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십시오. 상황(狀況)이 역전(逆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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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24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열왕기하 6:14-19 기도하십시오. 상황(狀況)이 역전(逆轉)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삶의 두려움과 염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유 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실 적부터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만들지 않고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과 염려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하겠다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인간이 에덴에서 창조되어 살아 갈 때에 염려와 걱정이 되는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원래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걱정을 대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찾아 온 것은 모든 염려를 다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데에 있었습니다.
평안케 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에게서만 무엇이든지 해결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가면은 그 염려와 걱정에서 자유 하는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찾아 가는 방법 중에 하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서 나와 관계된 모든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아무 걱정이 없는 것 같은 솔로몬도 우리와 같이 두려움과 염려에서 자유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전쟁의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 가난의 두려움, 천재지변의 두려움, 등으로 우리 모두가 염려하는 그런 걱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그 걱정 가운데 참으로 자유 할 수 있었음은 걱정 염려에만 빠져있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로 걱정거리를 해결하기를 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흉년이나 질병이나 전쟁이나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내게 나와 기도하면 그 걱정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기도 하는 자를 향하여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도 이런 약속을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참으로 요사이 새롭게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기도 할 수 있다는 것과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 기도 할 수 있다는 특권을 알지 못하고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기도하기가 힘이 듭니다. 아니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내가 기도를 하지 못하여 얻지 못하지 기도하면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기도하기를 주저하거나 인색하지 않고 적극성을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왜? 죽을 둥 살 둥 기도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기도를 해야만 속이 시원한 자입니까?
시중에 강력기도라는 안산의 김동성 목사가 지은 책에서 그는 다음과 기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힘든 노동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새벽잠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철야를 하면 뭔가를 희생한다는 개념을 갖기 쉽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는 즐거운 시간인 것이다. 건강을 위해 강요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을 하듯이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해야 하는 즐거운 운동인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기도 응답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기도를 한번 시작해 보십시오.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할렐루야!
나 인간은 약하지만 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기도를 한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육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영감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소이 기도를 하면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성령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며 지식의 신이요 지혜의 신이요 묘사(妙思)요 기묘자이시기 때문에 만사를 통달하게 하십니다.
어떤 문제에도 막힘이 없고 형통하게 됩니다.
분명히 생업과 직장과 사업 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축복이 되게 하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참으로 국가적인 위기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8-9절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람 왕이 아무리 작전을 잘 짜고 나왔지만은 엘리사는 그 작전을 알고 잘 대처하여 그때그때마다 그들을 잘 막아 낸 것입니다.
이 때에 아람 왕은 얼마나 당황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간첩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11절 이러므로 아람 왕이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內應)이 된 것을 고하지 아니하느냐? 고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셔서 안 계신 곳이 없으시고 편재하셔서 온 땅에 충만하시고 전지하시기 때문에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만물이 하나님 앞에는 벌거벗은 것같이 들어납니다.
12절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들어 십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이같이 일상의 생활을 지혜롭게 복되게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사업에 성공하고 축복을 받으려면 기도하시면 틀림없이 성령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꼭 성공을 하고 싶다면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는 능력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보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함께 하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됩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주인이 물으니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고 기도밖에는 정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 주십시오.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소. 놀랍게도 부인은 접혀진 노트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건네주면서 “우리 어린애가 지난밤에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를 적어 두었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은 읽어 보지도 않은 채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놓고는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 무게가 되는지 달아 봅시다”하고중얼거렸습니다. 놀랍게도 빵 한 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꼼짝을 안했습니다. 다른 식료품을 올려놓았는데도 저울은 움직이지 않자주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드디어 저울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필요한 만큼 가져 가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부인은 눈물 흘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야 주인은 저울이 고장 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주인은 가끔 의아했습니다. 그때 일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왜 그 부인이 미리 기도를 써가지고 왔을까? 왜 그 부인이 저울이 고장 났을 때 왔을까? 그때 그 부인이 적은 기도문은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였다고 합니다.
내게 다가온 불안과 공포는 환경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한 상황에 처한 나 인간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엘리사는 아람의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에 그 일로 인하여 염려하거나 걱정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안연히 처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그는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엘리사와 함께 있던 사환은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없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고 인간 자신에게 처한 환경을 바라 볼 때에 얼마나 두려워하였겠습니까?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으로 인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무능한 자기 자신을 바라 볼 때에 누구든지 그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 얼른 기도를 해 보십시오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기도하기 전에는 결코 물러가지 않습니다.
저는 소리를 치며 기도함으로서 얼마나 제게 오는 두려움을 물리치는지 모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일에 주눅이 들어 꼼짝을 할 수가 없고 사단의 영에 붙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엘리사가 이 사환을 위하여 기도하니 사환의 눈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천군 천사를 본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걱정하고만 있지 마시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
왜? 세상일로 다 죽어 가면서도 기도하기를 싫어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시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왜 이렇게 나만 고통스러운가?
왜 나만 이렇게어려움을 당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환경과 같은 상황과 같은 처지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된 자는 사환만이 아닙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엘리사의 사환만이 불안과 공포와 답답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군대의 많은 군사와 병거를 보았습니다.
이같이 육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아람군대와 같은 병마와 실패와 가난과 절박한 환경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 무엇이 불행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는 그것이 여러분을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람군대가 에워싸도 엘리사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현실을 두고 서로가 오고 갈수 없는 의사불통이 생겼을 때는 싸우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기도는 언제든지 승리하게 합니다.
얼마 후 도단 성을 포위한아람 군대는 엘리사를잡으려고 접근해 왔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다시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눈을 어둡게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황하 6:18). 결국 아람 군대는 갑자기 소경이 되고 포로가 되어 엘리사에게 이끌리어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데도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반드시 나의 상황이 긍정적인 상황으로 역전이 될 것입니다.
합력해서 선이 되고 화라도 복이 되니 무슨 염려가 되겠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걱정하는 어리석음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삶의 두려움과 염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유 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실 적부터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만들지 않고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과 염려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하겠다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인간이 에덴에서 창조되어 살아 갈 때에 염려와 걱정이 되는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원래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걱정을 대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찾아 온 것은 모든 염려를 다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데에 있었습니다.
평안케 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에게서만 무엇이든지 해결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가면은 그 염려와 걱정에서 자유 하는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찾아 가는 방법 중에 하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서 나와 관계된 모든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아무 걱정이 없는 것 같은 솔로몬도 우리와 같이 두려움과 염려에서 자유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전쟁의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 가난의 두려움, 천재지변의 두려움, 등으로 우리 모두가 염려하는 그런 걱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그 걱정 가운데 참으로 자유 할 수 있었음은 걱정 염려에만 빠져있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로 걱정거리를 해결하기를 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흉년이나 질병이나 전쟁이나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내게 나와 기도하면 그 걱정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기도 하는 자를 향하여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도 이런 약속을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참으로 요사이 새롭게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기도 할 수 있다는 것과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 기도 할 수 있다는 특권을 알지 못하고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기도하기가 힘이 듭니다. 아니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내가 기도를 하지 못하여 얻지 못하지 기도하면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기도하기를 주저하거나 인색하지 않고 적극성을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왜? 죽을 둥 살 둥 기도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기도를 해야만 속이 시원한 자입니까?
시중에 강력기도라는 안산의 김동성 목사가 지은 책에서 그는 다음과 기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힘든 노동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새벽잠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철야를 하면 뭔가를 희생한다는 개념을 갖기 쉽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는 즐거운 시간인 것이다. 건강을 위해 강요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을 하듯이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해야 하는 즐거운 운동인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기도 응답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기도를 한번 시작해 보십시오.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할렐루야!
나 인간은 약하지만 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기도를 한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육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영감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소이 기도를 하면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성령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며 지식의 신이요 지혜의 신이요 묘사(妙思)요 기묘자이시기 때문에 만사를 통달하게 하십니다.
어떤 문제에도 막힘이 없고 형통하게 됩니다.
분명히 생업과 직장과 사업 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축복이 되게 하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참으로 국가적인 위기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8-9절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람 왕이 아무리 작전을 잘 짜고 나왔지만은 엘리사는 그 작전을 알고 잘 대처하여 그때그때마다 그들을 잘 막아 낸 것입니다.
이 때에 아람 왕은 얼마나 당황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간첩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11절 이러므로 아람 왕이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內應)이 된 것을 고하지 아니하느냐? 고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셔서 안 계신 곳이 없으시고 편재하셔서 온 땅에 충만하시고 전지하시기 때문에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만물이 하나님 앞에는 벌거벗은 것같이 들어납니다.
12절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들어 십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이같이 일상의 생활을 지혜롭게 복되게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사업에 성공하고 축복을 받으려면 기도하시면 틀림없이 성령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꼭 성공을 하고 싶다면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는 능력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보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함께 하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됩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주인이 물으니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고 기도밖에는 정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 주십시오.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소. 놀랍게도 부인은 접혀진 노트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건네주면서 “우리 어린애가 지난밤에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를 적어 두었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은 읽어 보지도 않은 채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놓고는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 무게가 되는지 달아 봅시다”하고중얼거렸습니다. 놀랍게도 빵 한 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꼼짝을 안했습니다. 다른 식료품을 올려놓았는데도 저울은 움직이지 않자주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드디어 저울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필요한 만큼 가져 가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부인은 눈물 흘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야 주인은 저울이 고장 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주인은 가끔 의아했습니다. 그때 일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왜 그 부인이 미리 기도를 써가지고 왔을까? 왜 그 부인이 저울이 고장 났을 때 왔을까? 그때 그 부인이 적은 기도문은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였다고 합니다.
내게 다가온 불안과 공포는 환경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한 상황에 처한 나 인간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엘리사는 아람의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에 그 일로 인하여 염려하거나 걱정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안연히 처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그는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엘리사와 함께 있던 사환은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없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고 인간 자신에게 처한 환경을 바라 볼 때에 얼마나 두려워하였겠습니까?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으로 인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무능한 자기 자신을 바라 볼 때에 누구든지 그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 얼른 기도를 해 보십시오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기도하기 전에는 결코 물러가지 않습니다.
저는 소리를 치며 기도함으로서 얼마나 제게 오는 두려움을 물리치는지 모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일에 주눅이 들어 꼼짝을 할 수가 없고 사단의 영에 붙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엘리사가 이 사환을 위하여 기도하니 사환의 눈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천군 천사를 본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걱정하고만 있지 마시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
왜? 세상일로 다 죽어 가면서도 기도하기를 싫어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시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왜 이렇게 나만 고통스러운가?
왜 나만 이렇게어려움을 당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환경과 같은 상황과 같은 처지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된 자는 사환만이 아닙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엘리사의 사환만이 불안과 공포와 답답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군대의 많은 군사와 병거를 보았습니다.
이같이 육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아람군대와 같은 병마와 실패와 가난과 절박한 환경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 무엇이 불행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는 그것이 여러분을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람군대가 에워싸도 엘리사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현실을 두고 서로가 오고 갈수 없는 의사불통이 생겼을 때는 싸우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기도는 언제든지 승리하게 합니다.
얼마 후 도단 성을 포위한아람 군대는 엘리사를잡으려고 접근해 왔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다시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눈을 어둡게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황하 6:18). 결국 아람 군대는 갑자기 소경이 되고 포로가 되어 엘리사에게 이끌리어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데도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반드시 나의 상황이 긍정적인 상황으로 역전이 될 것입니다.
합력해서 선이 되고 화라도 복이 되니 무슨 염려가 되겠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걱정하는 어리석음이 없으시기 바랍니다.