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천하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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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15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마태복음 16:21-26 당신은 천하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지만은 그러나 사람은 언제든지 어떠하다하는 그 가치는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없으면 좋은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꼭 있어야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개인에게라도 어떤 모임이라도 어떤 단체에서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치가 있는 자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천하보다 귀한 자로 여기시는데 남이 볼 대에 나는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요.
독일의 유명 영화배우 오토 빌헬름 피셔(88)가 3일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평소 아끼던 애완 고양이들이 2백억 원대의 재산을 상속받게 됐다고 독일 일간지 빌트가 5일 보도했습니다. 배우자택 인근 동물보호소에 수용된 고양이들에게 유산 대부분을 주겠다는 유서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남긴 유산은 현재 1천2백만 유로(약 2백억 원).
이 고양이는 늙은 피서에게 있어서는 어떤 존재보다 가장 유익을 주는 가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는 그의 전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 주어도 아깝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치라 함은 별거가 아닙니다.
늙은 피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며 함께 놀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성질대로 그냥 놀아 준 것뿐입니다.
존재의 가치는 다른 이에게 얼마나 유익을 주었느냐? 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가치를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않는 천하보다 귀한 자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의 가치를 이렇게도 높이 평가를 했습니까?
사람이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자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만을 위한 자로만 여긴다면 별로 가치 있게 평가 받지를 못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대로 사용되어 지면 사람의 가치가 굉장한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바라 볼 때에 별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겨우 평가하기를 비누 몇 장을 만들고 비료 몇 부대로 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의 가치가 점점 하락세를 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나가는 거지조차도 재수 없다고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귀하고 귀한 자가 되는지 모릅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은 나를 위한 나를 바라 볼 때에 아니 나의 존재를 나만을 위한 자로만으로 여김으로 인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확실하게 살아 주지 못함으로 인하여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고 나의 가치 저하로 우울해져 있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존재를 새롭게 설정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나의 존재를 재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의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한번은 사단이 예수님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하여 시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탄이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다 보여 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천하를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광을 다 준다고 해도 사단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물질에 넘어 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자신을 위하여 사단에게 절을 하는 결과를 가져 왔더라면 결코 예수님의 이름은 천지에 있는 어떤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이 될 수가 없고 인류의 구주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 이름을 존귀한 자로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우리 가운데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전락시키고 초라한 자로 허무한 자로 왜 만들고 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얼마나 나 자신을 위하여 이 한 평생을 바쳐온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나의 가치는 별로 띄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 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치가 올라 갈 것이요 참으로 존귀하고 귀한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능력 있는 유명 배우가 자신과 함께 놀아주는 고양이에게도 200억이라는 유산을 남겨 주는데 하물며 천지의 주재이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우리를 얼마나 귀한 자로 여겨서 아들이라도 주셨는데 무엇을 더 아끼겠습니까?
이제 나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천하에 가장 귀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위한다는 자세로 내게 주어진 모든 생활을 그렇게 살아 가 보십시오.
참으로 놀라운 일이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존귀하고 복되게 나타 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한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할 경우,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참으로 삭막하기가 이를 데 없는,아주 캄캄하고 어두운 답답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죽음을 말씀하실 때에 이 얼마나 위대하신 일을 자신을 통하여 이루시려고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님은 빛이 되시고 길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축복이 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태도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측면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23절 하반 절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엄연히 하나님의 일보다는 자신의 인간적 기대를 관철시켜 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진정 주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예수님이 죽으신다면 내게 돌아 올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그의 생각의 전부요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자신에게 좋은 생각인 것 같지만 곧 사단이 주는 생각임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당하고 죽으심은 많은 사람을 살리고 예수님 자신도 존귀케 되고 인류의 구주가 되시는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 베드로는 이 엄청난 축복을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나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너만 잘되면 된다.
모든 것을 네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의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의 이익과 손해만을 아주 재빠르게 계산하고 판단합니다. 그 결과로써, 우리의 마음은 옹졸해지고, 또한 그 생각은 하나님의 축복을 막아 버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유독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도 가난하게 되는 법이 있고 자신을 모든 이를 위하여 살아도 부유케 되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축복이 되는 성도들을 봅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는 자가 아니라 한결같이 남을 위하여 자신들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하에서 가장 귀한 자가 될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남을 위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살았습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나만을 위하여 살아 왔습니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많은 결실을 가져 올 것이지만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결실을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있는 것 까지도 다 빼앗길 것입니다.
이제라도 나를 위한 나로 남기를 좋아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위한 나로 남아 있다면 그 순간부터 나의 부가 가치는 참으로 상승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천하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모든 이들은 어떻게 하면 십자가를 지지 않을까? 가 기도의 제목입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여러분 예수님이 그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십자가가 있는 그곳에 예수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위한 그 뜻에 내 자신을 드리는 순종과 헌신의 표현입니다.
십자가를 이상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길거리에 사랑은 동사입니다 라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행동적인 부분입니다.
언제든지 십자가는 남이 대신 져 주는 것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내가져야 할 내 십자가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십자가가 나를 얼마나 존귀한 자로 만들고 이 십자가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십자가를 용케도 피하면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잘 믿는 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도 잘 믿는 자가 아닙니다.
아예 예수님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없는데 무슨 믿음을 논 할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결코 십자가의 위력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평생을 믿어도 십자가의 능력은 그의 생전에는 없는 것이요
그의 삶에는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우면 용케도 피해 가버리니 얼마나 웃기는지 모릅니다.
결국은 그에게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인간 아무개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참으로 천하보다 귀한 자로 만들려고 하시는데
제발 우리 가운데 십자가를 요리저리 피하는 자가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1:18절에서 십자가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언제든지 십자가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가져오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자는 십자가를 저주스럽다고 하지 않고 사랑할 것이요 사랑하다 못해 자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같은 이는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니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했고 내 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자랑하고 큰 소리 친 것입니다.
나에게 십자가의 흔적이 있습니까?
왜? 나만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하는 외마디를 지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조그마한 선을 행하고는 소리치기를 왜? 나만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투덜하는데 그렇게도 십자가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럽습니까?
그러니 수고하고도 그 수고가 축복이 되지 못하고 원망으로 돌아가고 헛수고가 되는 것 아닙니까?
묵묵히 한번 지고가 보십시오.
참으로 놀라운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내게 십자가로 여겨지는 일이 있다면 감사하고 져 보십시오. 축복이 될 것이요
그 순간 당신은 가장 귀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선다싱은 네팔의 어느 산길을 추운 겨울날 길을 가다가 어떤 거지가 선다싱에게 도와 달라고 했는데 그 거지는 너무 추했고 추워서 몸이 얼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선다싱은 그만 그의 요청을 외면하고 돌아서 버렸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거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선다싱은 걸어가면서 마음에 갈등을 느꼈습니다. \\이 추운 밤 나의 몸 하나도 지탱하기 힘이 드는데 저 거지를 도와야 할 것인지............\\ 결국 선다싱은 거지에게 돌아와서 거지를 업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들어서 땀을 뻘뻘 흘리고 걸었습니다.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까 거지를 외면하고 가던 사람들이 너무 추워서 모두 얼어 죽었습니다.
이 십자가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 같지만 그 십자가 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이 주님을 따르는 자는 행복에 보이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자가 행복하게 보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십자가를 지는 가정 서로 십자가를 지는 교회가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모두에게 십자가가 주어져 있습니다.
나에게 지금 져야 할 십자가를 매어 주셨습니다.
이때 우리가 십자가를 잘 지고 가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설교가 스펄젼은 “새의 두 날개가 새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나 새의 날개가 없이는 날 수가 없다. 배의 돛대도 배에게는 한갓 거추장스러운 연장이지만 배의 돛대가 없으면 항해를 할 수 없다. 이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나 성도에게 십자가가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지만은 그러나 사람은 언제든지 어떠하다하는 그 가치는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없으면 좋은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꼭 있어야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개인에게라도 어떤 모임이라도 어떤 단체에서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치가 있는 자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천하보다 귀한 자로 여기시는데 남이 볼 대에 나는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요.
독일의 유명 영화배우 오토 빌헬름 피셔(88)가 3일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평소 아끼던 애완 고양이들이 2백억 원대의 재산을 상속받게 됐다고 독일 일간지 빌트가 5일 보도했습니다. 배우자택 인근 동물보호소에 수용된 고양이들에게 유산 대부분을 주겠다는 유서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남긴 유산은 현재 1천2백만 유로(약 2백억 원).
이 고양이는 늙은 피서에게 있어서는 어떤 존재보다 가장 유익을 주는 가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는 그의 전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 주어도 아깝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치라 함은 별거가 아닙니다.
늙은 피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며 함께 놀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성질대로 그냥 놀아 준 것뿐입니다.
존재의 가치는 다른 이에게 얼마나 유익을 주었느냐? 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가치를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않는 천하보다 귀한 자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의 가치를 이렇게도 높이 평가를 했습니까?
사람이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자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만을 위한 자로만 여긴다면 별로 가치 있게 평가 받지를 못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대로 사용되어 지면 사람의 가치가 굉장한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바라 볼 때에 별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겨우 평가하기를 비누 몇 장을 만들고 비료 몇 부대로 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의 가치가 점점 하락세를 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나가는 거지조차도 재수 없다고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귀하고 귀한 자가 되는지 모릅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은 나를 위한 나를 바라 볼 때에 아니 나의 존재를 나만을 위한 자로만으로 여김으로 인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확실하게 살아 주지 못함으로 인하여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고 나의 가치 저하로 우울해져 있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존재를 새롭게 설정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나의 존재를 재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의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한번은 사단이 예수님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하여 시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탄이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다 보여 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천하를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광을 다 준다고 해도 사단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물질에 넘어 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자신을 위하여 사단에게 절을 하는 결과를 가져 왔더라면 결코 예수님의 이름은 천지에 있는 어떤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이 될 수가 없고 인류의 구주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 이름을 존귀한 자로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우리 가운데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전락시키고 초라한 자로 허무한 자로 왜 만들고 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얼마나 나 자신을 위하여 이 한 평생을 바쳐온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나의 가치는 별로 띄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 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치가 올라 갈 것이요 참으로 존귀하고 귀한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능력 있는 유명 배우가 자신과 함께 놀아주는 고양이에게도 200억이라는 유산을 남겨 주는데 하물며 천지의 주재이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우리를 얼마나 귀한 자로 여겨서 아들이라도 주셨는데 무엇을 더 아끼겠습니까?
이제 나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천하에 가장 귀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위한다는 자세로 내게 주어진 모든 생활을 그렇게 살아 가 보십시오.
참으로 놀라운 일이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존귀하고 복되게 나타 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한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할 경우,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참으로 삭막하기가 이를 데 없는,아주 캄캄하고 어두운 답답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죽음을 말씀하실 때에 이 얼마나 위대하신 일을 자신을 통하여 이루시려고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님은 빛이 되시고 길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축복이 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태도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측면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23절 하반 절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엄연히 하나님의 일보다는 자신의 인간적 기대를 관철시켜 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진정 주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예수님이 죽으신다면 내게 돌아 올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그의 생각의 전부요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자신에게 좋은 생각인 것 같지만 곧 사단이 주는 생각임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당하고 죽으심은 많은 사람을 살리고 예수님 자신도 존귀케 되고 인류의 구주가 되시는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 베드로는 이 엄청난 축복을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나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너만 잘되면 된다.
모든 것을 네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의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의 이익과 손해만을 아주 재빠르게 계산하고 판단합니다. 그 결과로써, 우리의 마음은 옹졸해지고, 또한 그 생각은 하나님의 축복을 막아 버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유독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도 가난하게 되는 법이 있고 자신을 모든 이를 위하여 살아도 부유케 되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축복이 되는 성도들을 봅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는 자가 아니라 한결같이 남을 위하여 자신들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하에서 가장 귀한 자가 될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남을 위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살았습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나만을 위하여 살아 왔습니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많은 결실을 가져 올 것이지만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결실을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있는 것 까지도 다 빼앗길 것입니다.
이제라도 나를 위한 나로 남기를 좋아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위한 나로 남아 있다면 그 순간부터 나의 부가 가치는 참으로 상승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천하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모든 이들은 어떻게 하면 십자가를 지지 않을까? 가 기도의 제목입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여러분 예수님이 그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십자가가 있는 그곳에 예수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위한 그 뜻에 내 자신을 드리는 순종과 헌신의 표현입니다.
십자가를 이상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길거리에 사랑은 동사입니다 라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행동적인 부분입니다.
언제든지 십자가는 남이 대신 져 주는 것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내가져야 할 내 십자가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십자가가 나를 얼마나 존귀한 자로 만들고 이 십자가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십자가를 용케도 피하면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잘 믿는 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도 잘 믿는 자가 아닙니다.
아예 예수님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없는데 무슨 믿음을 논 할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결코 십자가의 위력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평생을 믿어도 십자가의 능력은 그의 생전에는 없는 것이요
그의 삶에는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우면 용케도 피해 가버리니 얼마나 웃기는지 모릅니다.
결국은 그에게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인간 아무개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참으로 천하보다 귀한 자로 만들려고 하시는데
제발 우리 가운데 십자가를 요리저리 피하는 자가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1:18절에서 십자가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언제든지 십자가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가져오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자는 십자가를 저주스럽다고 하지 않고 사랑할 것이요 사랑하다 못해 자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같은 이는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니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했고 내 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자랑하고 큰 소리 친 것입니다.
나에게 십자가의 흔적이 있습니까?
왜? 나만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하는 외마디를 지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조그마한 선을 행하고는 소리치기를 왜? 나만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투덜하는데 그렇게도 십자가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럽습니까?
그러니 수고하고도 그 수고가 축복이 되지 못하고 원망으로 돌아가고 헛수고가 되는 것 아닙니까?
묵묵히 한번 지고가 보십시오.
참으로 놀라운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내게 십자가로 여겨지는 일이 있다면 감사하고 져 보십시오. 축복이 될 것이요
그 순간 당신은 가장 귀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선다싱은 네팔의 어느 산길을 추운 겨울날 길을 가다가 어떤 거지가 선다싱에게 도와 달라고 했는데 그 거지는 너무 추했고 추워서 몸이 얼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선다싱은 그만 그의 요청을 외면하고 돌아서 버렸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거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선다싱은 걸어가면서 마음에 갈등을 느꼈습니다. \\이 추운 밤 나의 몸 하나도 지탱하기 힘이 드는데 저 거지를 도와야 할 것인지............\\ 결국 선다싱은 거지에게 돌아와서 거지를 업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들어서 땀을 뻘뻘 흘리고 걸었습니다.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까 거지를 외면하고 가던 사람들이 너무 추워서 모두 얼어 죽었습니다.
이 십자가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 같지만 그 십자가 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이 주님을 따르는 자는 행복에 보이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자가 행복하게 보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십자가를 지는 가정 서로 십자가를 지는 교회가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모두에게 십자가가 주어져 있습니다.
나에게 지금 져야 할 십자가를 매어 주셨습니다.
이때 우리가 십자가를 잘 지고 가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설교가 스펄젼은 “새의 두 날개가 새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나 새의 날개가 없이는 날 수가 없다. 배의 돛대도 배에게는 한갓 거추장스러운 연장이지만 배의 돛대가 없으면 항해를 할 수 없다. 이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나 성도에게 십자가가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도 없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