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머뭇거리겠습니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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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3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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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20-24 언제까지 머뭇거리겠습니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선을 얼마 두지 않는 가운데 검찰의 시퍼런 칼날이 휘둘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세계에서 누가 나라를 망쳤나? 누가 잘 했느냐? 하고 마치 흑백을 가리는 것같이 한편에서는 너는 물러가라 몰아내고 한편에서는 자신들이 가장 의로운 것같이 내가 해야만 잘한다. 라는 극단적인 논리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정치에 왈가왈부 할 수도 없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만은 그러나 성급한 기독교의 몇몇 목사님들 중에서는 기독당을 창당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참으로 더 기가 막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없으니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에서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의 담임 목사와 새벽기도로 큰 부흥이 되었다는 모 교회 담임 목사도 함께 참여한다니 참으로 답답할 일 뿐입니다.
지난 6일 발기인 대회 형식으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모였습니다.
기독정당 출현을 기독교안에서 찬성하는 사람은 10%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 통일교에서도 가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 임한다고 하니 더욱 가관입니다.
이제 정치판에서 이단 종교와 맞붙게 생겼습니다.
지난 대선에는 불교계를 대표하여 중복을 입고 나온 김 모 후보가 있지 않았습니까?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그의 구호입니다.
그러나 불교인들이 그를 찍어 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대선 때 부정 자금책으로 몰려 케토릭 신부 출신 이모 의원이 구속이 된 적이 있는데 구명 운동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나라가 잘 되고 잘 되지 않는 것이기독교인이 정치를 하고 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대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에는 어디 장로 대통령이 없었습니까?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은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가 그렇게 힘들게 되었습니까?
4.19 학생운동이 일어나고 5.16군사 혁명이 일어 난 것입니까?
물론 신앙인이 정치를 한다면 더 나을 수 있는 면도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누가 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자신을 드리는 헌신적인 믿음이 있는 자가 얼마나 있는 가입니다.
정치자의 마음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나라의 통치자가 어떤 사람이 서는가는 국민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냐?에 따라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노 대통령은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우리가 세웠지 다른 어떤 외부의 세력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였기 때문에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이제 와서 사람들은 그를 뽑은 자의 60%가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마는 우리가 뽑아 놓고 이제 와서 갈아 치우렵니까?
그가 스스로 대통령 못 해 먹겠다고 나가지 않는 이상은 우리나라 대통령이니 잘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나라를 위하여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길입니다.
임기가 잘 끝나기까지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의 신앙의 상태에 따라서 선한 왕이 선한 정치를 하기도 하고 악한 왕이 악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총선 때 뽑히는 일군 역시 우리 국민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 에 따라 좋은 일군이 뽑히기도 하고 악한 일군도 뽑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뽑은 것이지 절대로 다른 세력이 뽑은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믿음으로 뽑는다면 좋은 자가 뽑힐 것이고 아직도 지역을 보고 정당을 보고 뇌물들에 치우치면 좋은 일군은 절대로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나무라기 전에 그들을 세운 우리 자신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 나라가 정치하는 자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 만이 아니라 그들을 뽑은 국민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에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통치 시기였지만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사를 세워 하나님의 선한 통치가 이루어지는데 이걸 싫어하고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왕이 정치하는 것을 보고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우리도 왕을 뽑게 해 달라고 하여 이스라엘에게 왕정이 시작되었는데 이 때의 하나님은 상당히 이들의 행동을 못 마땅히 여겼습니다.
사사의 통치를 받지 않고 왕의 통치를 원하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보다는 인간의 통치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뭐 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삼상8:7-18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너희 아들과 딸들이 네가 세운 왕의 종이 될 것이며 너희의 가장 좋은 것을 왕이 취 할 것이며 너희가 뽑은 그 왕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 할 것이며 그 때에는 괴로워해도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말 듣기를 싫어하고 하나님 없는 이방인과 같이 왕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하기를 원하므로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왕정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워진 왕이 하나님의 뜻을 경외하는 왕이 세워진다면 참으로 복 된 일이겠지만 인간적으로 고집을 피우는 왕이 통치를 한다면 백성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 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합의 우상 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여 나라는 상당히 곤핍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모든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삼년 육개월의 가뭄이니 얼마나 혹독하겠습니까?
어제 오늘 우리나라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게 되니 얼마나 감사 할 일인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이들의 대 가뭄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는 왕의 통치입니다.
물론 이 나라의 지경이 이렇게 된 원인은 역시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그렇게 보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17절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서지 않는 자의 특징은 언제든지 믿음적인 자에게 모든 것을 탓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탓하고 교회를 탓하고 목사를 탓하고 믿는 사람을 탓하기를 좋아 합니다.
만약에 우리 가운데 이런 탓을 좋아 하는 자가 있으면 빨리 고치고 회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듣고 보고 계십니다.
절대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 행한 데로 다 돌아가게 됩니다.
아합왕의 행위는 불신의 행위는 삼년 육개월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든지 땅이 갈라지든지 아니면 불 뱀이 와서 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을 하고 제대로 되는 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들의 고통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멀리하고 믿음이 없이 우상 숭배하는데 있습니다.
18절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쫓았음이라
3년 6개월의 그 고통의 기간이 왜? 찾아 왔겠습니까?
이 고통의 기간이 없이 평안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당해야만 합니까?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적하고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도 당하지 않아도 될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을 불평하고 믿는 이를 불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불신이 제거 되고 정화되기까지는 아합시대는 3년 6개월의 기간이 필요했는데 우리 가운데는 평생의 세월을 보내어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더 이상 오래 갈 것이 없이 빨리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해결의 방법은 하나님을 찾는데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알이야? 하나님이냐?를 머뭇머뭇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드디어 누가 참신이냐?
누가 만왕의 왕이냐?를 가를 때가 왔습니다.
제단에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신이다.
누가 과연 응답을 하느냐? 는 대결이 갈멜산에서 있었습니다.
진리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 편에 있느냐? 입니다.
반드시 진리는 그대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는 왕의 권세를 입고 그리고 그 숫자도 850명이나 되는 자들이 하루 종일 염불을 외고 자신의 몸에서 피를 내는 고행까지 치렀지만 29절 아무 소리도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었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이름이여 내가 부르다가 죽을 이름입니다.
우상은 그렇습니다.
세상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돌로 만들고 나무로 만들고 크게 만들고 수 만개 만들고 금은으로 도금하고 내 생각으로 무슨 짓을 다 해 봐도 그것은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이 없고 역사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그 이름만 불러도 대답 하시는 살아 역사 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눈이 이 곳을 바라보시고 그 귀를 기우려 듣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찾는 자에게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언제든지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36-40절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하나님은 주의 종의 기도에 지체하지 않고 불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답 앞에 우상의 세력은 다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삼년 육개월 동안 그들을 괴롭혔든 장애물이 물러 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누려야 할 축복을 사단의 세력들이 다 가로 막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찾기만 하면 되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은 내게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개 복을 가로 막은 것들이 다 망하여 버릴 것입니다.
비로소 하늘은 비를 내리고 가뭄은 끝이 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45절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 지라 할렐루야!
믿습니까?
그런데 왜 아직도 무엇을 믿고 계속 머뭇머뭇 거리고만 있어야 하느냐? 말입니다.
아무런 실력을 발휘 할 수 없는 다 죽어가도 세상의 눈치를 살피고 능력 없는 내 생각만으로 믿겠다는 것입니까?
언제까지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고 다 망친 후에 아무런 낙이 없다 할 때가 와셔야 하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식과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십시오.
나의 믿음을 주께 내어 놓으십시오 한번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은 성령의 불로 응답 하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가뭄은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개걸(丐乞)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거지가 된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없어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떠나고 죄악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말씀이 내 삶 가운데서 풍성하지 못할 때, 나의 삶의 현장 속에서 빈곤과 피곤과 그리고 메마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참으로 재미있는 말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 주시면 하나님을 잘 믿겠다는 것입니다.
잘 믿지 않는데 어찌 축복이 되겠습니까?
이제는 그런 말을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구원의 때요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내가 당한 내 형편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넉넉한데 잘 되는데 하나님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잘 되는 데로 살아가면 되지 않습니까?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날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을 날마다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순간마다 일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순간마다 일마다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삶의 어느 순간마다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삶의 소속과 삶의 방식을 분명히 결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머뭇거리며 살지 말자. 재물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한입 가지고 찬양도 하고 저주도 하고, 기도하면서도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원망이나 불평만 늘어놓고 살지 말고 분명히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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