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축복의 기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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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2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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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11 아직도 축복의 기회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사람들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만은 올해 역시 힘이 들어 살기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사실 모두가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정권 당시에는 소비가 경제를 살린다는 그런 주관으로 돈 줄이 많이 풀리고 지나가는 개도 카드를 발행 해 줄 정도로 카드만능 만사 시대가 되어 누구든지 일단은 쓰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고 어떤 이는 적당하게 쓰기 보다는 과소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계속적으로 우리 국민이 소비를 하는데도 경제가 돌아 갈 수 있다면 그 만큼 다행히 아닐 수가 없는데 그런데 쓰는 만큼 충당이 되지 않으니?
그러니 여기저기에서 죽겠다는 소리가 들리고 실제적으로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 오늘 또 죽고 누가 또 죽임을 당 할는지 모르는 살벌한 시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성도들도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에도 이것저것 손을 대어도 잘 안 되고 잘 안 풀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들이 수고하지 않고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였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의 힘겨워 하는 삶의 모습을 목회자로서 상당히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더 힘들어하고 마음 아픈 일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힘들어하며 괴로워하는 성도들을 대 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당하는 어려움으로 괴로워하며 힘들어하는 그 형편도 그렇겠지만 그것보다도 그 어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음이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극한 상황과 저주의 자리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 자신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축복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가 다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은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면 볼수록 화가 나는 나를 보지 마십시오.
생각하면 할수록 아무런 가능성이라고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비참하게만 만드는 나를 더 이상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저는 안세 병원에 관절 수술하는 한 분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관절에 연골이 닳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자력으로는 걷은 것이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그냥 나 두면은 참으로 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공적인 관절을 대체하는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수술 후에 얼마나 아픈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바라보는 분도 함께 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으면 건강한 다리를 얻게 되고 마음대로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까지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왜 인공 관절을 하는지 이해가 되시지요.
더 이상 내 몸에서는 관절의 기능이 다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힘이 없고 약하고 지친 내게 더 이상 가능성을 찾으려고만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만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축복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역시 자신의 힘으로 한계를 느끼는 한 사람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여태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자신의 능력이 전혀 먹혀들어 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들의 인격과 자질 그리고 능력 등을 얍잡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완벽 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진실적인 삶에 전혀 먹혀들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기록된 사람 역시 그 누구에게도 자질 적으로 능력으로 경험상으로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와서 술술 잘되어야 하는데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따라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헛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왜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사실 우리 인생은 언제든지 내가 기대하는 것으로만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되었다고 하지만 이제부터가 언제든지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 온 것을 가만히 보면 너무나도 나 중심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 못하였기 때문에 아니라 세상이 나를 언제든지 용납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나의 도모가 무너져서 괴로워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사실 자신은 괜찮다고 여기는 자도 언제 내 힘의 한계를 느끼고 실망의 자리에 빠질 지도 모르는 불안한 세상입니다.
너의 인생이 무엇이냐?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인생을 완전한 자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아래에 살아야 할 약한 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광을 돌리는 자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불안한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삶을 사는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이러한 상황은 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큰 소리 칠자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빼 버리고 큰소리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비웃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시고 그에게 은혜를 내리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힘든 상황이 주어졌다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일어서고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 사람은 기약이 없는 내일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것도 희망 중에 하나이지만 막연한 내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이라는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 오늘을 다 보내었어도 안 됩니다.
오늘 이 지난 날 의 내일이 아닙니까?
역시 막연한 내일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도시 저 도시 가서 일을 하면서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너희 인생이 무엇인고?
이제 우리의 기대는 하나님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나의 기대와 축복을 삼은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자신을 주님께 내어 놓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 구역 교제를 보지 않았습니까?
가장 흥겨워야 할 잔치 집에 음식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건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 하인들에게 말씀을 듣기를 종용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능력은 다 하였지만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 난 것입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에게 나아가는 일이 가장 당연한 일이며 그리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수고하느냐? 너희는 내게 나아와 들어라 그리하면 기름지고 윤택한 것을 얻으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본문의 시몬은 예수님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가 모여 들었을 때에 그는 누구보다도 말씀을 들으려는 적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배에 예수님을 청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그 옆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말씀을 들음에서 출발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기고 말씀을 들을 때에 내 자신의 주위가 축복의 분위가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골짜기에는 죽은 지 오래 되어 마른 뼈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전혀 생명력을 얻을 수 없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 할 때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고 생명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려 보십시오.
내가 처한 자리에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몬에게 예수님은 특별히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생업에 관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저는 때때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마음을 내어 놓고 예배를 드릴 때에 어떠한 모습이든지 간에 자신을 내어 놓을 때에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령을 아시고 그 마음을 아시고 그 형편을 아시고 위로하시려고 축복하시려고 도와주시려고 인도하시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새벽 기도 시간에 때로는 철야기도 시간에 때로는 수요 저녁 시간에 말씀하십니다.
그 만큼 영육 간에 하나님께 나아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나아오지 않는 자는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게십니다.
내게는 금도 있고 은도 잇고 먹을 것도 있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시는 분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나아와 은혜를 받아야 할 분이십니까?
시몬이 마음을 내어 놓고 배를 내어 놓고 가까이 듣는 것을 아시고는 주님은 말씀하시며 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
얼마나 고대하고 기대 했던 일입니까?
이 말씀 앞에는 자신의 지금 처한 상황하고는 상당히 충돌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몬은 말씀 앞에 자신을 드리기에 주저하지 않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에게는 여태까지 자신을 주관해 온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씀을 묶어 놓지는 못하였습니다.
여태까지 자신을 형성한 그 조건들이 자신을 충족시키지 못하였음을 안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은 인간적인 조건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만한 이유가 자신들 보다 덜 한 줄 알아서 순종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그 무엇보다 우선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시라면…….
순종 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여태까지의 수고는 헛되지만은 말씀에 의한 일은 상상 밖의 일이 벌어 진 것입니다.
내게는 축복이 될 만한 일이 없지만 순종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자신의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축복입니다.
지금까지의 수고로 얻은 것이 없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예수님을 제일 우선하는 자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아직도 복을 받을 기회가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복음을 위해 나 자신을 드리는 자입니다.
주께 내 자신을 드리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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