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하나님이 맺어준 관계요 결코 나눌 수 없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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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868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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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18-25부부는 하나님이 맺어준 관계요 결코 나눌 수 없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어떤 가정에서 부부 싸움이 대판으로 벌어 졌습니다. 여러분 부부 싸움 많이 하시죠? 저도 많이 합니다. 서로 욕을 하며 싸우는데 그 아내가 어떻게 욕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짝 째리고 쳐다보더니 뭐라그랄까요? 근본적인 욕이 나오기 시작합니다.‘병신 같은 놈!’ 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아내에게 ‘병신“ 이라고 욕을 얻어먹은 남편이 화가 나서 주먹을 불긋쥐고 뭐라고 할까요? ‘이게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게’ 하며 콱 죽여 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를 보고 욕을 하는 말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아주 성경적으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병신이 맞습니다.갈빗대 하나가 없으니까 병신이지요. 그리고 여자는 갈빗대 하나로 만들었으니 아무것도 아닙니다.그러나 병신과 아무 것이 아닌 갈빗대가 하나가 되어 서로 돕는 배필이 되면 병신도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온전하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집 장가가지 않는 처녀 총각들은 열심히 내 짝을 찾고 다니는 것입니다.
눈빛이 틀립니다. 전기 불이 팍팍 튑니다.
개 중에는 시집 장가를 간 사람들이 남의 남자 여자를 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들의 눈빛은 개츰스레한 눈빛입니다.
24절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찌로다
이게 부부입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요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 하고 많은 남자와 하고 많은 여자 중에서 왜 하필이면 당신이 나의 배필이 되었을까? 요 참으로 궁금하지 않습니까?
자칫 잘못하였으면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날 수고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왜 바닷가의 모래알 같은 자들 중에 하필이면 당신이었을까요?
왜 당신이 내 아내요 당신이 내 남편입니까?
내 아내가 될 수밖에 없었고 내 남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배필을 하나님이 붙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다 창조하신 하나님은 에덴동산까지 만들어서 사람을 거기 두어 다스리며 지키며 생활하도록 하셨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것은 다 좋았더라 했는데(1:4,10,12,18,21,25) 그런데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그것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좋지 않게 보셨다는 표현은 아담이 혼자 있던 순간에 대한 부족 상태를 묘사한 말이겠습니다.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것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0.2%가 부족해요 그러므로 칼빈(calvin)은 “여자가 지음 받기까지 아담은 미완성의 건물과 같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혼을 해서 의논해 가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이것을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십니다.하나님이 친히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그러므로 혼자 늙지 마세요.시집, 장가 안 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하나님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 하시고 여자를 만들었는데 아담의 일을 거들어 줄 짝, 아담이 하는 일을 돕는 배필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하나님이 맺어 주셨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만났든지 강제적으로 되었든지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지 어떻게 만났던지 그러합니다.
보통 두 사람이 만나는 경우를 보면 콩깍지가 쉬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보면 뭐 저런 사람하고 사귀나 하며 말리는 대로 말을 듣지 않고 급기야는 보따리를 싸서 도망을 가서 둘이 살아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게 다 내 마음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여 주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되는 조건은 무엇으로? 서로 돕는 배필로 말입니다.
그리고 부부의 관계성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가정의 시작은 부모 자식 관계가 먼저가 아닙니다.
부부 관계가 가정의 시작입니다.
가정이 온전해 지려면 부부관게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자식 때문에 사는 가정은 불행합니다. 자식을 우선순위를 둔다든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 비뚤어진 가정은 자식 우선입니다.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져야 할 존재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소중한 자인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떨어질 수 없는 자로 부부를 세웠습니다.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요 라고 하였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인데 어찌 해체 될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붙으면 살고 떨어지면 졸지에 병신됩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망 할 때에 마의 태자가 나라의 망함을 분히 여기고 개골산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낙랑 공주가 그를 손을 붙잡을 때에 손을 뿌리치지 말고 남아 있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산에 들어가서 초식을 먹고 베옷을 입고 여생을 살아 본들 무슨 역사가 있었습니까?한많은 세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부부는 붙여 주려고 해야지 갈라놓은 일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마19:6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어떤 이유도 어떤 사유도 어떤 사람도 갈라놓을 수 있는 이유가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있고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내가 시어머니를 위한 자로 형제를 위한 자로 남편이 내 친정을 위해 있는 자로 여겨 그기에 충족이 안 되면 갈라서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이런 가정이 비일비재합니다 진짜 안됩니다.
부부가 남편보고 하고 아내보고 결혼하는 것 아닙니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까?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일단은 부부가 서로 좋아 하면은 그것이 최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일은 둘이 좋아하면서 살아가다보면은 짐승이 아닌 이상 드디어 부모도 눈에 들어오고 형제도 보이고 이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도 서로 알지도 못하고 사랑도 하기도 전에 다른 사란을 말하고 다른 것을 알게 하는 무리수를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시어머니는 부부가 누워자는데 그 가운데 가서 눕고 잇는 자도 있습니다.
그집에 일일이 간서ㅍ하여 콩놔라 팝나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결혼한 자는 전쟁터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둘이 사랑 열심히 하라고 나랏닙도 못 말립니다.
고전7;5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는 꼭 꼭 붙어 다녀야 합니다.
여자의 눈에는 남자가 마음에 안 듭니다. 존경이 가지 않고 병신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남자의 눈에도 여자가 마음에 안 듭니다. 사랑이 가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여겨집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바가지를 끓고, 다투고 싸우기 위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다투느냐 하고 물으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통계청 자료에 의하여 이혼하는 부부의 85%가 성격차 즉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 조건을 거는데 배우자 부정, 폭행, 경제적 능력 등으로 표현을 하는데 그 이유는 법정에서 서로 유익한 법적효력을 가지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실상은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내 마음에 안 드는 그 부분을 서로가 채워주는 것이 부부입니다.
남편은 사랑으로 아내의 부족을 채워주고 아내는 용서로 남편의 허물을 덮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부부관계는 서로를 돕는 배필로 서로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자로 있습니다.
결혼 할 때에 엉뚱한 생각으로 하다가 큰 코 다치는 사람이 어디 한 두 가정이 아닙니다.
나의 만족만을 찾는 다면 부부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먼저 상대의 부족을 내가 감당하는데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돕는 배필입니다.
누가 먼저 채워 주어야 하는 자로 있어야 한다면 피차가 먼저라는 개념은 없지만 정 따진다면 남편이 아내에게 입니다.
서구에서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약한 자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다 버려 놓습니다. 아주 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자는 갈비뼈요 갈비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줌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쩌면은 남편의 존재는 내 모든 것을 다 주어 아내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만 결혼을 전제로 감동을 주지 마시고 결혼 후에도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결혼의 세월이 많이 흘려도 아직도 아내는 소녀의 꿈을 가지고 남편의 감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느끼하다고 할 정도로 부부 간에는 사랑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 받는 자로 항상 존경받는 자로 남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받은 아내가 남편을 얼마나 존경스럽게 여기고 일편단심 민들레가 되는 것입니다.
평생같이 살고 싶은 자가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두 사형수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의 아내가 면회를 자주 다니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그 결과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사람의 아내는 그저 안타까워만 하며 동정과 긍휼을 베풀기만 하고 시간을 보냈습니다.드디어 최후의 날이 왔습니다. 두 사형수의 아내들이 마지막 면회를 청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부인이 남편에게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였습니다. \\See again in the Lord.\\ 주안에서 다시 만납시다. 미래를 말하고 희망을 말하고 다시 만날 재회의 기쁨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상대의 아내의 인사는 무엇이었을까요? \\Good bye\\ 이었습니다. 여보 잘가요 기약이 없는 이별입니다. 과거의 애수를 남기고 모든 관계의 끝을 맺는 이별의 슬픔만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다른가? \\여보 다시 만나요\\와 여보 잘가요\\와 얼마나 다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부의 손을 잡고 최후의 순간에 \\여보 다시 만나요\\를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태어 나면 누구하고 결혼 할 것인가 다시 내하고 할 것인가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준 당신임을 아는 자만이 이런 아름다움을 연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부부간의 언어는 반드시 긍정적으로 대 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부부문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두 마디의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부부라면 결코 불행하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여보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시오\\
그런데 이 말을 하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여보 내가 잘 못하였소\\는 내가 아니고 네가 먼저 해야지 자존심 상하게…….
부부지간에 무슨 자존심이 존재합니까?
다른 그 어떤 사람에게도 내 몸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부부간에는 25절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화장실에 가서도 문 다 열어 놓고 용무를 본다니까요
여기에 무슨 자존심…….
살아 있는 한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여보 내가 잘못하였소.\\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부는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남편에게 아내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입니다.
그런데 어찌 함부로 하겠습니까?
아내에게 남편은 내가 존재하는 근본이 됩니다.
그래서 남편은 하늘보다 높아요 하늘 천에다가 점을 하나 더 찍어야 지아비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사랑과 순종의 관계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나 내 가슴과 내 심장과 내 시간과 내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줄 수가 있지 않습니까?
어버이날 어린이 날도 즐거운 날이지만 오늘날 더 중요한 날이 부부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한번 부부의 날을 만들어 함께 여행을 떠납시다.
그리고 부부는 절대로 비교하지 마십시오 자랑만 하십시요
비교의식은 언제나 비교된 대상과 자신에게 이중의 증오와 혐오감을 가져오게 됩니다.
내 남편은 다른 남편들과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여자와 다르듯이 말입니다.
내 아내도 다른 아내들과 달라야 합니다. 내가 다른 남자와 다르듯이 말입니다.
서로 서로에겐 독특한 달란트와 개성이 있는 것입니다.이게 매력입니다.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드리라\\
자꾸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피곤해지는 쪽은 자기 쪽입니다.
바꿔지지 않는 그 부분이 그분을 긍정적으로 잘 살려 주어야 합니다.
설사 바뀐다고 하자. 어디까지 바뀔 수가 있을까?
서로의 허물과 약점은 서로의 판단의 대상이나 정죄의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덮어 주고 이해하고 아니 사랑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정말 행복이 어떤 것일까요?
또 행복의 조건들이 과연 무엇일까요?
어떻게 사는 것을 행복하다고들 말하는 것인가요?
가문?학벌?직업?물질?건강? 미모? 사람의 됨됨이인가?
사람의 생김새인가? 이제 이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들의 주위에는 행복하지 못한 가정들이 참으로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을 상대방에서만 찾고 살려고 하기 때문에 불행해 집니다.
내 스스로가 상대방의 부족을 감당해 나가는 일에 나의 행복과 가정의 행복이 만들어져 갑니다.
이런 부부를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이 든든하지 않으면 결코 주의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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