년의 수고를 하여 배를 지었습니다.
120년 동안의 배를 짓기에는 얼마나 많은 수고가 따라겠습니까?
그 지은 배에 누가 탔습니까?
노아의 식구가 탔습니다.
그 배를 볼 때에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배를 지어 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이 배에 함께 타자고 할 때에 그 누구도 탈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배의 문은 닫히고 홍수의 심판의 임했을 때에 구원의 배를 탈 수 있었던 자는 배를 짓기에 수고한 노아의 식구들이 탈 수 있었지 구원의 기회를 주어도 타지 못한 자들은 결코 그 배를 위한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함을 받는 자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 뜻에 따라 감사하며 살아 간 자들의 것입니다.
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내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할렐루야!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의 털은 부드럽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낳고 수고하여 키웠기 때문입니다.
왜? 내 자녀가 다른 자녀를 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자라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까?
내가 낳고 내가 수고하고 길렀기 때문입니다.
왜? 미국의 청교도 들이 어려움과 사망의 고난 속에서 한 줌의 옥수수를 가지고 그렇게 감사를 했습니까?
이들이 수고하고 얻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고하지 않고 얻으려고 하고 수고하지 않고 누리려고만 하니 감사가 없고 오히려 불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지난 철야기도 시간에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려고 하시는지 모릅니다.
밤새도록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려고 하는데 육신을 핑계되고 중단을 했습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감사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하나미의 뜻을 따라 수고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저는 이 교회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면서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새 건물에다가 하면 쉽지 만은 이 건물을 사용하여 예배를 드리면서 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저녁에는 예배 장소를 만들어야지요. 아침에는 작업 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한 3주간 정신이 없었습니다.
물론 함께 한 자들도 이런 느낌이 들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하다 할 것입니다. 좀 부족한 것이 있지만은 왜 내가 수고하고 내가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납하고 받아 드리듯이 하나님 역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아온 자를 온전히 받으시고 참다운 구원의 기쁨을 주시고 영원한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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